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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서의 서재입니다.

아이템 씹어먹고 인생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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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김낙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3
최근연재일 :
2024.05.24 00:13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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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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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145,152

작성
24.05.09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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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07 리빙 아머

DUMMY

리빙 아머의 정체는 기생충이다.


갑옷의 사지에 빨판 달린 촉수를 뻗어서 사람처럼 움직이는 깜찍한 놈들이다. 갑옷의 마핵은 이 기생충의 본체에 붙어있다. 그걸 깨뜨리면 리빙 아머의 작동은 멈춘다.


그러면 이 코어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감독관이 말한 대로 전신을 해머로 두들겨서 찾아야 하는가. 일단은 그게 정석이긴 한데.


하율처럼 원거리 감정이 가능한 ‘감정안’을 지닌 감정사는 마핵의 위치를 손대지 않고도 파악할 수 있다. 그곳을 해머로 때리면 리빙 아머의 동작은 멈추게 되고, 그 틈을 타서 리빙 아머를 넘어뜨린 뒤에 마핵을 파괴하면 된다. 그러면 되긴 하는데···.


문제는, 리빙 아머가 맨손이 아니라는 데 있다.


왼손에는 몸통만큼 큰 방패를 들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다. 수류탄으로 몸통을 터뜨리기 전에 방패에 막히고 검에 도륙될 것이다.


{게이트가 열립니다. 게이트의 공략 조건을 충족하기 전에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공략 조건은 리빙 아머의 전멸입니다.}


공략 조건은 이미 감정사들이 파악한 상태다.


게이트가 열리자 공략조들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어쩌면 인생 마지막일 공략을 뛰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


{모쪼록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무운을 빕니다.}


감독관의 인사는 공허한 흉내일까, 아니면 진실한 기원일까.


이윽고 문이 닫히고, 내부가 컴컴해졌다.


익숙한 어둠이 찾아왔다. 하율은 1년간 어두운 미궁에서 살았으니까.


몇몇 동료들은 앞을 보기 위해 등불 주문을 외웠다. 몸이 등불이 되었다. 덕분에 시야가 트이고, 내부는 제법 밝아졌다. 이 마법은 지난 1년 동안 하율이 미궁 안에서 가장 많이 신세를 진 마법이다.


그리고 대체로 게이트 공략조에 낀 감정사들이 이 마법을 많이 사용한다. 그 이유는 이 마법의 치명적인 단점과 관련이 있는데.


퍽!


어그로를 끈다는 것이다. 사람 목이 하나 날아가고, 등불 하나가 꺼졌다.


겁을 먹은 동료들은 등불 마법을 황급히 도로 껐다. 시야가 어두워져서 상황 파악이 힘들어졌다. 차라리 잘 됐다. 하율은 등불 주문을 외웠다.


확. 불이 켜졌다.


리빙 아머들이 하율에게 달려왔다. 검을 던지는 놈도 있었다. 하율은 여유 있게 날아오는 검을 피했다. 무기를 스스로 버리다니, 매우 고맙다.


하율은 해머로 선두에 있는 놈의 방패를 힘차게 때렸다. 맞은 놈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뒤에 서 있던 놈들이 와르르 쓰러졌다.


리빙 아머들은 별로 민첩하지 않다. 별로 힘이 세지도 않다. 딱히 무겁지도 않다. 다만 검을 비교적 잘 다루며, 방패 뒤로 숨는 것을 잘한다.


하율은 맨 앞의 놈이 든 방패를 옆으로 쳐냈다. 텅! 악력이 별로인 리빙 아머가 방패를 놓쳤다. 맨몸이 드러난 놈에게 자석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고 하율은 엎드렸다.


착! 성능 좋은 자석이 놈의 배에 붙었다. 이 몽둥이 수류탄은 지향성이라 자석 접착면 방향으로만 폭발이 터진다.


쾅!


폭발이 리빙 아머의 허리를 둘로 갈라놓았다. 상체는 죽었고, 하체만 살았다. 그것도 절뚝거린다. 마핵은 무릎이다.


하율은 놈의 하체를 걸어 넘어뜨리는 동시에 코어가 있는 무릎을 해머로 내리쳤다.


쩌엉!


요란하게 박살 나는 소리. 마핵이 깨진 소리다. 하율의 팔찌에 카운트가 1 올랐다.


아까 수류탄을 터뜨렸을 때 그놈의 등 뒤에 있던 3개의 리빙 아머가 폭발에 휩쓸렸다. 다리가 끊어진 놈이 하나, 팔이 날아간 놈이 하나, 방패가 날아간 놈이 하나.


나머지 수류탄 하나는 보스를 상대할 때 써야 할 것 같으므로 일단 아껴두었다.


“흐랴아압!”


쩌엉! 기합과 함께 마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료들 중에도 용맹한 자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쾅! 쾅! 용기를 낸 다른 동료들이 해머질을 시작했다. 방패가 밀리고 찌그러지면서 리빙 아머들이 연거푸 넘어졌다. 운동능력은 낮은 놈들이라 해볼 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등불의 숫자가 다시 늘어났고, 사람들은 무거운 해머를 휘두르며 적을 쓰러뜨려 나갔다.


그러나.


퍽! 퍽!


“흐이이익!”


동료 둘의 머리가 또 날아갔다. 이것으로 남은 인원은 27명. 등불은 다시 꺼졌다. 동료들은 다시 위축되었다. 상대는 무기를 들고 있는 2레벨급 몬스터임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게다가 리빙 아머들은 어두운 상황에서도 적을 식별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퍽! 퍽! 퍽!


26명. 25명. 24명. 아군의 숫자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반면, 적은 보스까지 합쳐서 9마리. 전력은 적이 점점 더 우세해지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죽으면 억울하니 수류탄이라도 던집시다!”


별다른 작전도 훈련도 없이 들어온 이들에게 이런 어리석은 외침은 설득력을 얻는다. 슉. 슉. 10여 개의 수류탄이 적진을 향해 날아갔다.


리빙 아머들은 방패를 머리 위에 든 채로 그 자리에 앉아서 방어했다. 마치 거북선 등딱지같은 모습으로.


모두들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텅! 텅! 수류탄들은 방패에 가로막혔다. 콰콰콰쾅! 방패에 붙은 수류탄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마핵을 다친 적은 하나. 몸을 다친 적은 다수.


숫자만 세어 봐도 30명이 들고 있던 자석 수류탄은 60개다. 어째서인지 적들은 한 덩어리로 모여있다. 수류탄을 저 밀집한 무리에 집중적으로 던지면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다. 기회다. 하율은 외쳤다.


“자, 이렇게 된 이상 나머지 수류탄도 쏟···!”

“해머 들고 돌진! 놈들을 납작하게 으깨줍시다!”


뭐야? 남의 말을 끊고 대장놀이 하는 놈이! 그것도 어리석은 지시를 하고 있어!


“와아아아!”


아군들은 돌진해서 해머를 내리치려고 했지만.


푹. 푹. 퍽. 퍽.


다시 일어선 리빙 아머의 검들이 아군의 목과 몸통을 마구 도륙했다. 텅 빈 갑옷 주제에 검술은 아주 제대로다. 이놈들, 2레벨 수준이 맞다.


아군의 남은 인원은 순식간에 14명.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으며, 대체로 겁쟁이들이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 용맹한 생존자들은 적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다.


반면, 적의 남은 숫자는 보스 포함 7마리. 미미하게 피해를 입혔다. 적들도 부상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 움직이면서 예리한 검을 휘둘렀다.


장비도 대충 챙겨주고 숫자만 가득 채운 어설픈 준비로는 이런 처참한 전황을 면하지 못했다. 리더도 없고 작전도 없으면서 뭘 하라는 건지.


레벨 높은 능력자라면 이따위 깡통들은 어렵지 않게 쓸어버렸을 텐데. 저주에 걸리는 것이 문제라면 저주를 푸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그런 레벨 높은 능력자가···. 마침 있었다.


신하율. 자신이었다.


하율은 해머로 적의 방패를 차례로 걷어냈다. 방패들은 적들의 팔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해머를 휘두르며 하율은 실감했다. 얘네들, 1레벨 능력자들이 절대로 상대할 수 없겠다.


역시나 예산에 맞춰서 준비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긴 하다. 수류탄도 그렇고, 해머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그런 것치고는 ‘천군천마의 완드’ 같은 비싼 포상을 내건 것이 의아하다. 혹시 전멸을 예상하고 처음부터 안 줄 생각이었을까? 가능성이 없진 않다.


‘죽은 동료들에겐 미안하지만, 포상은 내가 가져가야겠어.’


신하율에게는 동료의 죽음보다 템밥이 먼저였다. 하율은 해머를 내던지고 인벤토리에서 철퇴를 꺼냈다. 무게추가 큼직한 특제 철퇴고, 검을 잔뜩 요리해 먹여서 공격력이 살벌하게 올라간 놈이다. 하율이 휘두르면 5레벨 정도의 위력이 나올 것이다.


반면 적의 레벨은 대체로 2~3 정도. 하율은 승리를 확신했다.


붕붕붕붕. 해머의 무게추를 힘차게 돌렸다. 바람이 불어닥치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받아라아아앗!”


쾅! 쾅! 쾅! 쾅! 철퇴를 휘두를 때는 리듬감이 중요하다. 원운동을 하다가 적을 두들겨야 하므로, 공격 패턴을 읽을 줄 아는 상대라면 쉽게 철퇴를 막거나 피할 수 있고, 반격 타이밍을 잡기도 수월하다.


그러나 리빙 아머들은 그렇게 영민하지 않다.


철퇴에 흠씬 두들겨 맞은 리빙 아머들은 검과 방패를 놓치고, 팔다리가 으깨지고, 코어가 박살났다. 순식간에 3마리를 때려잡았다. 남은 적은 4마리, 하율이 잡은 적도 4마리다.


하율은 조금 후회했다.


전투 초반의 하율은 사람들에게 너무 특이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했었다. 남들처럼 해머와 수류탄으로 싸우는 사람인 척했다.


감정사 짐꾼 시절, 튀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버릇이 여기에서도 드러났다. 눈에 덜 띄어야 해코지를 덜 당하므로.


하지만 인제 와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하율은 몸을 사렸다. 이제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조금 반성하는 하율이었다.


쾅! 쾅! 쾅! 하율은 나머지 리빙 아머들도 처리했다. 하율이 퇴치한 리빙 아머는 총 8마리. 적은 보스 하나만 남았다. 하율의 감정안으로 본 바, 등급은 3레벨.


{우워어어어어어!}


보스가 절규했다. 텅 빈 갑옷이 울림통이 되어 음산한 에너지를 잔뜩 발산했다. 아군들은 하율을 제외하고 일제히 움츠러들었다.


하율이 감정안으로 포착한 결과, 아까의 포효와 함께 보스의 레벨이 4로 상승했다.


보스는 어째서인지 검과 방패를 내려놓고 몽둥이를 들었다.


“어, 저거···. 강해진 거 맞죠?”


이 굵은 목소리는, 아까 수류탄을 던지라면서 대장 놀이를 하던 아저씨다. 죽은 동료들의 쓰지 않은 수류탄들을 잔뜩 주워서 허리띠에 꽂고 있었다. 하율이 물었다.


“그 수류탄, 던지실 건가요?”

“네. 제가 던지는 거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동네 야구단 투수라도 하셨나. 하율은 아저씨를 말렸다.


“안 던지시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왜죠?”

“저놈이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어서요. 검이 아니라.”


아저씨는 의아해했다. 하율의 말을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아저씨가 물었다.


“그게 문제가 됩니까?”

“문제가 돼요. 적은 힘도 민첩성도 늘었어요.”


레벨 4가 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원거리에서 감정안을 쓴다는 걸 믿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자석 수류탄이니 몸에 잘 붙을 것 같은데요.”

“그 수류탄을 쳐내기라도 하면 되돌아와요. 위험해요.”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피해계세요. 제가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죠. 모두들! 멀리 숨어있어요! 제가 혼자 상대합니다!”


지금껏 몰랐는데, 이 아저씨의 레벨은 2였다. 처음에 둘러볼 때는 눈에 안 띄었는데, 언제부터 2레벨이었는지. 동료들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던 하율의 실책이긴 했다.


2레벨이라면 1레벨들 사이에서 으스댈 만한 능력을 지닌 건 맞다.


하지만 저 리빙 아머의 레벨은 4였다···.


“자, 받아라!”


하율은 자리를 피했다. 아저씨는 길게 몸을 젖히다가, 전신을 휘둘러서 수류탄을 던졌다. 연속으로 다음 수류탄을 던지려던 찰나.


딱!


보스가 친 수류탄이 구석에 모여 숨어있던 동료들을 덮쳤다. 위험하다!


쾅! 쿠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대참사가 벌어졌다. 보스가 쳐낸 수류탄이 살아있던 동료들이 가지고 있던 수류탄에 연쇄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사람들의 팔다리가 산산조각으로 튀었고 머리가 바닥에 굴렀다.


“어, 이거···.”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저씨가 당황했다. 아군은 하율과 아저씨, 둘만 남았다.


보스 갑옷이 쳐서 되돌린 수류탄은 지향성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수류탄들도 어째서인지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불량품이라기엔 너무 위력적이다. 자살 특공대라도 된 기분을 느끼는 하율이었다.


하율은 보스의 몽둥이를 감정했다.


[‘리빙 아머 전용 배트’]

[적의 공격을 쳐내는 데 성공할 경우, 10배의 위력으로 반격하는 배트.]


“뭐 이런···.”


아저씨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울먹이면서 심하게 불안해했다. 그렇겠지. 자기 실책으로 아군이 전멸했으니. 그런데.


아저씨는 허리에 찬 수류탄을 꺼내 들더니 벌린 입 안에 슈류탄의 머리를 넣고 안전핀을 뽑았다. 하율은 황급히 엎드렸다.


쾅! 폭발과 함께 아저씨의 머리가 터졌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자살이었다.


“···.”


이제 그곳에는 보스 리빙 아머와 하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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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20 마지막 한 명 24.05.19 30 1 13쪽
19 019 시한폭탄 템밥 24.05.18 30 1 12쪽
18 018 슬라임은 물에 뜬다 24.05.18 35 1 13쪽
17 017 쓰레기 섬 24.05.17 41 1 12쪽
16 016 인터뷰 24.05.16 45 1 11쪽
15 015 여객기 퐁듀 24.05.15 56 1 13쪽
14 014 좀도둑이 들었다 24.05.14 55 1 11쪽
13 013 레벨 12 24.05.13 60 1 15쪽
12 012 헬스장으로 만든 흑탕 24.05.12 59 0 13쪽
11 011 드러난 악행 24.05.11 70 1 12쪽
10 010 복수의 오버 힐 24.05.11 77 1 13쪽
9 009 강해지면 하고 싶은 것 24.05.10 8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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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 리빙 아머 24.05.09 100 1 13쪽
6 006 템밥에 미치다 24.05.09 11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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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02 마왕의 비밀 주방 24.05.08 15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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