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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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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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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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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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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DUMMY

공터에서 벗어나 어둠과 안개가 뒤섞인 숲 속의 길에 접어들자,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이제야 마을을 향하던 남은 그림자들의 잔해였다.


"!!"


[키아악?!]


가까이서 본 그림자들의 잔해는 온갖 동물들의 모습을 하곤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온 몸에 검게 일렁이는 무언가를 두르고 있었기에 한눈에 그것을 '동물'로서 인식하기는 어려웠다.

그것들도 방금 전까지 공터를 둘러싸고 있던 그림자처럼, 그저 괴물로 보였다.


그리고 그 괴물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를 확실히 적으로 인식한 듯, 살기를 띈 붉은 눈을 향하며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숲 속에 퍼트려낸다.


순식간에 앞을 막아선 새까만 괴물들.


"방해...하지마!!"


멈춰 서있을수는 없다.

눈 앞을 가로막은 열댓마리의 동물들에게 발목을 잡혀있다간, 먼저 달려간 것들이 마을에 닿게될테고 그러면 지금쯤 잠에 빠져들어있을 마을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습격을 받게될테니까.


제 아무리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기사들이 경계를 서고있다곤 하지만 그 경계병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의 습격자들을 예고없이 맞게된다면 그들 또한 제대로된 대처를 할 수 없게될것이다.


그들의 뒤는 무방비한 마을 사람들.

절대로, 무슨일이 있어도 저 괴물들보다 마을에 먼저 닿아야해!


그러니까,


"비키라고!!"


"미야아?!"


품 안의 키니를 꼭 껴안고 오른손에 들고있던 정글도를 어깨위로 크게 젖히며 달려나간다.

애초에 멀지않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갑작스러운 내 움직임에 뒤늦게 반응한 놈들도 응수하듯 쏘아져온다.


거리는 더욱 좁혀지고, 더욱 그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선명히 보이기 시작할때.


"으랴압!!"


치켜올렸던 정글도를 온 힘을 다해 땅으로 꽂듯이 내려찍는다.


파가각!


[끼롸악!]


운 나쁘게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괴물의 머리를 그대로 뚫고 들어간 정글도가 바닥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발을 굴러 몸을 띄운다.


'으극?!'


팔에 전해져 오는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뒤틀리는 듯한 강한 통증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며 공중제비를 돌 듯 정글도를 잡은 손을 기준삼아 몸을 돌려낸다.

눈 밑으로 그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내게 향한 괴물들의 모습이 지나간다.


"흣!"


그 순간, 달려가며 뛴 탄성이 그대로 남아 절정에 달했을 때 정글도의 손잡이를 잡고있던 손을 놓았다.


"! 차아!"


공중에 몸이 붕 뜬 듯한 감각이 밀려온다.

절벽이나 나무에서 떨어질 때와 달려오던 멧돼지를 피하려다 그대로 부딪혀 날아갈 때 느꼈던 것을 적절히, 하지만 거칠게 섞은 듯한 속도감과 부양감이 잠시동안 이어지고,


탓! 팍! 파바박!


"크, 크윽!"


"미야아!"


착지한 곳에서 속도를 미처 줄이지 못해 땅을 긁어내듯 두어걸음 박차고 나간 뒤에야 겨우 몸을 세운다.

무릎에서 올라오는 찌르는 듯한 통증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에 퍼져나가지만, 지금은 그런것에 정신이 팔려있을때가 아니다!


[키아악!]


[캬악! 캬롸아!]


자신들의 위를 지나쳐 어느샌가 위치가 뒤바뀐 나를 멀찍이서 몸을 돌리며 다시 노리기 시작한 괴물들의 모습을 두 눈에 담자마자 손에 잡아두었던 것을 낚아채듯 강하게 잡아당겼다.


파라락! 휘릭!


땅에 박아넣기 전 미리 끌러두어 잡고있던 천을 따라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며 정글도가 날아와 손 안에 빨려들어온다.


퍽, 소리를 내며 손에 들어온 정글도의 묵직한 감촉과 마치 손이 마비될듯이 둔탁하게 퍼져나가는 고통을 참아내며 몸을 돌려 마을을 향해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키야아아악!!]


"미양! 먀아아!"


괜찮냐는 듯 품에서 옷을 타고 올라와 목을 휘감은 키니가 귓가에서 우는 소리를 들으며 더욱 발에 힘을 실어 땅에 닿는 즉시 밀어내기를 반복한다.

무언가가 빠르게 뒤쫓아오는 기척이 점점 강하게 등을 찔러오기에, 그 질문에 미처 대답을 해줄 여유는 없었다.


'조금만...조금만 더..!'


라고 마음속에선 수십번 되내이지만 뒤따라오는 저 괴물들보다도 앞서 나간 놈들은 그 흔적조차 보이질 않았다.

그저 무수한 발자국과 숲 속 이곳저곳의 나무가 부러지거나 눕혀져 있는 흔적들만이 끊임없이 나타나고만 있을 뿐.


희뿌연 안개는 걷히질 않고, 한밤중의 달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숲 속의 길을 그저 이제까지 걸어다녔던 기억에만 의존해 하염없이 달려간다.


감각으로는, 이제쯤 숲 길이 중간정도 끝난 지점...!


[크롸아!]


"?! 흐앗?!"


너무 앞만 보고 달린 탓일까.

어느새 따라잡혔는지 내 등을 노리고 달려든 무언가의 살기에 바닥에 디뎠던 발을 뒤가 아닌 옆으로 밀어내며 숲 길의 한켠으로 몸을 던져낸다.


[키롸악! 캭! 키약!]


노림수가 빗겨나간게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내리찍은 앞발로 땅을 연신 긁어 파내는 커다란 개와 비슷한 형상을 한 괴물은 다시금 몸을 웅크리며 내게 달려들 자세를 취한다.


놈을 제외한 다른 괴물들은 아직 어느정도 떨어져있지만,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

눈 앞의 이 괴물과 이렇게 대치하는 이 짧은 시간에도 날 추격하던 다른 괴물들은 가까워져오고 있었고, 내가 따라가던 괴물들은 더 멀어져가리라.


'제기랄..!!'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이놈들을 모두 처리하고 가야하나?

이 괴물들을 다 처리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아니 그 이전에, 내가 이놈들을 '처리'할 수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도망가는 것 뿐이아닐까?


한껏 굽혀졌던 네개의 다리가 펴지며 눈 앞의 괴물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짧은 시간에 떠오른 그 나약한 생각은 마주오던 녀석을 향해 정글도를 휘두르려던 내 손을 약간, 아주 약간 무디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본적없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을 상대하며 생긴 잠깐의 그 틈새는 내겐 무척이나 치명적인 것이었다.


[캬아아악!!]


한껏 벌려진 입 안의 날카로운 이빨이 시야를 한가득 메워온다.

막거나 베어넘겨야 할 정글도는 아직 허리춤에서 미처 올라오지 못한 상태.

지금 들어올린다해도...늦었다.


끝났다.


슈악! 퍽!


[-아아..칵!]


"?!"


눈을 감을 새도 없이 그저 가까워져오는 날카로운 이빨을 바라만 보고있던 내 눈동자 안에,


방금 전까지의 광경은 그저 환영이었던 것처럼 숲 속 길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


손이 땀으로 미끌거리는게 여실히 느껴지는 현실감으로 가득 차있는 환영이.


"괜찮습니까 루시안 님?!"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말에 올라타 달려오는 자세로 활을 이쪽을 향해 겨누고있는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이 목소리는..


"오벤 상등기사님?!"


"이곳은 저희들이 맡을테니 먼저 가십시오!"


아직은 날 향해 달려오고있는 괴물들의 뒤에서 다섯명의 기사들을 이끈 채 그것들을 따라오는 형세의 오벤 상등기사는 손에 들고있던 활에 다시금 화살을 매긴 뒤 시위를 당기자마자 지체없이 손을 놓는다.

눈 깜빡할 사이에, 아니 그 눈을 깜빡하려 감은 순간 화살을 쏘아냈을정도로 빠른 일련의 행동은 그 속도에 비례할 만큼 정확하게 달려오던 괴물 중 한마리의 뒤통수를 꿰뚫어냈다.


"저희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사일생의 순간에서 구해 준 감사와, 발목을 붙잡던 괴물들을 대신 저지해준 그 도움에 최대한의 고마움을 담아 소리치며 다시 발을 구른다.

비단 고마운건 그것 뿐만이 아니다.


'화살에...죽었어!'


달려가며 흘깃 바라본 화살을 맞고 날아간 괴물은 확실히 그 숨통이 끊어진듯 축 늘어진 채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게다가 확실히 그것이 '죽었다'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건,


며칠전 숲 속에서 새들이 터져나가던 것과 똑같이 그 검게 물들어있던 괴물이 터져나가며 사방에 검은 가루를 흩뿌렸기에.


그렇다면 이 괴물들은 날붙이로도 충분히 처치할 수 있다는 거다.

내 손에 들린 이 정글도로도 얼마든지!


"...!"


손에 쥔 정글도를 더욱 굳게 다잡으며 들려오는 괴물들의 괴성소리와 파육음을 뒤로한 채 달리는 속도를 높여나간다.

허벅지근육을 최대한 조여 짜듯, 최대한 낼 수 있는 속도를 다해.


숨이 넘어갈듯 가쁘게 벅차오고, 심장은 거칠게 뛰기 시작한다.

주변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 형체만 보이는 어두운 길을 달리는 탓에 방향감각도 희미해져가지만, 두통이 올 정도로 기억속의 이 길을 최대한 선명하게 떠올려가며 빠른속도로 앞선 괴물들의 흔적을 따라나간다.


그리고 머리속에 떠오른 길이 맞다면, 이제 곧 마을이 나타날 때다.


"! 다 왔다!!"


달빛에 충만한 곳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저곳을 벗어나면 마을까지 이어진 밭 사이의 길이 나타날테고 그곳에서부터 마을까지는 금방.


숲을 벗어나기 전 앞서나갔던 괴물들을 따라잡지 못한게 미칠듯이 아쉬웠지만 그나마 다행인것은,


"미야아! 먀아! 먕! 먀앙!"


목덜미를 휘감은 채 연신 사방으로 꼬리와 머리, 앞발을 향하는 키니가 알려준대로 곳곳에 보이는 키니의 흔적을 따라 괴물들의 행적이 지체된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 대신 무언가라도 도움이 될까 했던 이기적인 마음으로 내세운 키니가 괴물들의 행진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무심코 눈가에 차오르던 눈물을 가까스로 다시 삼켜낸다.


늦췄을지언정, 아직 괴물들은 그 꽁무니조차 보이지 않을정도로 한참 앞에있다.

마을에 닿았을지도 모르는일이라고!


"으...아아아아!!!"


한계를 부르짖는 뻐근한 허벅지를 더욱 채찍질해 속도를 더, 더 빠르게.

미처 피하지 못한 나뭇가지가 귀를 스치며 생채기를 내더라도, 개의치않고 앞으로.

점점 커져가는 어두운 공간 속 밝은 빛이 새어들어오는 그곳을 향해.


달빛이, 세상을 메웠다.


"?!!?!"


그리고, 어두운 숲의 끝에서 눈앞에 드러난 모습에 나는 마치 실이 끊긴 인형마냥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속도 그대로 바닥을 뒹굴고 말았다.





콰아앙!!


"꺄아악!"


"니, 니르야?!"


갑작스레 들려온 굉음은 귓속을 파고들어 그 안쪽 깊숙한 곳까지 날카로우면서도 둔탁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도 나지만, 니르는 나이가 어린만큼 귀가 더 약한지 양쪽귀를 감싸안은 채 자리에 주저앉고말정도로 강한 충격을.


"괜찮니?!"


"어, 언니! 언니이..!"


"바깥을 보고 오겠습.."


그 큰눈에 눈물을 한껏 담아 흘려보내기 시작한 니르를 감싸 안으며 같이 주저앉은 내 뒤에서 문을 향해 몸을 던진 테미보다도 먼저,


타앙!


"괜찮으십니까?!"


부서질듯 열린 문 너머로 커다란 덩치의 험상궃은 얼굴이 한껏 걱정을 담은 얼굴로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 아빠아아~!!"


"니르야!"


내 품에서 빠져나가 데릭에게 달려간 니르는 마치 겁에 질린 새끼고양이마냥 웅크린채 두 눈에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얼굴을 그의 옷에 비비며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괜찮아, 괜찮다 니르야"


"..바깥에 무슨 일이 생긴겁니까?"


니르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는 데릭의 앞에서 옅은 표정이 더욱 무겁게 굳어져 내려앉은 테미는 그에게 바깥의 사정을 묻는다.


"저도 아직 제대로된 파악은 하지 못했습니다.

잠자리에 들던 때였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리라.

이 시간은 보편적으로 한밤중, 심야라 불리는 시간.

수면의 시간이며, 시끄러운 소란은 그 자체로도 터부시되는 이런 시간에 천둥번개보다도 더 크게 들린 굉음이라니?


누군가의 장난인걸까?


"그 가능성은 적을겁니다 아가씨"


"...어째서?"


숙이고 있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나에게 어깨너머로 시선을 보내는 테미는, 그런 내 예상을 미리 읽어내곤 고개를 저었다.


"제 아무리 축제 중이라 마을 시민들, 또는 상회의 사람들이 한껏 들떠있는 상태라고 한들 이만큼 커다란 소란을 한밤중에 일으킬 간큰 사람은 없을겁니다"


"마을의 주민이라면 저희들 모두가 서로를 알고있기에, 상회의 사람들이라면 아직 오지않은 짐마차에 기껏 큰돈을 주고 구매한 광물을 싣지도 못하고 쫒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몰라도...상인들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런 일을 벌일 이유를 도저히 못찾겠군요"


더군다나 상회의 사람들은 향후의 거래에 대해서도 문제가 생길일을 절대 하지 않을 족속들이다.

마을 사람들도 서로를 매우 잘 알고있는 이상, 이런 일을 벌여 마을에 피해를 입힐 일은 하지 않으리라.

쫒겨날 각오를 하고 이런 짓을 벌였다면 그건 단순한 멍청이이거나 그만큼 원한이 서린 일이 있다는 얘기니까.


그럼 이건 대체 무슨 소란인거지?


"일단...괜찮으시다면 니르를 데리고 계셔 주시겠습니까?

저는 나가서 상황을 확인해봐야 할 것 같거든요"


"아, 아빠아~...어디, 어 어디가려구..?"


"걱정마렴 니르야. 잠깐 나가서 무슨일인지만 확인하고 올테니까"


마을의 유지 중 한명이라는 그에게 있어선 그럴 책임이 있겠지만, 아직 어린 니르에겐 자신을 지켜줄 커다란 아빠의 가슴을 놓고싶지는 않을거다.


자그마한 니르에게 맞춰 숙이고있던 몸을 일으키는 데릭의 움직임에 따라 필사적으로 그의 옷자락에 매달려있던 니르가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간다.


"..하하..이런.."


"니르야, 이리오련? 언니가 꼬옥 안아줄테니까"


방금전에도 내 품에 있다가 데릭을 보곤 바로 빠져나가버린터라 이게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곤란해하는 데릭의 간곡함 어린 눈빛에 두 팔을 벌려 니르를 회유해본다.


"...."


어라? 지금 방금 니르가 내 가슴을 본 듯한...


"...."


응? 그러곤 테미의 가슴으로 시선이 옮겨간 듯한...


"..제게 오시겠습니까 니르님?"


"응..."


어라?! 어라라?!


"데릭 씨?! 차라리 제가 바깥을 보고 오는 건 어떨까요?!"


"아, 아하하...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난처한 웃음만을 남기곤 문을 닫으며 사라진 데릭의 흔적에 뻗고있던 손을 허망히 툭, 힘없이 내려놓는다.


나...나는...


"니르님, 괜찮으십니까? 불편하시진 않으신지요"


"우웅 안 불편해 언니...딱좋으푸..."


테미의 가슴에 니르의 얼굴이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2, 2연패...


"...흐윽"


"아가씨, 우십니까?"


"안울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신데요"


"안울어! 안운다구!"


눈에 뭐가 들어간것 뿐이야!

억울함, 부당함! 그래 그런게 들어간 것 뿐이라구!


"니르님, 아가씨도 '작으신 건' 아니십니다"


"우응 그럴것같아..하지만 언니가 '더 큰'걸"


"그렇죠. 제가 '더 크긴'하지요"


"...그냥 울래"


울리려고 이러는 것 같은데 차라리 울지 뭐...훌쩍.


"그럼 니르님, 이제 아가씨께 가셔도 괜찮으시겠지요?"


"응..괜찮아.."


억양의 고저는 없지만 달래는 듯한 투로 소근거리듯 건넨 테미의 말에 못내 아쉬운 듯 니르가 테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내게로 다가온다.


"....."


"웅"


"....."


"..우웅~"


"....."


"..웅!"


못본척하며 고개를 돌려 딴짓하던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니르가 내 시선을 쫓아 얼굴을 들여다보려는 것을 계속해서 피하자 이내 팔짱을 낀 내 두 팔을 억지로 풀어낸 니르는 비게된 품 안으로 폭 안겨들어왔다.


...쳇, 귀여워서 봐줬다.


"그럼 아가씨, 여기서 잠시 니르님과 함께 계시지요.

저도 데릭님과 함께 바깥 상황을 확인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데릭님께서 나가셨는데..."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를 해야하니까요"


최소한의 호위병력만이 이 집 바깥에 남은 채 다른 병력들은 대부분 마을 외곽 순찰 및 경비에 투입되어 있는 이상 나와 테미 단 둘이서 할 수 있는 대처라곤 피신밖엔 없겠지만..


피신을 해야 할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겠다는 거겠지?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예 아가씨. 이 방 안에서 되도록 나오시지 않길 바랍니다"


방금 전 데릭이 문 바깥으로 사라진 것과 같이 테미 또한 문을 열고 그 너머로 모습을 감춘다.


잠깐이지만 커다란 소리를 내고 나타난 커다란 덩치의 사내와 키가 큰 전속시녀가 거의 동시에 사라진 방 안은 휑한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아, 하나 더.


창문 바깥에서도 계속 시린듯 차가운 공기가 불어와 그 무거운 적막 위에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니르야, 춥지는 않니?"


"언니 품 따듯해..."


어느새 진정이 된건지 눈가에서 펑펑 흐르던 눈물은 멎고 품 안에서 고양이처럼 갸르릉거리는 니르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머리를 최대한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근데 그러고보니,


"어머니께선 어디 가셨을까?"


이건 니르의 어머님께서 하셔야 할 역할이 아닐까?

나보다는 훨씬 니르를 능숙히 달래주실 수 있으실텐데...

왜 안오시는거지?


"웅...아마 엄마두 아빠랑 같이 나갔을거야.."


"니르네 어머님도?"


어째서? 어머님도 마을의 유지로서 해야할 일이 있으신걸까?


"우리 엄마..탄트라 마을 자경단 단장이시거든.."


"...응?"


잠깐, 응? 뭐라구?


"자경단...단장?"


"응.."


"그 자경단이라는게 그 막 무슨일 있으면 무기를 들고 휘두르기도 하고 막 나쁜일 하는 사람들 힘으로 제압하고 막 이렇게 막 하고 막 그런거...

맞니?"


"응 맞아"


"맞아?!"


어딜봐서?!


"우리 엄마 되게 쎄 언니.

저번에두 길잃고 마을에 흘러들어온 강도들 여덞명이 막 휙휙 파박 퍽퍽 하니까 쓰러져있었어"


...휙휙 파박 퍽퍽?

순식간에 처리했다는 그 의미가 생생히 전해져오네.


그런데 그 아리따우신 외모에 나보다도 여려보이는 체구의 어머님이 그런일을 하신다고?

상상이 안가는걸...


"우리 마을 처음 만들때두 여기에 있던 산적들이랑 강도들, 그리구 야생동물들을 쫒아내신 분들 중 한분이신걸"


"..니르네 어머님은 전에 무얼하셨는지 너무 궁금하다.."


"어? 그건 나한테두 말 안해줬는데...미안해 언니"


미안해할 필요는 없는데도, 내가 궁금한 점을 알려주지 못한다는게 그렇게도 미안한지 품 안에서 등을 기대고 앉아있던 니르의 고개가 푹 숙여진다.


"아니야 니르야.

니르에게도 말해주지 않으신 이야기를 언니가 알아선 안되지 않겠니?

어머니께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으실테니까"


"웅...엄마가 여자는 비밀이 있어야 더 매력적이랬는데. 그래서 그런건가?"


..그런거랑은 좀 다른것 같지만,


"그, 그런거지. 봐봐 언니도 비밀 되~게 많다?"


"정말? 그럼 언니도 매력적이야?"


"으, 으응?"


매, 매력적인가...?


잠시 학교생활을 떠올려보자.

아니네.

그럼 공작가에서.

이건 뭐...알 수 있는 특징적인게 딱히 없으니.

그럼 수도안의 이곳저곳에선?

..응? 으으응? 어...응?


"막 남자들이 따라다니면서 언니 가는길에 꽃뿌려주고 땅에 발 안닿도록 의자에 앉혀서 등에 이고는 돌아다니거나 집 앞에 선물이 산처럼 쌓여서 문이 안열리거나 그랬었어?"


"...그런 매력은 나라를 망하게한단다"


경국지색이라잖니.


"아 나 그거 알아! 경국지색!"


"와아 이 어려운 단어를 알아?"


"응! 엄마가 방금 언니한테 물어본거 얘기해주면서 이런거 없는 사람들이 흔히하는 변명이라그랬어!"


"...."


아니에요 어머니.


"그러면서 엄마는 옛날에 땅을 디뎌본적이 없었대!

처음 땅을 디디면서 여기는 왜 이렇게 딱딱할까 궁금했었다구 했어!"


어머니 기만은 제발 그만둬주세요...!


"그..그렇구나..

하긴 니르네 어머님은 정말 아름다우시니까"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둘째치고서라도, 니르의 어머니되시는 분은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다.

뭐랄까, 푸르른 들판에 펴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즐기며 활기차게 흔들거리는 새하얀 들꽃을 닮았달까?


그런분이 자경단 단장이라니 정말 놀랄일이지..


"니르가 어머니랑 쏙 빼닮았으니까, 니르도 크면 어머니처럼 아름다운 숙녀가 될것같아"


"정말?! 언니보다도 더?!"


"으...응?"


아, 안돼 에밀리! 여기선 멈칫하면 안돼!


"그, 그러엄! 언니보다도 훨씬!"


"와아!"


품 안에서 두 팔을 치켜든 채 기뻐하는 니르의 뒷모습을 어딘가 씁쓸함이 배어나는 미소를 입에 물며 바라보다 창 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바깥엔..정말 아무일 없는걸까?


"니르야 이젠 괜찮니?"


"응! 완전 괜찮아졌어!"


불안해하던 니르를 달래기위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도 바깥의 상황이 마치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계속 신경쓰여 견딜수가 없었다.


데릭과 테미가 나간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테미는 바깥의 상황을 확인하면 바로 돌아올테니 이만큼의 시간이 지나서도 돌아오지 않는다는건 생각보다 큰 일일수도 있다는 건데...

정말, 대체 무슨일일까?


"..아무래도 안되겠다.

창 바깥으로 조금만 봐도 괜찮겠지?"


"웅? 언니 왜?"


테미는 방 안에만 있으면 된다고 했으니까.

바깥 상황이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나 큰일은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니르를 품 안에 안은 채 앉아있던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그 때,


탁, 데구르르...


"응?"


눈 앞에 무엇인가가 굴러 떨어져 바닥위에 나뒹군다.

이건...


"니르야. 이거 아까 니르가 보여줬던 금 막대기 아니니?"


"웅? 아 맞다. 이거 가져다놔야하는데!

아빠가 물건 아무데나 어질러 놓지 말라그랬는데.."


혼날일이 걱정되는 듯 다급히 앉아있던 자세에서 무릎걸음으로 막대기에 다가간 니르는 그것을 주워들며 고개를 어깨너머로 돌린다.


"언니 나 방에 잠깐 다녀와도..."


--------!


"...?"


응? 뭐라구?


분명 니르가 무언가 말한 것 같은데, 갑자기 아무말도 들리질 않는다.


뭐지? 뭔가 시간이 좀 느리게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방 안의 공기가 너무 차가워진 탓에 몸에 한기가 돌아서 그런가?

창문 닫아야겠다. 니르가 감기걸리면 큰일이잖아.

창문을 너무 활짝 열어놓은게 실수...


--...콰아아앙!!


"?!"


"꺄아악!"


그리고 돌아오는 시간.

시간 뿐만이 아닌, 방 안을 뛰어넘어 집 전체를 울릴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사방을 찢어발긴다.


손 안에 든 금 막대기를 품에 끌어앉고 주저앉는 니르를 급하게 잡아당겨 감싸 안은 그 순간.


쾅! 콰직!


창문이 열려있던 공간에, 그깟 창문따위는 한참이나 뛰어넘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정말 '찢어발겨진 듯' 뚫려있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에 아무생각없이 돌아본 그곳, 마을 내에선 드문 2층에 있었기에 사방이 훤히 보이는 그 광경 안에는..


곳곳에 불꽃이 치솟고있는 마을의 처참한 광경이 현실과는 굉장한 괴리감을 품은 채 놓여있었다.


작가의말

사람이 놀라면 한순간 멍..해지더라구요. 그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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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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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5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90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8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5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10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7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5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3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6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4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2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9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3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8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5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8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2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8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0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8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8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2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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