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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서의 서재입니다.

아이템 씹어먹고 인생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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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김낙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3
최근연재일 :
2024.05.24 00:1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795
추천수 :
29
글자수 :
145,152

작성
24.05.1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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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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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20 마지막 한 명

DUMMY


곽동길은 잠적했다.


엑스타를 생산하던 시설도 버려두고, 밀항으로 해외로 도피하려 했다. 그는 고작 3레벨이었고, 자신을 뒤쫓는 신하율은 12레벨이라 알려져 있으므로.


곽동길은 신하율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개처럼 기어 봐.”

“개처럼 뛰어 봐.”

“개처럼 짖어 봐.”

“개처럼 먹어 봐.”

“개처럼 볼일 봐.”


작년까지만 해도 곽동길에게 신하율은 개였다. 틈만 나면 곽동길은 신하율을 개 취급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 결과 이렇게 겁에 질려서 도망가고 있으므로.


레벨 3의 검사인 그는 잠적 이후에도 먹고살 걱정은 없었다. 외국으로 넘어가도 신분을 바꿔서 게이트 공략조에 들어가면 되는 일이었으므로.


아니면 가방에 잔뜩 들어있는 ‘엑스타’를 팔기만 해도 될 것이었다. 재료만 공급된다면 엑스타 제조업을 다시 시작해도 될 터였다.


그도 ‘엑스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국 언젠가는 엑스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우선은 비축분으로 견디기로 했다. 소지한 엑스타로 몇 년은 버틸 수 있었다.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가능하면 죽기 전까지 숨을 수 있었으면 좋을 것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지금 곽동길이 탄 배가 도중에 해경에 포위되었으므로.


“곽동길! 순순히 투항해라!”


곽동길은 해경의 말을 듣지 않고, 모든 짐을 버리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해경들은 헤엄쳐서 도망치는 곽동길을 그물로 잡으려고 했으나, 그는 그물들을 어렵지 않게 뜯어버리고 바다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해경은 사격을 시작했으나, 뒤늦은 발포로는 곽동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3레벨 능력자. 해경은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곽동길은 모든 엑스타를 잃고 말았다.


앞으로 1주일. 그 안에 곽동길은 엑스타를 다시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일어나고, 곽동길은 인어가 되어버릴 것이었다.


*


여진리는 배명식처럼 수조에 집어넣었다. 안나리도 마찬가지로 수조에 넣었다. 각각 슬라임과 함께. 안나리는 낮잠을 자고, 여진리는 하율을 외면했다. 하율은 자기 이야기를 경청하는 배명식에게 말했다.


“이번 일만 마치면 너희들은 인류의 영웅이 될 거야. 얌전히 동참하도록 해.”

“···우, 우리더러 바다 쓰레기를 다 먹어 치우라는 건가?”

“그래. 개조인간이 되어서 인류를 위해 공헌해 줘. 물고기들과 합성하면서 쓰레기들을 먹어 치워 줘. 전부 먹어 치우고 나면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줄게.”


서있던 배명식은 몸에 힘이 빠져 무릎을 꿇었다.


“···스, 슬라임 인간이라니. 아, 끔찍해.”

“조금만 참아. 10년 금방 지나간다. 물론 10년에 딱 끝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배명식은 오한에 몸을 떨었다.


“···차, 차라리 죽이지 그래?”

“죽고 싶으면 알아서 죽어. 남한테 죽여달라고 하지 말고.”


하율은 3인의 못난이들을 뒤로 하고 미궁을 빠져나왔다.


*


저녁이 깊어가는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술집. 조명이 희미하게 빛나며 길가에 스산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뿌려놓았다.


낡은 술집의 간판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술집이 있었다는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아늑하고 포근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와 거리의 정적을 부드럽게 채웠다.


그곳은 그레첸 바그너의 술집이었다.


그레첸이 자리를 잡은 지는 얼마 안 되었다. 원래 그레첸과 이름이 같은 어른 여성이 그곳에서 살다가 사고로 죽었다. 그레첸은 그 여성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그곳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레첸이 죽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연이었을 뿐.


그레첸은 기억상실이라는 핑계를 대고 적당히 눌러앉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레첸이 12레벨의 능력자라는 사실은 모른다. 이름만 같을 뿐, 얼굴도 체구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변신 능력이 없었지만, 변신 아이템을 사용해서 이중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레첸 바그너의 실제 나이는 이제 겨우 16살. 술집 주인이었던 그레첸 바그너는 30살. 그레첸은 5년 전, 11살에 이곳으로 들어와 어른 흉내를 겨우 내면서 간신히 그곳에서 자리 잡았다.


매튜 노인이 소리쳤다.


“그레첸! 술! 술을 다오!”

“매튜. 댁한테는 술 안 팔아. 물이나 마셔.”

“매정하기는. 기껏 매상 올려주려고 했더니.”

“영감님은 나보다는 자기 몸에 붙은 간에게 더 다정할 필요가 있어. 그렇게 혹사를 시키면 간이 먼저 죽고 당신도 금방 따라 죽는다고.”


껄껄껄. 매튜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사람 몸에 안 좋으면 술장사를 하질 말던가.”

“안 그래도 때려치우고 싶어. 그런데 이거 때려치우면 심심해서 안 돼.”

“껄껄껄! 나도 여기 없어지면 심심해! 마누라도 죽었고.”

“흥. 술꾼 남편보다 부인을 먼저 데려가시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껄껄껄!”


그렇게 그레첸은 별 볼 일 없는 동네 할아버지와 농담 따먹기를 하며 지냈다.


그레첸은 그런 소소한 일상이 좋았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사람들과 노닥거리는 것이 좋았다.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어쩐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자기기만이지만.


12레벨의 그레첸 바그너는 세계적으로 숱한 재난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충동이 차오를 때면 자신의 힘을 마음껏 발산해서 인세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전세계의 많은 이들이 그레첸 바그너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혐오한다.


그렇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시골 술집에서의 소소하고 하찮은 대화는 그녀에게 작지만 소중했다. 달콤한 치유가 되었다. 혹시라도 정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마을을 통째로 쓸어버릴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럴 일이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오늘은 약속이 있었다. 별로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올 예정이다. 그레첸은 매튜 노인에게 말했다.


“영감. 집으로 돌아가. 문 닫을 거니까.”

“에잉. 매정하긴.”

“꺼져.”


그레첸은 매튜 노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노인은 차인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구부정한 자세로 차를 몰고 돌아갔다.


그레타는 간판 불을 끄고 입구의 팻말을 뒤집었다.


불 꺼진 가게 안에서 그레첸은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와. 얌전히 와줘서 고마워.}


심어(心語)로 인사하는 그레첸.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녀와 대등한 자들이었다.


12레벨의 엑스.

12레벨의 매란선인.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은 어느새 들어와서 바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레첸도 이들 앞에서 변신을 풀었다.


엑스가 먼저 인사했다.


{이렇게 모일 줄은 몰랐는데, 이런 날도 오는군. 반가워, 그레첸.}


매란선인도 인사했다.


{이런 작고 소중한 곳이 있다니. 마을이 너무 귀여워서 지옥으로 만들고 싶어.}


그레첸은 이를 드러냈다.


{이 마을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가만 안 둘 거야.}


엑스와 매란선인은 웃기만 했다. 이들이 서로 싸우면 전 지구적으로 엄청난 난리가 날 것이다. 피차 바라는 바는 아니었기에 셋은 더 이상 서로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았다. 검은 후드를 눌러쓴 엑스가 말했다.


{그래. 싸우지 말고, 대화하자고. 대화. 오늘은 그레첸이 새로 발견한 12레벨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온 건데.}


신하율을 말하는 것이다. 12레벨인 그레첸 바그너를 막아낸 능력자. 염력에서는 그레첸에게 밀렸을지 몰라도, 어떤 다른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는 뉴비. 그레첸이 말했다.


{나도 아직 그에 대해서는 잘 몰라. 나를 막아낸 건 사실이지만.}


그럴 줄 알았다며 엑스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뒷조사를 조금 해봤는데, 1레벨 감정사였다고 하더라고. 1년 동안 실종되었다가 나타났는데, 그 사이에 재각성을 한 것 같았어.}


매란선인은 파티 드레스의 어깨 장식을 쓰다듬으며 음흉하게 웃었다.


{어머, 그래? 그럼 아직 애기네? 탐스러워라. 망가뜨리고 싶어. 괴롭히고 싶어. 울리고 싶어.}

{으.}

{어휴.}


엑스와 그레첸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마음속으로 매란선인의 관심을 받는 신하율에게 애도했다. 엑스가 말했다.


{매란선인 씨. 적당히 좀 해. 상대가 12레벨이면 괴롭히려다가 되레 당할 수도 있어.}

{모르지. 12레벨은 짐작일 뿐이지, 측정 결과는 아니잖아?}


매란선인의 말이 맞았다. 다들 신하율이 12레벨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12레벨보다 낮을 수도 있고, 높을 수도 있다. 그레첸이 말했다.


{혹시 13레벨은 아닐까?}

{···.}

{···.}


엑스와 매란선인은 침묵했다. 아직 13레벨을 본 적이 없는 세 사람은, 신하율이 13레벨이었을 경우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몸서리쳤다. 엑스와 매란선인은 거의 동시에 이야기했다.


{그러면 죽여야겠지.}

{그럼 죽여야지.}


그러나 그레첸은 두 사람과 입장이 달랐다.


{왜 죽여? 설레지 않아?}

{설레긴 무슨! 오싹해 죽겠네!}

{13레벨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


킥킥킥. 그레첸은 이들의 약점을 잡은 것처럼 즐거워했다.


{신하율이 13레벨이면 좋겠다. 그러면 친해져야지.}


엑스는 그레첸의 반응을 부정하며 말했다.


{친해지다니?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셋이 힘을 모아서 그 사람을 죽여야 하지 않을까? 무섭잖아.}


그러나 매란선인은 흥미를 느꼈다.


{13레벨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 정말 13레벨이면 흥미롭긴 할 거야. 어쩌면 반할 수도 있고.}

{켁. 결혼이라도 하시게?}

{그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죽이지 못할 거면, 사랑받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러면 나는 살아남아서 그를 살살 괴롭힐 수 있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어.}

{으엑. 이상한 취미야.}


엑스가 혀를 내밀고 괴로워했다. 그레첸은 두 사람의 안색을 살피며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둘 다.}

{···.}

{···.}


그레첸은 언제나 이해한다고 한다. 어른으로 변신해서 술집을 운영하는 꼬맹이에 불과하면서. 그녀의 이해가 이해하는 척에 불과함을 엑스도 매란선인도 뻔히 알고 있었다.


엑스는 대화를 정리했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 할 거야?}


엑스의 질문에 그레첸이 먼저 답했다.


{나는 지켜보기도 하고, 만나보기도 할 거야. 신하율에게 흥미가 있어.}


매란선인이 답했다.


{나는 신하율에게 작지 않은 시련을 계속 줄 거야. 그러면서 그 친구가 어떻게 나올지를 구경하고 즐길래.}


마지막으로 엑스가 말했다.


{나는 데이터 수집을 할래. 어쩌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지도 모르잖아.}


그레첸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좋아! 좋아! 하고 싶은 건 알아서들 하고 서로 간섭하지는 말기! 논의는 끝났으니 해산!}

{그래. 용건 끝내자. 우리가 서로 말 섞을 사이는 아니니까.}

{우후후. 동감이야. 또 보자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스슷. 엑스와 매란선인은 사라졌다. 그레첸은 다시 술집 주인으로 변신하고 중얼거렸다.


“말 섞을 사이가 아니긴. 둘이 맨날 붙어 다니면서.”


그레첸은 어두운 술집에서 TV를 틀었다. 채널을 몇 번 돌려보다가 TV를 도로 껐다. 그리고 말했다.


“재미없어. 심심해···.”


재미없는 상황을 즐길 줄 아는 그레첸이었지만, 재미없는 것은 재미없는 것이었다. 그레첸은 그리운 이름을 다시 되뇌었다.


“신하율. 또 보고 싶은데. 보러 갈까? 아니, 조금만 참자.”


그레첸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침실로 들어가서 주변 정리를 대충 한 다음 불을 끄고 잠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


서해 바다.


“헉. 헉. 헉. 미치겠네. 육지는 언제쯤 나오는 거야.”


헤엄쳐서 중국으로 가는 곽동길.


해경을 뿌리치느라 힘을 너무 소모했다. 그냥 해경을 모두 죽이고 배를 빼앗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화기로 무장한 해경을 그리 쉽게 이길 수는 없었다. 곽동길은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배 하나가 나타났다.


“옳지. 저 배를 빼앗아야겠다··· 어?”


곽동길은 배를 탈취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배가 허공에 떠 있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배에 타고 있는 것이 두 사람.

엑스와 매란선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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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 Now Loading 24.05.22 18 1 14쪽
22 022 사진 속의 해법 24.05.21 19 1 13쪽
21 021 저기 곽동길이 있다 24.05.20 24 1 13쪽
» 020 마지막 한 명 24.05.19 30 1 13쪽
19 019 시한폭탄 템밥 24.05.18 30 1 12쪽
18 018 슬라임은 물에 뜬다 24.05.18 35 1 13쪽
17 017 쓰레기 섬 24.05.17 41 1 12쪽
16 016 인터뷰 24.05.16 45 1 11쪽
15 015 여객기 퐁듀 24.05.15 56 1 13쪽
14 014 좀도둑이 들었다 24.05.14 55 1 11쪽
13 013 레벨 12 24.05.13 60 1 15쪽
12 012 헬스장으로 만든 흑탕 24.05.12 59 0 13쪽
11 011 드러난 악행 24.05.11 70 1 12쪽
10 010 복수의 오버 힐 24.05.11 77 1 13쪽
9 009 강해지면 하고 싶은 것 24.05.10 81 1 12쪽
8 008 템밥은 동생과 함께 24.05.10 79 1 12쪽
7 007 리빙 아머 24.05.09 100 1 13쪽
6 006 템밥에 미치다 24.05.09 116 2 12쪽
5 005 검은 게이트 24.05.08 139 1 12쪽
4 004 귀환하다 24.05.08 143 1 13쪽
3 003 첫 요리 24.05.08 153 1 11쪽
2 002 마왕의 비밀 주방 24.05.08 158 2 13쪽
1 001 복수는 실패했다 24.05.08 18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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