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첫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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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 갇힌 신하율은 주방을 확보했다. 그는 주방을 활용하는 계획을 세웠다. 일단 요리 재료를 수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양념도 함께 찾아야 한다.
다행히 주방 안에는 10리터 정도 크기의 작은 항아리가 잔뜩 있었다. 항아리를 감정해 보았다.
[‘신선 항아리’]
[이 항아리에 저장된 음식이나 식재료는 부패하지 않는다. 신선한 상태가 유지되므로 숙성 용도로 쓸 수는 없다.]
색깔이 붉은 항아리도 꽤 있었다. 감정해 보았다.
[‘숙성 항아리’]
[이 항아리에 저장된 음식이나 식재료는 발효되거나 숙성된다. 식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색깔이 푸른 항아리도 있었다. 감정해 보았다.
[‘건조 항아리’]
[이 항아리에 저장된 음식이나 식재료는 수분이 모두 증발한다. 마른 식재료를 보관하기에 좋다.]
이 세 종류의 항아리에 식재료를 보관하면 된다. 식재료의 초벌 가공, ‘아이템의 레드 슬라임 체액 절임’은 신선 식재료 항아리에 보관하면 될 것이다. 그중에서 숙성할 것은 숙성하고, 건조할 것은 건조하면 된다.
보물창고에서 건져온 아이템들을 레드 슬라임의 체액에 절여보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금화: 감자 맛이 난다. 경험치 상승.
-갑옷: 고기 맛이 난다. 체력 상승.
-투구: 과자 반죽 맛이 난다. 마력 상승.
-방패: 생선 맛이 난다. 방어력 상승.
-검: 오징어 맛이 난다. 공격력 상승.
-철퇴: 호박 맛이 난다. 근력 상승.
-활: 당근 맛이 난다. 명중률 상승.
-드레스: 양배추 맛이 난다. 회피율 상승.
-부츠: 브로콜리 맛이 난다. 민첩성 상승.
-망토: 시금치 맛이 난다. 항마력 상승.
-펜던트: 말린 과일 맛이 난다. 집중력 상승.
-보석: 설탕, 소금, 후추 등의 양념 맛이 난다. 이것을 뿌린 식재료의 효과 증폭.
-수정구슬: 거대한 포도 알갱이. ‘감정안’ 강화.
-나무공: 양파 맛이 난다. 소화력 증진.
-주사위: 마늘 맛이 난다. 피로 회복.
-비누: 버터 맛이 난다. 청결해진다.
-하얀 면포: 물에 녹이면 우유 맛이 난다. 행복해진다.
-민자 금반지: 커피 맛이 난다. 레벨 2를 더한 효과.
-책: 김 맛이 난다. 책의 내용에 따라 각종 마법 스킬을 얻을 수 있다.
다 직접 먹어 본 것은 아니고, 거의 감정한 결과다.
절여놓은 식재료들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조리하면 더욱 맛있을 것이다. 맛이 기대된다.
맛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것들을 먹으면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 각종 능력치 상승이나 스킬 획득 효과.
그 무엇보다 경험치를 주는 금화. 레벨을 상승시키는 금화.
보통은 능력자가 각성할 당시에 가진 레벨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 드물게 재각성을 해서 상승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경우도 상승하는 레벨은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레벨 상승은 비현실적이고 꿈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금화를 먹으면 어떻게 되냐면···.
[‘금화’]
[감자 맛이 난다. 먹으면 경험치를 획득한다. 경험치가 쌓이면 레벨이 오른다. 레벨 상승의 제한은 없다.]
이렇게 된다고 한다. 세상에. 레벨 상승의 제한이 없다니. 무한히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하율은 전율했다.
신하율이 강해지면 그의 원수들에게 복수할 수 있다. 무사히 레벨이 오르고 능력치도 오른 다음에 이 미궁에서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말이다.
1레벨 감쟁이의 설움을 떨쳐버릴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갈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발길이 닿는 곳은 전부 조사해봤지만, 미궁에서 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빈틈없이 감정을 했는데도 탈출의 실마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신하율은 살아있는 한, 계속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 전에 레벨부터 올리자.
신하율은 ‘금화 포타주’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먼저 금화들을 잘 씻는다. 나무 공과 주사위들은 잘게 다진다.
큰 냄비에 비누를 녹인 다음, 다진 나무 공과 주사위를 중불에 5분 정도 볶는다.
금화를 넣고 5분 정도 더 볶아준다.
드레스, 부츠, 망토를 큼직하게 썰어서 미리 물에 우려낸다. 그 육수를 재료를 볶던 냄비에 붓고 함께 끓인다.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금화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더 삶아준다.
다 익으면 큼직한 쇠주걱으로 냄비 안의 금화를 으깬다.
그 위에 하얀 면포를 녹인다.
마지막으로 루비와 사파이어 가루로 간을 하고 마저 익힌다.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그릇에 담아 먹는다.
이것으로 금화 포타주 완성. 어디 맛을 볼까.
하율은 한 스푼을 떠서 후후 입김을 분 다음에 입 안에 넣었다.
“······!”
맛있다!
이렇게 따뜻하게 만들어진 그럴싸한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행복하다! 경험치와 능력치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재료를 섞은 상승작용으로 부가 효과가 나타났다.
[‘금화 포타주’]
[경험치가 오른다. 식후 24시간 동안 정신계 스킬을 방어한다.]
당장 누군가하고 싸울 예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 싶었다. 아. 저 왕관 레드 슬라임으로 테스트를 해보면 되겠구나.
“야. 슬라임. 나한테 위압 스킬을 써 봐.”
“삐삐유우웃!”
왕관 슬라임은 하율에게 ‘위압’을 걸었다. 아무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메시지가 떴다.
[‘왕관 슬라임’으로부터 ‘위압’ 공격을 받았으나, ‘금화 포타주’의 ‘정신계 방어’효과로 막아냈다.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거지.
재료의 효과 이상의 부가 효과가 완성된 요리에서 나온다. 아이템 요리 연구할 의욕이 샘솟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나니, 여동생 하람이 생각이 나는 하율이었다. 더 많은 요리를 시도해서 하람이한테도 많이 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이 미궁을 탈출할 때까지 부디 무사하길.”
하율은 기운을 차리고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후식으로 수정구슬을 먹었다. 엄청난 크기의 포도알을 먹는 기분이라니. 하율은 신기함과 행복함을 경험했다.
그 효과로 ‘감정안’ 스킬 강화에 성공했다. 이제 먼 곳에 있는 사물을 감정할 수 있다.
맛있어서 또 먹었다. 스킬이 더 강화되었다. 사진이나 화면 너머에 있는 사물을 감정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먹었다. 해당 사물이 생물이나 마물일 경우, 그 강함을 감정안 사용자의 힘과 비교해서 알려준다.
나머지를 다 먹었다. 해당 사물의 간단한 요리법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쉽게도 수정구슬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하율은 강화된 감정안의 효과에 크게 만족했다. 덕분에 미궁을 더 샅샅이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발견 못한 비밀 통로나 아직 작동되지 않은 비밀 함정을 감별해낼 수 있게 되었다.
*
다음날. 아니, 다음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궁에는 해가 뜨지 않으니까.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다면 날짜 감각이 생길 텐데.
아무튼 탐색을 시작했다. 어쩌면 미궁의 미답영역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하율은 또 다른 보물창고를 발견했다. 맛있어 보이는 아이템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창고를 지키고 있는 새로운 종류의 미궁 몬스터를 발견했다.
[‘스톤 골렘’]
[보물창고의 수호자. 단단한 바위 몸을 가지고 있으며, 움직이는 속도는 느리다.]
[현재의 ‘신하율’보다 많이 강하다.]
[못 먹는다.]
강화된 감정안 덕분에 몬스터의 전투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하찮고 나약한 신하율보다 스톤 골렘은 많이 강했다. 이렇다 할 전투 스킬도 없는 하율이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하율은 조속히 발걸음을 돌려서 주방으로 되돌아왔다.
하율은 신중히 생각했다. 스톤 골렘은 레드 슬라임과는 달리 바깥 세상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마물이므로 공략법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머리에 있는 ‘마핵’을 부수면 된다.
그 마핵을 어떻게 부수냐면, 방법은 다양했다. 대구경 총포류로 쏴서 맞히거나, 해머로 내려치거나, 마법으로 터뜨리거나 하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하율은 그 어떤 공략법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템밥’이 있다.
이 난관은 아이템 요리, 줄여서 ‘템밥’으로 극복해야 한다. 지금 하율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능력. 분명 골렘을 물리칠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자. 지금부터 파괴력을 얻을 레시피를 연구한다.
준비할 재료는 금화, 철퇴, 검, 드레스, 부츠, 펜던트, 보석들.
다 때려 붓고 끓이는 수밖에 없는가? 아니다. 이번에는 삶는다.
일단 철퇴를 반으로 갈라서 씨를 제거한다. 그리고 금화와 비슷한 크기로 썬다.
큰 냄비에 굵게 토막 낸 나무 공과 금화를 넣고 금화가 반쯤 익을 때까지 삶는다.
깍둑썰기한 철퇴를 추가한 뒤에 각종 보석들을 갈아 넣고 주사위를 잘게 다져서 넣는다. 검도 썰어 넣어야 하는데···. 하율은 잠시 갈등했다. 검은 귀중한 무기이므로.
하지만 여분의 검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큰맘 먹고 검을 넣기로 했다. 식칼로 검 표면에 자잘한 칼집을 내고 썰어 넣어서 삶았다.
그 위에 드레스와 부츠를 큼직하게 썰어서 투입. 그리고 여기서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없다. 대신 버터 맛이 나는 비누를 넣고 삶았다.
드레스와 부츠가 다 익을 즈음에 그릇에 옮겨 담는다. 그 위에 펜던트를 얇게 썰어서 토핑했다.
이것으로 완성.
하지만 무슨 요리인지. 뭔가 엉망으로 조리한 것 같은데, 과연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어졌을지. 하율은 요리를 감정했다.
[‘삶은 금화 철퇴’]
[공격력, 근력이 주로 상승하는 공격용 요리. 움직임이 느리고 힘이 센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요리해 먹는다.]
신하율은 안심했다. 효과가 있는 요리가 만들어졌구나.
조금 맛을 보았다.
“···.”
맛이 없는 건 아닌데, 미묘한 맛이다. 오징어 맛이 나는 검과 말린 과일 맛이 나는 펜던트가 어우러지지 않고 뜬금없이 따로 논다. 그나마 비누 덕분에 재료들 맛을 유지하면서 풍미를 살린다.
그래도 이 정도는 견딜 만하다. 스톤 골렘을 상대하려면 공격력도 파괴력도 높여야 하니까. 이 요리를 얼마나 먹어야 스톤 골렘을 잡을 수 있을까.
일단 달려가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퍽!
“···.”
해머로 골렘의 머리를 내리쳤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후퇴다!
*
1주일 뒤.
쿵! 골렘은 마침내 쓰러졌다.
하율이 이놈을 잡기까지 ‘삶은 금화 철퇴’를 20냄비나 먹었다. 고진감래. 별로 맛대가리도 없는 요리를 먹어 치우느라 고생했다.
골렘이 지키고 있던 보물창고에 들어가 보았다.
“어···. 실망이네.”
문틈 사이로 비쳐 보이던 보물은 거기에 없었다. 보물들은 수정구슬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하지만 얻은 것이 있다.
[‘파란 수정구슬’]
[푸딩으로 조리해서 한 스푼을 먹으면, 1회에 한해서 실제가 아닌 허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부여한다.]
놀라운 스킬이었다.
하율은 수정구슬을 들고 냉큼 부엌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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