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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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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조회수 :
3,960
추천수 :
29
글자수 :
505,603

작성
20.09.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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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83.

DUMMY

현의 목에 칼을 박혀있다. 피를 토해내고 있는 걸 인표가 붙들었다. 이미 숨이 끊어지기 시작해 초점이 없는 눈은 똑바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마치 감옥과 같아서 쉽사리 뗄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빨리······.”


현의 목소리가 뚫린 목에서 픽, 픽 새어 나왔다. 피가 뒤섞인 말은 인표의 옷을 붉게 물들여갔다.


“조금만 더 빨리 나를 도와줬다면.”


그날 묻었던 피는 옷에서 도저히 지워지질 않았다.


“이 옷 깨끗한데? 수선이야?”

“아니요. 세탁이요.”

“세탁·········할 게 없는데? 저번에도 이러고 오지 않았어?”


인표가 자주 가던 세탁소 아저씨는 새하얀 그의 티셔츠를 이리저리 펴보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얼룩 하나 없는 그 옷을 살피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한다.


“네가 피를 한두 번 묻혀 오냐? 아 확실하게 지웠다니까 그러네.”


그리고 코를 박고 킁킁대더니 그에게 옷을 던졌다.


“땀 냄새도 없는 거 보니까, 저번에 준 그대로구먼. 도로 가져가!”

“있잖아요······.”


인표가 퍼석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세탁소 주인은 인상을 찡그렸다.


“도대체 뭐가 있다······”

“여기 피가 있잖아요! 선명하게!!!”


어찌나 소리가 컸던지, 낡은 문에 달린 유리가 약간 흔들렸다. 인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옷을 다시 그에게 던졌다. 세탁소 아저씨의 놀란 얼굴 위에 옷이 걸렸다.


“부탁할게요, 아저씨. 꼭 좀 지워주세요. 제발요.”

“아, 알았어.”


자신의 머리를 덮은 옷을 천천히 끌어내리며 아저씨가 대답하고서야, 인표는 세탁소를 빠져나왔다.

인표는 하루하루 망가져갔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몇 주 동안 씻질 않아 불쾌한 냄새를 풀풀 풍길 때도 있었다. 그의 주변에 있던 동료들은 하나, 둘 떠나고 어느새 사건마저 제대로 맡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서장이 수혁을 불렀다.


“저놈 어쩔 거야?”


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불만 계속 나오고 있는 거 알지? 그렇다고 뭐 범인을 잘 잡는 것도 아니고, 현장에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

“네······.”

“얼마나 필요한 거 같아?”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슬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제가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그래. 얼마든지 쉬어도 되니까 잘 설득해. 알겠지?”

“네.”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는 산의 끝자락이 잘 보이는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 인표에게 수혁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담배 하나를 건넸다.


“펴라.”


인표는 말도 없이 그가 건넨걸 받아들여 입에 물었다. 두 사람의 입에 작은 불씨가 반짝였다. 어두워지는 하늘에 딱 맞는 아름다운 불빛이었다. 그 불빛은 한 번 몸을 한껏 뜨겁게 데웠다가 힘을 빼며 연기를 뿜어냈다.


“얼마나 필요해?”

“네?”


절반 정도 담배가 타들어갔을 즘, 수혁이 자신의 허벅지에 손을 비비며 물었다.


“얼마나 필요하냐고. 계속 이러고 있을 건 아니잖아?”

“·········그건·········.”

“적당히 쉬고 그만 빠져나와라. 그건 누구도 못 도와줘. 알겠지?”


인표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양손에 그의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는 것 같은 찝찝함이 감돌았다. 그걸 지워내기 위해서 그는 피부가 붉어질 정도로 힘을 꽉 쥐었다.

무기한 휴가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인표는 모든 것을 자 제쳐놓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오기 전에 사온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꺼내 몇 달을 치우지 않아 어지러운 방의 쓰레기들을 모조리 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쓰레기뿐만 아니라 그가 쓰던 물건들도 함께였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안에 담긴 물건들을 그렇게 하나, 둘 없애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쓰레기, 옷가지, 잡다한 물건, 가구까지. 삼 일째, 점심을 먹을 시간이 돼서 드디어 이사하기 전의 모습으로 그의 방은 돌아와 있었다.

인표는 그 한가운데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누웠다. 그리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사건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현을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충분히·········. 충분히············ 구할 수 있었어요. 아시죠?”


새하얀 심문실에 앉은 소녀가 인표를 노려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는 다름 아닌 박 현의 동생인 희서였다.


“희서양. 알고 있지만, 저희도 명확하지가 않았어요.”

“그 명확한 걸 누가 정하는데요? 명확하지 않다고 두 손 들고 물러서는 게 경찰인가요?”

“희서 양. 그러면 수사 진행이 되질 않아요.”

“상관없어요. 제가 여기 나오기로 한 건, 제 오빠에 대해 두 분한테 따지고 싶어서였으니까요. 맨 처음 제 오빠가 살해당할 뻔했을 때, 그때 두 분이 제 오빠를 살인자가 아닌 오롯이 피해자로 봐주었으면. 그랬으면! 분명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라고요.”

“하지만 박 현 학생이 살인을 저지른 건 사실로 밝혀졌어요. 아시죠, 그건?”

“알죠. 당신들보다 제가 더 잘 알아요.”


그녀가 고함을 쳤다. 슬픔이 가득 묻어 무척이나 무거운 고함이었다.


“박 현태. 그 새끼한테서 저를 지키려고 한 거라고요. 그렇게 착했던 저희 오빠. 부모가 없어도, 돈이 없어도 행복했던 우리 오빠············. 그런 오빠를 죽인 건 당신들이야.”

“그건!”

“학생, 그런 억지를 부리면 못 써!”


수혁의 목소리가 천장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희서는 그런 그가 있을 법한 곳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휘갈기며 가차 없이 말을 던져댔다.


“억지? 당신들이 우리를 의심했던 거, 다 알아. 몇 번이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집을 찾아왔던 것도 똑똑히 기억해! 그런데도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냥 주변만 어슬렁댔을 뿐이야. 그리고 그게 박 현태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렸던 거고!”


숨도 몰아쉬지 않고 그녀는 계속 얘기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왜 애초에 박 현태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거야? 그 사람. 그 새끼만 없었어도. 너희가 맨 처음에 붙잡았을 때, 제대로 처벌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인표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다시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하지만 고인 눈물에 의해 상은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조금만 더. 내가 조금만 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눈 위로 조용히 팔을 올렸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중간의 수많은 시간이 통째로 도려내지고 강렬한 진동음에 의해 눈을 떴다. 인표는 닦지 않아 바싹 굳은 눈물 때문에 뻑뻑한 눈을 찡그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아아, 전화 받네. 드디어.”


수혁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지금 어디야?”

“집이요.”

“잠깐 보자. 희서 학생이 새로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단다.”


그날 들었던 건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더욱이 그래서 인표는 새로운 빛을 움켜쥐는 기분이 들었다.


“어플이 있었어요·········.”


그 터무니없는 말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반짝였다.

내가 죽이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박 현 학생이 죽인 것이 아닐지 모른다.

무엇인가 작용하고 있다.

아직 속죄할 기회가 남아있다.


“갈게요.”


그 이후로 새롭게 그의 방은 수사 기록들로 빼곡히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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