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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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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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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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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DUMMY

"저기, 니르야..?"


"...."


통통, 가슴께에서 내려다보이는 양갈래 머리가 주인의 심정을 대변하듯 매섭게 튀어오른다.

날씨도 좋은날. 축제를 축복하는 딱 적당한 햇빛 아래의 탄트라 마을.

그리 더운날도 아닌데, 나는 연신 이마에서 솟아나는 식은땀을 훔쳐내며 니르의 뒤를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게, 정말 오해라니까.."


"...아냐"


"응?"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선 이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곤 대답조차 하지 않던 니르가 간만에 꺼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빨리 해 니르의 뒤에 바싹 붙는다.


연신 오해다, 그런게 아니다, 나는 루시안 님과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라는 말을 볼이 화끈거리는 걸 참아가며 수없이 얘기해봐도 돌아보지조차 않던 니르의 이 반응이 너무 반갑달까, 화가 난 그 이유 자체가 참으로 난감하기도 한 탓에 니르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어본다.


내 마음을 알아준걸까?

그렇지 않다면, 뭐가 아니라는걸까?


"...분명 언니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냐. 언니는 루시안 오빠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을 수도 있어.

하지만...루시안 오빠는? 언니는 예쁘잖아. 루시안 오빠가 홱,하니 넘어가버리면 니르는 어떡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니르의 눈동자엔 커다란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매달려있었다.

먹먹해진 목소리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말을 끝맺은 니르는 애처로운 모습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게, 왜 이리 사랑스러운걸까.

울고있는 니르는 그만큼 슬퍼하고있겠지만...이 꼬마 아가씨의 이런 조숙한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니르를 길 한복판에서 품안에 꼬옥 안고말았다.


"나는 곧 이 마을을 떠나 니르야. 그리고 수도가 아닌 더 먼 곳으로 가게될거야.

그런 내가 루시안 님께 마음을 드린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거고, 그리고 뵌지 며칠밖에 안된 내게 루시안 님도 그런 마음을 품고계시진 않을거란다.


비록 공터에서 붙어있는 숙소를 쓰긴 하지만...루시안 님과 나는 일에 관한 대화 이외엔 한적이 없으니까.

오히려 니르가 루시안 님과 더 오랜시간을 보내왔으니 나보다도 훨씬 루시안 님에겐 가까울걸?"


이 꼬마 아가씨가 루시안 님에게 품고있는 마음은 일반적인 감정보다도 훨씬 큰 것이리라.

나는 아직 가져본 적이 없는 순수하고 깨끗한, 그러면서도 찬란한 향기를 머금은 뜨거운 감정.

아직 어린 니르에겐 '첫사랑'일 그 애틋한 감정을 불쑥 나타난 내가 깨트려버리는 건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다.

그리고 한켠으론, 이 자그마한 꼬마 아가씨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그럼, 정말루...언니는 루시안 오빠를..좋아하거나 하진, 히끅, 않는거지?"


"...그렇고말고"


내심 찔리는 점은 없잖아있다.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그에게 아무런 감정을 품고있지 않은건 아니니까.

그가 내게 건넸던 질문, 그리고 날 도와주겠다던 그의 목소리.


고맙다. 감사하다..이것과 좋아한다는 감정이 가깝지는 않을테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에게 '호의'를 품고있는건 틀림없었다.


그래도 '좋아'하지는 않는거니까 거짓말은 아니겠지.


"..정말?"


"정말"


"만약에, 거짓,말이면...언니한텐, 평생 빵 안구워 줄거야아..."


"니르의 빵이 얼마나 맛있는데...언니가 니르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겠니?"


"히끅!...히에에엥..."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는 니르의 등을 당분간 토닥여준다.

아직 마을 중앙광장과는 거리가 좀 있기에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은 적지만, 그래도 그 적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드는게 꽤나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


"..훌쩍, 크응!

그럼 이제 축제 보러 가자 언니!"


"..참 회복이 빠르구나"


금새 웃는 얼굴로 돌아온 니르의 아직 젖어있는 볼을 닦아내듯 쓰다듬는 내 손길에 니르는 부끄럽다는 듯 몸을 배배 꼬아낸다.

...귀여워. 아후 진짜 너무 귀여워.


어쩜 이 마을엔 귀여운게 이렇게 많지? 니르도 그렇고 키니도 그렇고!


"언제까지고 니르가 이렇게 울고있으면 언니 축제 못보게되잖아!

니르는 이제 괜찮아 졌으니까 걱정하지마 언니!"


배시시 웃는 니르의 미소에 마음속 어딘가가 사르르 녹아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만약 나중에 내가 결혼하고 딸을 낳는다면 니르같은 딸을 낳고싶어. 지금 결정했어.

물론 결혼하려면 아직 많이 남았겠지만.


어? 근데 잠깐만..니르같은 딸을 낳으려면 데릭 톨로즈같은 사람과 결혼을...


"...."


"웅? 언니 갑자기 왜 몸을 떨어?"


"으, 응? 아, 아냐 아무것도 아냐.."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옳은게 아냐 에밀리! 그 분의 사람 됨됨이를 봐야지!


마음속에서 양손으로 뺨을 연달아 때리며 못된 상상을 한 내 자신을 반성하는 와중에도 니르는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인 내가 걱정된다는 듯 자신을 끌어안고있던 내 팔을 쓰다듬으며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아이는 천사인걸까?


"언니는 괜찮아 니르.

그럼 이제 축제하는 곳으로 가볼까?"


"응! 가자 언니!"


끌어안고있던 팔을 풀어내 니르의 손을 잡고 니르가 이끄는 곳을 향해 걸어간다.

중앙광장에서 좀 떨어져있었다곤 하지만 본래가 작은 마을이다. 금새 떠들썩한 분위기가 사방을 메우기 시작한 길을 걸으며 니르는 지나가는 사람들 한명 한명에게 모두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코벤 아저씨!"


"오오 니르야 반갑구나. 축제보러 온게냐?"


"네! 여기 예쁜 언니두 데려왔어요!"


"..아이구 이런, 안녕하십니까 공작영애"


"아, 네..안녕하세요"


"어머, 니르야 좋은아침이구나"


"지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공작영애도 안녕하신지요?"


"네? 아, 네! 안녕하세요"


필연적으로 니르의 손을 잡고있는 나에게 까지 건네져오는 마을사람들의 인사에 하나하나 화답하며 걷기를 한동안.


아침에 데릭 톨로즈에게 들었던대로 호의가 느껴지는 마을 사람들의 인삿말을 듣곤 어색하게나마 하나하나 답례를 건네며 조금씩 그 어색함도 사드라들기 시작하던 무렵, 내 눈앞에 커다란 나무 기둥이 한가운데 떡하니 높이 서있는 중앙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응? 니르야 저건 뭐니?"


"오늘 저녁에 저걸 불태운데!

마을에 떠돌아다니는 액운을 저걸로 불태워 없애버린댔어!"


민간신앙일까? 액운을 모아 태운다는 발상은 더없이 토속적인 풍습에 가까워보였다.

하지만 눈 앞의 커다란 저 나무기둥을 불태우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 위압적인 모습에 액운들이 놀라 달아날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얼핏 드는게 마냥 효과가 없을것 같지만도 않았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할테니까.


더군다나 어디의 축제건 다들 저렇게 상징성을 띄는 행사 하나씩은 꼭 있는 법이다.

저녁이 기대되네.


"아, 근데 주변 집으로 불똥이 튀기거나 하진 않을까?"


"그것때문에 마을 아저씨들이나 오빠들이 주변에 망루를 세워두고 감시하고 있는댔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런거구나.

기사단의 인력이 조금 여유가 있다면 그 분들 대신 망루에 올라가주실 순 없냐고 첸드릭 경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니르와 대화를 나누며 이윽고 눈 앞에 훤히 드러난 마을의 중앙광장은 5일째의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적이는 소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축제도 이젠 중반에 접어든 무렵일진데, 모두가 지친기색 하나없이 얼굴 한가득 밝은 미소를 품으며 따사로운 햇빛아래 축제를 만끽하고있는 모습을 보니 절로 입가에 지어져있던 미소가 더욱 짙어져간다.


다들 정말 열심히 살고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북적이는 마을 사람들 사이사이 간단한 무장만 몸에 두른 채 마을 사람들과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있는 기사단의 익숙한 얼굴들 덕택인지 아직 조금은 의심이 남아있던 데릭 톨로즈의 말이 더욱 와닿아서.

그게, 너무 기쁘고 그저 바라보고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기분이라서.


언제까지고 하염없이, 그저 이런 모습만을 바라보며 있고 싶었다.


"앗, 도린 언니다!"


"응?"


축제의 수많은 미소들이 발하는 빛에 눈이 부셔 눈을 살짝 가늘게 뜬 채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던 나는 니르와 이어진 손이 어딘가로 당겨지는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 니르의 인사에 눈치를 챘는지 빠른걸음으로 다가오며 누군가를 잡은 손의 반대쪽 손을 높이 들어 좌우로 힘껏 흔드는 여자아이는 마치 토끼처럼 방방 뛰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하고있었다.


얼굴 생김새도 토끼를 닮아 귀여운 그 여자아이는 난처한 미소를 짓는 훤칠한 인상의 남자를 끌고 니르의 앞까지 다가온다.


"니르야 니르! 니르도 축제를 즐기러 왔구나!"


"응! 언니두?"


"그러엄~ 나는 아침부터 나와있었다!"


니르보다 세네살 쯤 많아보일까?

앳된 얼굴에 한가득 환한 미소를 띄우곤 니르와 손을 맞잡은 채 쉴 새 없이 재잘재잘 지저귀는 그녀는 볼에 홍조마저 물들일 정도로 신이나선 니르 이외엔 주변의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듯하다.


오죽하면, 자신과 맞잡은 반댓손으로 옆에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하며 날 흘끔흘끔 바라보는 저 남자의 기색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까.


"오늘은 빵 안팔아~?"


"으응~..오늘은 다른 중요한게 있으니까!"


"다른 중요한거??"


"여기!"


번쩍, 도린이라 불린 소녀와 맞잡은 반대편 손을 들어올리는 니르.

필연적으로 내 손이 따라 올라가며 도린의 시선이 그 손을 따라 나에게 향한다.


"웅? 우응~..? 아! 나 이분 알아!"


"알아?! 언니도 알아?!"


"그러엄~! 나도 알지!"


"역시 언니도 아는구나!"


...뭘, 안다는 걸까.

반짝이는 눈빛을 한가득 쏘아보내는 도린과 그녀를 따라 같은 눈길로 날 올려다보는 니르의 시선에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으니까.

'네 제가 그 알고계시는 사람입니다'라고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아까부터 자꾸 흘끔거리는 옆 남자의 시선이 신경쓰여서..


"근데 왜 니르가 공작영애랑 같이있어~?"


"오늘은 내가 마을 축제를 안내해주려구!"


"와 정말?! 나도 같이 다녀도 돼?!"


"....."


저기, 도린씨라면 모르겠는데 왜 그쪽까지 기쁜듯한 얼굴을 하는거죠..?


"...음, 죄송하지만 저희랑 함께 다니시면 축제를 만끽하시지 못하실지도 몰라요.

저는 축제의 현황을 돌아봐야해서.."


나는 일을 하러 온거지 즐기러 온건 아니니까.

비율로 따지자면 일이 40에 즐기는 건 60정도?


..응 맞아 이건 그냥 변명.

솔직히 얘기하자면...아까부터 옆에있는 남자의 시선이 왠지 어색해서 같이 있기 싫어..

기껏 테미도 옆에 없으니 축제를 좀 둘러볼까하고 있는데 말야.


"그래요~? 아쉽다아..."


"에이 언니두 참, 옆에 테디 오빠한테 집중해야지!

이번 축제의 파트너잖아?"


"에헤헤, 그렇지?"


움찔, 갑작스레 대화의 주제가 자신이 된 순간 내게서 급히 시선을 돌린 그, 테디라 불린 남자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도린의 눈빛에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도 곁눈질로 계속 흘끔흘끔.


...아무래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네.


"그럼 저희는 이만.

가자 니르"


"응? 응 알았어 언니! 그럼 도린 언니, 재밌게 놀아~"


"응 니르도~!"


못내 아쉬운 듯한 시선을 계속 보내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니르를 잡아 끌어 그들과 멀어진다.


"...휴우"


이제야 좀 나아졌네.

부담스러웠던 시선에서 벗어나 가슴 속을 답답히 채우던 한숨을 내쉰다.


"괜찮아 언니?"


"응? 아, 응. 아무것도 아냐 니르야"


"아무것도 아니긴...아까 테디 오빠가 계속 언니 쳐다보고 있었잖아"


"...봤니?"


하긴, 그를 등지고있던 도린이란 소녀는 보지 못했겠지만 그녀와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던 니르에겐 여실히 전부 눈에 들어왔을거다.


"그러엄 당연히 봤지!

도린 언니 파트너면서 언니한테 계속 그런 눈길을 보내다니!

하여간 남자들이란 예쁜건 알아서!"


"아, 아하하..."


대신 화를 내주는 건 고맙지만...

반응을 어떻게 해야할지 영 곤란하네.


"파, 파트너면..그런거니? 커플같은거?"


"우웅~...그렇게 되기 위한 거?라구 해야하나?"


손가락으로 입술을 밀어올리며 미간마저 찌푸린 채 골똘히 생각에 잠긴 니르를 바라보며 문득 수도에서 축제가 열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수도의 축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어떤 축제에서는 파트너라면 춤을 추기위한 상대이기도 하고 또 어떤 축제에서는 파트너가 같이 축제를 즐기기위한 친구 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는 그게 다른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걸까?


"그러니까...우움...그러니까..."


한참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한 설명이 떠오르지 않는지 니르는 끙끙 앓는 소리마저 내기 시작했다.


니르가 분명 테디라는 그 남자에게 도린이라는 파트너가 있으면서 나에게 시선을 보내는 걸 마뜩찮아했었지?

그러면서 커플이 되기위한거...라면.


"..어찌되었든 저 둘은 서로를 좋아하고 있는거네?"


"그거다!"


"이, 이거니?"


니르의 입술을 누르고있던 검지손가락이 튕겨나듯 나를 향한다.


"그게 맞다면...그건 이미 커플아닐까?"


"아직 커플은 아냐!

여기는 작은 마을이니까 평소엔 다들 가족처럼 친하거든?

그렇다보니 다들 주변이 눈치가 보이는 탓에 누굴 좋아한다 맘 편히 말도 못하구...

그러니까 이런 축제나 되는 날에 평소 마음에 두고있던 사람을 파트너로 골라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거야. 서로에게 마음이 있나없나 보려구!

말하자면, 간보기?"


가, 간...


"..그, 그런말을 누가 알려준거니.."


"응? 간본다는 거?

엄마가 알려줬어! 저런거 많이하면 쓰레기라구, 어디에 버릴수도 없는 처치곤란한 거라고 얘기해줬는데!"


조기교육이 너무 앞서나가신것 같아요 니르 어머니...


한번도 뵌 적 없는 니르의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엄청난 곳을 향해 달려가는 아득한 기분을 느끼면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고보니, 손을 잡고 있다던지 팔짱을 끼고있는 젋은 남녀가 적잖이 눈에 들어온다.


저 사람들도 서로 간을 보는...아니, '파트너'인걸까?


"..마을 사람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축제를 만끽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그렇다면, 이 축제는 단순히 마을 사람들에게 지금까지의 일상 속 쌓여왔던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푸는 행사만이 아닌 서로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시간이기도 할것이다.

그렇기에 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겠지.


얼마 없는 기회. 마음을 준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같은 곳, 같은 것을 하며 같은 시간을 보내는 말 그대로 반짝이는 햇살을 그대로 머금은 보석같은 시간.


방금전 마주친 도린과 테디는 솔직히 조금 걱정되지만..눈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따스한 눈길과 각양각색의 미소를 주고받는 젊은 남녀들은 그렇게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고있었다.

이 축제라는 무대위에서, 서로의 손을 마주잡곤 어색하지만 최선을 다한 왈츠를 추면서.


"언니, 언니"


"응?"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축제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며시 붕 뜬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있던 나를 끌어내리는 듯한 감각에 니르를 내려다보니,


"언니두 일이 바쁘지 않은거면 니르랑 잠깐 축제 구경할래?"


"...응 좋아"


일이 40, 구경이 60.

지금 이 순간, 잠깐동안만은 구경이 100.


날 계속 받아들여주는 이 자그마한 손을 살짝 힘을 주어 다잡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새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대는 아무도 없는것이오?"


노년의 기사가 팔짱을 끼며 회색빛 턱수염을 쓰다듬는 모습을 올려보다 한숨을 내쉰다.


"아무도 없다기보단, 할 생각도 없는거에요.

딱히 누군가 좋은 사람도 없고..."


"젊은 청춘에 가질 생각은 아니구려"


남이사.


"..게다가 전 지금껏 마을 축제에 참여해본적도 없어서 잘 모른단 말이에요 그런거.

그래서 흥미도 없구요"


"점점 변명같이 들리네만?"


"....."


변명이 아니라 사실인데 어떡하라는겁니까..


원망스레 첸드릭을 쏘아보던 시선을 다시 앞으로 옮기며 발걸음을 빨리 해 마을을 가로질러나간다.

아침일찍 기사를 보내 마을로 연락을 취한 뒤 돌아온 기사에게 알겠다는 답신을 전해듣자마자 공터를 나온 나와 첸드릭은 여전히 열기가 가득한 마을의 모습을 보고 탄성을 흘려냈더랬다.


첸드릭이야 이토록 오랫동안 흥겨운 축제는 수도에서도 본적이 없다면서 놀랐고, 나는 그동안 마을 축제에 참여해본적도 없었으니 이렇게 열기가 가득한 마을의 모습이 여간 신기한게 아니어서 놀랐다.


그 와중에, 주변 이곳저곳에서 딱 달라붙어있는 젊은 남녀의 모습을 보곤 수도나 여기나 축제기간만 되면 커플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첸드릭에게 며칠전 공작영애 일행을 공터로 안내하며 조합장님께 들었던 축제에서 '파트너'를 정하는 것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결과가 이거.


나는 그냥 흥미가 없는 것 뿐이라고. 못하는게 아냐 절대.


"정말 '축제' 그 자체로군"


나름 빠르게 걷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첸드릭은 멀어지지도 않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고있었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뭔가 진것같은 이 기분..

애초에 이런걸로 이길 순 없겠지만.


"축제는 축제죠. 다른게 있겠나요"


"수도의 축제는 이런저런 이합집산이 서로 물고뜯는 날이니 말이오.

순수하게 '축제'라는 것 그 자체를 즐기기엔 무리가있을 정도로.

가령 예를들어, 평소보다 훨씬 비싼 값의 음식들이라던지 서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축제를 즐기고자 나온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사치들이라던지...

최근엔 상회가 축제 기획 자체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여러모로 복잡해져가는 추세가 되었소"


"역시 사람이 많아서 그런건가요?"


"그렇소.

사람이 많은곳엔 필히 돈 또한 모여드는 법.

그런면에서 이 마을은 주민들이 적기에 이런 순수한 형태의 축제가 가능한걸지도 모르오.

요즘같이 상회가 이곳저곳 퍼져나가있는 왕국 내에선 보기 드물게"


길가에 펼쳐진 간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낮부터 술이 담긴 잔을 기울이고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첸드릭의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그들의 일관된 복장, 그리고 가슴께에 수놓아진 제각기 다른 상회의 표식을 본거겠지.

이번 마을의 축제에도 광물출하 때문에 찾아온 많은 상회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단지 그들은 탄트라 마을에 온 목적이 달리 있기에, 자신들의 본업에 돌아가기 전 남는 짜투리 시간에 이렇듯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 뿐이리라.

만약 그들이 이곳에서 장사를 펼친 사람들이라면, 이 '축제'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눈에 불을 켠 채 돈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던지 손에 잡히는 대로 하고 다녔을거다.

마을 이곳저곳을 들쑤시면서.


"마을이 커지는 것도 그다지 즐거운 일만은 아니겠군요"


"각자의 장단점이 있을테니, 남은건 본인들의 취사선택 뿐 아니겠소.

개인적으론 지금 이 모습 자체가 좋아보이오만.."


신난듯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를 앞세운 채 서로 손을 잡고 걸으며 그런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부의 모습과 축제를 돌아보는 것 보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기에 바쁜 젊은 남녀들의 모습을 차례대로 눈에 담는 첸드릭은 기분탓인지 흐뭇한듯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메운 축제보단 이쪽이 더 좋다.

물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있는 모습을 본적도 없고, 내가 본 축제 중에선 상회의 사람들까지 가세한 지금 눈 앞의 인파가 제일 많은 수 였지만..

말했듯, 난 복작거리는 건 좋아하지 않으니까.

이정도도 부담스럽게 많은데 이보다 더 많다?


어휴 생각만해도 소름돋아.


"로번 영지관리관이 마을을 참 잘 이끌어온 것 같소"


"...네?"


갑자기 그런 이야기는 왜..?


"여러모로 참 좋은 마을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광산을 끼고있기에 상회에서 자주 왕래가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상회의 입김이 없다시피한 마을이나, 그런 이 마을에 살고있는 주민들의 밝은 얼굴 표정을 보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소"


조합장님은, 확실히 유능하신 분이시다.

마을을 여기까지 이끌어오신것도 그렇고, 광산을 개척하면서 고향에 생활기반을 두고온 마을 사람들에게 다른 생활의 터를 마련해 주신것도 그렇고...

그가 느낀 것은 나도,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가 공감하는 것.


하지만 그가, 첸드릭이 로번 조합장님을 칭찬하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드는 건 마을에선 나 밖에 없을거다.

그와 조합장님 사이에 어떤 일이 있는지 간략하게나마 알고있는 나 밖에.


"..첸드릭 경. 저녁에 시간이 되신다면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음? 갑자기 무슨일이오?"


"별 일은 아니에요. 그저 좀 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서.."


맥락없이 그에게 대화를 나누고 싶단 말을 건넨 나도 참 막무가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첸드릭은 오죽할까.

잠시 의중을 모르겠다는 듯 내 얼굴을 살피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건 어딘가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어디선가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군.

알겠소. 지금은 그대나 나나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을테니"


"그래요. 그럼 저녁에 공터에서 뵙도록 하죠"


아마 옆에 니르도 있는지 더욱 귀에 익은 목소리까지 섞여 들려오는 공작영애의 목소리가 가리키는 곳으로 몸을 돌린 첸드릭은 발걸음을 떼기 전 어깨너머로 나를 흘깃, 넘겨본다.


"로번 영지관리관에게 무엇을 이야기 할지는 그대의 판단에 맡기겠소.

허나..어제 우리가 서로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길 바라오"


"..알고있어요"


마을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순 없다.

그 우려를 최소화 하기위해 조합장님께 사건의 전말을 전해드릴 뿐.

무엇까지 조합장님께 말씀드려야 하는지는...어제 밤에 잠자리에 들기전 모두 정리를 끝내놓았다.

그 결과 조합장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마을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로인해 마을에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요 며칠동안 나 스스로가 참 작아진듯한 느낌이 든다.

부모님의 유품상자를 이제서야 연 그 순간부터 내 자신이 등에 짊어진 짐에 억눌려가는 듯한 기분.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한 일이지만...

자꾸만 생각과는 달리 흘러가는 무언가의 흐름이 너무도 답답하고,

그리고 한켠으론, 두려워진다.


"...하아, 이럴때 부모님은..어떤 선택을 내리실까"


항상 그래왔듯 이번에도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두분은 그저 내 안에서 미소만 짓고계실뿐, 아무런 말씀도 내게 전해주시지 않았다.


작가의말

바람이 강하게 불면 주변 화재의 위험도 있으므로 현장의 안전대책은 빠짐없이 진행해두었습니다.

성공적인 축제의 진행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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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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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5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90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8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5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10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7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5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3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6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4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2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9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3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8 0 22쪽
»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6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8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2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8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0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8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8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2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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