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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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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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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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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50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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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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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85.

DUMMY

숲은 고요했다. 달은 고고했다. 어둠을 슬며시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이 세 사람의 얼굴을 비쳤다. 숨을 헐떡이며 서두르는 표정은 달빛에겐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방금 전, 인표가 숨을 고르면서 돌린 시선에 정확히 미향이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풀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몸을 어두운 와중에 볼 리가 만무했다. 세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어지럽게 멀어져간다.

발걸음이 완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미향이 서둘러 그들과 완전히 반대쪽으로 뛰어가면서 황급히 전화를 건다.


“말해.”


이곳에 오기 전에 연락했던 사람, 철가면이었다.


“재우 씨는 도망갔어요. 아마 호야 씨네 가게로 갈 것 같아요.”

“처리는 확실히 했지?”

“물론이에요. 마네킹 안에 있던 여분의 대타를 써서 자살로 꾸몄어요.”

“알았어.”


철가면은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다시 그녀를 불렀다.


“미향.”

“네.”

“다신 이쪽으로 오지 마.”


그 말에 미향은 입술을 꽉 깨문다.


“네.”


미향은 다시 달렸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보며 한 가지 생각만을 되뇌었다.


‘이제 훌훌 털어버릴래. 이제는!’


그러자 그녀의 가쁜 숨에 맞춰 휴대폰에서 작은 알람음이 울렸다.


『축하합니다, 차 미향(여, 35)은 약 3초 전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휴대폰은 짧게 로딩 창을 띄우더니, 어플 하나를 자동으로 삭제했다.


* * * *


최 재우의 집으로 경찰차 여러 대가 밀고 들어왔다. 거친 사이렌이 새하얀 집의 외벽을 붉고 푸르게 물들였다. 경찰차 안에서 푸른 복장을 한 경찰과 사복 차림의 형사들이 달려 나와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안에는 당연히 박 순경도 함께였다.

박 순경은 여전히 목을 빳빳하게 세운 채, 들어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외쳤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다.


“박 순경님!”


수아가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어~”


그도 손을 들어 인사하려다가 유영을 보고는 살짝 기가 죽어 목을 가다듬고 걸어온다.


“신고한 게 둘이지?”

“네, 맞아요.”

“선배님은?”

“범인 잡으러 뛰어가셨어요.”


박 순경은 팔짱을 끼고 사건 현장을 바라봤다. 그는 자신을 흘끗 한 번 바라보고 다시 시체를 살피는 유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뭐 발견한 거 있으십니까, 명탐정 양반.”

“딱히·········. 평범한 살인 현장이지 뭐.”

“내가 몇십 년 동안 현장을 보면서 알아낸 게 있는데 말이지.”


있지도 않은 콧수염을 붙잡기 위해 폼을 잡는 것이나, 되지도 않게 허리와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 것이 여러모로 이상한 박 순경을 유영은 한심하게 올려다보았다.


“보통 이런 사건은 기존에 쫓던 사건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건 알고 있어. 실제로도 그렇고. 증거가 없어.”

“정말?”


박 순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영은 그런 그를 보면 깊게 한숨을 토한다. 그리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수혁과 인표가 우릴 여기에 남긴 건,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기 때문이야. 빨리빨리 끝내자고.”


박 순경은 시체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큰 소리로 택진을 불렀다.


“택진아!”

“예!”


쏜살같이 달려온 그에게 박 순경은 유영과 수아의 진술을 듣게 시키고 밖으로 내보냈다.


* * * *


인표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숲에서 벗어나 넓은 차도로 들어선 후였다. 숲에서 빠져나오기 직전에 달려가는 차를 발견하긴 했지만, 간간이 차들이 지나가고 있는 걸로 봐서는 범인의 차량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네, 수영 씨. 진술 끝났어요?”


택진의 목소리와 유영이 또 난동을 부리고 있는 듯 수화기 너머는 시끄러웠다.


“그쪽은요?”

“저희는 허탕이에요.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려서.”

“아무래도 합류하는 게 좋겠죠?”

“네. 그게 좋겠네요.”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인표는 떠오른 생각이 있어 서둘러 물었다.


“유영 씨랑 뭐 발견한 건 없으세요?”

“아뇨, 없었어요.”


그 말에 인표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알겠어요. 그럼 사무실 쪽에서 봬요.”


전화를 끊은 그를 돌아보는 배득과 수혁은 지나가는 차량을 따라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치 하나의 먼지처럼 사라진 범인의 모습에 허탈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뭐 어떻게 해야 되냐? 분명 똑바로 따라온 것 같은데.”

“중간까지만 해도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배득이 머리를 긁적인다.


“아까 풀숲에서 놓친 걸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흔적이 남았잖아.”


그렇다. 그들은 분명 범인이 도망가면서 남기고 간 흔적들을 쫓아 달렸었다. 흐트러지고 잘린, 명백히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말이다.


“됐어요. 이미 놓친 걸 어쩌겠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화만 나지.”

“그쪽은?”


다가오면서 말하는 인표에게 수혁이 묻자, 인표는 고개를 저어 말을 대신했다. 배득과 수혁은 인표를 따라 조금 처진 어깨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나마 되돌아가는 길에 다른 흔적이라도 발견할까 해서였다.


* * * *


철가면이 미향과의 통화를 끝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양팔을 뒤로하고 다리를 살짝 벌려 제법 무게감 있는 자세를 말이다. 그의 앞에는 희서와 자윤이 학교 의자에 앉아 연우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래, 서로 째려보는 건 이쯤에서 하고. 보고를 들어볼까?”

“서면으로 제출했으니까, 그걸 보쇼.”


자윤이 삐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구잡이로 써낸 보고서를 믿으라고?”

“못 믿겠으면 안 믿으면 돼.”


희서 또한 삐딱한 목소리였다. 연우는 짧은 탄식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철가면을 향해 물었다.


“그쪽은 어때?”

“해결됐답니다. 미향과 재우는 오늘부로 작전에서 빠지기로 했습니다.”

“오케이.”


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아래에 있는 자윤과 희서의 보고서에는 어린애 솜씨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자,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도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굴 거야?”

“말했지, 당신한테는 절대 협조적으로 굴지 않을 거라고.”


희서가 날카롭게 쏘아 말했다. 연우는 그저 하찮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본다.


“그래, 그렇게 말했지. 네 오빠의 뼛가루를 들고 와서. 하지만 계약 내용은 그게 다가 아니었잖아? 너희가 제대로 돕지 않으면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겠어.”


희서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자윤이 그런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네 계획을 믿어도 되는 거지?”

“뭐?”


연우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난 적어도 내 사람에겐 거짓말하지 않아. 네 그 걱정 때문에 계약도 맺은 거 아닌가?”

“그럼 됐어.”


자윤은 희서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희서는 슬픈 눈으로 그녀의 어깨에 기댄다.


“제대로 협력하도록 할게. 다만 희서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몰라.”

“게임이 시작됐으면, 이미 끝난 것과 다름없어. 너희도 우리도 얻고자 하는 걸 얻게 될 거야.”


희서를 부축한 채 자윤은 일어났다.


“보고서는 새로 작성해서 올릴게. 대신 오늘은 그만 가게 해줘.”

“편한 대로.”


철가면이 기다리고 있다가 두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계약 내용은 반드시 지켜질 거야. 너희가 내 손에 있는 이상은.”


자윤은 이를 꽉 물고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가버린다.

철가면은 닫은 문의 손잡이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연우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묵직한 구둣발 소리가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혀간다.

연우는 똑바로 서서 철가면의 수발을 받는다. 외투를 입혀주고, 구두를 닦아주고, 장갑을 끼워주는 그를 내려다보며 그녀는 차분하게 명령했다.


“준비하자. 마지막 무대 장식을 하러 가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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