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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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자유시 김여제의 ‘만만파파식적을 울음’을 읽다가-
가만히 귀 기울이고 네 눈을 들여다본다.
고향 소식 어디, 어디, 어디 것이나 듣고
싶은 나머지
지겹고 호들갑스러운
만약에, 만일, 만만에 콩떡마저 달달하여도
갈수록 대도시로 탈바꿈하느라
수수하던 그 사람들은 어디, 어디, 어디에도
없다고, 아무도 안 남았다며
는개로 젖은 속눈썹에 이슬꽃을 매다는 너
이끌려 들어가서 나도 빗소리에 빠진 채
마냥 홍수에 떠밀려 표류하여도
음률에 물들어버린 만만파파식적*으로 주문을 건다.
- 작가의말
* 만파식적(萬波息笛)은 만 가지 근심을 없애는 피리라는 뜻이다. 신라 제31대왕인 신문왕이 즉위 후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 근방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다. 신문왕 2년에 해관이 바다에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하여 일관으로 하여금 점을 치자,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수성의 보배를 주려고 하니 나가서 받으라 하였다. 이에 이견대(利見臺)에 가서 보니, 바다위에 떠오른 거북 머리모양 섬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풍우가 일어난 지 9일이 지나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여, 그것을 가지고 나와 피리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효소왕 때 분실했다가 다시 찾고 또 이적을 많이 보여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삼국유사). (근래에 이 만파식적은 외뿔고래의 뿔이었다는 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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