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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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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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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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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DUMMY

독주라면, 딱 알맞은게 있지.


"허어...이거 참 맛이 좋구려"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이네요"


아버지께서 생전에 드시던 술을 흐릿한 기억속에서 제조법을 찾아내 끼워맞추며 만든 술이다.

데릭 아저씨에게도 몇번 가져다 드린적이 있었는데, 그 술에는 왠지모르게 까다로우신 분이 한병 더 없냐며 눈에 불을 키시곤 하셨으니 맛은 보장된거겠지.


꽤나 독한 술이라 다섯잔 드시곤 기절하듯 뻗긴 하셨는데.


"그대가 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정취를 알고있을줄은 몰랐소"


"뭐...가끔 한두잔 정도만 마시는 정도에요.

정취를 알고있다...라는 정도까진 아니죠"


"하더라도, 이 술은 달에 반주삼긴 기가막히는군"


술잔을 기울여 입 안으로 약간은 탁한 액체를 흘려넘기곤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는 첸드릭의 목젖이 천천히, 그리고 큼지막하게 두어번 울렁인다.

세월이 참 멋들어지게 새겨진 주름으로 장식된 그의 옆모습에 문득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그러고보니 아버지도 어머니 몰래 술을 가져다가 공터 한 구석에 앉아 달을 보고 술잔을 기울이곤 하셨었지.

몰래라곤 했지만 어머니께선 다 알고계셨던 듯 아버지가 살금살금 집을 비우시면 모르는 척 다른일에 몰두하곤 하셨었다.

그리곤 아버지께서 행여나 외로워하지나 않으실까 날 아버지 옆으로 보내셨었고.


어렸을 때야 술냄새가 워낙 싫기도 했고, 아버지께서 술을 드실땐 항상 늦은 밤이었던터라 몰려드는 졸음에 귀찮아할만도 했지만 항상 그럴때면 군말없이 아버지가 계신곳으로 다가가 그 옆에 앉아 조용히 아버지의 얼굴만 올려다보곤 했었다.


파아란 달빛에 잠겨든 아버지의 옆얼굴이 왠지모르게 멋있었고,

왠지 슬퍼보이는 그 모습에 나름의 위로를 건네고자 했었으니까.

어린 나는 누군가를 위로한단 방법에 익숙하지 못했던터라 그저 옆에 가만히 앉아 외로워하시지 않도록 해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지만...

어머니께서도 그것만 하면 된다고 날 집에서 내보내셨었던 기억이나네.


아버지와 첸드릭은 서로 어느하나 닮은구석이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첸드릭의 얼굴을 살포시 껴안은 달빛이 그 때의 달빛과 같아보여서, 그래서, 아버지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 것 뿐일거다.


"이건 직접 만든 술이오?"


"네.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만드시던걸 본 기억을 짜집기해서 따라만든거에요.

그 술과 같은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대가 꽤 어릴때 부친께서 작고하시지 않으셨나?"


"9년 전이니까요. 꽤 오래전이죠?"


"그때 그대는 술을 마실 수 없었을테니 어쩔 수 없겠구려.

하지만 이것도 충분히 훌륭한 술이라오.

이런 술을 직접 만들어 즐기신 분과 같이 술잔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게 참 안타까운 일이군..."


"...제가 대신이 되어드릴순 없겠지만,"


가만히 손에만 들고있던 술잔을 들어올려보인다.

여전히 달을 향한 고개에서 눈동자만을 향해 날 흘깃 바라본 첸드릭은 흡족한 미소를 띄우며 술잔을 마주 들어올렸다.


"이 술은 그대가 만든것.

그대에게 경의를 담아 내 쪽에서 먼저 건배를 청해야 하는것이온데, 혼자 앞서나가서 미안하구려"


탁, 나무로 만든 술잔이 부딪히며 안에 담긴 술에 잔잔한 파동이 일어난다.

그 일렁임에 술 표면에 비추던 반짝이는 달빛의 가루를 얹어낸 술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한모금.


"...이만한 독주를 참 시원하게 드시는군요"


"맛있지않소.

내가 지금껏 마셔온 술 중에서도 세손가락에 들 정도이니, 마실 수 있을 때 많이 마셔둬야지"


"양이 많지는 않아요"


"그렇소?

흠...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있는 술을 모두 마실수는 없겠소?"


"정말 염치없는 부탁을 하고계신거지만, 그정도야 기꺼이.

또 만들면되니까요"


"허허허, 고맙소"


입안을 맴도는 알싸하면서 달큰한 술의 향기를 숨을 몰아쉬며 내밷고 병을 들어 첸드릭의 빈 잔에 기울인다.

또르륵, 술이 흐르는 소리가 기분좋게 퍼져나간다.


"...지금부터는 좋은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한 노인이 늘어놓는 푸념이라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줄 수 있겠소?"


"그 푸념은 제가 꼭 들어야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무관하진 않소이다.

허나...재밌는 이야기는 아니니말이오"


"이 술과 어울리는 안주는 달, 그리고 약간 쓰다 싶을 정도로 쌉쌀한 맛이나는 과일이에요"


"...아주 좋군"


만족스레 고개를 주억인 첸드릭은 다시금 찰랑이는 술로 가득 찬 술잔을 입가에 털어넣곤 나지막한 한숨을 밤하늘에 올려보낸다.


"나는 기사가문에서 태어났소.

아버지는 물론, 가문을 일으킨 선조로부터 나까지 가문을 이어온 모두가 '기사'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 앞에 달고 살아오며 그 이름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를 당연한 가치로 여기던, 정말 뼛속까지 기사가문.

과거 크니쿨과 싸운 '6명의 기사들' 중 한명의 후손이기도 한 아기오스 가는 내가 살던 제국의 복검이자 자랑이었소.

그만큼, 주목받고 완벽해야만 했던 가문..


그리고 난 그런곳에서 태어난 장자이자, 선천적으로 한쪽팔의 힘이 매우 약하던 '기형아'였다오"


이야기를 듣다 깜짝 놀라 시선을 그의 팔로 가져간다.

둘 다, 근육으로 옷이 터져나갈 듯한 팔이다.

이런데...기형아로 태어났다고?


"가문을 이을 장자가 한쪽팔은 포크하나 제대로 못드는 기형아라니...가문으로선 이보다 큰 일이 없었을테지.

제도에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지 아버지께 둘째를 가져보라며 직접 다른 귀족가의 여성을 보내왔을 정도였으니.

허나, 정작 아버지께선 그 모든 걱정과 우려, 그리고 회유를 단칼에 잘라버리셨다오.

'아기오스 가의 장자는 첸드릭 아기오스 단 한명이며, 이 아이 이외엔 그 누구도 아기오스 가를 이을 수 없다'라는 말과 함께 말이오"


머리카락의 색을 닮아 회색으로 빛나는 첸드릭의 눈동자가 밤하늘에 무언가를 그려내듯 이리저리 움직인다.


"어렸던 나는 내 등에 손을 올려둔 채 그리 담담히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고...부담되었는지 모르오.

내게 검술을 가르쳐주던 우리 가문의 기사는 한손으로 겨우 검을 휘두르는 내 모습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고, 제국의 다른 귀족들은 나를 '저능아'라며 손가락질 하기 일쑤였으니 말이오.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만 젖어 어린시절을 보내왔소.

그런 나에게 가문을 잇게한다니, 한때는 아버지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기도 했었지"


쿡쿡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는 첸드릭의 잔에 다시 술을 따라낸다.

지난날을 떠올리며 그가 내뱉는 묵직한 웃음소리와 술이 흐르는 소리가 섞여 묘한 하모니를 이루어 귓가를 간지럽힌다.

이것은, 술이 연주하고 첸드릭이 부르는 과거의 노래.

'첸드릭 아기오스'라는 역사에 남을 정도로 대단한 기사의 '인간'으로서의 이야기.


"헌데 그런생각도 들더군, 평소 철두철미한데다가 본인의 철학만을 고집하시던 분이 왜 나에게 가문을 잇게한다고 하신걸까.

기사로서의 모든 소양을 중요시하는 아버지께서, 검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나를 왜 믿으시려는 걸까.

내게 무언가가 있다고, 나는 모르는 것을 아버지께선 찾으신 게 아닐까.

참으로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지만 그 당시의 나는 이런 이유라도 억지로 가지고있지 않았다면 금방 무너져내릴것만 같았다오.

매일같이 들리지도 않는 검을 겨우 들어올리고 한번, 그리고 또 한번 휘두를 때 마다 이를 악물고 버틸 수 있었던건 그런 아버지의 도저히 알 수 없는 의중 덕분이었다는게 무척이나 역설적이오만..

그래도 그 가느다란 희망과 의지, 그리고 부담이 잔뜩 섞인 책임감을 엮어낸 채찍이 있었던 탓에 나는 내 선천적인 기형을 이겨낼 수 있었소"


살며시 들어올리는 오른팔을 바라보는 첸드릭의 눈동자에는 과거를 향한 수많은 감정이 어려있었다.

그리움, 고마움, 그 당시의 괴로웠던 기억을 회상하는지 살짝 찌푸린 눈살엔 고통 또한 어려있었으며 그 중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건 바로 '자랑스러움' 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정식으로 기사가 되기 위해 기사학교에 입학하던 날, 아버지께서 내 오른손을 그러쥐며 해주신 말이 있소"


천천히 들어올려지던 오른팔, 그리고 그 끝의 오른손이 활짝 펴진 채 밤하늘을 향한다.

거칠고 투박한 손가락 사이사이를 새어들어오는 달빛이 눈 부시다는 듯 눈꺼풀을 가늘게 뜬 첸드릭은, 나지막히 입을 연다.


"너의 이 오른팔의 부족함을 메우기위해서 네가 쌓아온 노력, 그 고통의 시간, 긴 시간 너와 함께했던 의지를 기사로서의 명예로 여기면서 살거라"


톡, 어디선가 불어온 가느다란 바람을 타고 날아온 나뭇잎 하나가 첸드릭의 술잔 안에 내려앉는다.


"내가 네게 했던만큼 무언가를 믿는 신념을 너 또한 품고 있었으면 좋겠구나, 라고.

당시에 한창 혈기왕성하던 나는 그게 단지 옛시대를 구가하며 살아오신 나이 든 노기사의 늙어빠진 철학일뿐이라 생각했지만..기사 학교에 입학한 후 견습기사로서 백성들의 옆에 선 나는 곧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소.


아버지께선, 내게 진정 기사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어하셨던 것이오. 나의 평생을, 자신의 평생을 들여서"


방금 전 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그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세가 줄어들어 그저 세월의 풍파에 이리저리 깎여나간 노기사의 모습으로 앉아있던 첸드릭이 어딘가 젊어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리며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 잔뜩 파여있는 주름이 무색하게도.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르던, 기사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있던 자식을 끝까지 믿어주며 당신은 내게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불어넣어 주셨소.

그게 기사의 명예라며, 나 또한 한명의 어엿한 기사가 될 수 있다며...

백성들의 곁에서 그들을 위해 쓰이며 난 그 의미를 조금씩 내 안에 녹여나갔다오.


그렇게 당시 내부적으로 혼탁했던 제국에서 난 오로지 백성들만을 위해 싸워왔다오.

나처럼 불완전했던, 누군가의 믿음과 신뢰가 필요한 항상 고통받아오던 백성들을 위해서"


술잔 안의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던 나뭇잎에 개의치 않고 첸드릭은 술잔을 들어 한모금 입 안에 머금는다.

천천히, 입 안에서 그 맛을 느끼려는 듯.

서서히, 과거의 기억에도 그 맛을 녹여내려는 듯.

한모금, 그리고 또 한모금.


"...아버지를 닮아 외곬수 였던 나는 오직 그것만을 바라보며 살았소.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날 떠받들기 시작하더군.

나의 아버지가 제국에서 걸어왔던 길을 내가 똑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걸 그 때 알았고, 난 그걸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오.

노쇠해지신 아버지께서 병상에 누워 '기사가 다 되었구나'라는 말씀과 함께 내 손을 굳게 잡아주셨을 때 나는 더욱 확신했소이다.

내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으며, 내가 앞으로도 걸어가야 할 길은 이 길이구나 라는걸.


허나 모난 돌은 정에 맞는 법.

어느날 갑작스레 기사학교에 들이친 황실근위기사단의 기사들에게 포박당해 무릎꿇혀진 내 앞에 내밀어진건, 내게 '반역'의 혐의가 있다는 체포서였소"


첸드릭 아기오스라는 기사는 '반역죄'를 저질러 이곳까지 긴 망명길을 거쳐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접하면서 늘 궁금했었다.

전에 있던 제국에서 그리도 촉망받았다던 기사가 어째서 반역을 저지른걸까?

그것도, 혼자서?


"누명, 이었던 건가요"


"난 황성을 향해 단 한번도 검을 들어본적이 없었소이다.

황제폐하에게 검 끝을 향한다는 상상조차 한적이 없었지.

그게 내가 아버지께 배운 기사로서의 명예이며, 장차 내가 충성을 맹세해야할 주군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마음가짐 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난 그게 무언가의 착오인줄로만 알았소.

그럴리 없다고, 한사코 고개를 저었지.

내가 반역을 저질렀다고 고발한 자들의 이름을 듣기 전까지"


달디 단 술을 음미하는 듯 했던 첸드릭의 얼굴에 주름이 더욱 깊어진다.

그 속에 숨어있는 그때의 비통함을 감추려는 듯.


"동기였소. 기사학교에서 함께 백성들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자 손을 마주잡았던 동료들.

전투가 일어나면 언제나 등을 맞대고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나에게 반역죄를 뒤집어 씌웠던 것이오.

그 당시 젊었던 나는 그게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소이다.

어째서 그들이 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있을 그들이 왜 나에게 이토록 허무맹랑한 누명을 씌우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어떤것도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그저 멍하니 황실 근위기사단에게 끌려가 감옥에 가둬졌소"


그리고 첸드릭의 시선은 젊었을 적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의 길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빛나던 하늘에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땅 속 구렁텅이의 끝으로 추락한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소"


"....."


끝내 감추려했던 비통함이 그의 깊은 주름속에서 기어나와 얼굴 전체를 뒤덮어간다.

달빛은 비추고 있으련만, 그의 얼굴은 한없는 어두움에 잠겨 표정마저 보이지 않는듯했다.


"반역죄는 응당 사형에 처하는 것.

의심할 여지 없이 사형만이 기다리던 하루하루를 그저 차가운 돌 벽에 망연자실한 채 등을 기대 앉아 흘려보내던 나는 하나 둘씩 포기하기에 이르렀다오.

간수의 비웃음 섞인 조롱에 손 끝의 힘이 빠져나가고,

발치를 지나가는 커다란 쥐의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귓속으로 파고들며 두 눈의 빛을 앗아가고,

무거이 나 자신을 억압하던 발목의 사슬은 내게서 자유를 빼앗아가고,

햇빛과 달빛이 교차하며 새어들어오는 자그마한 구멍 너머 보이는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잃어갔소.

아버지께서 그리도 내게 당부하셨던, 아버지의 평생을 들여 내게 불어넣어 주셨던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그곳에서 그렇게 사그라트리고 있었다오.

내 자신의 명예를 이루던 기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만이 기다리는 시간.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게 어떤 절망일지 알아버린 사람은 나약해져만간다.

제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자신을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신화 속의 신이나 되어야, 굳건히 버틸 수 있을까.


그와 같은 경험은 아니지만, 이 숲 속의 외딴 통나무 집 안에서 바깥을 포위한 야생동물들, 강도 무리들에게 수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아왔던 나는 곧 닥쳐올 절망에 사람이 어떤 기분이 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빈 잔을 억지로 내려 술을 따른다.

그가 더 이상 술 잔속에 비친 과거의 어두운 구렁텅이 속으로 빠지지 않도록, 그곳에 달빛을 한 가득.


"..고맙소"


"별말씀을.

아직 술은 많이 남았어요.

괜찮으시다면, 뒷 이야기를 더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


언뜻 그의 입가에 비춘 미약한 미소에 안도하며 술잔 속의 나뭇잎까지 한번에 입 속으로 털어넣는 첸드릭과 함께 나 또한 술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소.

하루하루 햇빛이 축축한 돌바닥의 한 점을 비추는 걸 그저 황망히 바라보고만 있었지 그걸 세볼 여력조차 없었으니 말이오.

그렇게 포기를 거듭하다 내 자신마저 포기하려던 어느 날,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지는 철창 너머에 돌아가지 않던 고개를 들어 시선을 향했다오.

무의식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그 미약하던 의식 한 가운데에서도 궁금했으니까.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건...분명 병상에 누워계셨어야 할 아버지의 피묻은 얼굴이었소"


"피묻은 얼굴..?"


"한번도 뵌적없는, 말 그대로 분노에 가득 찬 악귀같은 모습이었지.

처음 그 얼굴을 뵙자마자 든 그 생각에 소름이 돋아난 나에게 아버지는 추상같이 호통을 치셨소.

'어째서 그런 꼴사나운 모습으로 늘어져있느냐!'라시더군"


입가를 살며시 벌리며 흘러나온 쿡쿡거리는 웃음에 동조하듯 주변을 휘감은 바람이 수풀들을 쏴아 울려낸다.

그 얼굴을 상상한 탓인지 서늘함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간다.


"덜덜 떨리는 입으로 겨우 주워삼키는 그 어떤 변명도 그 때의 아버지껜 통하지 않았소.

하긴 평생동안 아버지께 변명이 통했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그런 과거의 기억따윈 기억도 나지 않은 채 제 변명만 계속 늘어놓던 나에게 아버지는 단숨에 철창을 베어넘겨 안으로 뛰쳐 들어오시곤 내 멱살을 들어올리며 뺨을 올려붙이셨다오.

눈 앞에 번쩍이는 것이 지나가곤 희미했던 시야가 개어 다시금 눈동자 속에 들어온 것은 또다시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아버지의 얼굴이었지.


울고계셨소. 하염없이.

그 두눈에 어찌 그리 많은 물이 담겨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을 가득 적신 핏물을 씻어내는 그 눈물이 어찌나 맑아보였는지...

포기하지 말라며, 네 길을 이렇게 내 던지지 말라며 발목에 잠겨있던 사슬을 끊어낸 아버지에게 끌리듯 감옥을 나선 나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차 안에 던져졌소.

그리고 부서져라 문을 닫은 아버지는 마차의 창문 너머로 내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시고 뒤따라 오던 감옥의 간수들과 경비병들을 향해 달려가셨지.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오"


"본인이 남아 첸드릭 경을 살리시려던 것이었나요?"


"아니"


"그럼...?"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이것이었다오.

'넌 이 소더니움 제국에서 죽었다! 첸드릭 아기오스라는 자는 죽어 없어졌으니, 남은 껍데기인 너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살거라!'

말하자면, 본인이 남아 나를 마저 죽이시려던 것이었지.

제국 역사에 남을 만큼 유구한 명성을 가진 가문의 구성원에서 떨어져나온 내가 반역죄를 저질렀다면 나와 관련된 가족들과 관계자는 그 죄질을 따져 가벼운 형벌만으로 보신할 수 있겠지만, 가문의 가주가 반역을 저질렀다면 그 가문 자체가 사라지게 될테니까.

제 아무리 대단한 역사를 지닌 가문이라 하더라도"


휘이잉, 보다 더 강한 바람이 불어와 첸드릭의 회색 머리카락을 잔뜩 흐트러놓는다.

그 너풀거리는 머리카락 아래에서 다시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동자 깊은 곳에는, 절대 넘쳐흐르진 않을지언정 한가득 고여있는 호수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날, 나도 인생에서 처음 눈물을 흘렸소.

과거 수많은 좌절과 절망에도 절대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그 끝을 모를정도로 한없이.

대체 몸 어디서 그만큼 눈물이 나오는 지 모를만큼...

그렇게 덜컹이는 마차에 몸을 싣고 한동안 눈물로 지새우던 나는 곧 멈춰선 마차 안에서 마부에 의해 바깥으로 옮겨졌다오.

날 감옥에서 빼내는 사이에 아버지께서 준비해두셨는지, 어딘지모를 산속 자그마한 오두막 안에 눕혀진 나에게 마부는 곧 추적이 닿을테니 어느정도 몸이 회복된다면 속히 도망가라는 말만을 남겨두고 사라졌소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틀 쯤을 보낸 나는 그대도 익히 알 듯 도픠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


"...'마르지 않는 피의 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만 들겠노라 맹세했던 검을 그토록 쉴 새 없이 휘둘러 수많은 자들을 베어넘긴 것은 지극히 불명예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아버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오.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살라,는 말씀을 어길수는 없었지.

내 명예는 버렸더라도 아버지의 명예만큼은 버릴 수 없었거든.

물론 그런 험로를 걸어오며 내가 걷는 길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피해를 받게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죄스러웠기에 그 도주행의 가운데 우연히 마주했던 크니쿨의 잔재가 끼치는 영향을 스카치에라와 함께 여러번 해결하기도 했다오.

내가 크니쿨의 잔재에 대해 알고있는 이유이지.


그리고 그 끝에 닿은곳이 바로 이곳, 이트비아 왕국이라오"


피로 찍어진 발걸음이 멈춘 험한 산지의 나라.

여러 국가에서 떨어져나온 귀족들과 백성들이 모여 세운 그 자그마한 왕국은 외부에서 들어온 자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라이고, 그렇게 이루어 가야할 나라이니까.

비록 지금은 국가로서 틀이 잡힌 이상 더는 타국의 난민들, 도망자들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분명 뿌리는 그와 같은 곳에서 부터 뻗어나가있었다.


"죽지 못해 이곳까지 왔으나, 당시 국왕폐하이신 길리엄 1세께선 내게 다시 한번 시작해보는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건네주셨다오.

기사로서 태어나 기사로서 살아온 나에게 기사의 이름을 버리는 건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었기에, 그 제안을 뿌리치기는 힘들었소.

게다가 당시 이트비아 왕국은 대륙에서도 존재를 아는자보다 모르는 자가 더 많던 숨겨진 왕국.

죽은 것처럼 숨어있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었지.

또한 소더니움 제국에서 도망쳐온 백성들도 다수 있었기에 내가 다시 기사로서의 명예를 다시금 추구하기엔 이만한 곳이 없었소.


내밀어진 길리엄 1세 폐하의 손을 마주잡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

그렇게 나는 모비든 백작령에서 나에 대한 대륙 내의 관심이 사그라질때까지 숨어있었고, 그 이후 전대 글렌로우드 공작각하께 기사서훈을 받고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일원이 되었다오"


그리고 노인의 푸념은 막이 내린다.


"...푸념이라기엔 너무나도 슬픈 일대기이군요"


"그렇소? 과거의 일이라 나름 담담해져있다고 생각하오만..."


"첸드릭 경이 이야기를 하는 와중 계속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저는 옆에서 다 보아왔는데도요?"


"...허허..

술이나 한잔 더 따라주겠소?"


머쓱한 듯 입꼬리를 올리는 첸드릭의 손 안에 들린 술잔에 남은 술을 모두 따라낸다.

딱 알맞게 가득 채워진 술잔을 내려다보는 그의 옆모습에 문득 든 의문을 던져본다.


"그런데...첸드릭 경의 아버님께서 분명 다른이름으로 살라는 말씀을 남기셨잖아요?

그럼 첸드릭 경의 지금 이름은 전의 이름과는 다른가요?"


"아니오. 똑같소이다.

그리고 이건 진정한 내 푸념이오.

내가 이름을 바꾸지 않은 이유, 아버님의 말씀과는 달리 '아기오스'라는 성을 그대로 쓰고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아버지의 명예, 그리고 나의 명예. 위대했던 기사의 명예와 그의 뒤를 조금이라도 쫓아가려던 나의 명예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오.


그대가 물었지. 내가 모비든 백작령에서 피향민들을 잡아들이지 않았냐고.

나는 단한순간도 백성들에게 검을 겨누고자 했던 적이 없소.

그건 '명예'에 반하는 일이며, 아버지께서 내게 전해주신 '약자에 대한 신뢰와 믿음'에 대해 반하는 것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나 또한 제국을 버리고 이트비아 왕국에 망명한 피향민.

어찌하여 내가 그들을 억압할 수 있겠소.

나는 그럴 자격도 없거니와 그럴 생각도 없었소.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이지만..."


어젯밤 그 이야기를 털어놓던 첸드릭은 후회와 괴로움, 그리고 안타까움으로 한껏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있었다.

기사로서의 명예를 중시하던, 그렇기에 자신에게 덧 씌워진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었던...수도없이 난도질 당한 넝마같은 몸과 마음을 이끌고 이트비아 왕국에 닿은 젊은 첸드릭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지은 명예에 반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가 이 술을 반주삼아 털어놓은 이야기대로라면..


"그렇다면, 지금 하신 이야기가 저완 무관하지 않다던게..."


"..나도 나이가 들다보니 누군가가 날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문득 생기기도 하니 말이오.

더군다나 이토록 좋은 술과 좋은 달을 마주하고 있으니 더욱 더 그렇더군.

그리고 그대는 로번 영지관리관과 무관한 관계가 아니니, 내 나름의 변명이라고 생각해 주시겠소?"


그런것이었구나.

푸념이라던 건 사실이었어.

그는, 자신이 그런 허무맹랑한 오해를 받는것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은거다.

그의 과거는 그런 허무맹랑한 오해와 모략에 어지럽혀졌으니...

하지만,


"그 이야기...부디 로번 조합장님께 직접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내가, 말이오?"


"조합장님도 사실을 아셔야죠.

그리고 첸드릭 경 또한 그리하고 싶으신 건 아닌가요?"


"어찌하여 그런 생각을 한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제게 첸드릭 경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진 않으셨겠죠.

첸드릭 경이 말했잖아요. 제가 조합장님과 무관하지 않으니, 제게 변명을 하신거라고.

그건 조합장님과도 이야기를 나누실 용의가 있으신것 아닌가요?

그 용기를 다지기 위해 저를 두고 예행연습을 하신건 아닌가요?"


"..그대, 괜찮다면 기사단에 들어올 생각은 없소?"


"귀찮아보여서 싫어요"


"매몰차군"


사실인걸.

게다가 들어가면 저기 저 바닥에 드러누워서 동기가 잡아당기는데도 미동조차 없이 농땡이 피우는 인간이 윗사람이 되는 거잖아.

정중히, 아니 격렬히 사양입니다!


"눈치가 좋달까...아니면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는게 능숙하달까.

그대는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군"


"사람의 속내를 잘 들여다보는 건 아니에요. 저도 마을이나 학교에서 꽤나 둔하단 말을 자주 듣거든요.

그저 가끔가다 '이렇지 않을까?'란 감이 오는것 뿐이에요. 그리고 그땐 그게 잘 맞는거구요.

어렸을 때 부터 야생동물들이랑 눈싸움한 적이 하도 많아서 그런가보네요"


"우리 기사단의 기사들도 야생동물들 한가운데에 던져넣어야겠군"


"....말리면 그만두실건가요?"


"농담일세.

단 한명에게만은 농담이 아니지만"


첸드릭의 시선은 방금 전 내가 보았던 곳을 되짚어간다.

봤구나.

죽었구나.

저인간.


"후우...아무튼, 내일이라도 조합장님과 술 한잔 기울여보세요"


"그게 가능하겠소? 로번 영지관리관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철천지원수이네만?"


"그걸 가능하게 할 정도의 영향력은 있어요"


첨언이지만, 데릭 아저씨만이 아니라 조합장님도 굉장한 애주가시다.


"이 술을 지금 모두 마시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하죠"


"그런거군.

그렇다면...마지막으로 한병만 더 마실 수 없겠소?"


"한병정도라면...그러죠.

대신 들어가서 마시는건 어떠신가요? 바깥이 꽤나 으슬으슬한데..."


"그러고보니 오늘은 밤공기가 매우 차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공터를 메운 밤의 공기가 계절을 착각한듯 차갑게 감돌고 있었다.

밤까지 더울 시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토록 추울 시기 또한 아니다.

너무 오래 바깥에 있던 탓일까?


"그럼 실례해도 되겠소?"


"그럼요"


자리를 털고 일어선 첸드릭과 나란히 집으로 향한다.

어느샌가 옅게 내려앉은 희뿌연 안개 너머 수많은 횃불들이 둘러 싼 공터 한가운데 그림자처럼 비치는 집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고보니 안주로 낼만한게 있었나?

건과일을 미리 만들어두긴 했는데...


머리속으로 첸드릭에게 술과 함께 낼 안주에 대해 생각하던 그 때.


[---!!!!!!!!!!!!]


""?!!!?!""


고막을 강하게 때려오는 무언가의 굉음에, 무심코 시선을 향한다.


작가의말

아 또 시끄럽게 누구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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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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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5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89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7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5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09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6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5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2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5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4 0 23쪽
»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2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9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3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8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5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8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2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8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0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7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8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2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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