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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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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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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52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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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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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DUMMY

마을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으, 으아아악!!"


"살려, 살려줘!"


"여기!! 여기 누가 좀 도와줘요!!!"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도움을 요청하는 날카로운 고함, 그리고 타닥이는 소리를 내며 새빨간 악마의 얼굴을 이곳저곳에 드러내는 화마까지.


고요한 달빛이 만연하던 조용한 탄트라 마을의 한밤중은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뒤덮은 지옥에 끔찍한 신음소리를 목놓아 부르짖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피, 필..! 우리 집에 돌아가야하지 않을까?"


"너나 가 도브릭!"


바들바들 떨며 뒤따라오는 키가 작은 남자아이의 겁먹은 소리에 당치도 않다는 듯 일별한 붉은 머리카락의 소년은 바로 앞에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에게 달려간다.


"괜찮으세요?!"


"으..으윽...누, 누구...?"


"저 필이에요 코니 아저씨!"


"아...필..."


다리 한쪽이 불타고있는 잔해에 깔려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트린 중년의 남성은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동자를 허공을 향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금방 꺼내드릴게요!"


그 처참한 모습에 이를 꽉 깨문 필은 여전히 뜨거운 불꽃이 일렁이는 잔해에 거침없이 손을 집어넣는다.


치이익!


"크, 크으윽..!"


머리속에서 무언가가 번쩍거린다.

불타고있는 나무를 맨손으로 잡는다는 생각보다도 훨씬 고통스러운 일에 맹렬한 고통이 온몸을 타고흐른다.

정말,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엄청난 고통이.


"으아아! 뜨거워어어!!!"


"피, 필?!"


불이 한껏 지펴진 화덕에 손을 집어넣어도 이것보단 덜 뜨겁지 않을까?

지금껏 아버지를 따라 수도없이 그와 같은 일을 해왔기에 가볍게 보았는데, 그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고통과 손바닥이 지글거리는 끔찍한 느낌에 몸서리가 쳐진다.


허나, 놓지 않는다.


"필! 너, 너 그러다 손이..!"


"닥쳐 도브릭! 이걸 드는 걸 도우지 않을거면 여기와서 코니 아저씨 좀 끌어내드려!"


손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은 우선 아저씨를 구해야 하잖아!


필의 외침에 겁에 질려있던 도브릭이 황급히 달려와 코니의 양 겨드랑이에 덜덜 떨리는 손을 집어넣곤 필사적으로 끌어낸다.


"뜨, 뜨거, 뜨거워 필!"


"나보다 뜨겁냐 이 멍청아!"


땀이 비오듯 쏟아지지만 그 뜨거운 열기에 도로 증발하는 것만 같다.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하지만 너무나도 길었던 시간이 코니가 완전히 잔해의 밑에서 나오는 것과 함께 끝이 난다.


털썩! 화르륵!


거칠게 내려놓은 잔해가 자신의 먹잇감을 앗아간것에 화가 났는지 으르렁거리듯 사방으로 불꽃을 퍼트려낸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아저씨?!"


급히 다가가 들여다본 코니는 이미 기절했는지 두 눈을 감고 신음소리만을 흘려내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십중팔구...


"도브릭! 빨리 업어!"


"뭐?! 코니 아저씨를 내가?! 나, 난 못업어!"


"왜!"


"나보다 크시잖아!"


"그렇네! 미안하다!"


코니는 필보다 살짝 큰정도.

필보다 머리 두개는 작은 도브릭이 업기엔 무리가 따르리란 사실을 그제서야 눈치챈다.


"그럼 어떡해야되냐?!"


"그, 그걸 나한테 물어도 모르지!"


패닉에 잠긴 두 소년은 서로에게 답 없는 질문만을 계속 던져낸다.

그 와중에도, 코니의 신음소리는 점차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 안되겠다! 도브릭 너 잠깐 여기서 코니 아저씨 좀 보고있어!"


"어?! 야, 야! 너 어디가?!"


업고 갈 수 없다면, 업을 사람을 찾으면 되지!


자신이 업으면 될거란 생각은 하지못한 채 필은 빠르게 몸을 돌려 도움을 요청할 누군가를 찾아 뛰어간다.


손에서 느껴지는 지글거리는 느낌은 무시한 채 그렇게 하염없이 달리길 잠깐,


"어, 저, 저기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는 두명의 기사를 발견한 필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것처럼 온 힘을 다해 달려가 그들 중 한명의 옷깃을 부여잡는다.


"으악! 깜짝이야! 무, 무슨일입니까?!"


"저기, 저기 사람이 한명 있는데요!"


"사람은 여기도 있습니다만?!"


"아니, 그게 아니고!

저기 사람이 한명 쓰러져 있어요!"


필의 다급한 표정과 정리되지 않는 거친 그 말에 서로를 바라본 기사들은 필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다행히도 멀리 떨어지지 않아 멈춰선 이곳에서도 보이는 도브릭과 코니의 모습을 본 그들은 이내 굳은 표정으로 필이 가리킨 곳을 향해 달려간다.


"후으...다행이다"


금방, 그것도 '기사'라는 사람들을 찾게되서 다행이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마을에 찾아온 저 사람들은 누군가를 도우는데에 열심이니까.

아무튼 저들이 갔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코니 아저씨의 의식이 흐려진 끝에 기절한건 걱정이지만, 괜찮을거야.


괜찮지 않으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며 안도한 필은 한숨을 쉬며 그제서야 엉망진창으로 검게 그슬린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본다.


"...아파"


당연하게도, 두 손은 곳곳이 검게 그슬려 피부 아래의 빨간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끈거리는 격통이 순식간에 몰려오는 느낌에 눈 앞이 핑 도는것만 같다.


"으으...집에, 집에 가면 약초가 있을까..?"


화상은 달고 사는 직업적 특성상 아버지는 항상 화상에 좋은 약초를 집 안에 두고계셨었다.

이만한 화상은 당해본적도, 본적도 없는지라 그 약초가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도브릭의 집에서 시시덕 거리던 와중에 굉음을 듣고 급히 뛰쳐나와 아수라장 속에서 사람들을 도우던 것도 이젠 한계에 부딪힌것같다.


아버지가, 이 손을 보면 뭐라고 하시려나...


몸을 돌려 익숙하지만 크게 달라진 길에서 집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할지 두리번거리던 그 때,


[--!----!]


어디선가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주변이 이미 수많은 비명소리와 고함소리, 그리고 타오르는 불꽃이 내는 소리들로 가득 찬 한가운데에서도 그 비명소리가 확연히 귀에 들려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모르게 발걸음이 이끌리는 그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


우지끈 소리를 내며 당장 지나쳐온 자그마한 건물이 타오르던 끝에 무너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튀어져 날아오는 잔해를 피하기 위해 다급히 들어선, 아직은 멀쩡한 건물과 건물 사이 자그마한 샛길 안.


어두운 한밤중의 마을 곳곳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오직 달빛만이 비추는 그 안에서 필은 어슴푸레한 두개의 그림자를 두 눈에 담는다.


하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또 하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는.


아니, 둘이 아니다.

하나의 그림자가 더 바닥에 쓰러져 있는것이 어둠에 익숙해진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으니 그곳엔 세개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 둘은 필도 익히 아는 사람들의 그림자였다.


"....도린?"


"꺄아아악!!!"


완벽히 어둠에 적응한 눈동자 속으로 샛길 안의 광경이 여실히 드러난다.

피웅덩이 안에 얼굴을 쳐박곤 쓰러져 미동조차 없는 테디.

땅에 주저앉은 채 여기저기 찢어지고 헝클어진 옷가지를 필사적으로 그러쥐며 온갖것들로 더러워진 얼굴을 눈물로 씻어내는, 도린.


"?! 도린!!"


은근한 연정을 품고있던 귀여운 소녀.

허나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던 그 소녀는 눈 앞에서 새된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서 그녀의 사랑스러운 시선을 받고 있었어야할 그녀의 남자는, 죽은 듯 그저 바닥에 쓰러져만있다.


상황이 어떻건간에,

대체 저 사람이 누구길래 도린에게 다가가는지 간에,

그가 손에 들고있는 것이 달빛에 번뜩이며 날카로운 예기를 사방에 흩뿌리던지 말던지,

필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여 화상의 고통에 손가락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두 손을 그 그림자의 뒤통수를 향해 내 뻗는다.


"?!"


슈악, 퍽!


"?! 꺄, 꺄아아아?!

피, 필?!!!"


그곳에는, 무거이 내려앉은 어둠과 달빛을 찢어내는 소녀의 비명소리만이 남는다.





"빨리! 우물에서 물을 떠와요!"


쉴새없이 우물에서 물을 퍼나르는 사람들을 더 재촉해도 이 이상 작업이 빨라질일은 없겠지만, 한없이 초조한 마음에 루디는 본인도 온몸을 흠뻑 적시며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을 계속 재촉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아직도 루디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인 데릭과 잠자리에 들려던 순간 집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귓가를 강하게 울리는 굉음에 놀라 뛰쳐나온 그 순간부터 마을은 이미 곳곳이 불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한 화재? 바로 떠오른 그 생각과 동시에 루디는 고개를 저으며 그럴리 없다고 강하게 부정했었다.


오늘 저녁에 있던 축제의 큰 행사, 마을 중앙광장에 높이 세워진 나무탑에 불을 붙이는 행사때문에 오늘 하루는 마을 이곳저곳 화재에 대한 대비가 완벽에 가까울정도로 세워져있었으니 이만한 큰 화재가 부주의로 일어났다는 건 너무나도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다.

일어났더라도, 곳곳에 놓인 소방물품들과 혹시몰라 밤새 마을 내부를 순찰하던 인원들로 인해 조기진화도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그 굉음과 연관지어보아 이건 폭발에 의한 화재인걸까?

어디서? 어떻게?

이만한 폭발이 일어날 물건이 마을 안에 있다는 건, 그리고 그것이 이리도 마을 곳곳에 퍼져있다는 건 도저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만한 폭발을 일으킬 물건이라면 당장 생각나는 건 화약인데...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비싸다는 화약이 이만큼이나 여러군데에서 동시에 폭발했다?


애초에 기껏 손 한가득의 화약으로도 이만한 폭발을 일으키기엔 불가능한데, 굉음과 함께 이정도의 화재를 일으키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화약과 그 화약을 사기위한 돈이 필요할까?

그런 짓을 대체 누가 왜 해야할 필요가 있단말야?


이해할 수 없다.

무슨일이 일어난건지 루디는 도저히 모른다.

그녀 주변의 모두 또한.

그들은 그저 무섭게 번져가는 불의 진행을 최대한 막는 것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것엔 눈치챌 수 없었던거다.


콰앙! 콰아앙!


"으아악?!"


"흐압?!"


"꺄악!"


"뭐, 뭐야?!!"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의 머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곤 순식간에 지근거리에 떨어진 무언가.

떨어질때 났던 소리로 보아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있을 그것은 그런 추측과는 다르게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모양새를 하고있었다.


쉴새없이 새까만 표면이 꿈틀거리는 그 모습은 마치 '그림자'가 뭉친 것 같았으니까.


"...? 뭐지 이게..?"


총 세개의 그 정체를 알수없는 것이 떨어진 곳으로부터 멀찍이 몸을 피한 마을 사람들을 등 뒤로 루디는 자경단원 셋과 함께 그것에 가까이 다가간다.


천천히 주의깊은 발걸음으로 다가가는 루디의 귓가에 사방에서 나무가 불에 타는 소리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다쳤는지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눈 앞에 나타난 이 정체모를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달려가봐야겠다,란 생각을 하며 일렁이는 커다란 덩어리들에 가까이 선 그 순간.


푸확!


"꺅?! 뭐, 뭐야?!"


토해져 나오듯 그것들 안에서 일제히 튀어나온 것들.

마치 알에서 부화하듯 주변에 새까만 무언가를 쏟아내며 땅에 내팽겨쳐지듯 덩어리 안에서 토해진 그것들은 너무나도 눈에 익은 모습을 하고있었다.


"야, 야생동물들?"


탄트라 마을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있을, 주변을 감싼 숲 속에 사는 야생동물들.

개중엔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맹수도 있는 반면 자그마한 토끼까지 중구난방으로 땅에 널브러져있는 그것들은 모두가 같은 '색'을 띄고있었다.

절대 그럴리가 없는 새까만 검은색으로.


"..모두들 물러서요. 지금보다 더"


그 형체는 눈에 익었지만 정체는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을 눈 앞에 둔 루디는 주변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을 훨씬 뒤로 물린다.

허리춤에 제각각의 무기를 차고 긴장한 얼굴로 루디 주변에 모인 자경단원들은 빼고.


"다들, 혹시 모르니 가지고 계신 무기들은 모두 꺼내주세요"


허리춤에 매달아놓은 채로는 무언가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하기 힘들다.

이것들이 대체 왜 여기 이런모습으로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묘할 정도로 이상한 상황은 즉 '매우 경계'해야할 상황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에 루디는 자신도 허리에 차고있던 매우 얇은 세검을 빼어들었다.


뒤에서 '송곳의 루디'라느니 '보이지 않는 검'이라느니 속삭이는 말소리가 들려오지만 의식적으로 무시하며 시선을 정면의 동물들에게 고정시킨다.


마을 사람들도 멀리 떨어져있고, 자경단원들도 무기를 손에 든 채 긴장과 경계심을 끌어올리는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고 여긴 그 때.


[키야아아악!!]


마치 죽은 듯 널브러져있던 동물들이 상식 밖의 움직임으로 일어나는 동시에 이쪽을 향해 덮쳐온다.


설마 그러리란 생각은 아무도 못했던 만큼, 모두의 반응은 크던 적던 늦은것이었다.


"으, 으아..."


콰직!


루디보다도 단 한발자국 앞에 서있던 광부의 아들인 이튼의 머리가 사라진다.


"어?"


빠각! 찌익!


그 모습을 미처 눈에 담기도 전에 그 바로 옆에 서있던 목수 쿠젠의 팔이 뜯겨져 나간다.


"?! 꺄.."


퍽!


뿜어져 나오는 그의 피를 순식간에 뒤집어 쓴 감자밭 농부인 아틸라의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그와 같은 모습이 여기저기서.

동시에, 반응 할 수 없을만큼 빠르게.


순식간에 여섯명이나 되는 자경단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 다들 빨리 뒤로 물러나요!"


마을 사람들도, 그리고 두번째 먹잇감을 찾아 달려드는 동물들..아니 이젠 괴물이라고 불러야 할 그것들을 마주한 자경단원들도.

너무나도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찰나의 정신을 빼앗겨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이 외침을 듣고 반응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금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도록 루디는 물러서라는 자신의 말과는 반대로 괴물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하앗!"


[끼롹!]


휘릭! 슉!


마치 휘파람 소리가 울려퍼지듯.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궤적마저 볼 수 없을만큼 빠른 검의 움직임이 바람소리만 남긴 채 선두에서 달려오던 곰의 형상을 한 괴물과 늑대의 형상을 한 괴물의 머리를 동시에 꿰뚫었다.


"흣! 후읏!"


끌어당긴 검을 오른쪽으로 한번.


슈아악!


[키야아롸라락!]


[끄륵..]


뛰어오른 다람쥐 같은 자그마한 괴물의 몸을 절반으로 가른 검이 그 옆에서 머리를 쭉 빼내며 달려들던 목이 긴 짐승의 머리를 베고 지나간다.


"읏..흐아!"


속도를 살려 원을 그리듯 왼쪽으로도 한번.


쑤아악!


[키,]


[롸아아,]


회전하는 속도가 붙어 더욱 빨라진 검의 궤적에 속절없이 제물이 된 원숭이 같은 두마리의 괴물들이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양분되며 땅에 나뒹군다.


물러나라는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다리를 들곤 다시 디디기도 전에, 자경단원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챈것과 동시에,


여섯의 자경단원들을 희생시켰던 괴물들이 순식간에 땅바닥에 나뒹구는 시체로 변해있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루디가 가느다란 세검을 타고 흐르는 검은 피를 바닥에 털어냄과 동시에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이제야 알게된 마을 사람들과 자경단원들은 일제히 입을 벌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껏해야 두 호흡이었나?

두번째의 호흡을 들이마시는 것과 동시에 덤벼들던 모든 괴물들을 처치한 그녀의 움직임을 제대로 두 눈에 담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움직임을 멈춘 그녀가 숨을 내 뱉은 것과 동시에 새까만 원숭이의 머리와 상반신이 땅에 떨어진 모습을 보았을 뿐.


그 대신, 그제서야 사람들은 처참히 바닥에 쓰러져있는 자경단원들의 시체를 오롯이 두 눈에 담아낸다.


"꺄, 꺄아아아악!!!"


"쿠젠?!!"


"아틸라가, 아틸라가아아아!!!"


"아, 아들아아?!!"


멀찍이 떨어져있던 마을 사람들의 무리 안에서 수명의 사람들이 그 주검들을 향해 뛰쳐나온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절친한 친구,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연인이었을 그들을 향해 또 다른 반쪽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일어난 참극에 목놓아 울부짖으며 이젠 더이상 숨소리를 내지않는 그들을 끌어안는다.


그 아무도 그들이 이렇게 허무히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말도 안되는 참변에,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그 이별에 사람들은 그저 제각각 끔찍한 상흔을 입고있는 소중한 이였던 망자들을 품에 안은 채 처절한 울부짖음만 외쳐낼 뿐이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서 가족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의 죽음에 모두가 충격과 슬픔에 빠져들었다.


루디 또한.


"..어째서..."


살을 가르고 뼈를 잘라낸 감촉이 살아있는 검을 여전히 쥐고있는 손은 눈앞의 이 광경이 현실이라 말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을 억지로 눈 앞에 가져다 놓듯 강렬히.


이런 모습은 과거에 많이 봐왔지만...

아무런 연관없던 사람들의 시체보다도, 그저 이익에 따라 마주하던 사람들의 시체보다도 평소에 얼굴을 마주하며 한 마을의 구성원으로 친밀히 돕고 살아오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싸늘한 주검이 된다는 건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군다나 저들은 마을의 자경단원으로서 자주 보아왔던 특히나 더 친밀한 사람들.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온 몸에 그 절망감이 끝도없이 밀려들어온다.

검을 쥐고있던 손이 무거워지며 두 다리에 힘이 풀려나간다.

불에 타는 소리, 어디선가에서 계속 터져나오는 비명소리, 그리고 수명의 사람들이 내는 처절한 울음소리까지 더해진 이곳은 마치...


'지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였다.


[크롸아아!!]


[끼야악!]


[캬갹, 캭!]


그리고 지옥은 그 입꼬리를 흉흉히 끌어올리며 비웃듯 모두에게 고하는 것이었다.


이게 끝인 줄 아냐며.


"?! 아, 안돼!!!"


무방비하게 주검들을 끌어안은 채 울부짖고있던 마을 사람들의 뒤에서, 다시금 덩어리 안에서 내뱉어진 방금 전보다도 많은 괴물들이 덮쳐온다.


부조리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옥의 강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기사'란 누군가를 지키기위해 자신의 목숨은 초개처럼 내던질 명예와 자긍심, 그리고 고결함에 가득찬 인물로 연상된다.


신화 속에 나오는 기사, 그리고 과거 크니쿨이 대륙을 침공하던 시절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그 악마들에게 단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들의 목숨으로 크니쿨의 전진을 조금씩이나마 늦춰오던 역사라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기사들이 그래왔듯.


허나 현재의 대륙에 그만한 긍지를 지닌 기사들이 얼마나될까.


기사들이 칼을 빼들 장소가 현저히 줄어든, 그들의 활약이 하얀 종이 위에 남을 여지를 다른 존재들에게로 넘긴 지금은 기사들이란 그저 소속된 가문을 지키는 경비병에 불과했다.


기껏 일어나는 국가간 분쟁도 그저 자그마한 국지전에 한할 뿐이고, 큰 분쟁에 대해선 탁자를 둘러싼 회의로 일의 경중, 가부를 결정하는 요즘엔 솔직히 기사라는 이름의 뼛속까지 무골들이 더이상 서있을 자리가 없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크게 들기 시작할 만큼 '기사'의 필요성은 점차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사'로서의 내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막아! 단 한마리도 이 뒤로 들여보내지 마라!"


어렸을 적 집의 커다란 정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액자 속 당당한 풍채와 표정의 갑옷을 입은 노인을 바라보며 저 그림의 인물처럼 되는게 꿈이었으니까.


자랑스레 액자 속의 노인을 자신과 나의 자랑스런 선조라며, 역사 속에서도 빛나는 이름 한줄을 남기신 위대하신 분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매번 같은 이야기를 수도없이 들으면서 나는 그 과거의 대지를 달려나가던 선조의 뒤를 조금씩, 조금씩 따라 나서기 시작했다.


단순히 강한 무력을 지닌 것 뿐만이 아닌 몸가짐과 사람을 대하는 예의, 심지어 숨을 쉬는 것까지 완벽한 '기사'이자 '귀족'이었다던 선조의 행적을 하나, 하나.


나이가 들고 정식으로 기사 서훈을 받아 글렌로우드 기사단에 착임한 이후에도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말 위에 올라타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곧게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이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흘러가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과는 달리, 나는 언제고 '뼛속까지 기사'로서 존재하려 해왔다.


그런 내 행동과 생각이 주변의 동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으아아!!!"


"뒤로 물러서! 그쪽은 내가 대신 막을테니 넌 오른쪽으로 이동해!"


"우드맨 일등기사님! 여기 제 여분의 검을 쓰십시오!"


"으랏차아! 어이 고맙다!"


눈 앞에서 수도없이 몰려드는 가지각색의 새까만 동물들,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정체모를 거대한 그림자에서 내뱉어진 그 괴물들의 공격에도 방어선을 구축한 글렌로우드의 동료들은 단 한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며 자리를 사수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리를 벗어나는 건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방어선에 생긴 구멍을 메울 때 뿐.


한발자국 뒤에 서선 손에 들린 활의 시위를 쉴새없이 당기며 방어선의 전체적인 지휘를 맡고있는 비슈트는 그들에게서 자신이 그리도 닮고자했던 선조의 모습을 보았다.


모두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걸 쏟아내고 있었다.


"후욱!"


쐐애액! 퍽!


[끼롸악!]


높게 뛰어올라 자신의 앞에 선 괴물, 그리고 기사들까지 한번에 뛰어넘어오려던 다리가 긴 괴물의 정수리를 화살로 꿰뚫으며 비슈트는 마을의 울타리를 따라 시선을 달린다.


마을 이곳저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며 순찰을 돌던 기사들이 뛰어와 보고하기 무섭게 마을 주변 숲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그림자들.

순식간에 마을을 포위한 그 그림자들은 수를 불려가며 마을 울타리를 따라 늘어서기 시작했고, 마을 내부의 화재는 자경단원들에게 맡긴 비슈트는 휘하의 기사들을 모두 이끌고 마을 울타리를 따라 방어선을 구축했다.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두고볼수는 없지 않은가.


완전무장을 끝낸 기사들이 마을을 둘러싼 그림자들 앞에서 마을을 지키듯 등진 후에도 그림자들은 미동도 없이 그저 일렁이는 존재감만을 사방에 흩뿌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쉴새없이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고함소리에도 고개를 돌려 마을의 상황을 확인 할 수도 없는, 등줄기를 땀으로 축축히 젖혀내던 시간.


계속 늘어나던 와중에 갑작스레 터져나가며 그 잔해들을 마을에 쏟아내는 그림자들에 대해 신속히 반응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덕택에, 지금까지 단 한마리의 괴물들도 방어선 뒤로 흘려보내지 않고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기사로서의 소임을 훌륭히 이행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비슈트 수석기사님! 우측 데니스 상등기사가 맡고있는 구역에서 이상이 감지되었습니다!"


그들의 분전과 성과에 멋들어진 콧수염을 의기양양히 쓰다듬은 비슈트에게 갑작스러운 전장 상황의 보고가 전해진 건 그때였다.


다급한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우측으로 옮긴 비슈트 수석기사의 눈동자에, 명백한 '이상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 저, 저건 대체 무엇인가?!"


"파악 중에 있습니다만, 현재 몰려드는 괴물들을 막아내느라...!"


괴물들의 공세가 조금은 무뎌진다면 저것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아니, 단언코, 아니다.


저건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데니스 상등기사의 보고로는 처음 그림자들이 터져나가며 내뱉어진 괴물들이 중간에 한두마리씩 다시 합쳐진 뒤에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알과 같다,라는 데니스 상등기사의 견해입니다!"


알?

저것이, 알?


아니, 여기서 보기엔..


"저런 알이 대체 어디있단 말인가...?!"


집채만한, 혹은 그보다 아주 약간 작은 '덩어리'들.

검게 꿈틀거리는 그것은 말하자면, '알'보단 옛날 전쟁사 속에서 본 투석기에 싣는 바위를 닮은듯한...


"?! 비, 비슈트 수석기사님!!!"


"?!!?!"


그런 상상을 떠올린 탓일까.


정말 그것들은 투석기에 실린 바위처럼 공중으로 던져졌다.

주변의 그 무엇도 그것을 던져낼만한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내 그것은 가파른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내려온다.


마을 한 가운데로.


"비슈트 수석기사님!! 전면에!!"


"좌측 팔록 상등기사에게서 보고입니다!!"


방어선 곳곳에서 비명섞인 보고가 전해져온다.


굳이 눈을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어선 전체에 걸쳐서, 방금 보았던 것과 같은 '덩어리'들이 수없이 밤하늘을 향해 쏘아져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마을로 인원을 나누..."


"불가능합니다! 괴물들의 수가 전혀 적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림자들은 모두 터져나간 것 같은데, 이만한 괴물들이 대체 어디서 자꾸 쏟아져 나오는 건지.

방어선을 쉴 새 없이 두들기는 괴물들의 기세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저 비슈트는, 보고를 위해 달려온 기사들은 멍하니 마을 안으로 떨어져내리는 덩어리들을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크윽..!!"


그리고 그 덩어리들을 따라 이제서야 뒤돌아 본 마을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자경단원들이 진화에 나선다곤 했지만 애초에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화재에 진화는 커녕 번져나가는 것 마저 제대로 막아낼 수 없는 듯 불은 더욱 커져 마을의 절반정도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비명소리와 고함소리도, 훨씬 많은곳에서 훨씬 크게 울려퍼지고 있었고.


이런 상태의 마을에 저 덩어리들이 떨어져 내린다면?

저 덩어리가 떨어져내려, 혹여나 이 괴물들과 같은 것들이 마을 안에 퍼진다면?


화재에 전념하고있는 자경단원들이 저것들마저 막아낼 수 있을까?


답은,


"데니스 수석기사를 불러와! 지금부터 방어선의 지휘는 데니스 수석기사에게 위임한다!

나와 각 제대의 평기사들은 모두 마을 내부의 방어로 이동하겠다!"


불가능.


이미 밤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있는 덩어리들의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그에 반해 이제서야 방어선에 짓쳐들고있는 괴물들의 기세가 조금은 꺾인 듯 하니, 베테랑들만 남겨놓아도 방어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을것이다.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확인! 지금부터 제가 방어선의 지휘를 이양받습니다!"


허나 그런것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명령을 전달받고 달려온 데니스 상등기사의 두 눈엔 오직 굳은 의지만이 담겨있었다.


"...."


경례를 올린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비슈트는 고개를 끄덕이곤 마을을 향해 몸을 돌린다.


"나단 소델 평기사, 확인!"


"록 데니엄 평기사, 확인!"


"토마스 웰링스 평기사, 확인!"


"오르샤 라빈스키 평기사..."


그의 곁으로 모여드는 여덞명의 평기사들과 함께.


모두가 앳된 얼굴의, 기껏해야 이십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 기사들이다.

이제 막 기사단에 착임한 초급 기사들.


이젠 '기사'라는 것에 대한 청운의 꿈도 품을 수 없건만, 기사가 되기 위해 찾아와 기사 서훈을 받고 기사가 된 그들은 단 하나의 의지를 두 눈에 품은 채 비슈트의 뒤로 나열해 나간다.


오직, 명예만을 담고.


그리고 그들의 두 눈에 어린 것은 양손에 하나씩 검을 빼든 선배 기사의 커다랗고 굳건한 등.

그들이 기사가 되려 마음먹은 그 뒷모습을 따라 어린 평기사들은 손에 무기를 빼어든다.


자신의 선조가 걸어간 길에서 한발자국을 내딛는 비슈트를 따라,

어린 기사들은 일제히 한발자국 앞으로 내딛는다.


위험을 등지고 안전한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단 아홉의 기사들만이,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을 막아내려 달려가는 것이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희생이 무엇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들에겐 아직 확실히 와닿지 않지만,

그들에게 그 신념을 불어넣어주는 굳건하고 커다란 뒷모습을 믿으며.


철그럭!


빈약해진 방어선에서 연신 터져나오는 고함소리를 등진 그들은 그렇게 마을로 달려나간다.

달려나가려, 했다.


"..?!"


눈 앞에 나타난 영문모를 인영들에게 막히지만 않았다면.


"그대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십여명의 인영들.

모두가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리곤 두 눈만 드러낸 채 흉흉하게 빛내는 그들은 손에 든 무기를 번뜩이며 마을을 향하려던 기사들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자경단원? 아니, 그럴리가 없다.

화재를 진압하기위해 투입되어있는 그들이 어째서 이곳에 있단 말인가.

게다가 얼굴을 가린 채.


그럼, 누구란 말인가.

어째서, 마을을 향하려는 우리들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건가.

도대체 무슨이유로,


그 검을 치켜들며 우리에게 덮쳐들고 있느냔 말이다!


"?! 큭!"


순식간에 다가온 그들의 검을 막아내며 비슈트는 혼란스러움에 흐트러지는 정신을 겨우 가다듬는다.


자신이 무너지면 옆에 서있는 평기사들이 무너지게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럴때 일수록 더욱 냉정하게...


"크아아악!!"


"?!"


허나 그런 각오도 무심하게.

검격을 마주한 순간 알게된 사실이지만 결코 기사들에 뒤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일격이 두배 이상 덮쳐오는 순간을 버틸 역량이 평기사들에겐 부족했다.


막아낸 검의 힘을 못이겨낸 한 기사의 팔이 깊게 베여나간다.


"흐아아앗!!"


온 힘을 다해 두개의 검을 교차해 막고있던 검과 그 검을 휘두른 인영 채로 힘껏 휘둘러 뒤로 날려버리는 것과 동시에 검을 떨어트린 채 베인 팔을 감싸 쥔 기사에게 달려간다.


그와 마주하고있던 인영이 재차 휘두른 검이 천천히 기사의 머리와 가까워지는 그 사이로,


몸을 던지듯 오른손에 들고있던 검을 집어넣어 위로 쳐올려낸다.


"?!"


까앙!


"크, 크윽..! 비, 비슈트 수석기사님..!"


크게 치켜올려진 자신의 팔을 거둬낼 새도 없이 몸을 향해 날아오는 비슈트의 왼쪽 검을 피하기 위해 뒤로 크게 물러난 인영과 주저앉은 기사 사이에 몸을 집어넣고 선 비슈트는 날카로운 눈으로 눈 앞의 인영을 바라본다.


대체, 이 무거운 검은 무엇이란 말인가.


결코 체계적인 단련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검의 궤적과 몸놀림, 그리고 검에 실린 힘.

마을에 이만큼 단련을 받은 자들이 있던가?


마을에 체류하고 있던 상회의 사람들이 이런 검격을 가지고있을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그 의문이 소용돌이치는 한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그 인영들은 기사들에게 덤벼들고있었다.


"크악!"


"흐, 흐읍?!"


"하아앗!!"


힘에 부친 검격에 겨우 막아내거나 비켜내는 것이 고작인 평기사들을 두 눈에 담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로.


이미 덩어리들의 3분의 1가량이 마을로 떨어져내렸다.


"...제기랄"


까드득, 멋들어진 콧수염이 일그러지며 그 아래의 입술 사이로 이를 가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어떤 이유로 앞을 막아선지도.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덩어리들이 마을 안으로 모두 떨어질때 까지 기사들을 막는 것.


그렇다면 이 인영들은 분명 자신들의 적이었다.


허나, 단지 그 뿐.


단 한명의 공격에도 진땀을 뻘뻘 흘리는 여덞의 평기사들에 비해 저들은 스무명 이상.

제 아무리 글렌로우드 기사단 내의 수석기사까지 오른 실력자인 비슈트라 하더라도 그들을 순식간에 베어넘긴 채 마을로 갈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그정도로 강한 상대였다.


"..제길..제길..!"


뒤에 주저앉아있던 어린 평기사가 주춤거리며 일어서는 기척이 느껴진다.

그 또한, 다치지 않은 팔로 검을 들어 저들과 마주하려하고 있었다.


비록 힘에 부친다는 건 알더라도.


그 용맹함, 그 긍지는 글렌로우드의 하얀 사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지만...


이들을 넘어서기 위해선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내 몸이 두개는 되었으면 좋으련만...!"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을 마음속에서 씹어내듯 되새기며 양 손의 검을 더욱 꽈악 힘주어 다잡는다.


방법이 없다.

오직, 온 힘을 다해 눈 앞의 적들에게 부딪히는 수 밖에.


그 끝이 정해져 있더라도.

비록 절망만이 남은 길이라 하더라도.

가슴속의 노기사는 단 한번도 '포기'라는 기색을 그 두 눈동자에 띄웠던 적이 없었으니까!


"흐아아!"


양손의 검을 번뜩이며 비슈트는 눈 앞의 인영들을 향해 쏘아져나간다.


작가의말

마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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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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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1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4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89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79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7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4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09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6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4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2 0 23쪽
»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5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4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1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8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1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7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5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7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2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8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3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0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7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7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2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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