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4,573
추천수 :
3
글자수 :
520,254

작성
17.11.29 19:08
조회
98
추천
0
글자
24쪽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DUMMY

그건 그러니까, 지옥을 그린다면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할 정도로.

도저히...직시하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욱.."


속에서 무언가 밀려올라오는 듯한 압박감과 함께 입안에 쓰디쓴 맛이 감돈다.

다른 기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나보단 잘 버티고있는 것 같지만 모두가 얼굴을 하얗게 물들이곤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의식적으로 피하고있었다.


"..빌어먹을. 역시 '잔재'였군"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허리를 숙이고 '그것'들을 파낸 첸드릭은 한껏 찌푸린 얼굴로 무언가를 집어들며 씹어뱉듯 읆조렸다.


"아..우윽...저기, 첸드릭 경...이게 대체..."


"음? 아..이런,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닐텐데"


"보기 좋지않다기보단...끔찍한걸요"


"...그렇군. 잔재가 나타난 곳을 한두번 본게 아니지만...이 정도의 영향이 미친 모습은 나도 처음보오"


한손에 든 횃불을 이리저리 비추며 주변을 둘러보는 첸드릭이 한가운데에 서있는 그 일대는,


온갖 동물들의 시체가 갈기갈기 '찢겨'진 채 쌓여있었다.


잘린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살이 파이거나 찢긴 쯤으로 원형을 알 수 있을 정도도, 아니다.

말그대로 이곳에 퍼져있는 것들은 동물'이었으리라 추측'되는 잔해.

방금 전 보았던 기사들에게 제압된 쿠르가들도 온전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진 않았지만...그것보다도 훨씬 참혹한 모습이다.


"보통 잔재가 나타난 곳은 기괴한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지만...이건, 어떤 형태의 영향인지 도저히 알수가 없군"


"...대체 그 잔재라는 건 뭐며...이 시체들은 뭐란말이에요?"


땅을 흥건히 적시는, 쌓여있는 잔해들에서 여전히 흘러내리는 검붉은 핏물.

기괴하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지옥이나 되어야 이런 모습이 존재하지 않을까. 아니, 이곳이 지옥 그 자체가 아닐까...

끔찍함, 참혹함, 처참함, 잔인함...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용사를 가져다 붙여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모습.


눈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이 실제인건지, 아니면 내가 착각을 일으키고있는건지..

그마저도 확실치 않았다.

그정도로 현실성없는 현실이었으니까.

그래, 차라리 이건 환각이 아닐까? 꿈같은, 그런게 아닐까?


"....윽"


그건 아니라는 듯 코끝을 찔러오는, 무심코 들이마신 숨에 묻어나는 강렬한 비릿함.

눈 앞의 광경을 피해 어딘가로 도망치려던 나를 현실로 끌어내린 그 미칠듯한 강렬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이런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기엔 좋지않구려.

잠깐 기다려주겠소?"


빤히 이쪽을 바라보던 첸드릭이 손에 들고있던 것을 다시 바닥으로 던진다.

그러고보니 이 광경에 신경이 모두 빼앗겨 그가 무엇을 들고있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었는데, 떨어지는 모습을 보아하니 붉은 피에 젖어 번들거리는 막대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음? 저거 어디서 본것같은데...


"...훅!"


파각!


왠지모를 기시감에 몸속을 가득 채우고있던 역겨움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막대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막대가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내리찍어진 첸드릭의 검이 그 막대를 반으로 쪼개버리는 모습에 그 묘한 기시감은 잦아들다 사라진다.


단단한것이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잔해 조각들을 사방으로 튀겨낸 반토막난 조각을 다시 몇번이고 내리찍은 첸드릭은 막대였던 것이 잘게 쪼개진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그것을 다시 땅에 묻기시작했다.


자세를 숙인 거구가 살며시 가려질만큼 쌓인 동물의 잔해 한가운데에서 피에 젖은 땅을 파내고 막대의 잔해들을 모두 묻은 첸드릭이 다시 동물들의 잔해를 밟으며 바깥으로 걸어나온다.

그의 얇지만 단단한 경갑옷으로 둘러싸인 손과 다리에선 아직 굳지않은 피가 흠뻑 묻은 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라오"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나와 나머지 기사들의 옆까지 다가온 첸드릭은 경갑옷의 가슴부분으로 손을 넣어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은 뒤 다시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약간 흰 빛을 띄는 액체가 가득 담긴 자그맣고 투명한 병.


병 안에서 찰랑이는 그 액체가 무엇인지 의문에 빠진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만 있는 내 옆에서 첸드릭은 거침없이 병의 마개를 열고 동물들의 잔해위로 그 액체를 뿌려낸다.

촤악, 일렁이는 횃불이 비추는 곳을 넘어서까지 뿌려진 액체가 동물들의 잔해에 닿자, 무언가 타는듯한 냄새와 함께 믿기 힘든 광경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녹아내리고있었다. 검게, 빠른속도로.

옅은 흰색의 액체가 닿은 부분에서 시작된 녹는 반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체로 퍼져나가 연기까지 모락모락 피워내며 동물의 잔해를 없애나간다.

녹는다? 탄다? 그게 무엇이던, 끔찍했던 모습들이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한 덕택에 속을 메스껍게 만들던 역겨움과 어지러움도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한게 다행이랄까.

뱃속과 머리속을 엉망진창으로 휘젓던 어지러움이 옅어져 생각에 여유가 생기던 그 때.


"...어? 저, 저기...저건 뭐죠?"


그래서일까. 뒤섞여 쌓여있는 동물들의 잔해 가운데에서 그 이상함을 눈치챈건.

잔해들이 녹아가는 어느 한 부분에 녹지않고 남아있는 것을 손으로 가리키며 첸드릭을 올려다본다.


"..아무래도 하나가 아닌것같소"


굳은 얼굴로 거침없이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간 첸드릭은 곳곳에 검은 얼룩을 묻히곤 연기를 내뿜고있는 막대를 향해 검을 내려친다.


파각, 땅에 꽂힌 채 으스러지듯 부서진 막대의 잔해에서 하얀 무언가가 둥실, 떠올라 공중에 잠시 머물곤 흩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아까도 저런게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새 부서진 막대의 잔해를 땅에 묻곤 다시 돌아온 첸드릭의 손짓에 기억속에서 그 광경을 지워낸다.

지금은 일단,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싶다.


"공터로 돌아가야겠소. 아무래도 이 이상은 힘들것 같으니"


"..찬성이에요"


나무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달빛을 집어삼키며 파르스름 피어오르는 연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 첸드릭의 돌아가자는 이야기에 무거이 고개를 끄덕인다.





"부단장님, 돌아오셨습니까"


"음. 오벤 상등기사, 오늘 저녁엔 주변 경계를 좀 더 신경쓰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공터에 접어들어 가까이 있는 장작불에 들고있던 횃불을 던져내는 우리에게 다가와 경례를 건네는 오벤 상등기사에게 답례를 건네곤 낮은 목소리로 지시를 건넨 첸드릭은 그를 지나치며 공터 안쪽 공작영애가 머무는 숙소로 향한다.


"아, 아까 비슈트 수석기사가 보내온 전언이 있었습니다"


"음?"


몸을 돌리는 첸드릭에게 차렷자세로 마주 선 오벤 상등기사는 말을 잇는다.


"공작영애께서 오늘 저녁은 마을에서 묵으시겠다고 합니다. 경호는 비슈트 수석기사가 맡을테니 걱정마시라는 전언입니다"


"..마을에서 묵으신다고?"


데릭 아저씨네 집에서인가?

..아..감이 오는데.


"네. 테미 님이 쓰러지신 탓에 돌아오시기 힘드시답니다.

시간도 늦어 필요한 경호인력이 늘어난데다 쓰러진 테미 님의 상태도 있기에 그대로 마을에 묵으시는게 나으실것 같다고.."


"...역시나"


그럴줄 알았어.

안봐도 뻔하지. 집에 놀러온 공작영애와 테미에게 니르는 자신의 빵을 맛보여주고싶어 안달이 났었을테다.

그러려고 계속 우릴 쫓아다닌거니까.

공작영애야 기쁘게 먹었겠지만...테미는, 억지로 먹여진건가?

데릭 아저씨랑 루디 아주머니로도 역부족이었나보네.


"흠...알겠네. 내일은 아침 일찍 마을로 향해야겠군"


무거이 고개를 끄덕이는 첸드릭의 얼굴엔 씁쓸함이 어려있었다.

방금 전 숲속에서 본 모습을 바로 보고하고싶었으리라. 어떻게 해야할지, 그 지침을 받고자.


하루, 그것도 몇시간 뒤엔 보고가 가능할테지만...그의 그 마음은 나도 솔직히 이해가 되었다.

나도 내가 보았던것을 조합장님과 데릭 아저씨에게 당장이라도 전하고 싶었으니까.


"전언은 이상입니다. 그럼 저는 주변 경계로 돌아가겠습니다"


"수고하게.

자네들도 주변 경계에 합류하도록"


"""예 부단장님"""


경례를 올리곤 오벤 상등기사를 따라 멀어지는 오긱스 평기사를 포함한 세명의 기사들은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하긴 그 광경을 보고도 금방 괜찮아지는게 신기한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첸드릭이 이상한거다.


"..? 자네들은 안색이 왜 그런가?"


"...아닙니다"


"아닌게 아닌데...게다가 지나스 자네는 얼굴에 그게 뭔가?

무슨일 있었나?"


"....."


멀어져가는 그들이 남기고 간 대화소리의 흔적을 묵묵히 귓가에 담으며 첸드릭의 넒은 등을 따라 통나무 집으로 향한다.

정작 공작영애는 부재중인 공작영애의 숙소와 내 집 앞에 멈춰선 첸드릭이 몸을 돌려 주름진 눈으로 날 내려다본다.


"집에 실례해도 되겠소?"


"..네"


해야할 이야기가 있다. 그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고개를 끄덕인 첸드릭을 지나쳐 문을 여니 어두운 방 안에서 붉게 빛나는 두개의 빛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침에 도망치듯 집을 나간 키니다. 그 이후로 안보이더니 나와 공작영애가 마을을 향하고 난 뒤에 다시 집에 들어왔나보다.

키니가 있는 내 집의 그 익숙한 모습에 무심코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다.


턱.


"..충격적인 장면이었지. 이러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오"


"...감사합니다"


주저앉듯 쓰러지던 내 몸을 부축해 일으킨(그대로 잡아 들곤 억지로 일으켜세웠다는게 더 정확할테지만) 첸드릭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곤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화로의 불씨를 방 안 석유등에 옮겨 붙인다.


일렁이는 석유등의 불빛에 숲 속에서 보았던 횃불에 비친 광경이 순간 겹치는 바람에 다시금 다리에 힘이 빠지려했지만, 이를 꽉 깨물고 억지로 버텨내며 겨우겨우 테이블 의자까지 다가가 실이 풀린 인형마냥 풀썩 주저앉는다.


의자에 기대듯 축 늘어진 내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기며 자리에 앉은 첸드릭은 그런 나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진정될때까지 기다려주려는 듯, 하얗게 센 수염이 덥수룩히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입술을 꾹 다문 채.


"...."


머리속에서 그 광경을 지워내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머리속 어딘가에 남아서 불쑥 튀어나올것만 같은 강렬하고 끔찍한 광경이었으니까.

이 상태에서 여유롭게 첸드릭과 대화를 나눌정도로 진정하려면 내일 아침 떠오르는 해를 봐야할테니, 그 광경은 일단 기억의 한켠으로 온 힘을 다해 밀어놓는다.


그것만으로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정도로 힘겨워하는 나에게 침대 위에 앉아있던 키니가 다가와 무릎 위에 올라타 앉으며 나를 빤히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 두 눈에 선명히 알 수 있는 걱정스러운 빛을 담아.


얼마동안, 적지않은 시간동안 그렇게 심호흡만을 반복하며 거친 급류마냥 가쁘던 숨과 뒤죽박죽 엉켜있던 머리속이 가까스로 진정되기 시작할 때쯤 묵묵히 나를 바라만보던 첸드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소?"


"..어느정도는요"


"이야기를 듣게되면 꽤나 큰 혼란을 겪을지도 모르오.

내일 이야기하는게 좋겠소?"


"..지금하시죠"


더 시간이 지나봤자 이보다 더 진정하려면 한숨자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을 것 같고, 내가 보았던게 뭔지 모른채로는 잠도 잘 수 없을것 같아 억지로라도 허리를 펴고 의자에 앉으며 첸드릭의 깊은 눈과 마주한 채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걱정스레 날 올려다보는 키니의 시선을 느끼며, 이마에 생겨난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쳐낸다.


"우선, 그대에게 묻고싶은게 있소.

그대는 이 숲속에서 얼마나 살아왔소?"


"...제가 태어난 이후로 계속. 19년 정도 되었네요"


태어났을때를 기억하는건 아니지만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론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계속 자라왔다고 했었다.

이 숲 속 공터에서만 19년, 부모님이 사신것까지 하면 그보다도 긴 시간을 나와 부모님은 이곳에서 살아왔다.


"그동안 이 주변 숲 속에 사람들이 들어간 적은 없고?"


"제가 혼자 살게 된 이전에는 가끔 채집을 위해 저나 마을사람들이 들어가기도 하고, 그 시절을 포함해 혼자살고 난 뒤에도 어느정도까지는 상회의 사람들이 길을 잃어 들어가기도 했었어요"


"'어느정도까지'?"


"...혼자살고 난지 4년정도가 지난 후 부턴 없었죠. 마을사람들도 굳이 위험한 숲 속까지 들어가서 채집을 할 필요도 없이 따로 농사를 짓기시작한데다 숲을 가로지르는 광산까지의 길은 왕래가 뜸해졌으니까요.

최근엔 상회의 사람들이 모두 마을로 가는지라 그 길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졌어요.

요즘에는 제가 가끔 들어가는 정도죠."


"그럼, 숲 속에 사람들이 들어가던 때에 사고라던지는 없었소?"


"어느정도 있었죠..? 말씀드렸다시피 위험한 곳이었으니까요 숲 속은. 지금도 위험하고.

예전엔 강도들과 도적들까지 있어서 더 위험했었어요"


"강도들과 도적들이 숲 속에 있었다..

인명피해는?"


"...그것도 어느정도.

저기, 첸드릭 경.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건지..."


"마지막으로,"


듣고싶던 이야기와는 다른 질문들을 쏟아내는 첸드릭에게 의아함을 느낀 내 말을 끊어낸 첸드릭은 어느샌가 날카로워진 눈동자를 미동도 않으며 날 응시하고있었다.

눈빛만으로도 베어나갈듯 예리하게 빛나는 그 깊은 눈동자에 섬칫한 소름이 돋아난다.


"요 최근, 그동안 이곳에서 지내온 그대가 보아도 이상하게 느껴질만한 일은 없었소? 숲에서"


"...."


순간 떠오르는, 아침마다 찾아오는 새들의 기억.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마리의 새들로 시작해 점점 수를 늘려나가던 아침의 불청객들은 분명 '최근'에 찾아온건 아니었다.

허나 그것들이 이상한 양상을 띄기 시작한건 분명히 최근의 일.


"그...가끔 아침에 새들이 이곳에 몰려와 다가오는 것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긴 했는데..

그게 요 며칠사이에 좀 이상해져서요"


"비슈트 수석기사에게 보고는 들었소. 숲에서 검게 물든 새들이 수없이 날아올라 공터를 둘러쌌다지?

그게 최근부터 시작된 일이오?"


"새들이 아침에 찾아오는건 꽤 예전부터 있던 일이에요.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제가 어렸을때부터였죠.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에"


"...그랬군.."


팔짱을 끼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첸드릭의 날카롭던 안광에서 벗어난 나는 그가 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건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당연한거겠지.

나는 아직 그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했기에,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에 왜 첸드릭이 그런 질문을 하는건지 알수가 없는거다.

소름이 돋아 한껏 예민해진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방울의 불쾌한 느낌에 무심코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 내 기색을 민감하게 알아챘는지 첸드릭은 꼬고있던 팔짱을 풀며 시선을 다시 내게 향했다.


"일단, '잔재'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게 우선이겠군.

잔재라는 건...과거 크니쿨이 대륙에 남긴 흉터의 흔적이라오"


"?!!"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지막히 흘러나온 하나의 단어. '크니쿨'.


대륙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그, 저주스러운 단어.

누구나가 입에 올리기 두려워하는 그, 공포스러운 단어.


경악한 나를 앞에 두곤 담담히 그 이름을 입에 올린 첸드릭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대륙을 피에 물들였던 괴물들...인간이 짜낼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도 물리치는게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재앙.

인간들을 불쌍히 여긴 신이 구원처럼 내려준 '시토리움'의 발견으로 겨우 몰아내는데에 성공한 그 괴물들은 대륙에서 사라지면서도 저주의 발톱을 휘둘렀다오.


그 발톱의 흔적, 무수히 대륙에 새겨진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 아물어갔지만 그 발톱의 잔재는 그대로 남아 대륙 이곳저곳에 오늘날에도 재앙을 불러일으키고있소.

아까 그대가 보았던 것 처럼"


처음듣는 이야기다.

학교에서도 전혀 배운적 없고, 그 누구에게도 전혀 들어본 적 없는이야기.


'크니쿨'이란 것에 대해 학교에서 배울때엔 그저 대륙의 역사와 얽혀 배우는 토막지식이 전부였다.

그 이상을 입에 올리는 것도 학교의 선생님들은 두려워했고, 마을 사람들, 심지어는 상회의 사람들마저 그 이름을 마치 '없는 것'마냥 여겨왔으니까.

그 정도로 '크니쿨'이란 이름은, 그 악마라고 비유되는 존재들은 오랜시간 사람들에게 있어서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면, 떠들썩한 술집에서 누군가 그 이름을 그저 읆조리듯 입에 올려도 술집 내의 모두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있을정도로.


대륙의 모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를 먼 옛날부터 인지하며 두려워하는건, 마치 의무처럼 대를 걸쳐 전해져 내려온 자장가 때문이었다.


[새빨간 피를 몸에 뒤집어쓴 채 손톱엔 아이의 눈, 어른의 머리카락, 노인의 심장을 끼운 커다란 뿔의 악마.

검은 몸이 붉게 물들어 본래의 색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고, 이를 알게된 자도 누군가에게 자신이 본것을 전하기 전에 목숨을 달리하네.


한 발자국에 숲이 파여 동물들이 사라지고,

한 손짓에 마을이 부숴지며 사람들이 사라지고,

한 숨결에 거대했던 왕국이 잿빛 모래로 스러지네.


아이야 아이야. 잠을 자지 말아라. 저 재앙이 사라지기 전까진 잠을 자지 말아라.

내일이라도 사라질 오늘을 그토록 허무하게 보내진 말아라.


아이야 아이야. 울지 말아라. 저 대지를 울리는 울림이 사라지기 전까진 눈을 감지 말아라.

눈을 감은 아이는 악마가 먼저 마중을 나온단다.]


자장가라기엔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옛날 어느 음유시인이 불렀다는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자장가.

단지 오래되고 허황된 노래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이 자장가는 같이 전해져내려오는 당시의 이야기와 현재도 찾아볼 수 있는 그 때의 기록들과 얽혀 사람들의 뿌리깊은곳에 원초적인 두려움으로서 자리잡아왔다.


헌데 그 '크니쿨'의 흔적이 아직도 대륙 이곳저곳에 남아있다고?

게다가...


"그...크, 크니쿨의 잔재가...흔적이, 이 숲 속에 있다구요...?"


"그렇소. 아까 보았던 막대가 그 증거요.

대지에 새겨진 저주스러운 흔적이 머리를 내민 것이지"


"...."


눈 앞이 캄캄해진다.

이건 당황스럽다거나 놀란것을 뛰어넘어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눈 앞의 이 칼과 같은 기사가, 명예와 자긍심 그 자체인듯한 노년의 기사가 차분한 눈빛과 진중한 목소리로 실없는 농담을 하고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숲 속에서 보았던 그 광경과 크니쿨이라는 이름이 얽혀가는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있던 공포심이 몸집을 부풀려간다.


"잔재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생겨나오.

어디서 어떻게, 무슨 연유로 생겨나는지 알 수 없기에 없고, 나타난다면 주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에 있는거라오.

허나 일반 백성들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또한 없지.

그저 갑자기 나타난 재앙으로 여겨질 뿐이라오"


"그, 그렇다면..이곳에 잔재가 생겨난건 갑작스러운 일이라는건가요?!"


"그렇소. 뭐 의심은 하고 있었소만"


"의심?"


어디서 어떻게, 어째서 생겨나는건지 모른다던 방금 전의 말과 반대되는 그 '의심'이란 단어에 의자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로 몸을 내밀며 추궁하듯 되묻는다.

무릎 위에 앉아있던 키니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바닥으로 뛰어내려 자리에 앉는다.


"이번 공작영애가 탄트라 마을을 시찰하는데에 포함되어 있었다오. 이 주변에서 나타났을지도 모르는 '잔재'를 조사하는것이"


"...공작영애는, 공작가는 그걸 미리 알고있었다...?

어떻게?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지 모른다면서요?"


그렇다면, 마을에서 오긱스 평기사에게 전언을 전해들은 공작영애가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그녀는 잔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있었으니까?


"믿을 수 있는 곳으로부터 전해들었으니 말이오"


"믿을 수 있는곳이라면.."


"..테미 군에게 들었소만, 그대는 이미 아가씨에 대해 알고있다고 하더군"


살짝 경계의 빛을 띤 첸드릭의 시선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확인하고자 하는것은, 공작영애가 시토피엔스라는 사실을 내가 알고있다는 점에 대해서이리라.

테미 씨에게 이미 내가 그 사실을 알고있다고 전해 들었어도 한번 더 확인하고자 하는거겠지.

근데 그것과 이게 무슨 관련이...


"...하긴 테미 군이 거짓말을 하진 않을테니.

그 믿을 수 있는 곳이란 스카치에라라오"


"...스카치에라"


크니쿨이 대륙의 사람들에게 기피의 대상이라면, 그 크니쿨과 얽혀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신뢰와 옹호,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스카치에라였다.


'시토리움'을 다루는 '시토피엔스'들이 크니쿨을 대륙에서 몰아낸 이후 남아있던 한줌의 시토피엔스들이 모여 만든 단체.

그렇기에 그들은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크니쿨의 잔해가 어디에 나타났는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애시당초 그 잔재라는 걸 오늘 처음 알게된 나다. 지금 나는 그저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혹여나 첸드릭이 거짓말을 하고있는 건 아닌지 간절히 빌고있을 뿐이었다.

제발.


"에밀리 아가씨의 스카치에라 파견이 정해지고나서 왕국으로 아가씨를 마중하러 온 스카치에라의 관계자가 전해온 소식엔 왕성도 매우 충격을 받았소.


그들이 대륙에서 일어나는 잔재로 인한 피해에 대해 미연에 방지, 또는 처리를 맡아왔다는 건 왕국에서도 국왕폐하와 공작각하까진 알고계시던 사실이었으나...

과거 헤놋 왕국은 크니쿨의 손톱을 비켜나갔던 곳이었기에, 그 자리에 그대로 터를 잡은 왕국에 잔재가 나타나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으니 말이오"


헤놋 왕국은 크니쿨이 대륙을 유린하던 때에도 유일하게 크니쿨을 자국 내에 들이지 않았던 곳이었다.

헤놋 왕국이 지니고있는 힘때문이었을까? 거인기사라는 강력한 힘을 지닌 왕국이긴하지만...

그보다도 강대한 나라들이 그 당시 단 하룻밤만에 사라지기도 했으니 그렇진 않을거다.

그렇다면?


"시토리움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그들이 대륙에서도 제일 강한 힘을 가진 시토리움이 묻힌 이곳에 발을 들일 순 없었을테니.

그렇기에 안심하고 계셨건만...정작 그 고밀도의 시토리움이 채굴되는 곳에 잔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믿을래야 믿을수도 없지않겠소.


일어나선 안되는 우연이란 쉬이 믿을수도 없는 일이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있어선 안되는 일이, 일어나버렸다.

그에 따른 혼란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던, 아무것도 모르던 나도 이토록 충격적이건만, 철썩같이 그럴리 없다고 믿던 국왕폐하와 공작각하는 훨씬 더 엄청난 혼란에 빠졌을터였다.


"다행스럽게도, 애초에 잔재가 나타나는 드문 확률 가운데에서도 희박한 사례만이 확인된 시토리움 매장지역 주변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대해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는 관계자의 의견에 국왕폐하와 공작각하는 한시름 놓으신것 같았으나..혹시라도 모르는 일.


과거 잔재를 스카치에라와 한때 처리하였던 경험이 있는 나를 동행시켜서 이렇게 조사를 나온것이오"


"...아.."


요 몇일간 헝클어져 꼬여있던 실뭉치의 한 부분이 풀려나간다.

어째서 공작영애의 경호를 첸드릭 아기오스라는 인물이 맡고있는걸까.

귀족들과 기사들의 세계를 알고있는건 아니지만, 나이가 칠십줄이 넘은데다 이젠 일선에서 물러나있다는 노년의 기사에게 경호임무를 맡긴다는것에 대해 계속 궁금하던 참이었다.

단순히 그의 실력만으론 의문점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방금 그가 말한 이유라면,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그렇다면"


그러면, 잔재를 처리할 수 있는 그가 이곳에 와서 잔재가 있는 것을 확인한 지금.

숲 속에서 그 막대를 부수던 그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내가 상상하는 것과 같다면...


"이제, 이 마을은...그 잔재라는 것의 영향에서 안전한건가요?"


처리해보았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첸드릭이 아까 숲 속에서 했던 행동은 무언가를 '처리'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이젠 안전해진걸까.

그 혐오스러운, 공포스러운 이름에서 이 마을은 안전해진걸까.


"아니, 여전히 이 마을은 위험하오.

나는 잔재를 확인할 순 있어도 완전히 처리할 수는 없으니"


그리고 이내 그 감정은 다시금 절망이란 칠흙같은 그림자로 물들어 날 뒤덮어왔다.


작가의말

위험! 위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관련 공지 18.02.10 76 0 -
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5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90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8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5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10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7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5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3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6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4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2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9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3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8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6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8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2 0 22쪽
»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9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0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8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8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2 0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