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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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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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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2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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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DUMMY

"""....."""


"..미야아아아.."


묵묵히 테이블을 감싸고 앉은 나와 공작영애, 테미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말 없이 그저 테이블 위에서 몸을 늘이는 키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며 호통치는 지냑 아저씨에게 오다가 갱도에서 넘어져 쉬다왔다는 변명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넘어져 까져버린 무릎이 쓰라려온다.

...오다가 약초라도 따올걸.


"먀아...먀, 먀, 미야, 먀아, 먀아아"


몸을 쭉 늘였다가 한번에 다시 몸을 둥글게 말고는 꼬리를 가지고 장난치며 테이블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키니.

광산을 나올때까지 안오더니 집에 돌아와 문을 열자마자 침대 위에서 늘어지게 자고있는 모습을 보곤 힘이 쭉 빠졌더랬지.

평소같으면 그저 귀엽게 보일 녀석의 이런 행동도 오늘따라 뭔가 얄미워보인다.


"...귀여워.."


한사람의 눈에는 그래도 그저 귀여워 보이는 것 같지만.


"후우...오늘은 왠지 피곤하군요"


"아, 아? 아! 피, 피곤하신가요 루시안 님?! 저, 저희들 때문에...!"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계속 이렇게 입을 다문 채 그저 어색해져만가는 분위기에 용기내 입을 열어보았지만, 나도 모르게 다들 꺼내지 못하고있던 깊숙한 부분을 건드려 버렸나보다.

당황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이는 공작영애에게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허리를 곧게 세운자세로 앉아 정면에 시선을 고정하고있는 테미에게 흘깃, 눈길을 보낸다.


"...벌을 내리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허나 제가 말씀드린 건 한번 생각해주시길"


"테미! 너 정말...!"


"벌이라...어떤 벌이 좋을까요"


흠칫, 테미에게 윽박지르던 공작영애의 움직임이 멈춘다.


"어떤것이든"


"흠...."


뭐 솔직히 벌을 주려는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뭐랄까. 한번쯤은 따끔하게 말해야하지 않을까.


"저기...루, 루시안 님, 부, 부디 노여움을..."


"화 안났어요 저"


"..정말이신가요?"


"네. 하지만 벌은 줄겁니다"


"어째서요?!"


"...공작영애는 생각보다 철저한 성격은 아니신것 같군요"


"넷?!"


놀라긴.

그녀가 테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진 이걸보면 잘 알 수 있을것같네.

그리고 그건, 테미도 마찬가지일테고.


"..아가씨를 놀리시는 건 그만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테미 씨가 그런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을까요..."


"....으득"


"...."


으득? 지금 이거 이 간거 맞지?

눈동자만 움직여 당장이라도 날 씹어먹을 듯이 노려보는 테미의 눈초리에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그녀는 정면을 향해있던 얼굴마저 돌리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죠? 테미 씨에게 소중한 분을 제가 놀려서?

그 정도로 화를 내신다면 제 기분도 잘 아실텐데요?"


"....."


"..저, 저기...전 아까 무슨일이 있었는지 잘 몰라서 그러는데..괜찮으시다면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주저하며 눈싸움을 주고받는 나와 테미사이에 끼어든 공작영애는 초조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둔 손을 마주 깍지낀 채 손가락을 꼬고 있었다.


"미양? 미야아!"


그 모습에 눈을 빛내며 가까이 다가온 키니가 자신의 손가락에 장난을 치는것도 안중에 없는지 공작영애는 계속해서 초조한 눈빛을 보내온다.

공작영애가 한창 시토리움을 '선별'하던 와중에 일어난 일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등 뒤에서 일어난 일이니 모르는 건 당연하겠지.


"..뭐 별 일은 없었습니다만"


"별 일이 없었다면 테미가 그럴리가..."


"그러니까 말이죠. 그럴 정도까진 아니었던것 같은데"


"..무슨 말씀을 하고싶으신거죠 루시안 님?"


단어 하나하나를 씹어 내뱉는 테미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돈? 작위? 그런건 애초에 필요 없어요. 마을의 안전? 물론 보장해주신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마을 사람들이 잘 지켜왔는데 이제와서?

게다가...여자라니?"


"여, 여자?! 테미! 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거야?!"


"..루시안 님은 입이 가벼우신 분이시군요"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테미의 독설을 한귀로 듣곤 흘려내며 공작영애를 바라본다.


"공작영애, 당신에게 테미라는 이 분은 어떤 존재입니까"


"테, 테미말인가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놀란듯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뜬 공작영애는 테미를 일별하곤 조심스레 입을 연다.


"어릴적부터...같이 있었던 제 친구이자 가족이나 다름 없는 사람이에요.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해온 훌륭한 파트너이기도 하구요...그 정도로 소중한 사람.."


"그런분이, 본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한다면 어떤 기분일것 같아요?"


"....."


왈칵.


"?!"


"아, 아가씨?!"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공작영애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놀라 몸이 굳어져버린다.

그 때문에 의자를 쓰러트리며 일어난 테미의 손을 피할 수 없었고.


"아가씨를 울리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아니, 저, 저도 이정도일줄은...!"


물론 무신경한 질문이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고, 공작영애! 죄, 죄송..."


"아니! 아니에요...! 루시안 님은, 아무것도 잘못하신게 없으니...사, 사과하지 말아주세요...!"


눈가를 부비는 공작영애의 어깨 위에 어느샌가 올라탄 키니가 그녀의 눈물을 혀로 핥으며 붉은 눈동자를 날카롭게 뜬 채 나를 노려본다.

...오늘 내 얼굴은 남아날 새가 없네...

누군가에게 도끼눈으로 노려봐지는 건 숲 속에서 강도들과 마주쳤던 이래로 오랜만인것같아.


"테미도...앉아. 루시안 님께 더 이상 결례를 범하지 말아줘..."


"...알겠습니다 아가씨"


내 멱살을 잡고있던 손을 마지못해 풀곤 자리에 앉은 테미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공작영애의 눈물로 젖은 볼을 닦아낸다.

그러면서도 그 날카로운 눈초리 속에 살기를 담아 쏘아보는건 잊지 않고서.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제가 너무나도 무신경한 질문을 한 점은 사과드릴게요.

그리고 그 대답은 공작영애의 눈물로 받겠습니다"


의도치않게 난장판이 되었지만, 꿋꿋히 의도했던 말을 천천히 꺼내어본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그 의지는 매우 숭고한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부모님도, 마을을 위해 그렇게 살다 가셨으니까요.

하지만 테미 씨, 당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누군가가 그걸 어떻게 생각할지는...알고나 있었나요?"


마을을 지켰지만, 부모님은 자신들이 지켜온 나와 마을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가 버렸다.

다신 볼 수 없는 곳으로.

그리고 남아있는 나는 구년이란 시간을 보내오며 마을 사람들을 멀리하며 혼자 힘들어해왔다.

나만 힘들 줄 알았다. 내 소중한 사람들이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져버렸으니, 나만 힘든거라고 생각했었다.

어째서 부모님이 마을 사람들을 지키려다 떠나가셔야 했는지..어렸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나서 다시 바라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은 나와 같이 부모님의 부재를 너무나도 가슴아파해왔다.

나와 마주치면 항상 미안하다는 듯 사과하기도 하고, 무언가 있으면 항상 나를 먼저 챙겨주려하고, 숲 속에서 혼자살며 위험할지도 모르니 마을과 이어진 숲을 나서서 다듬어 주기도 했다.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을 나를 통해 해소하려 했다고하면 그 뿐이겠지만, 적어도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우리 부모님이 자신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들들을 지킨것에 대해 깊은 죄책감과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게 나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 모두는 부모님이 떠난 자리를 그리워해왔고, 떠올릴때마다 가슴을 쥐어 뜯으며 슬퍼해왔다.


희생해가면서까지 누군가를 지킨다는 그 의지와 각오는 물론 존중받아 마땅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로인해 아파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갉아나가다 이윽고 한 점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버렸을 때 자신이 방패가 되어 지켜주던 누군가가 다시 찾아올 수많은 위험에 노출된 채 덩그러니 남아있다면...


그때는 그를, 그녀를 누가 지켜줄 수 있는가.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남아서 아파하는 걸 '지켰다'고 할 수 있을까.

희생이 가지는 그 숭고한 의지, 그리고 그 존중받아 마땅할 행동은 완벽하지만은 않은것이다.


"공작영애를 지키기위해 무엇이든지 한다는 그 의지는 저도 마을을 지키고자 품은 마음과 같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어요.

저도 마을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테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공작영애도 테미 씨를 지키고싶어한다는 그 마음을 잊지는 말아요.

모든 더러운것을 뒤집어써 오물냄새를 풍기며 공작영애의 곁에 있는다면, 이번엔 공작영애가 당신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려 할테니까요.

그런건 원하지 않잖아요?"


그리고 애초에 무언가를 지키려 자신이 온갖 더러운것을 떠맡는다는 그 생각 자체가 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에겐 마을 사람들은 지키고싶은 대상임과 동시에, 마을사람들 또한 충분히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 한사람의 힘은 그다지 크지않다. 미약하다. 이런 내가 마을을, 마을사람들을 지키려면 지키고자 하는 그들과 함께 있어야한다.

함께 싸워야한다.

게다가 조합장님도, 데릭 아저씨도, 루디 아주머니도, 필, 도브릭, 데이먼, 베니 누나...모든 마을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지키기위해 나 혼자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는걸 가만히 보고있지만은 않을테니까.


부모님께서 남기신 의지는, 내 방식대로 이어나갈 생각이다.

절대 남아있는 사람들이 슬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거야. 지난날의 나처럼.


"..설교하듯 이야기해버렸지만...나는 테미 씨가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해요"


오지랖이라면 그 뿐이다.

기껏 구구절절 늘어놓은 설교가 이제와서 부끄러워지지만, 주워담을 수 있는것도 아닌데다 그럴 생각도 없다.


오지랖이더라도, 이건 아까 갱도 안에서부터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으니까.


"...제가 루시안 님께 드렸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는군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그 벌입니다.

자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 스스로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벌"


딱히 벌이라고해봤자 내가 줄만한 벌이란건 애초에 없었다.

때리기를 할거야 욕을하길 할거야...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내게 그런 말과 행동을 한건지에 대해선 아까는 물론 화가 나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는 갔었기에, 공감이 되었기에 나는 그저 그녀의 말에서 안타깝게 느껴졌던 부분만을 지적할 뿐이었다.


"..저는 그다지 부끄럽지 않습니다만"


"엥?"


훌쩍거리는 공작영애의 얼굴을 어느샌가 닦는게 아닌 마치 소중한 유리구슬을 쓰다듬는 것마냥 어루만지고있던 테미는 훗, 코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내게 시선을 보낸다.

어딘가 도발하는 듯한 그 눈빛에 무심코 나는 테이블에 기대고있던 몸을 의자 등받이에 바싹 기대고말았다.


"당신이라면...상관없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헤?""


"뭐 싫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방금 뭔가 굉장히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한것 같은데...

이 사람은 대체 나에 대해 뭘 알기에 이렇게 잘 안다는 듯이 얘기하는 걸까?


"저는 여전히 루시안 님이 아가씨의 조력자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루시안 님은 아군이 된다면 아가씨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실 분이니까요"


"...그거말인데요. 대체 제가 뭘 할 수 있다고..."


"로번 리가튼 영지관리관님과 첸드릭 경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계시지요?"


"....."


맥락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는 테미의 의도를 알아보기위해 그녀의 표정을 살펴보지만, 시토리움이 채굴되는 갱도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의 표정은 착각으로 느껴질 만큼 평소와 같이 무표정으로 덧씌워진 그녀의 얼굴에선 그 어떤 의도도 읽어낼 수 없었다.


"..알고있어요"


마지못해 대답한 나에게 테미는 공작영애의 얼굴에서 손을 떼곤 다시 의자에 허리를 곧게 핀 자세로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을 잇는다.


"저는 그 두분의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는진 모릅니다. 하지만, 첸드릭 경을 대하는 로번 리가튼 영지관리관님의 행동은 그 두분사이에 '무언가 있다'라는 확신을 받게끔 만들어요.

그리고 그건 마을 안에서 아가씨의 운신을 매우 좁게 만듭니다.

실제로 첸드릭 경은 마을 안에서 기사들이 묵고있는 숙소 바깥을 왠만해선 나가지않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랬나요?"


"네. 로번 리가튼 영지관리관님과 혹시 생길지 모를 마찰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첸드릭경도 모르는 눈치이긴 하지만...일을 그르칠 염려가 있다면 주의를 아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시겠지요.

때문에 마을 내, 그리고 마을 주변에 대해 협조를 구하는 것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하더군요.

비록 로번 영지관리관 님께서 모든 도움을 아끼시지 않는단 말씀을 해주셨지만...첸드릭 경은 자신이 그 사이의 걸림돌이 될거란 생각을 하고계십니다.


이는 공작각하께 마을 내외의 상황을 상세히 조사해올 임무를 포함해 많은 일들을 단기간내에 처리해야 할 아가씨에겐 적지않은 부담이 됩니다"


조합장님과 첸드릭 아기오스의 과거. 내가 겪은일은 아니기에 그걸 전부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수는 없겠지만 아버지 생전에 들었던 이야기대로라면 지금 조합장님의 태도는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첸드릭에 대해 생각할때 '경'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있을까.

상상해보자. 내 가족과도 같은 키니를 눈앞에서 무자비하게 끌고간 자들의 우두머리였던 자가 시간이 흘러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눈 앞에 나타났다?

당장 덤벼들지 않은게 신기할정도다.


"첸드릭 경이라면 사람을 대하는 것에는 꽤나 노련한 분이시기에 믿고 맡겼지만...예상외의 복병이 나타난 셈이죠"


"내일이면 비슈트 수석기사와 위치를 바꾸게 된다면서요? 그럼 비슈트 수석기사님께 맡기면..."


"물론 비슈트 수석기사도 훌륭한 협상가이긴 하지만, 첸드릭 경보다는 못 미더운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는 첸드릭 경이 데리고 있는 수하, 과연 로번 리가튼 영지관리관님과 좋은 관계를 쌓아나갈 수 있을지는 확신이 가질 않는군요"


물론 조합장님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못할 분은 아니다. 첸드릭이면 몰라도 비슈트 수석기사와는 마주앉아 침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테지.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조합장님을 알고있는 나는 그럴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고있지만 공작영애와 테미는?

불안할거다. 그녀들에게 있어선 확신이 가는게 아무것도 없는 초행길의 탄트라 마을이기에.


"..그 일은 제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해결은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아가씨와 마을 내의 대화창구를 로번 리가튼 영지관리관님 단 한분이 아닌 루시안 님에게까지 확장 할 수 있길 원할 뿐이에요.

모든것은 아니더라도, 일부분 만이라도.

마을에 있어서 루시안 님의 발언이 얼마나 영향을 가질지는 이미 조사를 끝냈으니까요"


"어느새에?!"


"필..이라고 하시던가요? 루시안 님의 친구분이라고 들었는데, 그 분께서 굉장히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더군요.

한분의 의견으로 마을의 총의를 알수는 없지만, 그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변에 모여 동조해주신 분들이 꽤나 많았기에 신빙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필..."


대체 어느새 그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차치하고, 필 그 녀석이 어떤말을 한건지가 매우 신경쓰인다.

나중에라도 붙잡아다 실토를 받아내야지.


"하아...그건 저도 솔직히 얼마나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니 그렇다고 치고..."


당장 이야기를 나눠야 할 문제는 그게 아니다.


"공작영애"


"네?"


테미에게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테미의 이야기. 탄트라 마을을 찾아온 글렌로우드 공작가 일행의 제일 정점에 선 사람은 눈앞의 짙은 갈색 피부의 여인이 아닌 그 옆에서 어느샌가 키니와 장난을 나누고있는 이 밝은 금발의 아름다운 소녀였다.


"..시토피엔스라는 사실을 숨기는 이유는 알겠어요.

그리고 공작영애가 이 먼곳까지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직접 찾아와 고밀도의 시토리움을 찾으러 온 그 이유도, 테미 씨에게 들었구요.

하지만 저는 공작영애에게 직접 듣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어깨위에 앉아있던 키니를 조심스레 테이블 위로 내려놓은 공작영애는 양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자세를 바로하곤 올곧은 시선을 내게 향한다.

무엇이든 성실히 대답하겠다는 의지가, 그녀의 그 행동 하나하나에 깃들어져있는게 느껴진다.


"탄트라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당신에겐 있습니까?"


불과 어제의 일이었다.

공작영애가 무대위에 올라가, 이 마을을 살고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온전히 돌려주며 마을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게.

헌데 오늘 시토리움이 매장되어있는 갱도 안 공동에서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 말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공작영애가 이 마을에 찾아온 그 자체가, 마을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공작영애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안다.

그녀에겐 왕국 최초의 시토피엔스로서 스카치에라로 파견되어 대륙 내에선 고립되어있던 것과 다름없는 이트비아 왕국의 외교적 임무를 수행 할 의무가 있을테고, 그렇기에 시토피엔스로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자신에게 알맞은 고밀도 시토리움을 찾기위해 이곳까지 왔다는 것 자체를 머리로선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 피어오른 불안감이 공작영애의 행동이 가지는 이율배반성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요구하고 있었기에, 그 답변에 따라 나도 공작영애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그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녀에게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꼭 듣고싶었다.


"..지키고 싶어요"


"..."


지키고 '싶다'라...


"저는 귀족, 그것도 왕국 내의 유수한 귀족들 안에서도 국왕폐하 다음으로 꼽히는 글렌로우드 공작가의 여식이자 차기 공작 후계자입니다.

그렇기에 전 왕국을, 왕국 내에 살고있는 수많은 백성들을 지켜야만 할 의무가 있어요. 그건...제가 귀족으로서 받아온 수많은 특권과 대우를 갚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귀족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귀족으로서 지녀야 할 의무에 대해선, 더욱 당연하다는 듯이 담담히 이야기한다.

공작영애가 가지고있는 귀족으로서의 가치관, 그것에는 이 마을을, 그리고 왕국 전체를 지키고자 한다는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그렇기에 저는 이 탄트라 마을도 꼭 지키고 싶어요. 이 마을에서 행복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미소와 땀흘리며 마을 이곳저곳을 보수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않는 마을의 어른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무릎위에 앉혀놓은 채 옛날이야기를 풀어내며 포근히 미소짓는 어르신들 모두를...이 모습 그대로 지켜드리고 싶어요"


"..제가 질문을 더 자세히 드렸어야 했군요"


"...?"


공작영애가 귀족으로서 탄트라 마을을, 왕국을 지키고 싶어한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한 '귀족'이 아니지 않나.


"공작영애는 시토피엔스이시죠.

그 힘을 당신은 탄트라 마을을 지키기위해...이 왕국을 지키기 위해 쓸 각오가 되어있나요?"


"....."


숨을 들이마시는 공작영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역시...그녀는, 아직 거기까지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았다.


"저는...."


곧게 펴있던 공작영애의 허리가 조금 숙여지며 사라락, 그녀의 긴 금발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얼굴을 가린다.


"저는 시토피엔스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시토피엔스가 스카치에라에 가서 왕국을 위해 무엇을 할지도요.

제가 배운거라곤 단적인 것들 뿐이니까요.


하지만 공작영애, 당신만은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공작영애 스스로가 시토피엔스이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그런것따윈 저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이에요. 공작영애가 시토피엔스라는 것도, 스카치에라에 가는것도, 전 그 누구에게도 떠들고 다니지 않을겁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힘, 그걸로 이 마을을 포함한 왕국을 지킬 각오가 되어있든 되어있지 않든..저는 당신에게 많은걸 기대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전 제게 의미를 가지지 않는 일을 이야기하고 다닐만큼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만...공작영애가 이곳에 찾아옴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선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마을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왕국이 어떻게 되던간에.

그러니 저는 공작영애가 마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이곳에서 공작영애를 내 쫒을겁니다.

마을을 지키기위해"


난 아직 어리다. 왕국이 어떻게 되면 마을에 어떤 영향이 끼쳐올지 그런 먼 이야기를 당연하다는 듯 상상할정도로 많은걸 겪어보지도 않았고 그만큼 많은걸 알지도, 멀리 보지도 못한다.


나는, 그저 내 눈앞에 있는것이 제일 소중할 뿐.


부모님을 여의고 한동안 나 스스로에게 시선을 돌려왔던, 그런 나를 걱정해주고 최대한 나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마을 사람들에게 이젠 마주해야 할 이유와 여유가 생겼으니..부모님께서 유언장에 남기신대로, '마을을 부탁한다'는 부모님의 염원대로 나는 눈 앞의 마을을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지킬거다.

부모님이 그래오셨던 것처럼.

말했듯, 부모님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런 나에게 공작영애가 어깨에 지고있는 짐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럴필요는 없지않은가.

그녀와 나는 단 삼일 동안 마주한 전혀 연고조차 없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위해 마을의 위험을, 내 의지를 뒤로할만큼 난 눈 앞의 이 고개숙인 소녀가 소중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러니, 부디 제가 도우는 선 안에서 마을에 최대한 위험을 끼치지 않도록 마을에서의 일을 끝마쳐주세요"


"...!"


놀란듯 고개를 치켜드는 공작영애를 바라보며 문득, 그녀가 나와 같은 나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에 대해 그녀처럼 고민하는것이 그녀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녀는 공작가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부모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소녀.

어린나이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던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렇기에 난 나와는 다른 그녀에게 기대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런 그녀가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가슴 깊이 품고있다는 것에 대해선 대단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싶었다.


그녀는 마을에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불안요소임과 동시에 무언가를 지키기위한 수많은 자문자답과 갈등에 시달리고있는 연약한 소녀이기도 했다.

아직, 무엇이던 확실치 않다. 물론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자체는 주의해야할, 사전에 배제해야할테지만..한번만, 믿어보자.

나 혼자만 입을 잘 다물고 있으면 될테고, 더군다나 어머니께서 생전에 말씀하신것도 있으니까.


'레이디에겐 항상 정중히, 숙녀에게는 너도 신사답게' 대해야 한다고.

..나도 아직 어린터라 이런걸로 충분할지 잘 모르겠지만..고개를 숙인 채 어두운 표정을 짓는 공작영애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수는 없잖아.


이왕부린 오지랖, 끝까지 부려보지 뭐.





"....."


풀썩. 삭막한 방 한켠에 놓인 간이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던진다.

오늘은...정말 미친듯이 피곤해.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안 괜찮아..."


"차라도 내올까요"


"그냥 여기와서 앉아 테미...나 아직 너한테 화 안풀렸어"


"....."


뚜벅뚜벅, 얼마간의 발소리가 들리고 침대 한켠에 무언가 앉은듯한 진동이 온 몸에 전해져온다.

부스스 일어나 자리에 앉으며 침대 한켠에 허리를 편 채 앉은 테미를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째서 그런일을 한거야?"


"루시안 님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입니다"


"그래도...그런 과격한 수단을 쓰지 않았어도 되는거잖아.."


"반응을 보고 싶었거든요.

...간파당한것 같지만.

루시안 님의 멱살을 잡는다는 초강수를 두었는데도 굳은 그 심은 흔들림이 없더군요"


간파당한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행동이 계산되었다는 테미에 말엔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하여간, 무리하기는..


"너무 나갔어 테미.

그나저나...네가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짓는건 오랜만에 봤어"


"그건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루시안 님의 그 행동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시토리움이 매장된 갱도에서 따지듯 테미에게 다가가던 날 막아선 루시안 님의 얼굴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그토록 심한 말을 듣고, 팔이 뒤로 꺾이는 수모까지 당한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살며시 고개를 젓고있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자신에게 부당한 짓을 한 테미를 감싸다니.


"생각보다...루시안 님은 훨씬 생각이 깊은 분이십니다"


"테미 너는 생각보다 생각이 얕고"


"재미있지 않습니까. 루시안 님의 반응, 의외로 재미있거든요"


"재미로 그런 말을 꺼낸거야?"


눈에 쌍심지를 켠 내 시선을 받은 테미는 입을 굳게 다물곤 내 얼굴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하여간 정말...


꼬옥.


"...아가씨"


"그런건...말도 꺼내지 말아줘..난 네가 날 떠나가는걸 원치 않아.

그만큼 네가 아파하는걸, 네가 나를 위해 네 자신을 소모하길 원치 않는단말야.

테미 넌 내게 소중한...가족이니까"


테미의 등 뒤로 팔을 돌리며 그녀의 품으로 얼굴을 묻는다.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테미의 체온은 꽤나 높은편이다. 이렇게 끌어안고있으면 마음이 진정될만큼.


비록 테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루시안 님에게 그런 이야기를, 그런 행동을 했는진 알고있지만..테미에게서 받는 도움이 물론 정말 큰 도움이 되고있지만, 그 모든 도움과 그로인해 내가 편해질 그 모든것들을 내버리더라도 난 테미가 더 소중해.


테미가 날 지키고 싶어하는 만큼, 나도 테미를 지키고 싶으니까.

물론 테미가 나보단 훨씬 힘도 세고 훨씬 똑똑하다. 그러니 테미에게 난 '지켜야 할 대상'인거겠지.

하지만 나는 시토피엔스다. 아직 '발현'을 하지 않았기에 평범한 여자아이나 다를 바 없지만...시토피엔스로서 딱 하나 좋은 점이 있다면, 그렇게 발현을 하고 난 뒤엔 내가 테미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


'..그 힘을 당신은 탄트라 마을을 지키기위해...이 왕국을 지키기 위해 쓸 각오가 되어있나요?..'


"....."


그리고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루시안 님의 목소리.

무심결에 테미를 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고 만다.


"..불안하신가요 아가씨"


"...응.."


머리를 쓰다듬는 테미의 손길을 느끼며 살며시 눈을 감는다.

난, 귀족이다. 그리고 귀족이기 이전에 그저 한 여자아이일 뿐이다.

내가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게 아닌데, 난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큰 의무를 태생적 특징으로 인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에 대해 응석을 부리고싶은 생각은 없어.

그저 나는 여지껏 굳어지지 않는 내 마음에 대해 불안할 뿐이야.

왕국을, 왕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소를 지키고는 싶지만...그와 동시에 그 미소를 같이 옆에서 마주 짓고싶은 생각이 더 크단말야.

나는 왜...그럴 수 없는건데?


"..아가씨는 참으로 여린분이세요"


"..여려선 안돼. 나는...여린 사람이어선 안되는걸"


"아뇨. 아가씨는 여리셔도 괜찮아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아가씨가 그대로 있을 수 있기위해 제가 있는걸요.

그리고...루시안 님도, 아가씨가 지금 이대로 있을 수 있게끔 배려해주셨잖아요"


"...알아.."


루시안 님은 내가 마을에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고했다.

그리고, 마을에 위험을 불러오는 건 자신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막아낼거라고도 했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루시안 님은 날 도와주겠다고 했다.


마을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라는 전제조건이 붙긴했지만...나도 마을에 피해를 끼칠 생각은 티끌도 없는걸.


"이걸로 아가씨께서 조금 더 고민하실 시간을 벌 수 있게되었네요.

루시안 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할지..탄트라 마을에서의 일이 모두 끝나고 돌아가면 공작각하께 한 말씀 올려야겠군요"


루시안 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아직 그에대해 많은걸 알진 못하지만, 지키고자 하는것에 일직선인 그의 태도는 솔직히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도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와 내가 살아온 시간이 너무 다른 탓일까, 내가 루시안 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려면 지금부터 그가 겪어왔던 모든것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겪어봐야 간신히 비슷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에게선 나와는 다른 '과거의 향기'가 났다.

공작가에서 소중히 길러져오던 에밀리 글렌로우드라는 화초에선 날 수 없는 거칠면서도 질긴 향기가.


그의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말야.


"감사를 드리기 전에 루시안 님을 자극하는 것부터 그만둬.."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니까 괜찮지 않습니까"


"아니 거짓말이 아니더라...거짓말이 아니라고?!"


파앗! 테미의 따스했던 품에서 온 힘을 다해 떨어지며 테미의 얼굴을 마주본다.

그러고보니, 아까도 그런말을 했었지?!


'..당신이라면...상관없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지, 진심이야?! 정말?!"


"루시안 님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그를 아군으로 만들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가막힌 제안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새가 두마리면 한마리는 뭔데?! 응?! 뭔데?!!"


"아가씨, 저도 숙녀인지라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건 좀..."


"뭐냐고오!!"


이제와서 쑥스러운 척 하지 말란말야!

갱도 안 공동에선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꺼냈으면서!


"그건그렇고"


"말돌리지마!"


"시토리움 선별은 어떻게 되셨나요"


"말돌리지 말라..."


숨이 턱 막히듯 말이 막혀버린다.

...이거 반칙이야.


"...없었어"


"없었다구요?"


"응. 그 안에 나와 맞는 시토리움은 하나도 없었어.

'반응도'가 어느정도 맞는 건 있었지만...그걸로 만족해도 되나? 싶을정도였거든.."


자줏빛이 사방을 메우는 폭풍 안에서 나를 스치고 지나가던 시토리움들을 떠올린다.

무언가를 기다렸던 듯 앞다퉈 내게 다가온 그 시토리움들 사이엔, 나와 맞는 시토리움은 없었다.

어깨 위에 무거운 것이 올려진 듯 몸이 힘없이 쳐져간다.


"그 이외에 시토리움이 채굴되는 곳이 있었나요?"


"아니..탄트라 광산 내에서 시토리움이 채굴되는 곳은 그곳 한곳뿐이래"


"..곤란해졌군요"


생각에 잠기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턱을 괴는 테미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물론 그만큼 고밀도의 시토리움들이다. 반응도를 보았을 때 어느정도 쓸만한 시토리움은 있었지만...'쓸만한'이란 수준에 만족해도 되는걸까?


"...'그녀'가 말하길, 시토리움은 무조건 반응도가 제일 높은 것을 고르라고 했었는데요"


"그러니까...후우, 어떡하지?"


또 다시 그곳에 들어간다해도 나와 맞는 시토리움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짧았기에 아직 보지못한 시토리움이 있었지만, 그 안에 나와 맞는 반응도를 지닌 시토리움이 과연 있을까?

어찌되었건 그걸 확인하려면 다시 들어가야 할텐데.


"또 다시 들어가려면 로번 리가튼 영지관리관님과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것같군요.

국왕폐하의 날인이 찍힌 칙령으론 이번 한번이 한계였으니..."


로번 리가튼 영지관리관에게 고밀도 시토리움을 채굴하는 곳에 들어갈 허가를 받으려면 어디까지 사정을 설명해야할까.

내가 시토피엔스라는 사실까지?

..어불성설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데 이미 루시안 님은 그 사실을 알고있으니...긁어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이번 한번의 기회로 끝낼 수 있었으면 했다.

국왕폐하의 날인을 활용할 수 있는 최대의 기회는 이번 한번 뿐이었으니.


생각보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어.

아니, 생각보다 시토리움들이 너무 많았다고 해야하려나?


"시간이 필요하겠네"


"그렇겠지요. 시간적으론 앞으로 한번에서 두번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서 단 한번의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위가 아파와 테미"


"이리오세요"


쿡쿡 쑤시는 배를 살살 문지르는 나에게 살며시 팔을 벌리는 테미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겨들어간다.

더이상 고민해봤자...부딪혀보지 않고서야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다.

피곤한 오늘 하루는 이만 쉬자.

내일부터 할일이 또 산더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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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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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5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90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7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5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10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6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5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2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5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4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2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9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3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8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5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8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2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8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0 0 29쪽
»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8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8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2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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