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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님의 서재입니다.

스카치에라의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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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최근연재일 :
2018.02.10 20:3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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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1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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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DUMMY

"에밀리, 너무 먼곳까진 가지 말거라!"


"알았어요 아버지~"


어릴적, 난 아버지의 속을 굉장히 썩혔던 아이였다.

천방지축에, 밖에서 다쳐오기 일쑤에, 다른 여자아이들 처럼 꽃을 본다던지 조용히 방에서 책을 읽는다던지하는 취미보단 무조건 바깥에 나가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었으니까.

물론 여자아이라면 모두가 그래야한다는 건 아니다.

여자와 남자는 노는것도 달라야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내가 귀족가, 그것도 왕국에서 두번째로 꼽히는 권력가의 무남독녀라는 걸 제외한다면.


"헤헷, 오늘은 토끼를 잡을거야~"


그날도 아버지의 조심하라는 얘기는 금방 머리속에서 지워버린 채 사냥을 나온 행렬에서 떨어져 토끼를 찾아 숲 속을 파고들어가고 있었으니 말 다했지.


그때는 그게 '하면 안되는 일'이란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위험할거란 생각조차 하질 못했던거다.


"..응? 그런데...여긴 어디야?"


숲 속은 제 아무리 해가 중천에 떠있을 시간이더라도 위험한 곳이라는 걸 이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나서 학교에 들어가 억지로 읽기 싫은 책을 읽었을 때 알게된 사실이니까.


아니, 굳이 말하자면 이때 몸으로 겪어서 알게 되었다는게 더 알맞을지도.


"..히잉...아빠....첸드릭 아저씨이..."


어둑어둑한 숲 속을 하염없이 헤매며 시큰해져오는 눈가에 눈물을 가득 매달곤 대답없는 사람들의 이름만을 부르길 한동안.

바스락거리는 숲 속의 수풀이 쓸리며 나는 소리에 하나하나 움찔거리던 내 앞으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건, 입가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맹수들의 무리였다.


"꺄..?!"


비명이나 제대로 지를 새가 있었을까?

그저 빨리 도망쳐야한다는 본능만이 온 몸을 움직였었으니까.

물론 이때도 맹수들에게 등을 보이면 안된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크와앙!!"


"꺄아악!"


그렇게 뒤에서 덮쳐오는 맹수들에게서 크고작은 생채기를 입으며 도망치길 얼마나였을까.

눈 앞에 나타난 빛을 향해 아직은 싱싱했던 젖먹던 힘까지 짜내 달려간 내 눈 앞으로 펼쳐진 건 끝을 모르고 펼쳐진 푸르른 녹음의 바다였다.


저 멀리 낭떠러지 아래.


"아..어어.."


"..크르르.."


"히이..?!"


타다닥, 깎아지른 경사에서 돌이 떨어져내리는 섬칫한 소리에 뒷걸음질 친 내 등을 다시 절벽을 향해 밀어낸건 숲 속에서 그 눈동자를 흉흉하게 빛내는 수많은 맹수의 무리들.


앞은 낭떠러지.

뒤는 흉포한 맹수들.


도망갈 곳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든 놓지않고 들고온 손 안의 작은 활은 이 상황에선 아무 도움도 될 수 없어보였고, 실제로 그 시위는 언제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끊어진 채 힘없이 늘어져있었다.


아무런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죽음을 선택하느냐, 죽임을 당하느냐 단 두가지 뿐.


그 어느것도 택하고싶지 않았던, 하지만 그 길밖에 없었던 그 참담함에 그저 눈물만 흘리고있던 나는,


"...날, 잡아"


"흐끅!..우응..? 꺄..!"


잡으라면서 잡아당기는 누군가의 강한 힘에 끌려가며,


"손, 놓지마. 절대"


아직 잡지도 않았건만, 놓지 말라는 당부의 말만을 남기고 주저없이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지는 여자아이의 품에서 그저 비명만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아가씨의 비명소리는 맑지만, 듣고싶지는 않군요"


"..아?"


달빛을 막아서며 시야를 가리던 커다란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니르님의 집에 계셔야할 아가씨의 비명소리가 가까이서 들린탓에 얼마나 놀란 줄 아십니까?"


쿠웅!


기묘하게 꺾여져 내려오던 궤적보다도 더욱 기묘하게, 튕겨져나가듯 날아간 덩어리는 땅 위로 떨어져내리며 굴러간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걱정했는데"


"...테미!!!"


가벼운 몸놀림으로 땅 위에 착지한 여성은 고개를 돌리며 어깨너머로 싱긋 미소를 지어보낸다.


평소에 그토록 웃지 않는 테미의 그 미소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너무나도 듬직해서,


나도모르게 그만 참았던 눈물이 터지듯 흘러나와버렸다.


"이런..공주님의 위기를 구한 기사에게 키스는 주시지 못할망정 눈물이라니요"


"...키스는 나중에 얼마든지 줄게!"


"그 말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입에 담는 테미에게 그쯤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다며 농담으로 화답해보지만,


어째 표정이 진지해진다.


진담은 아니겠지...?


"애시당초...제가 그럴 자격이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아가씨의 옆을 떨어지지 않았어야 했는데"


밤하늘을 바라보며 더 떨어져내리는 것이 있는지 확인하던 테미의 나직한 목소리가 여전히 품안에 니르를 안은 채 무릎꿇고있는 내 위로 무거이 떨어져내린다.


"...으응 아냐 테미.

네가 어째서 나간건지 나도 알고 있으니까"


내가 피난할 곳을 확인하기 위해서겠지.

같이 움직이면 더 위험할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게다가 오래 걸리지 않으려고도 했을테고.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것과 집이 무너져내린것은 계산 밖의 일이었을테니..응, 별 수 없었을거야.


"허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래도 넌 나를 지켜주잖아?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어도, 내가 네 말을 듣지 않아도"


언제나 그랬듯.

그 어릴적 낭떠러지에서 부터.


"물론 그게 본의는 아니지만요.

...우연히 이 주변에 있었다는게 그저 다행스러울 따름입니다"


"응? 이 주변에?"


"니르님의 집에 저 물체가 떨어져내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서둘러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습격자를 만나 싸우던 도중, 아가씨의 비명소리를 들었죠"


아, 그럼 내가 들었던 쇠와 쇠가 마주치는 소리는 테미와 습격자가 싸우는 소리였던건가?

....응?


"저기, 습격자...라니?"


"그보다 아가씨, 몸에 그 상처들은 대체 뭡니까?!"


내가 꺼낸 의문은 귓가에도 닿지 않는다는 듯 다급히 무릎을 꿇고 내 몸 이곳저곳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테미는 요 최근엔 본적 없는 매우 당황한 얼굴색을 띄고있었다.


아, 아! 거기, 거기 아파!


"저기, 테미 아파.."


"...흐읍"


"..지금 비명지르려던 거야?"


"아닙니다"


"맞는것..."


"..아닙니다"


"꺄아아악?!! 아파!! 아파 테미!!!"


거기 쓸린데란 말야! 겉으론 별거 아닌것 같아보여도 쓰라리다구!!


"대체, 대체...이 상처는 다 뭡니까 아가씨..."


애달픈 눈으로 내 몸의 상처를 하나하나 눈으로 쓰다듬어가는 테미의 목소리엔 슬픔이 가득 차있었다.


...방금전까지 상처를 슬쩍 누르던건 누구였더라.


"어쩌다가 이런 상처를 입게되신겁니까?"


"아니 뭐...어쩌다가?"


"그러니까 어쩌다가요"


"그러니까 어쩌다가"


"...."


"....알았어! 알았다구!"


그 손 내려놔! 거긴 진짜 아프니까 만지지마!


"니르랑 도망치다보니...여기저기 쓸리고 그랬지 뭐.."


"이 할퀸 자국은?"


"아, 늑대가 나타났었어.

까맣고 커다란 회색늑대"


"..회색 늑대인데 왜 까만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저기 있으니까요"


"응?"


내게서 고개를 돌리며 어디론가 시선을 향하는 테미의 눈길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테미의 말 그대로 그곳엔 날 뒤쫒던 회색 늑대와 똑같이 생긴 늑대들의 무리가 있었다.


'무리'다. 한두마리가 아닌 '무리'.


아, 저거 무리.


"...기절할것 같아..."


"아직 참아주시겠습니까? 이곳에서 나가려면 적어도 아가씨께서 정신만큼은 꽉 붙들고 계셔야하니까요"


"그거야 뭐...지금까지 해온거니까 상관없는데.."


여기까지 도망쳐 오면서 날 버티게 해온건 정신력 하나였으니까.

니르를 지켜야한다는 그 일념 딱 하나.

물론 지금은 눈 앞에 든든한 방패이자 강력한 무기나 다름없는 테미가 있으니 마음이 놓이는 터라 긴장도 풀어질것 같지만...


[크르르...]


[크롹? 크롸라라라!]


[끼룩? 끼롸롹]


[쿠르와아아!!]


저걸 보면 달아나던 긴장도 다시 허겁지겁 돌아올 판인데 뭘.


"세상에...저게 대체 다 뭐야..."


회색 늑대들의 무리는 약과다.


분명 초식동물이지만 어째서인지 덩치도 커진데다 이빨이 크고 날카롭게 뻗어나온 쿠르가,

성인 남성의 두배쯤일까? 커다란 덩치를 하곤 그 손 끝에 날카로운 손톱을 번뜩이는 원숭이,

애초에 큰 몸집이 더욱 커보이게끔하는 흉포한 기세가 따갑게 흘러나오는 곰,

외관과는 달리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살기를 사방으로 퍼트려내는 커다란 토끼,

산지의 최고 포식자라는 온 몸이 근육질로 뒤덮인 앞발이 두꺼운 카곤,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 당췌 이해할 수 없는 초원의 맹수인 헥셀 타이거까지..


그것들이 모두 '무리'를 이루며 땅에 떨어진 덩어리 안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숲 속에 있어야할 동물들이 단체로 축제 나들이라도 온것 같군요"


"정작 오늘 축제는 끝났으니 내일 날이 밝았을 때 다시 와줬음 하는데..."


"얼굴들을 보니 축제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미처 듣지 못했나봅니다"


"손님들의 불만이 너무 매서운거 아냐?

목숨마저 위협하는건 너무하잖아?"


"...아가씨께서도 제 농담에 어울리시는 걸 보니 지금 꽤나 심란하신가보군요"


"..그걸 말이라구...지금 무엇보다 심란한건,"


품 안에 껴안은 니르를 내려다본다.


아무것도 비추고있지 않은 듯 휑한 니르의 눈동자는 시점을 잃은 채 그저 멍하니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 아래에서 아직도 꾸물꾸물 기분나쁘게 일렁이는 검은 안개를.


"...그것은?"


"이 안에..루시안님이 있어"


"..루시안님이? 어째서..?"


"나도 궁금해. 어째서 루시안님이 여기 계시는 건지.

어째서 이 검은 천으로 몸을 감싼 남자와 싸우다가 이런 지경까지 온건지..."


"..습격자와 마주쳤나보군요"


테미가 말했던 습격자.

그 습격자의 정체가 눈 아래에서 가슴에 칼을 박아넣고있는 남자라면...


"이들은, 대체 뭐야? 어째서 마을 사람들을...루시안님을...?"


"저도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을 외곽에서 방어선을 구축한 글렌로우드 기사단과 합류하면 무언가의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지금 당장은 어려울듯 하군요"


마을 사람들을 덮쳐온건 이성을 잃은 동물들만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리고 동물들이 마을을 덮쳐온 이 때 또다른 습격자로서 마을에 나타났다면...


이 둘은 연관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일단은 이 무지막지한 살기를 어떻게든 뚫어내고 도망칠 방법을 찾아야겠군요"


"루시안님은? 이대로 두고?"


"....어떻게 하시고 싶으십니까?"


전방을 주시하며 경계하던 테미가 그 시선을 내게로 옮긴다.

철저히 내 의향만을 물어오는 그 시선에 나는,


"말이라고해 테미? 루시안님을 이대로 두고갈 순 없어"


"어떤 결정을 내리실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결정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계신지 그게 궁금했을 뿐입니다"


책임질 수 있느냔 물음.

내 이야기를 들은 테미가 루시안님이 지금도 살아있을거라고 생각하냐는 그 물음.

이미 늦은 루시안님과, 아직 늦지 않은 니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게 낫지 않냐는 그 물음.


둘 다 그 팔안에 끌어안고 가기엔 너무나도 힘에 겹지 않겠느냐는...따끔한 충고.


"...오...빠아아...."


금방이라도 끊어질듯 미약한 숨소리에 섞여 흘러나온 그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생겨난 고민은 금세 씻은듯 사라지고 만다.


"..의지해도 될까 테미?"


"명이시라면"


"...응. 명령, 이야"


"명을 받들겠습니다. 경애하는 나의 주인"


테미의 몸에서 순간 퍼져나오는 엄청난 기세.

피부를 짜르르 울리는 그 날카로운 기세에 하나둘씩 이쪽을 바라보며 낮은 울림으로 그르렁거리던 새까만 동물들이 일제히 그 시선을 밑으로 깔아버린다.


평소엔 가둬두었던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거친 살기.


중앙 광장 안을 맴돌던 바람에 찰랑이는 검은 단발아래에서 번뜩이는 그 두 눈동자는 인간이 담아낼 수 없는 살기를 담아 쏘아내고 있었다.


명령이라는 단어를, 그런 강제적인 힘을 테미를 향해 행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 테미는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

하지만 해야만 한다면,

선택해야할 기로에 선다면,

그 선택의 기로에서 테미라는 존재가 강력한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다.

테미는 내 선택에 항상 최고의 결과만을 가져다 주니까.


"...?"


허나 나도, 심지어 테미마저도 예상하지 못했던게 있다면,


눈 앞의 동물들이 단 한마리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저 그 자리에 모인채로 사방에 살기만을 흩뿌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


"..그냥...이대로 살짝 비켜나서 걸어나가도 되는 거 아닐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테미는 발치에 있던 돌을 걷어차 눈 앞의 새까만 동물들에게 보낸다.


"?! 테, 테미?!...응?"


무, 무슨 짓....어라?


"..뭐, 뭐야?"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눈 앞의 동물들 중 그 누구도.

심지어 몸에 날아와 맞은 그 돌에도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질 않고 그저 낮은 울음소리만 흘려내고있는 그 모습은 일견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살기의 성질은 분명 사냥을 위한 기세를 띄고있는데..어째서 움직이지 않는지 알 수 없군요"


나직히 깔리는 테미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


움직이지 않는다면 좋은거 아닌가?

지금 이 때 루시안님과 니르를 데리고 도망치면...


"?! 흡!"


"꺄앗?!"


차앙! 쇠가 맞부딪히는 찢어지는 소리가 갑작스레 머리 위로 떨어져내린다.


"합!"


쉬익! 차캉!


"?!!"


눈 깜빡할 사이에, 눈치채지도 못할 사이에 벌어진 머리위에서의 공방.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한쪽다리를 휘두른 채로 들고있는 테미와 동물들 옆으로 착지한 검은 인영을 눈에 담고 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뭐, 뭐야?! 습격?!"


"말씀드렸던 습격자들입니다. 한두명이 아닌건 알았지만..."


경계의 시선으로 갑자기 나타난 습격자를 바라보던 테미는 이내 시선을 들고있던 자신의 다리 끝 부츠로 옮기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에 오기 바로 직전 마주쳤던 습격자들도 그렇고 저자도 그렇고...제 부츠에 박혀있는 날과 징들이 시토리움인 이상, 마주친 검에 흠집하나 생기지 않는것으로 보아 저들이 들고있는 무기 또한 시토리움으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시토리움으로...무기를?"


"반응형으로 정제된 무기는 아닌듯합니다.

그렇다기엔 가벼우니까요"


다리를 내리며 자세를 낮추는 테미의 시선 끝에서 습격자는 동물들을 등진 채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시토리움으로 만든 '무기'.

애시당초 그것은 국가 단위로 관리해야하는 귀중한 금속인 '시토리움'이 사용된 이상 아무나 들고다닐 수 있을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대륙 어느 나라를 봐도 그건 다르지 않다.


시토리움이란 광물을 '무기'로서 가공토록 허락하는건 오직 '스카치에라'라는 대륙 내에서 국가를 아우르며 초월한 단체뿐이니까.


그런 무기를 습격자들이 지니고있다?

그 말인즉슨...


"..이거 일이 꽤나 복잡하게 돌아가고있군요"


눈초리를 더욱 사납게 세우는 테미의 살기가 오직 눈 앞의 습격자만을 향해 쏘아져나간다.

그 무지막지한 살기에 순간 몸을 떤 습격자는 곧 정신을 추스리려는 듯 손에 든 검을 검집으로 집어..넣...?


"...뭐하는.."


삐이이익-!!!


검을 집어넣곤 품 안으로 손을 넣는 그의 행동에 순간 경계도를 최고점까지 올린 테미는 이내 습격자가 꺼내든 것을 보곤 두 눈을 살짝 치켜뜬다.


습격자의 손에 들린 호루라기.

망설임 없이 호루라기를 입에 가져간 눈 앞의 습격자가 퍼트려낸 뾰족하고 커다란 소리는 무언가를 부르는 듯 했다.


실제로 그건 부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리라.

눈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모습처럼.


탁.


"?! 더, 더 있어?!"


타닥, 탁. 타닷!


사방에서 호루라기를 입에 문 습격자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검은 인영들.

중앙광장을 둘러싸 불타고 있는 건물 사이사이에서 말 그대로 튀어져나온 그들은 동물들 사이사이에 내려서곤 아무런 행동없이 그저 못박힌듯 서있었다.


그들이 둘러맨 온몸의 검은 천 때문인지 그들의 모습은 새까만 무언가로 일렁거리는 동물들과 동화되어 존재감을 희미하게 지워가고 있었다.


즉, 그들은 땅에 내려선 채 전혀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동물들과 같이.


"약 서른 하나..꽤나 많은 수 군요"


곳곳에서 날아들어 동물들 사이사이에 떨어져내리는 검은 인영들을 시선으로 바삐 쫓던 테미의 말에 다시금 그들을 주의깊게 바라본다.


허나, 알 수 없었다.

그 짦은 사이에 그들은 동물들에 녹아들어있었으니까.


"..어쩌지? 상대해야할 수가 더 늘었는데.."


"괜찮습니다. 수가 늘어난건 저들 뿐만이 아니니까요"


"응?"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라, 마을 중앙광장에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건...루디 아주머니? 그리고 기사단들이랑...첸드릭 경에 로번 영지관리관...비슈트 수석기사까지?"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곤 손에 얇은 세검을 든 채로 온몸에서 살기를 풍겨내는 루디 아주머니,

그녀의 뒤를 따라 하얀 갑옷을 몸에 두른 채 마을의 자경단원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나타난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기사들,

몸에 두른 갑옷 이곳저곳에 피를 묻힌 첸드릭 경과 그에 질세라 온통 어디선가 튄 피로 젖어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었던 로번 리가튼 영지관리관,

곳곳에서 두세명씩 나타나는 기사들 중 눈에 띄는 멋들어진 콧수염이 그을린 비슈트 수석기사까지...


마치 날아든 습격자들을 쫓아온 듯 매서운 기세로 중앙 광장 안쪽을 향해 나타난 그들은 곧 눈 앞에 펼쳐진 동물들의 엄청난 수와 그 사이로 녹아든 습격자들의 모습을 보곤 아연실색하고만다.


"..전원 전투 준비!"


"빌어먹을 놈들! 그 안에 숨어있다고 무사할 줄 알아! 그 괴물자식들이랑 통채로 같이 썰어주겠어!!!"


"첸드릭 경, 남는 검이 있다면 좀 빌려주시겠소?"


"기꺼이"


허나, 그들의 추격 의지는 그렇게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멈칫하며 발을 멈춘건 단순히 놀라서만이 아닌, 눈 앞의 갑자기 나타난 적들까지 한번에 처치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을 뿐.


그 와중에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린 루디 아주머니의 기백에 순간 품 안의 니르가 움찔 몸을 떤 것 같지만 아마 잘못 느낀거겠지.


...니르야 그저 네가 잘못 들은거야 그렇게 생각하렴.


"원군의 도착입니다.

그리고 반격의 시작이기도 하죠"


수세에 몰렸던 지금까지,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제 발로 한곳으로 모여든 습격자들과 마을 안으로 떨어지던 덩어리 안에서 튀어나온 동물들, 아니 괴물들.


자연스레 그들을 포위한 형세가 된 자경단원들과 기사단들의 사기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 눈에도 선명히 보일만큼 확실히 느껴졌다.


"저들이 누구인지는, 잡아서 확인해보면 충분할겁니다.

물론...살아남은 자들이 있다면"


그리고 이내 서로의 존재를 눈치 챈 기사들과 자경단원들, 그리고 테미는 일제히 눈 앞의 적들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나간다.


"아가씨께선, 루시안님의 상태를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렇게 가려져있어선 어떤 상태인지 모르니 호송마저 어려울 듯 하군요"


"...응!"


눈 앞에서 커다란 방패이자 날카로운 검이 움직인다.

마을 광장 곳곳에서도 일제히.


그들의 기세는 어느때보다도 높아서, 단지 흘러나오는 그 기세만으로도 눈 앞의 적들을 집어 삼켜버릴 수 있을 듯 했다.

그렇게 그들은 한걸음, 그리고 또 한걸음 나아간다.


그 손에 무기를 굳게 쥐고.

그저 가만히 서있을 뿐인, 중앙 광장 한 가운데에 모인 적들을 향해.


"....?"


아니, 일부는 어느샌가 익숙한 것을 손에 빼들고 자신의 가슴을 꿰뚫는 불가해한 행동을 하는 습격자들을 향해.


그리고 순간의 정적.


[-------]


그건 모두가 입을 다문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불이 타는 소리는 계속 들려야할테니까.

그건 일부러 소리를 지운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그런건 할 수 없을테니까.


그 정적은, 지금껏 마을을 뒤덮은 모든 소리를 아득히 뛰어넘은 굉음이 퍼져나가기 전 펴는 기지개에게 먹혔을 뿐이었다.


[---끄이야아아아아아아!!!!!]


""""----?!!!?!""""


그곳에 존재하는 모두에게 덮쳐온 굉음.





루디는 눈 앞에 나타난 것을 보곤 아무런 말도,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아...?"


그건, 살아생전 수많은 험지를 전전하곤 무수히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보아온 그녀로서도 처음 보는,


그런 종류의 '끔찍한 것'.





"저건...?"


"서...설마..."


첸드릭과 로번은 저것이 무엇인지 순간 같은 것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지금 세대와는 달리 한창 '그것'에 대한 공포가 더욱 만연했던 시절을 겪어온 그들에게 있어선 눈 앞의 저것을 보곤 그 이름을 떠올린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저주의 이름'을.





털썩.


뒤에서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를 귓등으로 들은 비슈트는, 기사로서의 기개마저 져버리곤 정신을 놓은 그를 질책할 그 어떤 단어나 당위성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 누구라도 눈 앞의 저것을 보곤 절로 공포에 사로잡혀 버릴테니까.


자신도 지금껏 기사로서 그 어떤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굳센 용기를 가진 채 뚫고 나가려는 의지를 품에 안으며 살아왔지만,


무서웠다.


저건, 무서웠다.





그 공포의 이름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모습으로,


그곳에 존재하던 동물들, 인간들 모두를 막론한 검은 '그림자'들은 마치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마냥,


서로를 향해 '흘러갔다'.


그리고 하나가 되었다.

또한, 둘이 되었다.

셋도 되었고, 넷도 된 후에 다섯도 되었다.


하나의 몸을 가졌으나, 무수한 몸을 사방으로 퍼트린 그것은,


"...크니...쿨?"


그 공포의 이름으로,

그 저주의 이름으로,

그 재앙의 이름으로,

그 지옥의 이름으로...


[크,아아아아아아!!!!!]


거대한 그림자의 손톱을 꺼내어 든 그것, 크니쿨은 거대한 그 손톱을 대지를 향해 크게 휘둘렀다.


작가의말

반격과 그 반격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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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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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5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90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8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6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10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7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6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3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6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5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2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9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3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8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6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8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3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9 0 24쪽
23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1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8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8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3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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