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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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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0
추천수 :
3
글자수 :
52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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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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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DUMMY

"괜찮습니까?!"


바닥에 엎어진 채 일어날 힘도 없이 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있던 내 뒤로 누군가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볼것도 없이 그 익숙한 목소리로 보아, 오벤 상등기사가 틀림 없겠지.


"루시안 님! 대체 무슨일이?!"


"저도..저도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싶어요..."


"일단, 일단 일어나십시오!"


내 팔을 어깨로 두르며 억지로 일으키는 오벤 상등기사의 힘에 나풀거리듯 들어올려지면서도 두 눈은 마을로부터 떨어트리지 않는다.


분명 한밤중일진대, 어두워야할 시간일진대...


어째서 저리 밝은거지?


"마을이..."


나를 일으키는데에 집중하던 오벤 상등기사의 얼굴이 마을을 향하며 그의 턱까지 내려오는 옅은 갈색 머리카락 너머 두 눈에 나와 같은 일렁이는 것을 담아낸다.


"화재...?"


그것도, 한군데에서만이 아닌 여러군데에서.


"어째서 마을에 화재가..."


마을 대부분의 건물은 목조건물이다.

그만큼 화재에는 특히 취약한지라 그동안은 마을 사람들이 화재예방에 대해선 철저했었기에 지금껏 마을엔 작은 불은 났을지언정 큰 불은 난적이 없었는데...


물론, 가장 큰 문제는 화재가 아니다.

마을에 불이 났다는 것 만으로도 매우 큰 일이지만 그보다도 더욱 큰 문제는,


마을 주변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검은 괴물들이 마을을 향해 짓쳐들고 있다는 것.


"늦었어요.."


저것들은 먼저 마을로 움직인 괴물들인걸까?

그렇다기엔 그 수가 그보다도 훨씬 많았다.

훨씬.


마치 개미떼처럼, 허나 그 각각의 크기는 개미를 아득히 넘어설정도로 커다란 괴물들이 마을 외곽을 둘러선 기사들을 향해 달려드는 그 모습을 두 눈에 담으면서 공터에서 상상했던 그 끔찍한 상상을 다시금 떠올린다.

현실에 나타난 그 광경에 한계를 넘을정도로 하나의 염원만을 위해 달렸던 다리가 더욱 힘없이 늘어져버린다.


늦었다.

마을을 지키기엔 이미...


"..큭.."


지켜? 내가? 누구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마을을 지키겠다고?

오만이다. 거만이었다.

잘난것하나 없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영웅'으로 떠받들여지는 부모님의 자식이라는 이름 하나와 나라면 부모님처럼 할 수 있을거라는 그 근본없는 망상만을 믿어온 멍청한 나는 이토록 아무런 힘도 없는 그저 평범하고 무력한 소년일 뿐이었다.


혼자살아오며 겪은 시련은, 나에게 찾아온 나 혼자만의 문제였기에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 지금껏 살아남아왔지만...

누군가를 지킨다는 그 행위의 무게를 버틸 능력이 결국 내게는 없었다.

그저 각오만이, 자기위안과 자만심으로 가득찬 그 허영만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건 그저 내가 바라보았던 이상.

그리고 눈 앞의 이것은 현실.


눈을 감고 바라보았던 이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치켜뜬 눈 안에 비친 현실은 마치 창문너머로 바라보는 것 마냥 그저 그곳에 놓여져있었다.


결국 네가 할 수 있는 건 거기서 창문 바깥을 바라보는 것 뿐이라는 듯, 너무나도 무심하게.


"...."


그 뼈저린 나약함과 비통함,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강물을 이루어 눈가에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겨우 참았건만, 참을 수 있는 매개가 사라진 지금은 눈물을 막을 수 있는 방도가 전혀 없었다.


"..나는...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흡!"


짜악!


"윽?!"


털퍽!


쓰라린 등과 번쩍이는 세상에 대체 무슨일이 일어난건지도 모른 채 땅에 팽개쳐지듯 쓰러진 내 뒤통수로 호통소리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려온다.


"무얼하고 계신겁니까?!

눈 앞의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으시다면 지금 당장 몸을 돌려 있던곳으로 돌아가십시오!

아무도, 그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은 없습니다!"


도망치다니...

어디로? 어째서?


"여기서 그 두 눈에 지금껏 얼굴을 맞대며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 저 괴물들에게 위협받고 있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보는 변태적인 취미라도 있으십니까?!

그걸 위해 여기까지의 숲 길을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려오신 겁니까?!"


아냐, 그럴리가 없잖아..

나는 마을 사람들을 지키..


내가? 무슨 힘으로?


"살기위해 도망치는 사람은 그 용기만으로도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저는 당신이 그렇게 하겠다면 말리지 않을테니 마음껏 하십시오!

자신의 힘을 제대로 알고 판단하는 것 또한 능력이자 용기이니!


허나,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게 저 마을에 있다면!"


지키고자 하는것?

지키고..싶은것.


"그렇게 얼빠진 얼굴로 지금도 비명소리가 울려퍼지는 저 마을 안으로 들어가길 주저할 이유가 있습니까?!

힘이 없어서?!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상황이 절망적이라서?!"


기사들을 공격하던 괴물들 사이사이에서 한두마리씩의 괴물들이 서로 겹쳐져간다.

한마리 더, 또 한마리 더.

커다랗게.


"힘이 없는건,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건,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건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비겁자의 변명일 뿐입니다!

지키고자 하는 게,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눈 앞에서 저리도 급박한 위험에 처해있는데 여기서 멈추는건 비겁함 그 이상!"


나는, 약하다.

내게 있는거라곤 이 손에 들린 정글도와,

지난날을 살아오며 겪어온 수많은 위험속에서 살아남았던 기억 뿐.


그런 누군가를 지켜본 경험도 없는 내가 어떻게...


"그저 자기 자신의 나약함과 눈 앞의 현실에 겁을 먹은 겁쟁이일 뿐이야!"


겁쟁이.

난...겁쟁이.


"나는 그런 겁쟁이를 보호해야할 명령을 받았지만, 그깟 명령따윈 무시하겠어!

눈 앞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버리고 당신같은 겁쟁이를 보호해야 할 가치가 나에겐 찾을래야 찾아볼 수 없군!


난, 저곳에 있는 내 동료들과 마을 사람들을 구하러 갈테니 당신은 여기서 볼썽사납게 엎드려나 있으라고!"


철컥이는 갑옷의 소리가 내 옆을 스쳐지나간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말을 타고 날 뒤따라온 기사들 전부.


뿌리가 뽑혀 뜨거운 햇빛에 말라붙은 잡초마냥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날 내버려두고 그들은 마을을 향해 달려나간다.


겁쟁이는 가지지 못한 그 용기로.

기껏 다섯명의 기사가, 제각각 손에 든 무기를 높이 치켜들고 마을을 향해 달려가는 그 뒷모습은 마치...


어릴적 기억에 희미하게 남은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미야앙"


뺨에 느껴지는 축축하고 뜨거운 감촉.

눈동자만을 굴려 바라본곳엔 나를 따라 바닥에 엎드린 키니가 그 붉은 눈을 그렁그렁한 무엇인가로 적신 채 내 볼을 하염없이 핥고있었다.


나를 위로하는 듯.

나는 할 수 있는걸 다 했다는 듯.

허나 키니도 알고있을거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 그리고 이렇게 있어선 안될거라는 것도.

그럼에도 키니는 내게 괜찮다고한다.


...정말...정말.....


"...언제나 답을 가지고계신건, 부모님이신것 같아 키니"


"미양?"


난 언제나 되어야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마 평생을 가도, 그건 어렵겠지.

부모님은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셨던 분들이니까.


나는 그저 그분들을 조금이나마 닮고싶을 뿐이다.

그 분들이 걸었던 길을 조금이나마 따라 걷고 싶을 뿐이다.

그리움때문에?

아니,


"세상에 혼자 남은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치를 겨우 찾았는데...이리 쉽게 빼앗길수는 없잖아!"


내가 걸을 길 또한, 그 길이라 마음먹었으니까.


늘어져있던 온 몸에 순식간에 힘이 되돌아온다.

한계 이상으로 채찍질한 탓에 뻐근해오던 근육들이 오히려 그 전보다도 더욱 멀쩡해진듯, 그 이상의 힘을 얻게된듯한 활력이 손 끝부터 시작해 빠르게 몸 속을 가득 채워간다.


그 시작은, 부모님이 남겨주신 반지에서 시작한 타는 듯한 감각.


'일어서.

고개를 들어.

정글도를 쥔 손에 더 힘을 줘.

땅을 딛고 일어선 두 다리에 굳게 힘을 주고,

굽혀져있던 등은 활짝 펴라.

그리고 그 두 눈으로,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자 했던 것을 확실히 바라봐!'


"..가자 키니!!"


"미야아아!"


그리운 목소리로 들려오는 호통을 도움삼아 금새 멀어진 다섯의 기사들이 달려가는 그 뒤를, 그들보다도 더욱 빠르게 마을에 닿기위해 다시금 온 힘을 다해 달려간다.





그렇게 그들은 참으로도 절묘한 타이밍에 전장에 나타났다.

방어선을 점점 뒤로 미뤄가던 기사들의 앞에서 괴물들이 반으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어가고, 그 한가운데를 다섯의 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손에 든 거친 모양새의 칼을 쉴새없이 휘두르는 한 소년이 매섭게 가로질러간다.


사냥감 무리에 뛰어든 하얀 사자처럼.

그리고 그들이 갈라놓은 길 뒤로, 숲에서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하얀 사자들.


숲에서 온 힘을 다해 달려온 사자들이,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장에서 생긴 변화는 방어선 전체에 걸쳐 큰 움직임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 뒤에서 필사의 각오로 눈 앞의 인영에게 짓쳐들던 비슈트에게도.


"?!"


눈 앞에서 마주 달려들던 두명의 습격자가 순간 검을 머리께까지 치켜든다.

무언가를 방어하기 위함인듯한 그 동작은 아쉽게도 아무런 효과를 불러오지 못했다.


쐐애액, 퍽! 퍼벅!


"큭!"


"크악!"


단말마의 비명을 남기고 눈 앞의 인영들이 사라져버린다.


급히 움직인 시선 안에서 방금전까지 흉흉한 살기를 내 뿜고 있던 그들은 점차 바닥에 퍼져나가는 피웅덩이를 만들어내며 쓰러져있었다.


죽은 듯, 미동도없이.


머리에 각자 한개씩의 화살을 매단채로.


"비슈트 수석기사님!"


"이 목소리는...!"


그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곳을 바라보는 것보다 빠르게,


"흐라아앗!!"


"하압!"


"비켜!!"


[크롸아아!]


[키야악!!]


"큭!"


"크악!"


그가 원했던 '무언가'가 절망만이 남아있던 전장에 뜨거운 한줄기 햇빛처럼 짓쳐들어와 적들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오벤 상등기사!"


그가 원했던 그와는 단 한달의 시간을 두고 기사단에 입대한 그의 오랜 친구.

또 한명의 그 자신이, 괴물들의 사이로 길을 여는 다섯명의 일행들과 함께 활의 시위를 당기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의 뒤에 새겨지는 길을 따라 엄청난 위용을 뽐내며 말 위에 올라탄 채 괴물들을 향해 짓쳐드는 하얀 파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의 믿음직한 동료들이었다.


그 가장 앞에서 검고 커다란 검을 휘두르는 당당한 풍채의 기사를 본 순간, 비슈트의 몸 안이 환희로 가득채워져간다.


종교를 믿지 않는 그이지만 이때만큼은 신이라는 존재의 발에도 감사히 키스를 퍼부어줄 수 있을 정도로.


"다, 다행이다...!"


"부단장님..! 부단장님이 오셨어!"


"오벤 상등기사님이시다! 오벤 상등기사님이 활을 들고계셔!"


방어선 곳곳,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서 습격자들과 힘겨루기를 하고있던 평기사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


"..."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 앞의 습격자들이 주저없이 몸을 돌려 마을 내부를 향해 뛰어들어간다.


"?! 어딜!"


괴물들의 기세를 덮어버리고도 남을만한 원군의 도착에 위기의식을 느낀건지 도망가려는 그들의 뒤로 온 힘을 다해 달려든다.


단 한놈도, 단 한놈이라도 마을 안으로 들여보낼 순 없다!


"못 보낸다 이놈들!!"


슈악!


"?!"


차앙! 경쾌한 소리를 울리며 하늘로 떠오른 은빛의 반짝이는 물체가 빙글빙글 돌며 바닥으로 떨어져 박힌다.

가장 뒤에서 비슈트의 검격을 막으려 몸을 멈춘 습격자의 손엔 절반 부터가 잘려있는 검이 들려있었다.


"..----?"


"--,...-. --"


"...--"


그리고 그들은 비슈트를 한명으로 막아서기엔 불가능하다 판단했는지 네명의 인원만을 남기곤 다시 마을 안으로 달려들어간다.


"못간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대로 보낼수는 없다.

자신을 따라 눈 앞의 습격자들에게 달려드는 여덞의 평기사들과 함께 한번에 눈 앞을 막아선 자들을 베어 넘기기 위해 열개의 검이 온갖 방향에서 그들을 향해 쏘아져간다.

절대로 막아낼 수 없는 모든 방향에서의 검격.


이것이면 끝나리라.

이젠 저 앞선 자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리라,란 생각을 떠올린 그 때.


비슈트의 눈에 묘한 것이 들어왔다.


'...무슨 여유를..'


품안에 일제히 손을 넣는 네명의 습격자들.


그곳에 설령 무기가 있다한들, 이미 턱밑까지 짓쳐든 검을 피하거나 반격을 할 순 없을것이다.

이 잠깐의 사이동안 비슈트와 평기사들의 합공은 너무나도 완벽했으니까.

방어, 또는 반격을 취할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 아주 촘촘한 검의 그물.


하지만 그 그물 안에서 그들이 취한 행동은 정말 상상도 못할 행동이었다.


'음?'


처음 그것은 그저 주머니에 불과해 보였다.

아니, 주머니 그 자체였다.

무언가가 묵직하게 들어차있는 듯 곳곳이 검고 흰 얼룩으로 더러워진 주머니.


아마 비슈트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그 주머니가 무엇인지 끝까지 알 수 없었으리라.


본가가 실은 수도 상회조합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가문이 아니었다면,

어릴적 그가 '화약'이라는 것을 본 것과 그것을 가지고 온 갈색 피부의 남자가 보여준 것을 잊고 있었더라면,


비슈트 본인도 몰랐을 지 모른다.


"폭탄?! 다들 물러서라!!!"


그랬더라면, 다급한 비슈트의 목소리를 듣고 순식간에 몸을 뒤로 뺀 여섯명의 평기사들 마저도 화를 면하지 못했으리라.


물론 두명의 기사들은 너무나도 그들과 가까웠던 탓에 미처 몸을 뺄 수 없었지만.


"...---!"


쾅!


순식간에 터져나가는 인간이었던 것들.


사방으로 터져나간 살점들과 피가 폭발이 미치는 곳에서 두어발자국 씩 떨어져있던 평기사들의 온 몸에 강하게 날아와 부딪힌다.


네명의 습격자들이 품에서 꺼낸 주머니를 바닥에 던지는 것과 동시에 폭발한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처참히 바닥에 퍼져나간 피와 살점들 밖에 없었다.


그 중에는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평기사 두명의 것도 섞여있으리라.


"큭! 제길! 제기라아알!!!"


어째서 더 빨리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조금이라도 더, 단 일초라도 더 빨리 눈치를 챘다면 살 수 있었을텐데!


자신의 부족함에 비슈트는 심장이 찢어져나갈듯 괴로운 고통에 사로잡힌다.

물론 그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습격자들이 그 비싼 화약을 가지고 있을 줄은, 게다가 그것을 가공해 같은 크기의 고밀도 시토리움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폭탄'을 지니고 있을 줄은...


그리고 그걸, 거침없이 자신들의 발 밑으로 던져 터트려 버릴줄은, 절대 예상 할 수 없었다.


그 이전의 문제다 이건.

살아남은 평기사들이 분명 있기에, 잃어버린 두명의 평기사들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 분노.


그의 새빨개진 눈이 저 멀리서 마을 안으로 사라져가는 습격자들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이미 따라잡기엔 불가능한 거리.


터져나간 저자들의 동료는 훌륭히 자신들의 역할을 완수한 채 스러져갔다.


"비슈트 수석기사님! 괜찮으십니까!"


사그라들 줄 모르는 분노에 몸을 태우고있던 비슈트의 뒤로 오벤이 달려온다.

그의 주변을 감싸고있던 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은 방어선에 합류했는지 옆에 남아 같이 달려온 건 분명 공터에 남아있어야 할 루시안의 모습이었다.


"난, 괜찮다. 그보다 오르샤 평기사를"


"저, 저도 괜찮습니다 오벤 상등기사님, 비슈트 수석기사님!"


오른팔에서 피를 뚝뚝 흘려내는 그는 왼손에 든 검을 가로로 세워 눈 앞에 든 채 괜찮다는 경례를 올린다.


그의 두 눈에도, 숨길 수 없는 분노가 어려있었다.


"동료들이, 제 동료들이 죽었습니다!

저에게 부디 저들을 쫓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고된 훈련과 갖은 임무, 그리고 같은 기사단에서 어깨를 마주한 채 동료로서 서로 웃고 마주해온 동료가 죽었다.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허무하게.


오르샤에겐 너무나도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일테고, 원수같이 느껴질 습격자들을 따라가 직접 처단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도 잘 알겠지만,


"..안된다. 오르샤 평기사.

한쪽으로 물러나 치료에 전념하도록"


"비슈트 수석기사님!"


"오른팔을 다친 그대가 무얼 할 수 있는가?!"


"...!"


그의 검을 휘두르던 모습을 보면 안다.

비록 기사이기에 양손을 어느정도 자유롭게 다룰 순 있겠지만 그는 분명 오른손잡이.

그런 그가 익숙한 손으로도 받아내지 못한 검을 휘두르는 자들을 왼손으로 상대하려는 건 그저 자살행위에 불과한 것.


순간의 분노로 그가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건 비슈트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도 하얀 사자의 일원.

물러서야 할 때를 알아야하는 법이다.


그리고...


"저들의 추격은 내가 직접 맡는다.

그대는 마음놓고 내가 들고올 선물을 기대하고 있도록"


"..확인..!!"


비통한 듯 한껏 구긴 표정 사이로 일말의 기대감과 믿음을 보이는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비슈트는 고개를 들어 오벤에게 시선을 옮긴다.


"무슨 일이 있는겁니까 비슈트 수석기사님?"


"...마을이 공격당하고있네"


"그건...여기까지 오면서 충분히 이 두 눈으로 보아온 일입니다만"


고개를 돌려 방어선이 구축되어있는 뒤편으로 시선을 보내는 오벤의 눈 앞엔 이미 기세가 꺾여버린 괴물들을 유린하는 하얀 사자들이 울타리와 숲 사이 여기저기에서 날뛰고 있었다.


그 무지막지한 수를 마주하고서나 힘든 상대였지 이젠 기세가 꺾인데다 원군의 합류로 수적 열세따윈 실력으로 보충하고도 남을 기사들 앞에서 괴물들은 속수무책으로 스러져간다.


생각보다, 그 하나하나는 어려운 상대가 아니기도 했었고.


"그 말대로일세. 그리고 이젠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는 와중이나..."


철그럭, 묵직한 발걸음소리를 울려내며 다가온 커다란 덩치의 기사가 헬름을 벗어 옆구리에 끼어 든 채 그 회색 눈동자를 날카롭게 빛내고 있었다.


그가 응시하는 곳은 마을의 내부.


"숲에서 나오자마자 참으로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았는데...무슨일인지 설명해 주겠나 비슈트 수석기사?"


"예, 비록 그게 무엇인지는 저조차 확실히 알고 있지 않습니다만...

괴물들이 방어선을 공격하는 도중 갑작스레 서로 몸을 합쳐내며 큰 덩어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곤 전혀 그 어떤 도움도 없이 공중으로 비상, 마을 내부로 떨어져 내린 상황입니다"


"괴물들이 서로 몸을 합쳤다?"


의문스레 고개를 비스듬히 젓는 첸드릭에게 오벤이 덧붙인다.


"제가 숲에서 나오자 마자 본 모습도 그와 같았습니다.

서로 떨어져 나가 숲 속을 이동, 마을에 도착하여 교전 중 서로 다시 결합한 것으로 보이며 갑작스럽게 공중으로 비산해 마을로 떨어져 내린것까지 똑똑히 확인하였습니다"


"흠..."


허나 그의 첨언에도 첸드릭의 깊은 미간의 주름은 펴질줄을 몰랐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습격자들까지 나타났습니다"


"습격자?"


연달아 비슈트 수석기사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에 첸드릭과 오벤, 그리고 루시안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진다.


괴물들 이외의 습격자라는 건 결국,


"그들은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인간, 이었습니다.

그것도 체계적인 단련을 거친 기사에 준하는 실력의 습격자들.."


그들의 검을 받아냈던 손의 감촉을 떠올린다.

양손검을 교차하듯 받아낸 순간 검을 타고 흘러들어온 그 엄청난 무게의 힘을.


게다가 평기사들 또한 쩔쩔 맬 정도였으니 기사에 준하는 실력이란 설명이 부족함이 없으리라.


"인간? 어째서 그런 습격자가..."


첸드릭에게 있어선 그 점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듯 연신 찌푸린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괴물들의 이 갑작스런 공격은 어느정도 예상한 일이라고 쳐도 인간인 습격자가 나타나리라곤 생각조차 못했으니까.


기사, 그것도 대륙에서 '글렌로우드의 하얀 사자'라 불리며 높게 평가받는 기사단의 수석기사가 '기사에 준하는 실력자'라는 표현을 썼다면, 그건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기사를 기준으로 한 것이리라.


그런 자들이 갑자기 마을에 나타났다?


"마치 괴물들의 공격을 도우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마을 안으로 떨어져내린 덩어리들을 확인, 대처하려던 저희들을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뭣이라?"


괴물들을 도운다?


이게 대체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갑작스레' 나타난 괴물들을 도우는 '갑작스레' 나타난 습격자 들이라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대체...


"그러므로 부단장님께 건의드리는 바입니다.

현재 마을 외곽의 방어는 기존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할거라 판단됩니다.

여분의 인원들을 편성해 마을 내부 화재진화, 그리고 습격자들과 마을 안에 떨어져 내린 괴물들을 확인, 처치토록 하심이 어떠십니까"


"그래야겠지.

오벤 상등기사는 여기 남아서 방어선의 지휘를 맡도록 하게.

비슈트 수석기사는 방어선 사수에 필요한 병력 이외의 병력을 재편성하여 마을 내부로 투입하도록"


"확인!"


의문의 괴물들과 의문의 습격자들, 그리고 의문의 화재.


그 어느것도 어두운 소용돌이 속에서 고개를 드러내 그 얼굴을 보이지 않고있었다.

그 속에서 그저 서로 얽혀 섞여가고 있을 뿐.


첸드릭에게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판단과 고민해야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


타닷. 이미 몸을 돌려 마을 안으로 뛰어들어간 한 소년의 뒷모습을 보곤 그도 마음을 굳힌다.


"나 또한 루시안 님을 따라 먼저 마을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파악토록 하겠다.

현재 아가씨의 위치는 파악 되어있나?"


"데릭 톨로즈라는 마을 주민의 집에 묵고계십니다"


"그럼 아가씨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출발할테니 비슈트 수석기사도 재편성이 끝나면 바로 마을 내부로 들어오도록"


"확인!"


타앙! 갑옷을 입은 가슴께를 두드리며 경례를 올린 비슈트는 몸을 돌려 제대 편성을 위해 방어선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첸드릭과 오벤.


"...어떻던가"


"그 나이대의 소년이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허나..."


씁쓸한 미소를 입에 건 채 고개를 젓는 오벤의 표정은 마치 못할짓을 했다는 것 마냥,


"이상하리만큼 성숙하기도 했습니다.

그토록 심한말을 연신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시 일어서 달려오다니.."


"..과연, 테미군이 점찍어둔 소년이군"


갈색 피부의 항상 표정이 옅은 날카로운 인상의 미녀를 머리속에 떠올린 첸드릭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짓는다.


"악역은...제가 맡았습니다만"


"나중에 해명할 기회가 꼭 있을걸세"


"..그랬으면 좋겠군요"


하아, 한숨을 내쉬곤 방어선을 향해 돌아간 오벤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첸드릭은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리는 불길을 향해 거침없이 점점 빠른 발걸음으로 뛰어들어간다.


아직, 밤은 끝나지 않았다.


작가의말

밤은 점점 깊어가 어둠에 잠겨들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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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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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5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90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8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5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10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7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5 0 34쪽
»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3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5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4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2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9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3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8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5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8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2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8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0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8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8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2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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