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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서의 서재입니다.

아이템 씹어먹고 인생역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김낙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3
최근연재일 :
2024.05.24 00:1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799
추천수 :
29
글자수 :
145,152

작성
24.05.09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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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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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006 템밥에 미치다

DUMMY

검은 게이트 공략 당일.


이곳저곳에 빚진 돈을 갚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검은 게이트로 가는 하율과 하람.


하율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어째서 나는 이런 인간이 되었나? 1년 동안 미궁 생활을 하면서 템밥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템밥을 위해서라면 마누라도 팔아먹을 수 있다! 마누라 없지만. 아버지도 팔아먹을 수 있다! 아버지 돌아가셨지만. 동생은 팔아먹을··· 수 있나? 아니,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니다.’


하율은 자꾸 입 안에 고이는 침을 삼키며 ‘천군천마의 완드’를 떠올렸다.


‘하여간, 수억 원을 호가할 것 같은 이 아이템은 내가 가져야 한다. 내가 먹어야 한다. 아아. 얼마나 맛있을까. 템밥! 아아, 템밥이여! 나는 저 아이템과 사랑에 빠졌다!’


하율이 미궁에서 깨달은 진리 중 하나는, 귀한 가치를 지닌 아이템일수록 템밥을 만들어 먹으면 더 맛있다는 것이다.


고립된 미궁에는 수많은 값진 아이템들이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요리해 먹는 맛에 도취되어 삶의 의욕을 얻어 살아왔다.


솔직히 레드 슬라임만 충분히 있으면 게이트와 연관이 없는 물건도 요리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낡은 선풍기도 두루마리 휴지도 공구통의 몽키스패너도 다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템밥의 재료에는 격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찮은 재료가 있는가 하면 고급진 재료도 있다. 그리고 그 품격은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으로도 전해진다.


하율은 그것을 보았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이건 그야말로 대박 고급진 아이템. 존맛탱 아이템이다. 무슨 맛일지 정말 궁금하다. 맛있을 것은 틀림없지만, 무슨 맛일지는 정말 궁금해 미치겠다. 하율은 자꾸 몽롱해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애썼다.


“천군천마의 완드! 넌 이제 내 거다!”


하율의 생각이 혼잣말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람이 주의를 줬다.


“오빠. 쉿. 창피해.”

“아, 미안.”


하람은 하율이 걱정되었다. 혼자서 헛소리를 하지 않나. 침을 막 흘리지 않나. 이 상태로 검은 게이트를 공략하겠다니.


그 비싸 보이는 아이템 하나를 얻기 위해 이래도 되는 걸까. 이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하람이 물었다.


“오빠. 검은 게이트 공략, 안 하면 안 돼?”

“안 돼.”


하람은 하율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모른다. 하율은 금화 포타주를 잔뜩 먹고 레벨이 꽤 상승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 하람은 알지 못했다.


그저 하율은 집에 있는 유리컵을 젓가락으로 관통시켜 보였을 뿐이다. 검사 계열 레벨 3부터 할 수 있는 묘기로 알려져 있었다. 속임수는 아니었다.


하람은 하율에게 곁눈질을 하며 물었다.


“1년 동안 오빠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미궁에서 살아남으려고 유유자적하게 발버둥 치다가 왔어.”

“유유자적하게 발버둥 치다니, 오빠가 무슨 발레리노야?”


비유가 찰떡이네. 하율이 말했다.


“아무튼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강해. 스킬도 특성도 많이 가졌고.”


하람은 정수리를 벅벅 긁고는 하율에게 또 질문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검은 게이트의 저주는 어떻게 해결할 거야?”

“이걸로.”


하율은 인벤토리에서 병 하나를 꺼냈다. 라벨에 ‘망토 비누 잼’이라고 적혀 있었다. 감정 용품으로 견출지와 펜을 가지고 들어가서 요긴하게 썼다. 병은 주방에 엄청나게 많이 있었고.


견출지에 적힌 대로 망토와 비누를 함께 끓여서 잼으로 만든 것이다. 잼보다는 버터에 가깝지만, 그냥 잼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걸 한 스푼 먹으면 24시간 동안 저주 저항 특성을 가질 수 있어.”

“우와, 진짜? 미궁 안에 그런 게 있었어?”

“만들었지.”


템밥. 아이템을 요리로 만드는 하율만의 비법. 그리고 기적. 하람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며 물었다.


“정말?”

“어허. 그런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하람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하아. 대체 오빠는 1년 동안 뭘 하고 온 거야?”

“살아남았어.”

“어, 으응···.”


하율은 병을 인벤토리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가 허공에 물건을 넣어 없애는 모습을 보고, 하람은 눈을 비비며 물었다.


“방금 그거 인벤토리 능력이야? 그거 가지려면 4레벨 이상이어야 한댔는데.”

“후후. 알아보는구나.”

“오빠. 지금 오빠 레벨은 몇이야?”


하율은 자신의 진짜 레벨을 하람에게 슬쩍 귀띔해주었다. 하람은 기겁했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다.”

“뭔가 착각한 거 아냐?”

“절대 아니다.”


감정사인 하율이 스스로를 감정한 결과다. 틀릴 리가 없다. 하람은 갑자기 들떠서 하율에게 졸라댔다.


“당장 집 사자. 차도 사자. 옷도 사자. 외식하자. 같이 크루즈 여행 갔다 오자.”

“현금이 부족해. 돈 벌어야 해.”

“보물 팔면 되잖아. 많이 있다며.”


하율은 하람을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보물을 파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귀중한 식재료니까.”

“그럼, 당장 레벨 재검사한 다음에 비싼 게이트 공략하자.”


하율은 들떠있는 하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 전에 검은 게이트부터 공략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종합적으로 보면 비싼 게이트나 검은 게이트나 별 차이 없을 것 같은데. 난이도나, 보상이나, 생존 확률이나.”

“으으으.”


하람은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끄으으응 고민하더니 깊은숨을 내뱉고 말했다.


“알았어. 다녀와.”

“오.”

“다만.”


하람은 하율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혹시 죽기라도 해 봐. 그러면 내가 죽여버릴 줄 알아.”

“죽었는데 또 죽여? 어떻게?”


멱살을 잡은 손이 더 깊게 조여들었다. 하람이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궁금하면 죽어보시든가.”

“알았으니까 멱살 놔라···.”


하람은 멱살을 놓았고, 하율은 숨을 돌렸다. 어딘가 일터로 가는 외국인 노동자 무리들이 우루루 버스를 탔다가 우루루 내렸다. 저 사람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다들 피곤해 보이는데, 고생이 많다.


하율과 하람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깥세상이다. 감회가 새롭다. 음침한 미궁 안에서 1년을 버티고 나오니 마냥 좋았다. 하율은 문득 자신을 버리고 떠난 4인의 악당들을 떠올렸다. 보물을 잔뜩 싸들고 나갔으니 어딘가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살고 있으려나.


복수해야 하는데.


아니. 꼭 복수를 해야 할까?


하율은 자신의 복수심 때문에 하람이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다. 혹시라도 비열하고 사악한 놈들이 하람을 해코지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숨어있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더욱 복수를 해야 한다.


원수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하율과 원수들이 같은 하늘 아래에 서 있음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혹시 하람이 위험해진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그들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제압해야 한다.


복수를 하든 말든, 검은 게이트를 공략한 다음에 그들의 행방을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조금 걸어 들어가니 안내 벽보가 보였다.


[검은 게이트 관련으로 오신 분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하율과 하람은 현장의 관리사무소로 들어갔다. 하람 대신 하율이 공략에 참여한다는 수속을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해당 수속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히 처리되었다.


하율은 현장 앞으로 가야 했고, 하람은 관리사무소 옆의 대기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람은 하율이 현장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긴 했지만, 역시 걱정되는 모양이다.


하긴, 1년 만에 상봉한 하율을 다시 떠나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완전히 진정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하율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증명해 보였고, 하람은 그런 하율을 믿었다. 하람이 말했다.


“오빠. 끝나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어··· 그러자.”


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율도 남이 요리해 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졌다. 템밥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템밥을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율은 하람을 안심시키고 현장 앞의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조용했다.


능력자들이 제법 모이긴 했는데, 다들 음산하고 예민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이런 말 하면 미안하지만, 다들 약해 보였다. 감정안으로 살펴본 바, 1레벨이 아닌 능력자는 없었다.


하기야, 저주를 뒤집어쓰면서까지 돈을 벌러 나온 이들의 사정 또한 평범하진 않으리라.


현장 지휘를 하는 2레벨 능력자가 감독관이 되어 메가폰으로 이들을 통솔했다.


{OO씨 계십니까? 손 들어보세요! 네. 확인했고요. OO씨 오셨습니까?}


현재는 투입될 인원을 파악하는 중. 하람의 이름을 불러서 하율이 손을 들었다. 아직 동생 대신 하율이 대타로 들어간 것이 출석부에 반영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인원 점검이 끝나자 각자에게 무기가 지급되었다. 해머 1개와 자석 달린 막대형 수류탄 2개, 카운터가 달린 팔찌가 전부였다.


듣기로 검은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리빙 아머. 살아있는 갑옷이라고 했다. 이 무기들로 그것들을 잡을 수 있을까? 검소한 장비 구성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퇴치하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무리 내놓은 인력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물론 공략 참가자들이 자기 장비들 챙겨 오면 되긴 하겠지만, 그거 장만할 능력이 없으니까 여기 모인 거다.


메가폰에서 감독관의 외침이 들렸다.


{자! 3열 횡대로 헤쳐 모여!}


공략조 인원들은 예비군 훈련을 하듯 느릿느릿하게 대열을 갖추었다. 감독관이 말했다.


{공지 보셔서들 아시겠지만, 안에 들어있는 적은 리빙 아머 11마리로, 3레벨급 리더 하나에 2레벨급 잔챙이 열입니다.}


2레벨급과 1레벨급의 격차는 매우 크다. 그것들을 어떻게 1레벨급 인원들이 잡을 수 있겠는가.


사측 입장에서 볼 때, 사실은 잡지 못해도 괜찮다.


검은 게이트는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을 희생시키면 공략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며 게이트 색깔이 녹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희생자가 생기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사측에게 좋은 일이다. 인명의 희생을 조장하는 자들의 인면수심에 놀랄 필요 없다. 이 세상은 다들 그렇게 생겨먹었다. 이 세상은 다들 그렇게 삭막하고 잔혹하다.


이런 게이트에 공략 신청을 냈던 신하람은 경솔했다. 하람의 경각심은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그나마 그 타이밍에 하람과 재회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하율이었다.


감독관은 설명을 계속했다.


{이 리빙 아머들의 몸 어딘가에 있는 코어를 손상시키면 죽일 수 있습니다.}

“몸 어딘가라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건가요?”


누군가의 질문에 감독관은 성실하게 답변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석 달린 수류탄을 지급한 겁니다. 일단 몸 어딘가를 터뜨려서 거동을 불편하게 만든 다음에 마핵을 찾아서 해머로 두들겨 부수면 됩니다. 수류탄 안의 화약의 양은 너무 큰 폭발을 일으키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했습니다.}

“···.”


다들 할 말을 잃었다. 하율이 물었다.


“두들겨서 찾는 방법밖에 없나요?”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너무 힘든 거 아닌가요?”


감독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에서 공략조 인원들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난이도는 어렵지 않은 편에 속합니다. 그래서 레벨 1인 여러분을 불러 모은 것이기도 하고요.}


그야말로 나약하면서도 쓰고 버릴 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 아닌가. 저주를 받으면서 적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핵을 터뜨리면 여러분이 착용한 팔찌의 카운트가 올라갑니다. 마핵을 많이 터뜨리시는 분이 포상 아이템인 ‘천군천마의 완드’를 가져가실 겁니다.}


많이 죽이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로군. 하율은 침을 삼키며 다짐했다.


‘내가 먹어주마. 기다려라. 내 템밥.’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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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022 사진 속의 해법 24.05.21 19 1 13쪽
21 021 저기 곽동길이 있다 24.05.20 24 1 13쪽
20 020 마지막 한 명 24.05.19 30 1 13쪽
19 019 시한폭탄 템밥 24.05.18 30 1 12쪽
18 018 슬라임은 물에 뜬다 24.05.18 36 1 13쪽
17 017 쓰레기 섬 24.05.17 41 1 12쪽
16 016 인터뷰 24.05.16 45 1 11쪽
15 015 여객기 퐁듀 24.05.15 56 1 13쪽
14 014 좀도둑이 들었다 24.05.14 55 1 11쪽
13 013 레벨 12 24.05.13 60 1 15쪽
12 012 헬스장으로 만든 흑탕 24.05.12 59 0 13쪽
11 011 드러난 악행 24.05.11 70 1 12쪽
10 010 복수의 오버 힐 24.05.11 77 1 13쪽
9 009 강해지면 하고 싶은 것 24.05.10 82 1 12쪽
8 008 템밥은 동생과 함께 24.05.10 79 1 12쪽
7 007 리빙 아머 24.05.09 101 1 13쪽
» 006 템밥에 미치다 24.05.09 117 2 12쪽
5 005 검은 게이트 24.05.08 139 1 12쪽
4 004 귀환하다 24.05.08 143 1 13쪽
3 003 첫 요리 24.05.08 153 1 11쪽
2 002 마왕의 비밀 주방 24.05.08 158 2 13쪽
1 001 복수는 실패했다 24.05.08 18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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