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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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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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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50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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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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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76.

DUMMY

회색의 승합차 한 대가 열려있는 철문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열린 철문은 “Pinch-hitter”라는 흘겨 쓴 글씨가 멋지게 새겨져 있었다. 마치 미국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공장 규모가 상당했다. 양쪽으로 늘어선 공장들은 시골 농장에 온 착각마저 들게 했다. 조금 섬뜩했던 건 그 모든 공장이 일제히 숨을 죽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더욱 이상한 건 경비원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니까 너희 둘이 그냥 들어왔구나?”

“뭐 그렇죠.”


배득이 뒷목을 긁적이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상 그냥 들어간 건 유영 씨뿐이지만요.”

“무슨 소리야 그게?”


수혁이 고개를 돌려 뒤 좌석에 앉은 유영을 보았다. 그녀는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괜히 시간만 끄는 셈이었으므로 그녀는 스스로 자백했다.


“아 그냥 부수고 개구멍 하나 내고 들어갔어. 그게 다해요. 어차피 곱게 안 들여보내 줄 것 같아서·········.”

“그걸 말이라고 해?”


수혁이 이마를 짚으며 호통쳤다.


“미안해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경찰이야, 알잖아.”

“경찰은 뭐 개구멍 만들면 안 되나?”

“최 유영!”


교장 선생님 같은 투로 으름장을 놓자 유영도 입을 다물었다.


“그건 그렇고 엄청 조용하네요. 망한 건가?”

“아까 사이트에서 봤는데 오늘은 정기 휴일이래요.”

“정기 휴일?”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주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공장 인원들에게 휴가를 제공합니다.”

“캬, 3일이나 쉰단 말이야?”

“최고의 직장이네.”


파격적인 휴일에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든다.


“어디까지 가야 해요?”


차를 몰고 있는 수혁이 유영과 배득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조, 조조조기!”라고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두 사람이 말한 위치로 회색의 투박한 승합차가 부드럽게 들어섰다.

꽤 규모가 있는 공장 단지의 공장 중, 손 쓸 수 없게 망가진 공장 하나를 리모델링해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역시나 굳게 내려와 있는 셔터에는 “Pinch-hitter”가 멋지게 쓰여 있었다. 택진은 휴대폰을 꺼내 공장 외부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거 잠겨 있는데요?”


배득이 셔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자물쇠를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그가 자물쇠를 흔들자 셔터와 함께 철그렁,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혁이 무릎에 손을 얹고 그걸 바라보며 혀를 찼다.


“단단히 잠겼네. 어쩌냐?”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어?”


그때 저기서 인표가 쇠 지레 하나를 들고 와 그대로 자물쇠를 내리쳤다. 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고 말았다.


“아니 아까는 문 따고 들어가지 말라면서요.”


유영이 그걸 보고 한마디 했지만, 인표는 그런 그녀에게 그저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그건 제가 한 말이 아닌데요.”


그리고는 다시 고갤 돌려 셔터를 올려버렸다. 촤르륵.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의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셔터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그들에게 제공해줬다.

인표부터 순서대로 고개를 약간 숙여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어우, 이게 무슨 냄새야?”


시꺼먼 공간 속에서 풍겨오는 묘한 비린내에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코를 막았다.


“누가 불 좀 켜봐라.”


수혁이 도저히 못 참겠는지 외쳤다. 인표가 조심스럽게 휴대폰의 후레쉬를 켰다. 넓은 섬광이 빛이 닿는 일대를 비추는 데 성공했다. 당장은 수상쩍은 것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인표는 우선 전등 스위치부터 찾기로 했다. 다행히도 그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스위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윽.”


갑자기 밝아진 내부 때문에 모두가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빛이 되찾은 스튜디오의 내부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과는 반대로 너무도 평범했다. 피팅 모델이 포즈를 취할 사각형의 새하얀 공간과 그 밖으로 둘러싸듯 조명, 반사판, 메이크업 장비, 카메라가 자리 잡은 채였다.

피팅 모델이 서 있는 공간은 마치 무대처럼 유독 밝아 보였다.


“생각보다 멀쩡한데?”


수혁이 손수건으로 아예 코를 틀어막은 후에 말했다.


“그냥 평범한 스튜디오잖아?”

“그러게요. 냄새가 이상한 것 빼고는 특별할 게 없는데요.”


수아는 이리저리 촬영 도구들을 만져보며 말했다.


“오배득은?”

“못 들어오겠답니다. 냄새가 심해서.”


택진의 말에 유영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열린 셔터 틈으로 배득의 험악한 얼굴이 한껏 일그러져있었다. 각자가 잠시 흩어져서 스튜디오 내부를 살폈다. 각자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은 채였다.

유영은 우선 이 냄새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구석구석을 살폈다. 스튜디오 내부 전체에 벤 건 아니었지만, 환기를 안 시킨 지 오래됐는지 쉽게 그 방향이 잡히질 않았다. 수아는 카메라와 잡다한 도구들의 상태를 살폈고, 수혁은 피팅 모델이 서서 포즈를 취하는 새하얀 공간에 서서 이리저리 둘러봤다.

인표는 그들과는 조금 떨어져서 창고와 같은 곳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거울과 함께 미용실 의자와 화장 도구들이 있는 것을 보니 모델들이 준비하는 메이크업 실인 듯했다. 복도처럼 길쭉한 공간을 꼼꼼히 살피며 걸었다.


‘특이한 점은 없는데·········.’


별거 없는 공간을 어느새 다 둘러본 그의 앞에는 ‘드레스 룸’이라고 쓰인 방문이 있었다. 인표는 곧장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이 방은 계속해서 닫혀있었는지 비린내 전혀 나질 않았다.


‘청정구역이군.’


깨끗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역한 냄새가 없는 드레스 룸의 공기를 인표는 잠시 깊게 들이마셨다. 드레스 룸답게 남성 의류부터 여성 의류까지 다양하게 걸려 있었다.


‘되게 신기하게 생겼네.’


인표는 옷보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옷걸이에 관심을 가졌다. 옷을 걸 수 있는 막대기가 변칙적으로 구불구불했는데, 그 높낮이도 다 달라서 마치 하나의 파도를 연상시켰다. 그 굴곡을 따라 옷들도 넘실대며 걸려 있었다.


‘옷이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게 아니야. 옷깃이 포인트인 옷은 굴곡 위쪽으로 걸려있고, 레이스나 아랫단 부분이 포인트인 것들은 굴곡 안쪽에 걸려있어.’


바쁜 와중에도 굳이 그렇게 옷들을 정리한 것이 그의 관심을 더욱 옷걸이에 쏠리게 했다. 인표는 서둘러 그 옷걸이의 상표를 확인하기 위해 옷들을 한쪽으로 과감히 밀어 버렸다.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텅 빈 공간을 훑어 상표를 찾아냈다.


‘대타·········.’


그때 저 멀리서 수혁이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표는 일단 옷들을 다시 끌어와 정리해 놓고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에요?”

“여기, 이거 봐라. 여기도 있다.”

“네?”


밖에 있는 배득과 어딘가로 사라진 유영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옹기종기 수혁이 가리킨 새하얀 바닥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8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수혁의 손가락 끝에서 깊게 팬 흔적을 발견했다.


“······이거 집에 있던 자국이랑 똑같은 거죠?”


수아가 물었다.


“아마도. 중요한 건 왜 여기에 있느냐는 거야.”

“집에서 쓰였을 슬라이싱 나이프가 말이죠.”

“아무래도 구린내가 나.”

“구린내는 아까부터 났거든요?”


수아가 그렇게 말하자 애꿎은 택진이 피식하고 웃었다.


“재미있죠?!”

“아니요. 웃지 않았습니다.”

“에이, 웃으셔도 되는데~”


인표는 잠시 세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턱을 붙잡았다.


‘배달 음식. 조리도구. 재료. 슬라이싱 나이프. 스튜디오. 비린내.’


도저히 종합되지 않는 단서들이었다. 8년간의 수사 이래로 이렇게 많은 것들을 발견한 것은 처음이었다.


‘범인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있었다. 마치 보란 듯이 치우지 않은 이 증거들은 마치 범인이 그때처럼 무엇인가 발견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희서양······.’


고민에 빠져있던 그의 발아래 ‘대타’라는 상표가 보인 건 그때였다. 그리고 동시에 저 멀리서 유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견! 발견했어!”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신난 목소리였다.


“뭘 발견했길래 저리 신났어?”


수혁이 무릎을 붙잡고 일어난다. 수아와 택진이 그런 그의 손을 한쪽씩 잡아 부축했다.


“야들아, 나 아직 안 늙었다.”

“그래도 무릎은 언제 나갈지 모릅니다.”

“짜식이.”

“언니 뭔데요?”


수아의 그 물음에 유영이 빠끔히 저 구석에서 얼굴을 내밀고 말했다.


“뭐긴 뭐야, 시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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