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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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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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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DUMMY

"..언니, 언니!"


"으, 응?!"


어두웠던 세상에 색이 되돌아온다.

너무나도 나 자신에게 향해있던 눈동자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옷깃을 잡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자그마한 여자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아, 니르야.."


"괜찮아 언니? 어디 아파?"


"아냐 괜찮아"


예전에도 니르 앞에서 이랬던 적이 있었던것 같은데.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난 오래전부터 생각에 잠기면 주변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더군다나 그것이 내가 버티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일이라면 더욱.


어릴적 아버지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한시도 떨어져있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오랜시간 내 옆을 비운다며 공작가를 비우던 그 날도 그랬고, 그런 아버지가 생전 처음보는 여자아이와 함께 돌아오셨을 때도 그랬었다.


"어디 몸이 불편하신 곳이라도?"


지금은 나보다 훨씬 커진 채 날 내려다보고 있는 이 여자아이랑 함께.


"그런건 아냐 테미. 그냥 아까 첸드릭 경이 이야기했던 걸 생각하다보니..."


"걱정되십니까"


"걱정안되는게 더 이상하잖아?"


옷깃을 잡은 손을 더욱 꽉 쥐기 시작한 니르의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지라 마지막으로 한숨을 내쉬곤 니르의 머리위에 손을 올려 쓰다듬는다.


"난 정말 괜찮아 니르. 걱정하지 마렴"


"아까부터 계속 불렀는데 모르고 있던걸..."


"그랬니? 미안해.."


말 뿐만이 아닌 미안하다는 마음이 전해지도록 니르의 머리를 최대한 상냥히 쓰다듬어준다.

나도 자각하고 있는거지만, 항상 한 생각에 몰두할 땐 다른게 안보여서 탈이야...


"...헤헤"


곧 불안감이 풀렸는지 평소와 같은 환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는 니르는 옷깃을 잡았던 손을 풀곤 내 허리를 꼬옥 껴안아온다.


"언니이~"


"으응 니르야 왜?"


요즘 드는 생각인데 이 아이...콱 수도로 데려가버릴까?

물론 안될 생각이지만.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귀여운데 어떡해.


"저도 끼어도 되겠습니까"


"안돼 테미. 지금은 나랑 니르의 시간이야"


"...제길"


"? 방금 욕한거야?"


"아닙니다. 저기에 뭔가 있어서요"


아닌것같은데....

의심스런 눈으로 테미를 바라보다 그녀가 가리키는 손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헌데, 진짜 '뭔가'있었다.


"저게 뭐야?"


"글쎄요. 가서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해가 진 탓인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새까만 공간에서 무언가가 꾸물거리는 듯한 모습이 희끗희끗 눈에 들어온다.

동물? 웅크리고 있는 사람?


어두운 시간 탓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 그 모습에 품 안에 안은 니르를 더욱 꼬옥 껴안는 나를 두고 테미가 천천히 그 그림자를 향해 다가간다.


"? 언니 왜그래?"


"응? 그냥...니르가 귀여워서?"


"에헤헤.."


고개를 부비며 더욱 꼬옥 날 껴안는 니르의 머리위에 손을 올려둔 채 시선은 점점 가까워져가는 그 그림자와 테미의 모습을 담는다.

거리가 계속 좁혀지고, 테미의 위치에선 그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가까워진 그 때.


"...여기서 무얼하고 계시는 겁니까"


"우, 우와앗?!"


놀란듯 큰소리를 내며 바닥에 발라당 넘어지는 그것은 사람의 모습을 한 채 사람의 소리를 내며 사람을 닮은 눈동자로 테미를 올려다보고있었다.

아무리봐도 사람이네 응. 놀랬잖아.


턱에 난 수염이 왠지 간사하게 느껴지는 중년의 남성은 식은땀을 비오듯 흘리며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 어쩐일이십니까?!"


"제가 여쭙고싶은 말입니다만.

이런 곳에서 웅크려 앉은 채 무얼하고 계시는 겁니까"


"아...아, 그, 그게..."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게 떨어진 이곳에서도 선명히 보일정도로 동요하고 있는 그 남성은 금세 상의를 땀으로 흠뻑 젖히며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아! 여, 여기 돈을 좀 떨어트려서요!"


"..돈을, 말입니까"


"니, 니엡! 저는 상회의 사람인지라 동전 하나라도 떨어트리면 영 불안해서 말입죠!"


상회의 사람들에게 돈을 떨어트린다는게 얼마나 불운한 징조인지 수도 상회의 사람들에게 들어서 알곤 있지만...

그게 저토록 당황할 일인가?


"헌데 왜 그렇게 당황하십니까"


"이, 잃어버린 동전을 찾느라 지지집중하던 탓에...! 그, 그래서! 너무 갑작스러워서! 부르셔서!"


"....."


의심쩍다.

여기서 보고있는 나도 의심쩍은데, 가까이있는 테미는 오죽할까.


"...기사단을 불러드리죠. 아직 못 찾으셨다면 같이 찾아보시면 될겁니다"


"?! 괘, 괜찮습니다! 여기, 여기 찾았으니까요!"


급히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어 동전 한 닢을 꺼내는 그는 쉴새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흘러내리는 땀을 사방으로 튀겨내고 있었다.

...엄청 의심스러운데.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렇습니까.

앞으론 조심하시길. 상회의 사람으로서 돈을 떨어트린다는건 매우 큰일이 아닙니까"


"그, 그그그렇지요!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걸까.

행여나 붙잡힐까 그는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테미에게서 멀어져간다.


허겁지겁 사라져가는 그를 바라보다 다시 돌아온 테미는 내 눈빛에 살짝 고개를 젓는다.


어쩔 수 없다, 는 뜻이겠지.


"우웅? 누가 왔다 갔어 언니?"


계속 품 안에 안고있던 니르의 등 뒤에 두른 손을 풀자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떨어지는 니르는 큰 눈에 의아함을 담아 나와 테미를 번갈아 올려다본다.


"..지나가던 사람이 돈을 떨어트렸던 모양이야"


"이런! 어디야 어디? 니르도 찾아볼게!"


"후후...이미 찾아 가셨단다"


"그래? 다행이다~!"


이 아이는 의심이란 단어를 모르는걸까.

방금전까지 눈 앞에 있던 남성에게 한없는 의심을 품고있던 내 자신이 뭔가 잔뜩 때묻어있는 듯한 느낌에 부끄러워진다.


"아가씨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이군요"


"...으응? 뭐라구 테미?"


"아무것도 아닙니다. 때묻으신 아가씨도 아름다우셔서요"


"..화내고싶다. 엄청 화내고 싶다..."


"언니 화낼거야..?"


"으, 응? 아냐, 아냐 니르야 언니 화 안내~"


나도 어릴적엔 이만큼 순수했다구!

...아마도, 내 생각엔.


"근데 언니, 오늘도 마을에서 자고 갈거야?"


"응? 응 그래야겠지? 이미 어두워졌으니까.

그리고 이제부턴 아마 계속 마을에 있을거란다"


"웅?! 정마알?!"


"응 정말"


어째서인지는 이 아이에겐 그다지 중요한게 아닌것같다.

그저 내가 마을에 있을거라는게 기쁜듯, 어째 더 밝아질리가 없어보이던 얼굴이 더욱 밝아져온다.


양갈래 머리가 한번 크게 튀어오르며 공중으로 두 다리를 접어올린 니르는 그대로 뒤로 몸을 돌린 채 착지하며 당당한 자세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럼, 저거 보러가야지!"


"그래야지"


그러려고 남은 이유도 있는 걸.

힘차게 앞서 걷기 시작하는 니르의 뒤를 테미와 나란히 따라 걸어간다.

수도 상회의 사람과 이야기를 끝마치고 돌아온 첸드릭과 앞으로의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나는 마을에 묵는게 좋을것같다는 그의 말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탄트라 마을에 도착하기 전 품었던 걱정이 그대로 남았다면 깊은 생각을 거친 뒤에 결정했겠지만, 마을 사람들의 의외의 호의 덕분인지 마을에 묵는다는 것 자체에 대해선 걱정이 없었던데다 니르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첸드릭 경이 염려하는 것에 대해 나도 이해하고있으며, 그에게 있어 '최우선 호위대상'인 내가 굳이 부릴 필요도 없는 억지를 부려가며 크니쿨의 잔재가 나타났다는 숲 속에 남을 이유도 없었다.


그보다 걱정되는 건, 숲 속 공터에 남아있을 루시안 님과 크니쿨의 잔재가 끼쳐올 영향.

루시안 님은 공터에 남아야 할 인원들에게 호위를 부탁했고, 마을은 비슈트 수석기사와 상의해 경계 범위와 정도를 다시 설정한 상태다.

이걸로 충분한걸까...확신은 없으나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으니 스카치에라에서의 지원이 확인된다면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릴 생각이었다.


첸드릭 경과 비슈트 수석기사는 달갑지 않은 듯 해도...그렇게 결정했으니까.

마을의 일을 이 땅을 일구고 지켜온 장본인인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잖아.

더군다나 이제 공작가의 영지도 아닌 자치령인걸.


"생각의 결론은 지으셨습니까"


"결론은.

그게 정답일지는 두고봐야 알겠지"


"항상 말씀드리는 거지만...아가씨의 뒤엔 제가, 그리고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많은 기사들이 있습니다.

큰 걱정 마시고 하고싶으신 걸 하시길"


"..알았어. 고마워 테미"


테미가 건네주는 이런 격려의 말은 항상 진심이 느껴져서 좋다.

지금까지도 그 말 그대로 내 뒤에, 또는 내 옆에 서있어주었으니까.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지난날을 거쳐오며 쌓인 신뢰라는건 이런게 아닐까.


덕분에, 난 많은 것을 내 자유롭게 할 수 있었기도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께선...걱정하시지 않으실까"


첸드릭에게서 전해듣기로, 공작가에 연락을 보내 왕성으로 전해달라는 과정을 거쳤다고 하니 적어도 아버지만큼은 지금 탄트라 마을의 상황에 대해 알고계실거다.

딸에게 어릴적 옛날얘기처럼 들려주던 것이 실제로 닥쳐왔다면 누가 믿을까.

나도 못믿을 것 같은걸.


"공작각하와 큰 마님께선 괜찮으실겁니다.

첸드릭 경이 옆에 든든하게 붙어있으니까요"


"정작 그 첸드릭 경은 어딜갔나 안보이지만 말이지"


보고 겸 논의를 끝마치고 해가 저물어가는 어두운 숲 속을 향해 사라진 첸드릭 경의 모습을 떠올린다.

루시안 님과 약속이 있다고했었는데...


"남자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걸까"


"첸드릭 경이 루시안 님께서 아가씨를 바라보는 눈초리에 대해 경고를 주시려는 건 아닐까요?"


"?! 그게 무슨말이야 테미?"


"?! 맞아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농담입니다"


"".....""


네개의 흰 눈자위가 쏘아보내는 눈빛에도 아랑곳 않는 표정으로 정면만을 응시하는 테미의 얼굴이 확, 밝아져온다.


"시작했군요"


"...대체 테미 넌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거야.."


"별 생각 없습니다만?"


뻔한 거짓말을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내뱉는 테미에게 한숨을 내쉰 나와 니르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린다.

타닥이는 나무 타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리며 새빨간 불꽃을 뿜어내고있는 중앙광장 정가운데에 놓인 나무탑 주변에 사람들이 무수히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족히 열걸음 넘게 떨어져있는 이 거리에서도 얼굴에 느껴질만큼 뜨거운 열기가 후욱, 바람을 타고 전해져온다.

중심부로부터 바깥쪽까지, 노란색에서 밝은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신기한 색의 변화를 보이는 불꽃이 그곳에 있었다.


"생각했던것보다 더 크네.."


"나무들이 타오르며 내는 제각각의 불꽃을 잘 계산했군요.

게다가 적당히 마른 장작에 적당한 습도, 적당한 바람과 적당한 나무의 양...실로 완벽한 불꽃입니다"


"...뭔가 네 감상은 좀 이상한것같아 테미"


"한마디로,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아가씨"


테미의 말대로다.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히는 그 불꽃은 어디서도 본 적없는 특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있었다.

그저 불이 타오르는 것 뿐일 불꽃이 이리도 아름다울 줄이야...


"축제에 어울리는 불꽃이네"


"불'꽃'이란 이름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게 있을까싶군요"


"그치, 그치 언니들?! 너~무 예쁘지~!"


홀린듯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는 나와 테미의 감상에 신난 니르는 두 팔을 들어 활짝 편 채 연신 방방 뛰며 지저귀는 듯한 웃음소리를 주변에 흩뿌리고 있었다.

니르뿐만이 아니다.


주변을 가득 메운 마을 사람들, 상회의 사람들, 개중엔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기사들까지...

모두가 옆에 서있는 누군가와 웃음이 가득한 환담을 나누며 눈 앞의 불꽃을 황홀한 듯 구경하고있었다.


지금까지 탄트라 마을의 축제는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깊어지면 달빛의 상냥한 손길에 등떠밀리듯 모두가 집과 숙소로 돌아가 하루의 즐거운 기억을 되새기며 잠들었었다.

그 어디의 축제도 마찬가지다. 밤이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집으로 돌아가 다음날을 위한 휴식을 취해야 하니까.

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가 지금이 밤이라는것도 잊은 듯 이 순간 자체에 몰두하고있었다.


땅에 내려앉은 태양처럼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는 불꽃에 질투하는 듯 눈을 가늘게 휜 달이 내려다보는 마을.

커다란 불꽃을 둘러싸고 제각각의 모습으로 지금을 즐기는 사람들.


"올해에는 꼭...꼬옥...루시안 오빠랑...헤헤..."


헤벌쭉 웃으며 손을 모으고 불꽃을 향해 무언가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는 니르처럼, 곳곳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까지..

이 불꽃은 마을의 액운을 쫒기위해 피우는 것이랬었나?


불쑥, 이리도 아름다운 불꽃을 보기위해 액운마저도 이끌려오지나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심장이 서늘해진다.


"......"


손을 모으고, 기도.


그렇다면, 정말 이 불꽃이 액운을 쫒는다면.

부디 그 액운이란것들이 이 불꽃의 아름다운 겉모습이 아닌 속에 품고있는 뜨거움에 놀라 달아나기를 바래보자.

그리고 이왕이면.


'내 마음이, 제발 빨리 단단히 굳어질 수 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일렁이는 불꽃의 끝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한자락, 힘주어 모은 내 손을 감싸안고는 흩어져 사라진다.





"후아아암~...."


눈동자 끝에 눈물방울을 매달곤 커다란 하품을 내뱉은 니르는 눈을 부비적거리며 침대에 털썩, 주저앉는다.


"많이 졸리니 니르야?"


"우웅...졸려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 몸을 애써 움직이는 듯 천천히 고개를 든 니르의 눈엔 한가득 졸음이 담겨있는 탓에 초점이 제대로 잡혀있질 않았다.

불꽃이 사그라들때까지 약 세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기도할때 빼곤 신이나선 여기저기 뛰어다녔으니 그럴만도하지.

그런 니르의 뒤를 따라다니던 나도 피곤함에 다리가 무거워질 정도인데...


우우...나도 앉을래..

그 전에 밤공기가 좀 찬것 같으니까 창문부터 닫자.


"니르 님, 방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물론, 그 와중에도 테미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아니 진짜 테미는 뭐가 어떻게되있는건데? 왜 나랑 니르만 이렇게 피곤해하는거야? 불공평하잖아!


안아들려는 듯 손을 내밀며 다가가는 테미의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니르는 양 손을 올리며 테미에게 안겨들 자세를 취한다.


"웅....우햣?!"


하지만 이내 손이 맞닿을 듯한 위치에서 고개를 힘차게 저으며 다시 손을 홱!하니 내리는 니르.

테미의 얼굴에 드러날듯 말듯 살며시 상처받은듯한 기색이 어린다.


"아냐아냐! 아직 오늘은 끝나지 않았어 언니!"


"오늘의 축제는 끝났습니다. 다른분들은 보금자리로 돌아가 내일을 준비하고 계세요"


"다른 사람들은 그럴지 몰라도 난 아냐 언니! 아직 난 더 할 수 있어!"


대체 뭘 더 할 수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니르야, 아까 어머니께서 씻고 어서 자라고 하시던데.."


테미와 내 손을 잡은 채 졸음에 젖어 비틀비틀 집에 들어선 니르를 맞이한건, 또 다른 니르였다.

아니, 니르의 어머니였다.


세상에 정말 어쩜 그리 니르와 닮았는지...아마 니르가 키가 커지고 성숙함과 차분함이 외모에 조금씩 녹아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니르와 정말 매우 닮은 여인이었다.

데릭 톨로즈가 환영식날 부인이 미인이시냐는 내 물음에 부끄러워하면서도 긍정했던게 이해가 갈만큼 엄청난 미인이기도 했고.

난 그저 그 때를 모면하려던 거였는데 진짜일줄은...니르를 보곤 언뜻 예상하긴 했지만.


아무튼,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우리들을 맞아준 니르의 어머니는 졸린 눈을 연신 비벼내는 니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언니들도 쉬어야하니 니르도 어서 씻고 자렴'이라는 따뜻한 말을 건네주었고, 이때 살짝 공작가에 계신 어머니의 생각이 나 코끝이 찡해진 나는 곧 고개를 젓는 니르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 여전히 미소 띈 얼굴로 한숨을 내쉰 니르의 어머니가 뒤이어 꺼낸 말에 얼음물을 머리부터 뒤집어쓴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늦게자면 저기 저 언니처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질 수 없단다 니르야'


그러면서 가리킨건 무표정하게 서있는 테미.

나는? 난? 난 왜? 나는 아니에요 아주머니?


게다가 더 억울한건,


'..우웅'하는 대답과 함께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니르가 방이 있는 곳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는거.


..나는? 나는..?


"괜찮아! 나는 에밀리 언니 만큼만 커도 충분하니까!"


"그거 무슨 뜻이니?!"


니르 너마저!


"니르 님, 사람은 만족해선 안되는겁니다"


"테미이?! 너까지 그러기야?!"


아까 불꽃에 기도했어야 할게 지금생각났어!

저도 아직 성장기니까 더 크게해주세요!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저는 '키'이야기를 한 것 뿐인데요"


물론 '키'를요! 딴거 아니에요! 정말로!


"웅? 그랬어 언니? 난 다른 얘기였는데..."


그냥 다 크게 해주세요 제발!


"..나 갑자기 피곤해졌어"


방 한켠에서 끌어와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비척비척 침대로 걸어간다.

풀썩, 실 끊긴 인형마냥 침대에 쓰러진 내 볼에 맞닿은 침대보의 감촉이 기분좋다.

...이 천은 눈물닦기에 아주 안성맞춤같네...


"언니 피곤해?"


"응..."


얼굴을 마주보는 위치에 엎드리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니르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니르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그렇구나...언니가 피곤하다면 어쩔 수 없지..."


시무룩하다못해 금방이라도 울것만같다.


....후우.


"...조금, 얘기하다 잘까 니르?"


"응!"


금세 얼굴이 한낮처럼 환하게 밝아진 니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지어진 쓴웃음을 침대보에 문질러 애써 없애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아가씨?

내일은 광산에 다시 가셔야하는 것 때문에 일찍 로번 영지관리관님을 찾아뵈야 할텐데요"


첸드릭 경과 이야기를 끝낸 후 니르와 다시 만나 찾아간 로번 영지관리관에게 광산의 재출입에 대해 가능한지 여부를 조심히 물었더랬다.


꽤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안되는건지 등골이 서늘해지며 식은땀이 흘렀지만, 이번에는 본인이 동행하는 조건으로 승낙해주었기에 내일 아침 일찍 로번 영지관을 찾아가야하긴 하지만,


"조금이면 괜찮잖아 테미..

테미도, 같이 얘기하다 자자"


"...여기서 자도 되겠습니까"


"그러엄"


"오늘은 셋이서 같이 자는거야?! 와아!"


물론 침대에 다같이 함께 잘 수는 없으니 테미는 방에서 침구를 가져오겠노라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선다.


내일 일정에 무리가 갈지 모른다는 이유로 주저한 테미도 니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같이 자자는 내 제안이 어지간히 매력적이었는지 바로 준비하러가네.

아침 일찍이라곤 하지만 지금도 그다지 많이 늦은 시간은 아닌데다, 테미와 함께 잔다면 워낙 아침잠이 없는 테미가 알아서 잘 깨워줄테니까.


게다가 니르랑 대화를 나눌 때면 말이 많아지는 테미의 그 모습이 즐거워하는 것이란 걸 아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테니.


자기도 좋으면서 괜히...


"아 참, 언니 내가 신기한거 보여줄까?"


"응?"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니르는 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앞서 나간 테미의 뒤를 따라 방을 뛰쳐나간다.

신기한거라...자기만의 보물이나 그런걸까?

나도 어렸을 땐 공작가의 가솔들이나 공작가로 찾아온 손님들에게 내 보물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나곤 했지.


그립다 커다랬지만 가벼운, 그 땐 신기했던 그 돌맹이.


그게 사실은 동물의 똥이 말라 굳은거였단 사실을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걸까.

덕택에 우연찮게 비에 젖은 그 돌맹이 위로 우연찮게 얼굴부터 넘어졌잖아.


그립단말 취소.

그 때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돋아.


"음? 니르 님은 어디가셨습니까?"


지난날의 부끄러운 추억을 되새기곤 다시금 몰려오는 창피함에 얼굴을 감싸안으며 부들부들 떨고있던 내 귓가로 테미의 목소리가 내려앉는다.


얼굴을 가리던 손을 살짝 움직여 문가를 바라보니 고이 접힌 침구를 들고있는 테미가 눈에 들어왔다.


"..보여줄게 있다고 방에 갔어"


"그렇습니까.

헌데 아가씨께선 왜 얼굴이 그렇게 붉어지셨는지.."


"더워서 그래 더워서!"


"덥진 않습니다만"


"테미 너한텐 덥지 않아도 나한텐 더울 수 있는거잖아!"


"아까 추워하시면서 창문 닫지 않으셨습니까"


"창문을 닫으니 더워졌어! 그 뿐이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테미 너 미워!"


저 희미하게 입꼬리 올린거봐!

분명 지금 나 놀리고 있는거야! 내가 뭣땜에 이렇게 있는지는 상관없고 그냥 놀리는게 좋은거야 테미는!


얼굴아 빨리 원래대로 돌아와줘..!


"쨔잔~! 언니 나왔....웅? 에밀리 언니 왜그래?"


"더우시답니다"


"더워? 창문열까?"


토토톳, 가벼운 발소리가 가까워지며 이내 침대위로 무게감이 전해져온다.

창문을 여는 듯 이얍,하는 니르의 목소리와 나무경첩의 끼익거리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지는 것과 함께 아까보다도 더욱 차가워진 밤공기가 방 안에 밀려들어왔다.


"자 창문 열었어 언니. 이제 괜찮지?"


"으, 응..고마워 니르야.."


내 맘도 모르고...

그래도 걱정해주는 건 니르밖에 없구나.


이젠 볼만 살짝 화끈거리는 정도로 가라앉은 얼굴을 감싸쥔채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는다.

어느샌가 바닥에 침구를 깐 테미도 그 위에 허리를 편 자세로 앉았고, 니르도 내 옆으로 다가와 딱 달라붙어 침대에 주저앉았다.


자연스레, 테미와 니르의 시선이 내 얼굴을 향해온다.


"...왜?"


"아닙니다 아가씨"


"언니 괜찮은가 해서!"


"..난 괜찮다니까 정말.

그건그렇고 니르야. 보여주고 싶다는게 뭐니?"


그대로 두면 계속 내 안색을 신경쓸것 같아 대화의 주제를 니르가 가져온것으로 향한다.

참 다행히도, 그런 내 물음에 니르는 금세 신경을 다른곳으로 돌리며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니르 님, 숙녀로서 그런건 좋지 않다고..."


"쨘! 이거봐봐! 금이야!"


"..금?"


"어? 진짜?"


니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꺼내든 그것은, 정말 금이었다.

방 안에 켜져있는 램프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 하며, 그 색하며, 눈으로 보이는 그 질감하며...어딜봐도, 무엇을 봐도 금.

다만 신기한건, 마치 가공된 것 마냥 막대 모양을 하곤 표면에 어지러이 선이 새겨져 있다는것.


"이거 니르거니?"


"그건 아니구, 루시안 오빠네 집에 놀러갔을 때 키니랑 숲 속에 들어갔다가 주웠어!"


"..숲 속에서 주웠다구?"


이런 물건을?

얼핏봐도 세밀하게 조각되있는 듯한 이런 물건을 줍다니...그럼 이걸 떨어트린 사람은 대체..


"...아니, 이건.."


눈 앞에 내밀어진 막대를 들여다보던 테미가 무언가에 눈치 챈 듯 날카로운 눈꼬리가 치켜져 올라간 그 때.


콰앙!!


어디서부턴가, 모두가 잠들어있을 이 조용한 밤에 어울리지 않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작가의말

아이 깜짝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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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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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4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89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7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4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09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6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5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2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5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4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1 0 27쪽
»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9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2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7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5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7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2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8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0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7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7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2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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