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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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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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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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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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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254

작성
17.12.1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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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쪽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DUMMY

"...큭.."


뱃속을 뚫고 들어온 이질감에 무심코 인상을 찌푸리고만다.


분명 고통이 먼저 전해져와야 할텐데, 이 기분나쁜 이물감은 뭐지?

이런적이 처음이라 잘 모르겠네...


쿨럭.


"...."


"..하, 하하...저기 아저씨...누군지는 모르겠지만요..아무래도 아저씨 칼은 되게 물렁거리는 것 같네요..."


아무말 없이 검은 천 사이로 빛나는 눈동자를 무심히 떨어트리고 있는 인영을 올려다보며 필은 숙인 허리를 조금씩 펼쳐간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지금, 싸움에 기세로 밀린다는 건 그 자체로 진거나 다름 없다는 것을 오랜 골목대장 생활로 잘 알고있는 필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보인다.


그게 패착이 될줄도 모르고.


"?! 으, 으아아아악!!"


강렬한 고통이란 인지의 뒤편에서 뒤늦게 찾아온다는 걸 필은 아직 알지 못한다.

짧은 인생에서 그만한 고통을 겪을 일이 어디있었겠는가.


그렇기에 알지 못했던것 뿐이다.


검이 배를 뚫어냈다는 그 참담한 현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것인지를.


"크윽! 크아아악!"


부들거리는 양 손으로 무심결에 검신을 붙잡아 빼내보려하지만 손만 깊게 베어들어갈 뿐 꿈쩍도 않는다.

오히려 그 때문에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배가되어 정신 자체를 흔들어놓는다.


이미 화상을 입은 고통으로 아픔에는 둔해져있을 줄 알았는데!


"크악! 으아악! 아악!!!"


이런 고통은, 살면서 처음.

욱씬거린다는 표현은 간지럽게 느껴질정도로 머리속이 새하얘지는 엄청난 그 격통에 폈던 허리를 다시 굽혀버린다.


뱃속의 칼이 단숨에 피부와 살을 뚫고 나갈만큼 날카로웠다는 걸 망각한 채.


그리고 그 댓가는 기절할만큼의 격통이었다.


"꺄아아악!! 피, 피이이일!!!"


의식을 순간 멀리 날려보냈던 격통의 와중에도 뒤에서 들려오는 소녀의 절규는 확실히 귓가에 와닿는다.


무의식중에 몸을 날려 덮친 검은 인영에게서 도린의 앞을 막아서는 건 성공했지만, 뒤이어 그 인영이 재빠르게 뽑아 든 검은 피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라면 피할 수는 있었다. 만약 살기위한 본능에 모든걸 맡겼더라면 상처를 남기고서라도 목숨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피해낼 수 있었을거다.

하지만 무슨일이 있어도 그럴수는 없었다.

두 발이 땅에 딱 달라붙은 채 번뜩이며 찔러오는 검을 두 눈에 담는 순간에도 움직이지 않은 그 이유는,


뒤에 도린이 있기에.


자신이 피하게되면 필히 그 궤적 안에 있던 도린이 대신 칼을 맞게되었을테니까.


그리고 애초에 필에게 있어선 연정을 품었던 소녀의 위험 앞에서 몸을 피할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그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고있다.

그 비명 속에 담긴 감정은 두려움, 그리고 걱정.

바로 그 걱정이라는 감정을 느낀 순간 필은 멀어져가던 의식을 다시 잡아당겨 몸에 깃들어낸다.


"하..하하...아하하...저, 전혀 안아프다구요 이런것 쯤은..."


아프다.

미칠듯이 아프다.


"여..여자아이에게 칼을 겨누다니...나, 남자, 남자인것 같은데, 여자한테..그, 그러면 안된다고 안 배웠, 크윽! 어요?"


입엔 최대한의 여유로운 웃음을 띄우려 노력하지만,

속내는 정말 죽을 것 같이 아프다.


이미 배와 손을 따라 흘러내리는 피는 바닥에 고여 웅덩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머리는 멍해지고, 어지러움을 뛰어넘은 심한 멀미가 상처의 고통과 함께 온 몸을 진창 휘저어간다.


차라리 죽는게 더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나, 나는...아직, 아직 싸울 수 있으니까...쿠윽!..저, 절대 못 비켜요..."


못 싸운다.

더는 서있는 것조차 힘들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거지?"


"...에헥?..아저씨 말..할 줄 알았어요..?"


"...."


대답은 없다.

얼굴을 온통 검은 천으로 가린탓에 정말 말을 한건지도 모르겠지만.


"어, 어째서...? 쿨럭! 켁!...흐아 아파.."


다리에 계속 힘이 풀려가는 탓에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다.

무언가에 의지하면 좀 편할까 싶어 가까이 있는 단단한 무언가를 꽉 붙잡고 몸을 지탱해본다.


"나, 남자니까요...조, 좋아하는..여, 여여자가..위험한데, 가만히..있을수는...없,"


"어리석군"


그리고 그 의지하던 단단한 것마저 사라져 몸은 바닥으로 무너져내린다.


'...어?'


어째서인지 잠깐 의문이 들던것도 잠시,


자신이 몸을 지탱하던것이 배에 박혀있던 검이었다는 사실과 그 검을 쥐고있던 인영이 손을 거두고 자신의 옆을 지나쳐가고 있다는 걸 뒤늦게 인지한 필은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해본다.


"힘이 없는 자가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그저 오만에 불과한 일이지.

긍지도, 명예도 부여받지 못하는 아주 어리석은 일.

힘이 없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큰 죄악이야. 그렇지않나?"


그렇지 않다. 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의지와 생각만으로 가능한것이 있다면 지금 너와 나의 자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너는 그저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다니고있고 난 날카로운 검을 든 채 네가 그리도 지키고 싶어했던 소녀에게 다가가는 중이지.

자, 봐라"


퍽, 이젠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 몸이 순식간에 엎드려있던 자세에서 하늘을 보고 뉘여진다.


간신히 붙잡고있는 의식의 한 가운데에서, 건물 사이의 좁은 길 안에 유유히 두발로 서있는 것을 달빛이 비추며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길의 막다른 곳으로 다가간다.


"꺄, 꺄아악!!"


"힘이 없는 자를 지키고자 하는 힘이 없는 넌 결국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인이 목숨을 잃는 걸 그저 보고만 있어야하는 운명인거다.

네가, 힘이 없기 때문에"


"..쿨럭! 쿠으윽!"


말을 듣지 않는 몸에 어떻게든 힘을 불어넣어보려는 듯 누워있는 필이 자신을 노려보며 파들파들 떨고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검은 인영의 눈동자엔 점점 환희가 깃들어간다.


"비록 임무에 불과하나..너희 같은 낙오자, 도망자에 불과한 녀석들을 짓밟을 수 있는 기회를 가볍게 넘기기는 싫거든 난.

윗대가리들이 뭐라던, 난 이 밤의 사냥을 그저 즐길 생각이야.


어때, 너도 거기서 관람이라도 하는건? 분명 즐거울테니 말이야"


그 검은 천의 뒤에서 그는 더할나위없는 황홀감에 빠진 표정을 짓는다.

맹수의 우리에서 치열하게 살아오던 그에게 찾아온 사냥의 기회가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듯이.


지금부터 시작할 저 소녀에 대한 유린과 그걸 지켜보고있을 어리석은 저 소년이 내지르는 울부짖음이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달콤하다는 듯.


"정말..컨헤드 자식들에게 고마워해야겠군"


'임무'의 필수 준칙사항은 '말을 하지 않을 것'.

이미 그 이외의 준칙사항을 모두 어겼기에 이제와서 그런걸 따져봤자 소용없는 일일테지만 그는 그마저도 아주 좋은 여흥이 되었단 생각에 자신들을 이곳으로 보낸 누군가에게 비아냥섞인 감사를 보낸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만의 축제를 시작한다.


"....?"


바닥에 주저앉은 도린에게 가까이 다가가던 검은 인영은 살며시 몸을 옆으로 비켜선다.


철퍽, 뒤에서 덮쳐드는 익숙한 기척에 무심코 반응한 검은 인영은 곧 그것이 무엇인지 두 눈에 담고는 살며시 눈을 치켜떴다.


"쿠흑! 쿨럭!...아, 안돼...이..이 개같은 자식아..."


"..크큭"


뱃속을 칼로 헤집어진 채 대체 어떻게 일어선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에 엎어져있는 필은 그 시선을 검은 인영에 고정시킨 채 다시금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아..아무래도 안되겠군.

너와 이 여자아이가 내지르는 비명소리를 함께 듣고싶었는데.."


정말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쉰 인영은 이내 얼굴을 뒤덮은 검은 천 위로도 알 수 있을만큼 입을 한껏 찢어내며 광소를 흘린다.


"지금, 네 목을 베는게 그것보다 훨씬 즐거울것같단 말이지...!"


하늘을 가리키며 치켜올려지는 검.

이 순간을 즐기려는 듯 천천히 내려오는 검의 궤적조차 필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그 눈동자에는, 검은 천에 뒤덮힌 채 미친 웃음을 짓고있는 얼굴만이 들어올 뿐.


그것은 검은 인영에게도 마찬가지.

지금 이 순간을 한껏 즐기려는 그에겐 다른 그 무엇도 자신을 방해할 수 없었다.


달빛을 한껏 머금은 검이 조금씩 어둠에 잠겨들며 내려오고,

피할 여력도 없이 무릎을 꿇어버린 필의 시야에서 조금씩 내려오는 검은 인영의 팔 너머로,


"그 전에, 내 아들의 목을 가져가려면 네놈의 목을 내놓아야 할거다!!"


빠아악!


"?! 크학!!"


아니, 이젠 어디로 사라졌는지 순식간에 사라진 검은 인영이 있던 곳에는,


"...아..아빠..."


"...으득, 기다려라 아들. 이 개같은 자식을 곤죽으로 만들어 놓는데에 단 삼초만 쓰마"


빠각! 빡! 빠직!


"크아아악!!!"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모를 아버지가 방금전까지 자신을 내려다보던 검은 인영을 말 그대로 곤죽을 만들고있었다.


"...쿠헥, 쿨럭!"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도린이 있던 곳을 바라본다.

쉴새없이 내지르던 비명과 쉴새없이 흘려내던 눈물때문에 얼굴은 엉망진창이지만, 그 안에 조금씩 퍼져나가는 안도감을 본 필은 힘없이 고개를 떨궈낸다.


"..아빠아...나...약초..."


화상에 필요한 약초...아니, 상처에 필요한 약초였나?

두가지 다 집에 있었나..?


"...아니다..먼저 잘래..."


눈꺼풀이 무겁다.

분명 아파야할 상처에선 고통보단 피곤함이 더욱 밀려오는 듯하다.


오늘 하루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앞에 있다.


빡!


"삼초 끝. 자거라 아들아. 뒷일은 아비에게 맡기고"


"....."


끄덕,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 필은 이내 옅은 숨소리만을 남기고 잠에 빠져든다.





"..아아..."


세상에 만약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가..감사합니다..."


세상에 만약 기적이 정말 존재한다면,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신이 직접 기적을 내려준게 아닐까?


"으랏차아!!"


콰앙!


[끄롸악!!]


[키야악!]


땅에 주저앉아 울부짖던 마을 사람들에게 괴물들의 이빨이 닿기 직전.

의식보다도 빠른 반응으로 내디딘 걸음마저 도저히 닿을 수 있을것 같지 않았던 그들과의 거리에 절망감이 시야를 까맣게 물들일때 쯤.


하늘에서. 아니, '옆'에서 나타난 구세주의 구원의 손길이 주저앉아있는 마을 사람들과 괴물들의 사이를 갈라냈다.


"죽어라 이 괴물자식들아!"


[끼롸라라락!!]


슈악! 촤라락!


그것은, 종교를 믿지않는 루디가 처음 '교회'라는 곳에 갔을 때 보았던 천사의 모습처럼.

몸에 하얀 갑옷을 두른 천사의 기사들은 날아온 큰 바위에 뒤따라 내려와 남아있는 괴물들에게 심판의 검을 내리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이 처음 덩어리 안에서 토해져나온 괴물들을 처치하던 것 보다도 빠른 속도로 괴물들이 바닥에 갈기갈기 분쇄된 채 쓰러져간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수는 다섯명가량.


그들이 정말 하얀 갑옷을 입을 자격을 얻은 '하얀 사자'들이라면, 그 다섯이라는 수가 만들어내는 이 심판의 광경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것이었다.


"괴물들의 처치를 우선해라! 마을 주민들에게 위협이 될 요소를 먼저 배제해야해!"


주먹을 휘두르면서도 큰 목소리로 기사들의 지휘를 놓지않던 커다란 덩치의 기사가 괴물들의 수가 반절 아래로 떨어졌을 때 쯤 루디에게로 다가온다.


큰 키도, 작은 키도 아니지만 그 몸의 근육 만큼은 이제껏 그런 사람을 본적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그 기사는 헬름을 벗으며 허리를 숙인다.


"탄트라 마을의 자경단장이신 루디 톨로즈님 되십니까"


"아, 예 맞습니다!"


그들의 위력적인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보던 루디는 화들짝 놀라며 그에게 시선을 맞춘다.


단단해 보이는 외모와 짧은 머리, 그리고 굳은 표정이 마치 바위처럼 느껴지는 남자다.


"저는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아짐 수이드 일등기사입니다"


다시한번 허리를 숙인 그에게 루디도 황급히 마주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다치신곳은 없으십니까"


"저,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마을 사람들은..."


문득 친지의 주검을 끌어안고 주저앉아있던 마을 사람들이 걱정되어 시선을 옮긴 루디의 눈에 네명의 기사들과 어느샌가 달려간 자경단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천천히 물러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후우, 안도의 한숨이 그녀도 모르게 입가를 밀곤 새어나온다.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정말...천만다행이에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정작 감사해야 했던건 신이 아닌 그들이었단 생각에 서둘러 감사의 말을 전하지만, 기사들과 자경단원들에게 호송되어오는 마을 사람들을 지켜보던 아짐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인사를 겸허히 밀어낸다.


"애초에 저희들이 방어선을 굳게 지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게다가 저희는...이미 한참을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들이 사과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아짐의 말을 듣자면, 그들은 그동안 마을 외부의 방어선에서 저 괴물들과 우리보다도 먼저 맞서고 있었을테니까.


"사과하지 말아요 아짐 일등기사님.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이 우리 마을을 지키기 위해 애써주고 계신건 지금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요.

감사할망정, 원망은 전혀 하지 않는답니다"


원망을 할 이유도 없는거다.

제아무리 루디가 날고 기더라도 방금전과 같은 상황에선 손도 쓸 수 없이 그저 마을 사람들이 괴물들에게 희생당하는 걸 보고있을 수밖엔 없었으니까.

그걸 구해준건 틀림없이 눈 앞의 하얀 기사들이고, 그런 그들에겐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또 해도 부족했다.


흉측히 벌려져있던 지옥의 입을 시원하게 턱을 올려치며 닫아버린 그들에게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


허나 지금은 기사들과 자경단원들에게 호송되어 뒤로 물러나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온 먼저 떠나간 사람들과 그 주검을 여전히 눈물에 젖은 얼굴로 끌어안은 사람들의 위로가 먼저다.


지옥의 입은 닫혔으나 그 입에서 흘러나온 겁화는 아직 마을을 태우고 있었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희는 더 이상의 사죄를 드리지 않기위해 더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마을을 습격한 자들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


"...네?"


마을을 습격한 '자'들?


"마을을 습격한건 저기 쓰러져있는 괴물들..."


"..아직 마주치지 않으셨나봅니다.

마을에 들어와있는 '괴물'들은 저것들 뿐만이 아닙니다"


루디는 순간 눈 앞의 이 농담이라곤 모르고 살아왔을 것 같은 기사가 이제와서 농담을 배운건지 의심이 들었다.


마을에, 습격자가 있다고?


이 마을에, 괴물들이 저것들 뿐만이 아니라고?


웃기지 않는 농담이다.


"마을 외곽에서 괴물들의 공격을 방어하던 도중 하늘로 쏘아져 마을에 내리고있는 저 정체불명의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 진입하려던 인원들을 막아선 자들이 있었습니다.

온 몸을 검은 천으로 감싼, 얼굴마저도 두 눈이외엔 모두 드러내지 않은 '습격자'들입니다"


"..말도안돼"


이 마을을 '습격'할 이유가 어디있어서?

아니 그보다, 이 마을을 습격할만한 자들이 주변에 남아있었나?


마을을 이루던 초기 대대적으로 치렀던 주변의 토벌로 인해 당시의 강도들과 산적들의 대다수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거나 가까운 국경수비대로 넘겨졌었다.

그 이후 오랜시간에 걸쳐 탄트라 마을, 정확히는 광산의 광물을 거래하러오는 상회의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행한 토벌로 남아있던 마을 주변의 무법자들도 깨끗히 처리되었고.


그런 지금 탄트라 마을을 습격할 자들이 대체 어디...


"저희들도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몇개의 소제대로 나뉘어 마을 내부를 탐색, 위험에 처해계신 마을 여러분들을 구조하는 작업에 있습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더 경계하는건 저 괴물들이 아닌 그 습격자들입니다"


"그 이유는.."


"..비슈트 수석기사님께서 명하신 사항입니다.

본인도 둘에서 셋 이상은 상대하기 벅찬 상대라고 하셨기에, 원형의 동물들과 그 위협이 크게 다르지 않은 괴물들 보다 더욱 우선하여 색출하고 정체를 밝히도록 명하셨습니다.

그게 어렵다면 각 제대의 제대장 판단에 따라 즉결 사살 또한 허가되어있습니다.


솔직히 저희들만으로 비슈트 수석기사님마저 경계하시는 상대를 제압하긴 쉬운일이 아니겠습니다만.."


말과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결연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만에하나 습격자들과 마주친다면 절대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의지가 여실히 담겨있는 낯빛이다.


"....."


마을을 습격한 괴물들.

마을을 습격한 습격자들.


이 연관관계에서 먼저 확실히 해야할것은,


"그 습격자들이...괴물들이 마을에 침입하는 것을 도우던가요?"


"그들의 목적이 아직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저 물체들을 모두 마을 안으로 내려앉을 때 까지 시간을 버는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저희 기사단의 마을 진입을 막아선 것도 그렇고, 숲 속의 임시숙소에서 증원을 온 여분의 기사단들을 보고나서 마을 내부로 흩어진 채 현재 곳곳에서 탐색중인 동료들의 진행을 방해하며 소규모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연락에 비추어보아 더욱 그렇습니다"


"....스읍"


숨을 들이마신다.

몸 안쪽에서 퍼져나가는 무언가를 조금은 삭혀보려 했던거지만 도리어 그것은 바깥에서 들어온 공기에 옳다구나하며 더욱 맹렬히 날뛰기 시작한다.


그 무언가가, 숨을 들이마쉬려 벌렸던 입술 바깥으로 토해져 나온다.

주변에서 집들을 태우며 하늘높이 타오르는 불꽃보다도 뜨겁게.


"저도 함께하죠"


"루디 톨로즈님께서 말이십니까?

그건..."


머뭇거리는 아짐의 옆얼굴에 핏, 상처가 아로새겨진다.


전혀 보지도 못한 사이에 생긴 상처, 게다가 얼마나 빠른 속도였는지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흐를때까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 그 상처에 아짐의 두 눈이 크게 치켜떠진다.


[..끄르륵..]


쿵, 아짐의 등 뒤에서 큰 덩치의 새까만 괴물이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내린다.

그 괴물의 정수리엔, 커다란 구멍이 마치 억지로 헤집어 뚫어낸듯 커다랗게 새겨져있었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 마을을 지켜야할 의무와 그 의지가 있어요.

그리고, 그만한 실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실력은 방금 전 아짐을 스치고 지나간 검격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만..그 습격자라는 것들의 정체를 밝히기전 싸그리 죽여버릴지도 모르는게 문제일순 있겠네요"


그리고 그 의지도.


눈 앞에서 얇은 세검을 든 채 엄청난 분노를 여과없이 내뿜어내는 루디의 기세에 아짐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쑤아악!


"으윽?!"


"먀아앙!"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검이 공기를 매섭게 갈라내는 무겁고 날카로운 소리에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아난다.


재빠르게 몸을 숙여 검을 피해낸건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조금의 의식이라도 깃들어있었다면 꼼짝없이 광대뼈 위가 사라져 버렸을 법한 빠른 일격.


갑작스러운 그 습격에 내가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은 오직 그게 전부였다.

찾아온 위험은 그 뿐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퍼억!


"크악!"


"먕! 먀아?!"


쿠당탕!


옆구리에 박혀든 발길질을 막아보려 팔꿈치를 가져다 대보았지만, 몸이 날아갈정도의 발길질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바닥을 구르며 턱,하니 막혀오는 숨에 순간 머리속이 번쩍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크, 으으..."


이럴 줄 알았으면 뒤따라온 첸드릭을 다른곳으로 보내지 말걸 그랬다.


마을에 접어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름 자신에 차있었다.

내가 휘두르는 정글도에도 괴물들은 마치 수확기의 밀대마냥 우수수 쓰러져버렸고, 나는 그저 그 사이를 하염없이 달리기만 했어도 됬었으니까.


물론 아무런 댓가를 치르지 않았던건 아니다.

몸 이곳저곳에 새겨진 할퀴어지고 뜯겨진 상처, 그리고 이미 옷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없을정도로 갈기갈기 찢겨진 채 몸에 걸쳐져있는 넝마.


마을 외곽에서 기사들의 방어선에 짓쳐들던 괴물들을 뚫고 들어오면서, 그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와 하늘에서 내린 저 커다란 알같은 것들에게서 나타난 무수한 괴물들에게 단신으로 맞서면서도 그정도의 댓가는 치렀을지언정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다.


그렇기에 뒤따라오던 첸드릭에게 다른곳을 향해달라고 부탁했었더랬다.

난 혼자서도 괜찮을거란 생각이 들었기에.

그런 나 보단 지금도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고있는 마을 사람들을 구조해주길 원했으니까.


"후으읍...멍청했네 나..."


"먕, 미야아, 먀아"


그렇게 마을 안에 들어온 '괴물'들은 나름 상대가 가능할거라 생각한 나는 중요한 것을 놓쳐버렸다.


마을 안에 있는 위험은 괴물들 뿐만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였을까? 첸드릭이 그토록 떨어지려하지 않았던게.


난 괜찮다고, 마을 사람들을 한명이라도 더 구해달라고.

아직 조합장님과 할 말도 남아있을테니, 정 그러면 조합장님을 찾아가라는 내 말에 첸드릭은 잠시 생각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다른곳을 향해 달려가버렸다.


그때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아니, 아니다.

이건 알아채지 못한게 아니라, 알아채고 싶지 않았던거다.


나도 마을에 도움이 될 수있을거란 생각에 손에 쥔 정글도 하나만 믿고있었으니까.

이 앞에선 나약해지지 않으려는 그 믿음 앞에서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정글도는 앞을 가로막는 괴물들을 베어넘기고, 쓰러진 괴물들에게서 터져나오는 검은 가루를 온 몸에 휘감으면서 나는 마을 중앙까지 막힐것 없는 발걸음을 더욱 서둘러 재촉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친 검은 천으로 몸을 둘러싼 두명의 의심스러운 남자들로 인해 나는 여기까지 시선을 피해왔던 가장 큰 위험과 결국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슈악!


"?! 윽!"


차칵!


이미 곳곳의 날이 빠져버린 정글도를 들어 자세가 무너져있는 나를 향해 떨어져내리는 검을 막아내자 빠져있던 날 사이로 내리쳐지던 검이 맞물려버린다.


정글도 손잡이에서부터 매섭게 흘러들어오는 저린듯한 고통이 찰나의 순간동안 다른 생각을 하고있던 날 질책하듯 거칠게 두들겨오고, 또 다시 생긴 그 찰나의 틈새를 다른 습격자의 날카로운 검이 예리하게 파고들어온다.


"흐앗?!"


핏!


자신의 검을 정글도에 물린 채 빠지지 않도록 붙들고있는 습격자의 힘을 못이긴 나는 결국 정글도를 잡은 손을 놓곤 재빠르게 몸을 옆으로 굴린다.


재빠르게, 라고 느껴진 시간이었지만 습격자들의 검에 피를 먹이기엔 충분한 시간.


오른쪽 어깨에서 시큰거리는 통증과 뜨끈한것이 팔을 타고 흘러내린다.


"먕, 먀아, 미양, 먕!"


"...도망가는게 말이야 쉽지 키니.."


연신 경고의 울음을 내짖는 키니의 울음소리에 쓴웃음을 베어물곤 고개를 저으며 튕기듯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난다.


괴물들에게 당했던 상처로 뒤덮여있던 몸에 새겨진 새로운 상처.


발톱과 이빨로 아로새겨진 흔적보다도 더욱 큰 그 상처를 흘긋 바라보니 생각보다 훨씬 크게 베인것 같았다.


분명 검은 스쳐지나갔을 뿐인데..


"".....""


온 몸이 새까만 천에 둘러져 오직 그 눈동자만이 보이는 검은 인영들은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포위하듯 각자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온다.


등 뒤에는 한참 커다랗게 타오르고있는 불구덩이의 건물.


도망갈 곳이 완벽히 없는 사면초가의 상태.


이런데 어떻게 도망가란말야 키니?


"...제길, 천도 끊어졌네"


끊어졌다기보단, 정글도 손잡이에서 어느샌가 잘린 채 힘없이 땅에 늘어져있는 천을 허망히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쉰다.


피할땐 피하더라도 그 이후에 반격을 위해서라면 꼭 쥐고있었어야할 생명줄이나 다름 없던 천이다.


그 말인 즉슨, 내 목숨을 거두려하는 저승사자인 이들에겐 그 천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는 얘기겠지.

내가 무기를 들고있더라도 자신들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습격자들은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겠지만, 또한 굳이 적에게 무기를 다시 들려줄 필요도 없었던거다.


반격의 여지조차 없는 완벽한 궁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눈 앞에서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이 습격자들이 날 가볍게 보기 시작한것이랄까?


제 아무리 약한 사냥감에게라도 온갖 주의를 기울여 사냥하는 맹수를 만나면 도망조차 수월하지 않겠지만 눈 앞의 먹잇감을 이미 자기것처럼 여기는 자만에 가득 찬 맹수들에겐 도망 그 이상의 기회도 노려볼 수 있는 법이지.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


"후우..."


그 발걸음에서 이미 '조심'과 '주의'라는 것이 다분히 옅어진 그들을 두 눈에 각각 한명씩 담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위해 머리를 굴려본다.


적은 둘.

지금껏 만난적 없는 위험도를 가진, 전혀 예측이 안될 '인간'이라는 적.

손에 들려있는 건, 피에 빨갛게 젖어갈 뿐인 잘린 천.

뒤로는 도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불구덩이.


이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란?


'...절벽타기'


그 모든 여건을 되짚어보다 생각이 난 그 단어.

일반적으론 절벽을 짚어가며 타고 올라가는 행위를 뜻하는 그 단어는, 나에게 있어선 다른의미를 가지는 생존기술의 한가지였다.


굳이 말하자면 생존기술이라기보단 살아남기 위한 배수진이자 역전의 반격을 노리는 궁여지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껏 이 위험한 방법으로 넘겨온 생사의 갈림길이 수도없이 많았기에, 상대는 그때완 달리 '인간'이라는 예측불가능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다만 중요한건,


'한명...을 어떻게 해야..'


집단사냥에 통달한 영리한 맹수를 두마리 이상 마주했을때도 겨우겨우 큰 상처를 입어가며 가능한 방법인데, 하물며 나와 같은 인간임에야...


슬슬 검이 닿을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이 습격자들 중 최소한 한명만이라도 없앨 수 있다면...!


"".....""


탓, 나를 사정권 안에 잡자마자 빠르게 달려들기 시작한 습격자들의 공세에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돌리던 수많은 가능성들을 잠시 집어넣고 감각에 집중한다.

눈으로 보고 피하면 늦는다.

너무나도 강한 힘을 지니고 휘둘러지는 탓에 검에서 느껴지는 그 살기를 미리 느끼고 피해야한다.


단 한치라도 실수를 했다간...


슈악! 슉!


"큿!"


슈칵! 쉬익!


"미야아!"


겨우겨우 피해내는 이 검들을 몸으로 받아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순간엔 이미 끝나버리는 거다.


스핏, 팟, 무언가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간신히 피해내면서 눈 앞에 퍼져나는 은회색의 반짝이는 것을 눈에 담는다.


"미야앙! 먕! 먀아?!"


'..미안 키니'


간발의 차, 혹은 상처를 입어가면서 피해내는 공격으로부터 내 목에 휘감겨있는 키니가 무사할리는 없었다.

비록 상처를 입지는 않은 것 같지만, 불길을 뚫고 달려오는 와중에도 그을음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은회색의 털이 잘려나가는 건 어쩔 수 없을테니까..


그렇게 눈 앞에서 흩날리는 털들의 비산을 지켜보고있을 겨를도 없이 연신 뒤로 물러나며 습격자들의 공격을 피해내길 계속.


한걸음, 두걸음 물러나던 발이 뚝, 멈춰선다.


"!!"


습격자들의 공격이 멈춰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반격을 할 좋은 묘책이 떠올라서도 물론 아니다.


그저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을 뿐.


"..젠장!"


뒤는 활활 불타오르는 건물.

열기가 피부를 따갑게 찔러오는 느낌에 식은땀인지 아니면 뜨거운 열기에 나는 땀인지 모를 것이 등을 축축히 적셔간다.


육두문자를 내뱉는 것 이상 그 어떤 수도 쓸 수 없는 정말 궁지 끝까지 몰린 상황.


이젠 정말 방법이 없나...?!


"먕! 미야아!!"


"?! 키니!"


습격자들이 재차 몸을 날려오며 휘두르는 검을 피하려던 그 사이.

목에 감겨있던 키니가 재빠른 몸놀림으로 몸을 풀어내며 어깨를 박차고 쏘아져나간다.


"!?"


순식간에 일어난 일.

눈 앞의 습격자들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지 돌발적인 상황에 움직임이 멈춘 그 찰나의 순간.


"먕!"


습격자 중 한명의 얼굴을 가리듯 손톱을 세워 온 몸으로 감싸안은 키니의 울음소리와 동시에,


지금껏 키니와 함께 숲 속을 돌아다니며 맹수를 상대하던 때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흐야앗!!"


퍽!


"?!..크윽!"


지근거리에 있던 키니로 시야가 가려진 습격자의 목 옆부분을 체중을 실어 걷어차자 간발의 차로 키니가 습격자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와 공중에 몸을 띄운다.


그리고 그 발치에 위치한건, 발차기를 위해 가까이 다가가 뻗은 내 손.


파밧!


"!"


"먕!"


다시한번 키니는 화살이 되어 쏘아져나가 습격자의 얼굴을 덮친다.


목덜미를 강하게 걷어차인 습격자가 반응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미야앙!"


쉬익! 스칵!


"크악!"


습격자의 얼굴에서 떨어져내리는 검은 천.

그 안에 가려져있던 평범한 청년의 얼굴이 가로로 길고 깊게 새겨진 할퀸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에 젖어들어간다.


이 상태로 두면 출혈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테니 그대로 전투불능에 빠지겠지만..


그 정도로 허술하게 끝낼수는 없어!


"흡!"


찰나의 순간동안 입은 상처에서 이제야 고통이 느껴지는지 손을 가져가 얼굴을 감싸는 습격자의 내려가있던 다른쪽 손을 강하게 올려찬다.


검격의 무게로보아 한없이 오랜시간 수없이 많은 횟수를 그 손에 굳게 검을 쥔 채 휘둘러 왔을테지만, 갑작스러운 그 고통에 아무래도 검을 쥐고있던 손에 힘이 빠졌는지 습격자의 걷어차인 손에서 검이 튀어오른다.


그토록 믿음직했을 자신의 전우가, 자신의 턱으로.


푸칵!


"끄, 끄륵.."


습격자들의 검이 그다지 길지 않은게 천운이었다.

안면을 향해 날아가는 것보다 이렇게 턱 밑에서 튀어올라오는 것을 더욱 보기 힘들었을 테니까.


순전히 도박이었지만, 그래도 한명을 어떻게든 처리하는데에 성공했다!


"미야앙?!!"


"! 키, 키니!"


노림수가 적중한것에 대해 기뻐할 새도 없이 귀를 따갑게 찔러오는 키니의 울음소리에 시선을 향하자 남아있던 다른 습격자의 검격에 그대로 노출된 채 몸 이곳저곳의 털을 베이며 위태롭게 도망다니는 키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가 아닌 키니와 둘이서 협공을 한 탓에 눈 깜짝할 사이에 목숨을 달리한 동료의 무념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남은 습격자의 몸에선 직시하기도 힘든 살기가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다.


절벽타기고 뭐고, 당장은 키니가 위험해!


"좀, 빌릴게요!"


턱 아래에서 부터 정수리까지 꿰뚫려있는 쓰러진 습격자의 머리에서 거칠게 검을 빼들곤 남은 습격자를 향해 달려든다.


그 와중에 보았던 쓰러진 습격자의 처참한 모습이 머리속에 각인되듯 새겨져오지만, 애써 무시하며 키니의 목을 향해 떨어져내리는 검을 힘껏 쳐 올린다.


차앙!


"...!"


내려치던 반동을 그대로 되돌려받으며 뒤로 두어걸음 물러선 습격자는 자신의 검을 받아친것이 무엇인지 그제서야 본 듯 눈동자가 크게 부릅떠진다.


검신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그 붉은 선혈은 동료의 피.


"...."


습격자의 몸에서 다른 종류의 살기가 터져나온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 지극히 단순하고 지극히 순도높은 분노 특유의 거칠면서 따끔거리는 기세를 눈 앞에두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냉소가 떠오른다.


"왜요? 당신 동료가 죽어서 화나요?"


"...."


정답. 그의 살기가 더욱 거세어진다.


"..웃기지마 이 개자식아. 너희들이 마을에 무슨짓을 했는지, 그로인해 대체 얼마나 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기나해?"


마을 외곽에서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방어선을 공격하는 괴물들에게 찢어발겨진 시체를 보았다.


마을에 접어들어 미처 타오르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몸의 절반만이 바깥으로 나와 새까맣게 불탄 마을 사람의 시체를 보았다.


마을 안에 떨어져내린 괴물들에게 '사냥'당하며 죽어가는 마을 사람들의 아직은 숨이 붙어있는 처절한 눈빛을 보았다.


분명 조용했어야할 안식의 밤에 모든것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텅빈 눈동자를 보았다.


보았다. 수많은 마을 사람들과 기사들, 그리고 그저 마을에 상행을 왔을 뿐일 상회의 사람들로 보이는 죄없는 시체들을.


"어디서 왔는지, 뭐하는 망할 자식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도 이런 짓을 하려면 그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안그래?"


씹듯 뱉어내는 단어 하나하나에 분노가 깃든다.

비슈트 수석기사의 말을 듣고서 뛰어들어온 마을 안의 풍경은 하나하나가 받아들일 수 없는 처참한 지옥도이자 따가운 불꽃으로 물든 끔찍한 현실이었다.


익숙한 얼굴이 바닥에 뒹굴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고 제정신일수가 없었다.

눈에 익은 장소가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고 지나칠수밖에 없었다.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주변의 열기에 말라가도 그저 앞만보고 달렸다.

괴물들을 베어넘기며, 온몸에 두른 검은 가루가 입과 코를 막는 느낌에 숨을 쉬기 곤란해도 달리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지옥을 만들어낸 자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기에.


"비록 나는 너희들에겐 간단한 상대로 여겨질지 몰라도...궁지에 몰린 쥐한테 목덜미를 물어뜯긴 기분은 어때?"


마을을 지키려던 소망은 이미 부숴져버렸다.

부모님의, 아버지의 유지는 이미 지킬 수 없다.

오직 원하는 건 하다못해 습격자들의 발목이라도 잡아 마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살아 남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것.


물론 욕심으로선 이미 늦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가장 지키고싶었던 사람들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


"..첸드릭 경과 함께 오지 않은걸 후회했지만...오히려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적어도 내 손으로 네놈들 중 한명은 이미 숨통을 끊어놓았으니까"


그리고 그는 어디선가 습격자들이나 괴물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 있을것이다.

그걸로 됬다.


마을 사람들을 지킬 수 없었으니,


적어도 복수만이라도!


"..."


"..."


손에 쥔 검을 들어 그 끝을 습격자에게 향하고, 그도 나에게 검의 끝을 향한다.

여기저기 베인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한방울, 두방울, 그리고 세방울 째.


땅에 떨어진 그 순간.


"츠아앗!"


"...!"


나는 그에게로, 그 또한 나에게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애초에 몇걸음 떨어져 있지도 않았던 거리였다.


검을 힘껏 등뒤로 제껴 휘두르고,

검을 한껏 당겨냈다가 찔러온다.


""...!!""


단 한번, 키니와 다른 습격자를 같이 공격했을 때보다도 훨씬 짧은 시간에,


쉬잇! 슈악!


"...크윽.."


"쿠흑..."


그의 검은 내 옆구리를 뚫고 들어와있었고, 내 검은 그의 어깨에 박혀있었다.


작가의말

이건...분명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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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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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5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90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8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5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10 0 26쪽
»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7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5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2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5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4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2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9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3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8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5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8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2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8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0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8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8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2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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