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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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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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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3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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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DUMMY

"그, 그렇다면..아까 하시던 행동은, 그건 무엇이었죠?

손에 들고있던, 부수곤 묻어버린 그건 잔재가 아니었던건가요?"


"나는 잔재를 부술순 있으나 없앨수는 없다오.

그리고 그 막대는 잔재 그 자체가 아닌, 잔재 스스로가 자신의 영향력을 넒혀가기 위해 만들어내는 도구와도 같은것.

내가 한것은 그저 '확산'을 조금이나마 막은것 뿐이오"


무겁게 고개를 젓는 첸드릭의 앞에서 다시금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주저앉고 만다.

'크니쿨'이라는 이름이 주는 그 원초적인 두려움.

단지 그 뿐만이 아닌, 숲 속에서 보았던 그 광경이 '확산'되는 것이란 이야기를 듣곤 밀려들어오는 끔찍한 상상에 마치 멀미에 시달리는 것 처럼 머리속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심장이 거칠게 뛰는 소리가 귓가를 아프게 울려온다.


"잔재의 영향이 어떤 형태로 주변에 미치게되는지는 알수없소.

그건, 잔재의 출현을 미리 알아 챌 수 있는 스카치에라에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오.

그렇기에 잔재는 위험한 것이외다.

그 영향에 대해 충분한 대비를 할 수가 없으니.."


그의 말대로라면 잔재가 일으키는 피해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었다.

갈기갈기 찢겨져있던 동물들의 시체가 숲 속 어딘가에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는 건, 그 숲 속에서의 광경 속 찢겨진것이 동물들이 아닌...


"..윽..!"


본능적으로 생각을 차단하려는건지 엄청난 두통이 머리를 두들겨온다.


하고싶지 않은 상상이었다. 절대 있어선 안되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광경.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몸 전체가 식은땀에 흠뻑 젖어들어갈만큼 끔찍한 상상.


"...일단은 지금 내가 추측할 수 있는건, 이미 드러난 사실 그대로 숲 속의 동물들이 아까와 같이 흉포해질거라는 것.

그대가 말한대로 새들이 그런 행동을 띄게되었다는 게 잔재의 영향이라면, 극히 온순한 쿠르가와 새들이 사람을 공격할 정도로 흉포해졌다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으니말이오.

게다가 아까와 같은 동물 시체의 산.

그건 대체 어떻게 생겨난건지 알 수없지만...

그런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잔재의 영향이 마을에 미친다는 게..."


"그만!!"


기껏 멈춰낸 상상이다.

굳이 그걸 입 밖으로 꺼낸 첸드릭은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함일지도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과 비록 지금껏 데면데면해왔더라도 결코 짧지않은 시간을 함께 살아온 나에겐 그건 듣는것만으로도 정신이 피폐해질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소릴 질러버릴만큼.


"....."


먹먹한 침묵이 집 안에 조용히 소용돌이친다.

무거워진 공기가 온몸을 짓누르는것만같은 압박감에 거칠어지는 호흡을 진정시키려 짧게 끊은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어본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허용치를 넘어 나에게 밀쳐들어오는 와중.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후우..."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어머니라면, 내게 어떤 말을 건네주셨을까.

혼자 살아오며 무언가에 막혔을 때 내 스스로에게 건네온 질문을 되뇌어본다.


어린나이에 이 위험한 숲 속에서 나무 벽을 사이에 두곤 맹수들이 집을 둘러쌌을 때,

숲 속에서 마주친 도적들에게서 도망치다 막다른 길에 접어들었을 때,

자다가 눈을 떠보니 강도가 들이밀고있는 칼이 눈 앞에서 번뜩였을 때,


결코 순탄했던 인생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도 범상치 않은 흉흉한 일들을 많이 겪었고, 지금껏 다치긴 했었어도 목숨은 잘 부지하며 살아왔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 내게 주신 가르침으로 인해.

두분이 날 떠나가신 이후에도 내 안에서 찾아낸 부모님의 해답으로 인해.


'크니쿨'이라는 지금까지완 전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두려움을 마주한 지금, 나는 다시금 그 구명줄을 붙잡아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하는거죠"


그리고 그런 나에게 화답한 부모님은 일제히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눈 앞에서 침착히 내려앉은 깊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첸드릭을.


"금새 동요를 가라앉히는군"


"지금도 여전히 혼란스러워요. 심장은 미칠듯이 뛰고있다구요.

하지만 첸드릭 경, 당신은 제게 그 이야기를 하고있는 내내 침착했어요.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는 나와 달리,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테미 군이 그대를 평가한 걸 들었소만...평소엔 정확하던 테미 군이 이번엔 그댈 과소평가한듯 싶소"


잔재가 영향을 끼칠 이곳엔 나에게만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게 아니었다.

첸드릭에게도 자신이 호위를 완수해야할 주군의 영애가, 그리고 본인 휘하의 기사들이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잔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우려는 하고 있을지언정 위험하다고 느끼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는, 노련하고 훌륭한 '기사'다.

아무런 준비없이 위험한 곳에 자신이 모시는 군주를 데리고 들어올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국왕폐하와 공작각하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그저 잔재에 대해 알아만 오도록 날 보냈을리는 없지 않겠소.

만에 하나라도 잔재가 나타났을 경우를 대비해 수도에 주재중인 스카치에라의 사절에게 미리 지원요청을 해둔 상태요.

잔재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왕성에 닿는 즉시 스카치에라에서 이곳으로 잔재를 처리하기 위해 인원을 보낼 수 있게끔"


"..그 사실을, 먼저 말씀해 주실순 없으셨던건가요"


"내 실수군. 미안하오"


뭔가 있다. 속에 품고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지만...

그는 더 이상 무언가를 꺼내놓으려고 하지않았다.

미안하다는 말과함께 입을 굳게 다물 뿐.


..일단은, 마을에 그 저주스러운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만 보자.

지금의 난 그 이외의 다른걸 차분하게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으니까.


"..아무튼, 그렇다면 그들이 올때까지 시간이 오래걸리진 않는건가요?"


"일반인들이 재단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시토피엔스들이 직접 올테니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진 않겠지.

길어야 일이주정도 걸릴거외다"


"그때까진, 공작영애가 어떻게든..."


"아니, 시토리움을 발현하지 못하고계신 아가씨는 일반인과 다를바가 없소.

더군다나 아가씨는 우리의 호위대상. 설령 시토리움을 발현하셨다고 하더라도 아가씨를 전면에 내세울 순 없소이다.


그러니 그때까진 우리 글렌로우드 기사단이 마을의 방어를 도맡겠소.

그러기 위해 데려온 마흔 한명의 기사들이오. 호위로서는 지나치게 많은 수이지"


숲 속에서 쿠르가와 마주친 첸드릭과 오긱스 평기사를 포함한 기사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방심은 했다지만 제압 자체는 손쉽게 해낸 그들이다. 그런 기사들이 약 서른명가량 더 있다는 거니까..


그래, 그들이라면...


"지금 확인된것과는 다른 잔재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소.

내일은 날이 밝은사이에 숲 속을 둘러보리다. 그대는 마을에...아니, 로번 영지관리관에게만 이 일을 알려주시오"


"? 어째서죠? 마을 사람들에게 전부 알려야..."


"지금 마을은 축제기간. 게다가 마을에는 상회의 사람들까지 있어 번잡하오.

이럴때 마을 주변에 크니쿨의 잔재가 나타났다?

믿을지 아닐지를 떠나서 그 이름이 나온 순간 마을은 큰 혼란에 빠질것이오.

그에 따른 소요가 불필요한 피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고"


"...아"


"그 위협에 대해 명확히 파악되지 않은 지금 섣불리 혼란을 일으킬수는 없소이다.

마을의 방비는 글렌로우드 기사단에서 최대한 철저히 맡고있을테니 마을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지 않는 선에서 유사시에 마을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최적의 인물에게만 이 일을 알리는게 제일 효과적일것이오"


그렇다면, 나도 떠오르는 사람은 조합장님 단 한분이었다.

데릭 아저씨에게도 이 사실을 알린다면야 든든하긴 하겠지만...만에 하나라도 이야기가 새어나가 혼란을 일으킬만한 위험은 이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 수록 낮아질테니까.


"내일..바로 마을에 가서 조합장님께 말씀드려야 겠군요"


"나도 내일 아가씨께 이 일을 보고드리고 바로 공작가로 연락을 취하도록 하겠소"


"...."


종류를 알 수 없는 위협.

내가 겪은것보다 더욱 엄청난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렇게 생각하고 대비해야 할 이 순간에 눈 앞에서 안광을 번뜩이는 노년의 기사가 내뿜는 위압감은 도리어 내게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첸드릭과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기사들이 마을을 지켜준다면 일단은 안심할 수 있으리라.

마을을 지키겠다며 공작영애에게 큰소리 친 나로선 낯 뜨거워지지만...

누군가를 지켜오며 그것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온, 무력이라는 것을 제일의 가치 중 하나로 여기는 그들이라면 미력한 나 하나의 힘보다도 더욱 효과적으로 마을을 잘 지켜줄 수 있을테니까.

그 각오가 대단한 것이더라도, 그만큼을 해낼 수 없는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숲 속에서의 광경을 앞에두고 치밀어오르는 역겨움에 식은땀을 흘리던 나 혼자로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마을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는 것 조차도 위험할 수 있는 지금으로선 그들이 있다는게 다행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있다고 여기는 나지만...그래도 그 저주스러운 이름 앞에선 역부족일테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건 그렇고...숲 속에서 잔재가 발견되었으니 더이상 이곳에 아가씨를 계시게할 수는 없겠군"


"..그렇네요. 이 공터가 안전하다곤 해도...아"


문득, 지금이 잠에 빠져들 시간을 한참이나 지났다는 사실에 놀라고만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진 모르겠지만..키니가 지금 이 순간에도 날 올려다보고 있다는건...


"키니, 오늘은?"


"..미양"


고개를 젓는 녀석을 보니 오늘은 아직 안해뒀나보다.

그러고보니, 아침에 찾아오던 새들도 잔재의 영향이라면...혹시?


"그래..지금이라도 가자 키니. 지금까지 이 공터에 새들이 다가오지 못한 게 네 덕분이라면, 아마도 그 잔재의 영향이라는 건 네가 효과적이라는 이야기일지도 모르니까"


"미양. 먕"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에 다가가 앞발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 키니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선다.


"무슨일이오?"


일어선 날 바라보는 첸드릭의 눈빛엔 의문스러운 빛이 감돌고있었다.

대화 도중 갑자기 일어난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만약 이 공터를 찾아오던 새들도 잔재의 영향이라면...키니가 도움이 될수도 있어요"


"흠?"


"일단 따라오시겠어요?"


말보단 보여주는게 낫겠지.

먼저 키니를 따라 문을 나선 내 뒤를 첸드릭이 따라나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뒤에서부터 물씬 풍겨나오며 날 감싸는 그 거대한 기세에 그가 쿠르가를 단칼에 갈라내던 모습을 떠올리자 불안과 염려로 쪼그라들어있던 심장이 그 억센 손아귀에서 풀려나 심호흡하듯 잔잔한 박동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휙휙 손바닥 뒤집어지듯 바뀌는 내 감정에 슬쩍 답답함도 느껴진다.

아니, 이건 할 수 있는게 없단 생각에 답답해진걸지도.


혹시라도 키니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조금의 위안은 받을 수 있으련만..


어두운 밤 하늘, 공터를 둘러싼 나무들 사이로 둥그렇게 보이는 달이 환하게 공터를 비춰오고있었다.


"응? 부단장님 어디 가시는 길이십니까"


숙소 앞에 서있던 세명의 기사들 중 횃불을 들지 않은 중년의 기사가 몸을 돌리며 첸드릭에게 다가온다.


"...."


내 옆에 다가와 나란히 선 첸드릭은 그의 질문엔 답도 않은 채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나오라고 해서 나온것 뿐이니, 무엇때문에 나온지도 내가 설명해 줘야 하겠지.


"잠깐 할일이 있어서요"


"?..부단장님과 말씀이십니까?"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와 여전히 미동도없는 얼굴로 날 내려다보는 커다란 덩치의 노기사를 잠시 번갈아 바라보다 키니가 뛰어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역시 이건, 봐야안다.


"..잠깐 다녀오겠네. 자네들은 계속해서 경계에 힘써주게"


"아..예 부단장님. 경계 임무에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의문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그 중년의 기사에게 안심하라는 듯 손짓을 보낸 첸드릭은 그를 있던 자리로 되돌려보내곤 내 뒤를 따라 걸어오기 시작했다.


공터 이곳저곳에 쳐져있는 텐트들과 그 사이사이에 쌓여있는 나무상자들이 늘어져있는 곳을 가로질러 숲으로 다가간다.

숲과 공터의 경계에서 움직이는 횃불들이 조금씩 커져가다 그 아래 횃불을 들고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올때 쯤,


"미야아"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선 키니가 고개를 뒤로돌려 붉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올라오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니 항상해오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릴 수 밖에 없겠지.

자세를 숙이며 내민 내 손바닥 위로 뛰어올라온 키니가 순식간에 어깨까지 올라타 주저앉으며 숲으로 시선을 옮긴다.


"부단장님과 루시안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살랑이는 꼬리가 뒤통수를 간질이는 느낌에 고개를 두어번 흔들며 허리를 일으키는 내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와닿는다.

순찰중이었는지 숲과 공터의 경계를 따라 걸어오던 오벤 상등기사가 노랗게 일렁거리는 불빛을 얼굴에 드리우며 경례자세를 취하고있었다.


"숲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숲에..말씀이십니까?"


의아하겠지. 아까 숲에서 나와놓곤 다시 숲에 들어간다니.


"잃어버리신 물건이라도?"


"아뇨, 해야할 일이 있어서요"


"해야할 일이시라면...아"


그의 시선이 내 어깨위에서 졸린 듯 앞발을 들어 눈을 부비는 키니를 향한다.


"어제 저녁에도 그 어깨위에 있는 동물이 숲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하던데...그겁니까?"


"무얼하는 지 보셨나요?"


"일단은 루시안 님과 관련되어있는 동물이기에 기사 한명을 대동하곤 따라가보았었습니다.

무얼하는지는...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만"


"그럴거에요.

설명하자면 길어지니까...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기사를 붙여드리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기사야..."


이미 붙어있는걸.

흘깃, 내 시선이 비어있는 어깨 너머를 향하는 걸 본 오벤 상등기사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비켜선다.


"다녀오십시오"


경례자세를 취하는 오벤 상등기사에게 고개를 꾸벅인 나는 새카만 숲의 입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달의 푸른 빛이 주는 따스한 느낌이 사라진 탓인지, 아니면 칠흙같이 어두운 이 공간 어딘가에 아까와 같은 광경이 펼쳐져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 탓인지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아났지만 어차피 그다지 깊숙히 들어가지도 않을테고 등 뒤에는 첸드릭도 붙어있으니 심호흡을 하며 빨라진 박동을 진정시켜본다.


몰랐을땐 상관없었지만, 그 광경을 보고나니 숲 속의 어둠이 왠지 으스스하게 피부에 달라붙는 냉기를 띄고있는 듯했다.


"...."


빠직, 불과 반걸음 떨어진 뒤편에서 들려온 나뭇가지 밟는 소리.

변해가는 내 기색을 알아채고 의도적으로 낸건지, 그저 내딛는 발 아래에 단순히 그 나뭇가지가 떨어져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택에 나를 잠식해 들어가던 은근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씻은듯이 사라져버린다.


키니가 그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감사의 표시로 차라도 한잔 대접해야겠다.


"먀아~"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어두운 숲 속을 불빛하나 없이 걸어들어가길 잠시.

눈이 어두운 주변에 익숙해져 사물의 분간이 어느정도는 원활해졌을 때 쯤 어깨위에 앉아있던 키니가 갑자기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쯤인가?


"횃불을 안가지고와서 위치가 맞는지 모르겠네...여기 맞니?"


"먕, 먀앙"


고개를 끄덕인 키니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땅에 뛰어내리자마자 가까운 나무를 타 올라간다.


그리곤, 입을 한껏.


"미양!"


콰득. 키니의 이빨이 힘차게 나무에 박혀들며 파육음을 울려낸다.


"..나무껍질을 채취하기라도 하는것이오?"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던 첸드릭의 낮은 목소리에 그를 흘깃 바라본 키니가 다시금 입을 벌려 나무에서 이빨을 빼낸다.


"미야아"


콰득, 콱.


그리고 두어번 같은 높이에서 다른 위치에 똑같이 이빨을 박아넣는 키니.


"키니는 육식성이라 나무껍질은 안먹어요. 쟤 입맛이 꽤나 까다로운 녀석이라서"


"먀아아~"


맞다는 듯 나무에서 내려와 다시 다른 나무로 뛰어올라가는 키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바삐 움직이는 녀석의 모습을 시선만으로 따라가던 첸드릭은 아무리 봐도 키니가 뭘 하는건지 모르겠다는 듯 그 시선에 의아함을 담아내고있었다.


"그렇다면..저건 무얼하는 것이오?

동물들의 이갈이라던지? 그렇다기엔 너무나도 과격한 방법이오만..."


"이제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녀석인걸요. 이갈이 할 때는 지났죠.

그렇네요...말하자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걸까요?"


"저게, 말이오?"


콰득, 콱, 콰직.

나무에 두세번 이빨을 박아넣곤 다시 다른 나무를 향해 부산스레 움직이는 키니의 모습은 확연히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를 하고있었다.

나무에 자신의 이빨 모양을 새기는 거니까.


"키니는 숲 속에 자주 들어가요. 게다가 어찌된일인지 공터를 둘러싼 숲 일대 어느정도를 영역싸움에서 이기곤 뺏어낸것 같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이 숲 속의 동물들은 키니를 기피해요"


심심풀이로 알을 낳는 새들의 둥지에서 알을 빼다가 숨겨놓는다던지 맹수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위협하며 따라다닌다던지...


사람이라면 굉장히 미친녀석 취급을 받을테지만, 본능이 이성을 우선하는 동물들에겐 매번 자신의 영역을 거침없이 들어와 제 마음껏 휘젓고 가는 키니가 적잖이 무서울거다.

그렇기에 숲에 들어갈땐 항상 키니와 함께해왔다. 그러면 야생동물들에게 덮쳐질 일은 거의 희박했으니까.

싸움도 잘하는지, 저번엔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제 몸보다 몇십배는 클만한 헥켈 타이거 두마리와 혼자서 싸우곤 그 둘을 숲 저 멀리로 쫓아내버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녀석이 흔적을 남긴곳엔 동물들이 우선 오질 않는다.


"..그런거였군. 내게 보여주고 싶다는게 이거였소?"


"네. 무엇보다 본능을 우선시하며 자기보다 상위 포식자를 기피하는 숲 속의 야생동물들에게 근본적인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해서요"


그간 공터를 찾아와 공터와 숲의 경계를 넘어 들어온 새들은 모두 키니가 처리해왔으니까.

예전부터 공터를 찾아온 새들은 키니를 무서워했지만, 문득 떠오른 기억 속에 삼일전 아침 검게 변한 새들마저도 키니에게 영향을 받는 것을 보았기에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었더랬다.


"헌데, 그 넓은 공터를 이런식으로 일일이 흔적을 만들어 감싸온것이오?"


"빙 둘러내기엔 무리가있죠.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구요"


일고여덟그루의 나무에 모두 이빨자국을 새겨넣은 키니가 다시 내게 놀아와 발치에 앉아 빤히 올려다본다.


"공터에서 얼마 떨어지지않은, 갖은 동물들이 왕래하는 이곳에 흔적을 남겨놓으면 이 이상 더 다가오지 않아요.

공터에 자신들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고, 그 강한 개체가 공터로부터 숲 속 어느정도까지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다는 표시가 되니까요"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이곳을 지나가는건 아닐거다.

내가 그 만큼을 파악하고있질 못하니까.

하지만 이곳을 지나친 온갖 동물들은 자신의 말이 통하는 동족들에게 헐레벌떡 달려가 이렇게 말할것이다.


'저 공터 안쪽에 살고있는 엄청 무서운 녀석이 숲 속까지 밀고 들어와있어! 그것도 흔적을 보아하니 한두마리가 아냐!

다들 다가가지 않게 조심해!'라고.


나나 사람들이 '크니쿨'을 무서워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진 몰라도 비슷한 맥락의 공포심이 그 동물들 사이로 퍼져나가 공터와 그 주변엔 동물들이 다가오지 않게 되는거다.

새들도, 마찬가지일테고.


"흐음..그 새들이 잔재의 영향때문에 그리된것이라 한다면 이런 흔적이 야생동물들의 잃어가는 본연의 특성과 그 위에 덧씌워지는 흉포함을 이길정도로 강렬하다는 말이구려"


"그럴거에요. 아니, 충분히 그래요.

키니가 이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그 다음날 아침은 언제나 조용했으니까요.

저녁이 되면 키니의 흔적이 좀 옅어지다 사라지는 것 같기에 매일 저녁 해야한다는 단점이 있긴하지만"


"흠..."


생각에 잠겨드는 첸드릭은 놔두고 입이 얼얼한지 연신 앞발로 입가를 쓰다듬는 키니를 안아든다.

고생한 댓가,라고 하기엔 좀 누추하지만 머리는 한껏 쓰다듬어줄게.


"미야아~...앙..."


늘어지게 기분좋은 목소리를 내는걸 보니 이걸로 충분한것같네.


"..효과는,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죠?"


"다만 마을의 규모를 방비하기 위해선 그 동...키니라고했소?

키니 혼자선 매우 힘들것 같소만"


"당연한거죠. 키니가 혼자힘으로 마을 주변을 하룻밤만에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길수는 없을테니까요.

다만 그저 키니가 당신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은거에요"


"우리들을?"


모든걸 키니에게 떠맡길수도 없는데다,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리고 굳이 그래야 하지도 않다.


마을을 지키겠다는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없는 나 대신, 키니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만약 그 영향이 마을까지 퍼질 가능성을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났을 때 무엇이 가장 최선인지 상상해본다면..

그대의 말도 일리가 있소.


만에하나 흉폭해진 숲 속의 수많은 동물들이 마을로 짓쳐 들어오게 된다면 그 중 일부분이라도 키니가 막아주었을 때 우리들의 부담도 상당부분 줄어들테니 말이오"


"...다행이네요"


"미야아아"


차마 고개를 끄덕이는 첸드릭을 계속 마주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이니, 품에 안겨있던 키니의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다.

어둠속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붉은 빛의 자그마한 눈동자 속에 담긴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심하라는 듯 가슴께를 앞발로 부드럽게 문지르는 키니의 그 행동엔 나도모르게 눈물이 날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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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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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5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90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8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5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10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7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6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3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6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5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2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9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3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8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6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8 0 24쪽
»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3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9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1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8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8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3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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