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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살인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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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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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50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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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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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00

DUMMY

‘내 나이가 이제 몇이였더라············?’


휑하니 벗겨진 머리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다. 기둥 하나를 보호막 삼아 숨어 있는 육중한 몸은 제대로 숨겨졌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맞춤으로 구매한 값비싼 정장이 오늘따라 유독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르신들의 힘을 받아 이제 막 경찰청장직에 5년째 머물고 있는 그가, 잭의 강요와 같은 요청에 손을 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정말로.’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동시에 안도감도 살짝 감돌았다.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 시간이 될 겁니다.”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잭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폼이라도 나게 청장복을 입고 올 걸 그랬지?”

“그러게 말이에요. 너무 두려워 마시죠. 제가 말씀드린 대로만 하시면, 목숨을 부지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이지?”


잭은 안심하도록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세상은 어르신의 용감함을 듣고 찬사를 마다치 않을 겁니다.”

“알겠네. 곧바로 도망을 가면 되는 거지?”


그는 기둥 뒤에서 이제 막 4층에 도달하고 있는 무리를 슬금슬금 바라보며 물었다. 잭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저들도 어르신들의 밑에 있던 이들입니다. 분명 어르신을 헤치지 않을 겁니다. 보장하죠. 만약에 그들이 공격을 하더라도 제가 지키겠다고.”

“알겠네!!!”


어르신은 잭의 말 중에 그 말을 가장 신뢰하며 미소를 짓는다.


“그럼 가십쇼. 무운을 빌겠습니다.”


잭의 신호와 함께 경찰청장은 기둥 밖으로 뛰쳐나갔다. 꼴사나운 소리를 지르면서 모두의 이목을 끄는 데 안간힘을 썼다.


“으아아아악! 살려줘!!!”


연기라고 보기에는 살짝 리얼한 그 표정과 목소리에 연우의 고개가 곧바로 돌아갔다,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의 목소리였다. 애초에 주시하고 있던 인물의 목소리였으며, 잠들기 전에 수없이 들었던 목소리기도 했다.


“경찰청장·········!”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는 쏜살같이 연우의 옆을 지나서 계단을 내려갔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연우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어째서지? 왜 갑자기 밖으로 나온 거지? 무슨 일이······ 무슨 일이·········!’


그때, 멍하니 도망가는 경찰청장을 바라보던 제아가 한마디를 했다.


“와아~ 도마앙간다.”


우습게도 그런 꼬마 아이의 말에 연우는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이냐!’


연우는 자신을 질책하며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경찰청장을 따라갔다.


“제아, 붙잡아!”

“예에~”


제아는 기쁜 얼굴로 먼저 치고 내려갔다.


“히익!”


죽일 듯이 내려오는 두 사람 때문에 청장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가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으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그의 처절한 몸부림은 생각보다 놀라울 수준이었다.


“연우님! 가세하겠습니다!”


연우에게는 다행히, 반대로 청장에게는 불행하게도 밑에서 올라오고 있던 호야와 철가면이 합류했다.


그나마 청장에게 다행이라는 점은 4층의 다리에서 마주했기 때문에 아래로 돌파하지 않고, 옆으로 우회가 가능했다는 점이었다. 커다란 발걸음 소리를 내며 청장은 4층의 다리를 건넜다. 도박장 테이블과 고급스러운 술집들의 유리가 육중한 그의 몸을 반사시켰다.


“사, 살려줘!”


그의 목소리가 4층에 울려 퍼졌다. 마치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는 듯,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연우가 가장 먼저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해.”


연우의 말에 호야도 철가면도 동의했다.


“우리를 꿰어내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를 부르고 있거나요.”

“애초에 어르신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요. 아마도 잭의 생각이겠죠.”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쫓아가지 않을 수는 없어. 저놈들은 단 한 명도 놓쳐서는 안 되니까.”


꽤 얕은수를 쓰고 있다.


‘시간을 벌 생각인가?’


연우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마땅한 연결점을 찾을 수가 없다. 애초에 잭이 어르신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질 않는다. 아무리 트럼프를 모조리 잃었다고 할지라도, 이수와 그녀가 데리고 있는 실험개체들이 남아있을 터였다.


아무리 전력이 줄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올 리는 없었다. 전력이 이미 바닥이 난 상태가 아닌 이상.


“으아아악!!!”


막 어떤 생각이 들려던 찰나, 저 멀리서 청장의 비명이 들려왔다.


“서둘러!”


그 말에 제아가 가장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녀에게 받아들인 ‘붙잡으라.’는 말을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제아의 앞으로 사람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몇몇 형상이 보인다.


‘두 명·········?’


제대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한 명은 긴 머리의 여성이고, 반대는 남성으로 확인된다. 연우가 그 둘의 얼굴을 인식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떠 집중을 하려고 하는 찰나, 그들 쪽에서 무엇인가가 반짝였다.


“연우님!!!”


호야가 연우의 어깨를 잡아끌고, 철가면이 앞으로 나섰다.


푹.


날카로운 칼끝이 살을 파고드는 소리였다.


“철가면!”

“괜찮습니다! 어깨에 박힌 게 전부입니다. 그것보다 저 두 사람, 한 명은 이수입니다.”

“역시나······!”


기습을 위해서 이러한 극단적인 수까지 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연우는 이를 갈았다. 그래도 철가면과 호야 덕분에 저들의 기습은 실패했다. 그것만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할 가치는 있었다.


“아쉽게 됐구나, 이수.”


연우가 철가면의 회복시간을 벌기 위해서 앞으로 나섰다.


“당신이야말로 아쉽게 됐어.”


이수도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뒤에는 제아에게 당해 피를 흘리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재우였다.


“박쥐같이 여기저기 잘도 붙어 다니는군.”

“애초에······ 저는 어느 소속도 아니었거든요.”

“뻔뻔한 소리를.”


청장은 제아의 손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뭐 됐어. 이미 승기는 우리 쪽으로 많이 기울었으니까.”

“청장 한 명 빼앗았다고 그런 말 하기야?”


그렇게 말하는 이수의 눈은 빠르게 청장의 안구와 손가락을 살폈다. 여기서 빼앗기더라도 그 두 가지를 빼앗아 올 수 있을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만약 빼앗긴다 해도, 시체를 남길까? 완전히 소거할지도 몰라. 저 사람이라면 어르신, 대타는 흔적도 없이 지우려 하겠지.’


이수는 이를 갈았다.


“재우, 괜찮겠어?”

“문제없습니다.”


이수는 재우의 상태를 확인한 후에 심호흡했다.


“일단 쪽 수에서 밀려. 그렇다고 청장을 포기할 수는 없어. 지금 위쪽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저들이 계단에서부터 왔다는 거야.”

“5층을 이미 갔다 왔을 수도 있단 말이죠?” “맞아. 청장이 마지막 남은 어르신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 포기할 수 없어.”

“알겠습니다. 어떤 식으로 싸우면 되죠?”


재우는 싸움에 그닥 소질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살인 방식도 꽤나 비겁하다고 할 수 있는 술수였으니,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한다면 맥을 못 추고 쓰러질 터였다. 방금처럼.


“억지로 빼낼 거야. 팔 한쪽은 내준다는 각오로 간다.”

“알겠습니다. 제가 청장 쪽으로 가는 이들을 막죠. 최대한.”


두 사람은 낮게 타이밍을 맞췄다.


“청장 쪽을 보호해.”


두 사람의 계획을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는 연우가 말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제아를 불러 이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두 사람은 곧장 제아에게 청장을 인계받아.”

“알겠습니다.”

“타이밍은 저 둘이 움직이는 타이밍이다.”


각자가 속으로 타이밍을 쟀다. 시간이 흐르고, 그것을 잭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째깍, 째깍, 잭의 손에 들린 스톱워치가 소리를 내고 돌아간다.


“자, 시작하세요.”


그의 말과 동시에 날카롭게 눈을 뜬 이들이 서로에게, 서로의 목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아!”


철가면이 외치자, 제아는 청장을 번쩍 들어 던진다. 철가면이 청장을 받기 쉽도록 호야가 앞으로 치고 나가 달려드는 재우와 맞부딪혔다.


“재우, 제아 쪽을!”


그 말에 재우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애초에 싸울 생각이 없고, 대치만이 목적인 재우는 호야의 장도리를 준비했다는 듯 피했다. 유연하게 호야의 공격에서 벗어나 그대로 제아 쪽으로 달려가는 그를 철가면이 막아섰다.


“못 간다! 제아, 연우님에게 직접 넘겨라!”


그 말에 제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갔다. 하지만 이수가 곧장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제아는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했다.


“명령을 이행해야지, 제아.”


이수가 빙글 웃으며 말했다.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데 서툰 제아의 문제점을 파고든 방식이었다.


“어어, 어·········.”


제아는 도움을 구하듯 호야와 철가면을 번갈아 봤다. 두 사람이 그런 제아의 시선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재우의 움직임을 신경 쓰느라 바빴다.


“제아, 뛰어!”


그때, 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령을 전달받은 제아는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이수가 움직임을 막으려 뒤늦게 붙잡으려 했지만, 황소와 같은 힘에 오히려 그녀 쪽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무식하긴······.”


서둘러 몸을 추스르고 쫓아가려던 그녀의 앞을 연우가 막아섰다.


“괜찮겠어? 저런 불안정한 녀석에게 맡겨도.”

“어쩔 수 없지. 지금 상태에서 싸우라고 말하면, 청장이 죽을 테니까.”


이수와 연우의 눈이 차갑게 교차했다.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놓인 이수는 연우와의 싸움을 망설이고 있었다. 일호와 이호가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정면으로 맞붙을 줄은 몰랐다.


‘애초에 이런 개싸움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재우 쪽은 이미 상황이 많이 기울고 있었다. 도망치는 데 지쳐버린 재우를 호야와 철가면이 가차 없이 유린하고 있었다. 이미 피투성이가 된 재우의 얼굴을 본 이수의 얼굴이 구겨졌다. 더군다나 제아는 계단 쪽에 거의 도착을 한 상태였다.


“어어디로?”


제아가 고개를 돌려 연우에게 물었다. 연우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게임은 끝났어, 이수.”


연우는 이수를 놔두고 제아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서 대기해. 이쪽 정리하고 금방 갈 테니까.”

“아아알았어!”


제아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청장은 사색이 된 얼굴로 기절해 있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신기해하며 바라보던 제아의 얼굴이 순간 굳기 시작했다.


‘1층······? 아니야 3층······?’


제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밑에서부터 빠르게 올라오고 있는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대고 있었다. 잠자고 있던 감각들이 새롭게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제아는 아마 오늘을 위해 이제껏 살아왔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연우! 연우!!!”


늘어지지 않고, 담백한 목소리로 제아가 외쳤다. 그런 목소리와 말투를 연우도 처음 들어 상당히 놀란 얼굴로 제아를 바라봤다. 호야와 철가면도 마찬가지였다.


“나, 나! 놀아도 돼?!”

“놀아도 되냐고·········?”


제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우는 순간적으로 판단이 흐려졌다. 지금 상황에서, 저런 얼굴과 목소리로 말할 게 무엇이 있을까.


‘저렇게 기뻐 보이는 얼굴로.’


제아는 외쳤다.


“놀아야겠어!”


그 말과 함께, 청장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아의 몸이 공격 자세를 취하고, 날아드는 두 사람과 맞물렸다. 만화와 같은 충격음을 퍼트리면서.


“재우님은?”

“죽진 않으셨어. 다만, 곧 죽을지도 몰라 몰라.”


그 말에 일호의 팔이 살짝 떨렸다.


“임무······ 실패야?”

“아직.”


이호가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어.”


그렇게 말한 두 사람, 일호와 이호가 이제까지 유지해 왔던 담담한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 달려갔다. 호야와 철가면은 미쳐 그들의 움직임에 반응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수중에 있었던 재우의 몸을 놓쳤다는 것, 호야의 팔 한쪽이 잘려나간 후였다.

호야의 입에서 비명이 토해졌다. 철가면은 순간 다리에 힘을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괜찮으십니까?”


재우의 망가진 얼굴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임무는?”

“성공했습니다. 두 분은 무사합니다.”

“고마워.”


재우의 손이 가볍게 일호와 이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가 잔뜩 묻은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이제 저희의 본래 임무를 속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호가 입술을 꽉 깨문 채로 말했다.


“다치지 말고.”


재우가 말했다.

일호는 그런 그에게 미소를 건네주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부탁을 수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부 제거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결의에 찬 표정을 보인 채, 그에게로부터 몸을 돌렸다.


연우는 두 사람의 눈빛에 묘한 떨림을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제아랑은 다르다. 뭐지? 저런 개체는 없었는데············.’


조사한 어떤 정보에도 두 사람에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정확히는 두 사람의 이런 성향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개체가 분노한다고? 살의를 품는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호야의 팔을 자르고 철가면을 수세에 몰아넣고 있는 저 두 사람은 ‘개체’라는 것과는 차별화된 인간이었다. ‘개체’의 역량을 갖춘 ‘인간’. 마치 박 현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수! 무슨 짓을 꾸민 거지?!”


연우가 이수에게 달려가 물었다. 이미 이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있는 상태였다. 그건 힘이 다해서가 아니라, 일호와 이호의 성공에 저도 모르게 자지러진 것이었다.


“아아, 이렇게까지 완벽한 성공을 맛볼 줄이야.”

“무슨 말이야!”

“실험은 대성공이야. 개체를 인격체로 바꾸는 실험 말이야. 제아는 실패했고, 박 현태와 박 현에 의해 나머지 개체는 모조리 파괴됐어. 박 현마저 쓸데없이 죽어 모두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 마지막 희망에 활로가 생길 줄이야!”

“무슨 괴물을 만들어 낸 거냐, 이수·········.”


이수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자신의 생각을 절반도 따라오지 못하는 이 여자를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도 귀찮다는 듯 말이다.


“미안하지만, 저 둘은 이제 괴물이 아니야. 인격. 즉, 사람이지.”

“저런 게 사람일 리 없잖아······!”


제아가 유일하게 막아줄 수 있는 수단이라 생각했다. 같은 ‘개체’였으니까 말이다. 실제로도 제아의 표정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즐거운 놀이를 하는 마음으로.


“나 놀아도 되는 거지?!”


버벅이는 것 하나 없이 그렇게 말했을 때, 제아는 언제나 승리를 확신한 상태였다. 그러나 오늘따라 조금 달랐다.


“제거합니다.”

“우리 앞을 막는 방해물은 불필요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무표정의 두 소녀가 가볍게 쥐고 있는 단도가 번쩍이는 동시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팔이 잘린 호야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철가면을 간신히 구해냈다.

철가면이 정신을 차리고 두 소녀에게 대응했으나, 오히려 어깨에 커다란 상처가 나고 말았다. 장도리를 고쳐 들고 두 사람이 동시에 시간을 벌어 제아의 합류를 기다렸다.

간신히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고, 제아가 합류해 이상적인 대치 구도를 만들었다. 덕분에 호야의 정도리가 일호의 허벅지에 한 대. 철가면의 주먹이 이호의 얼굴에 한 대. 제아의 발길질이 일호의 복부에 한 대 꽂혔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확인을 완료했습니다. 재우님.”

“재우님을 타격한 주요 인물은 저기 두 사람.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단순히 그것은 ‘맞아준 것.’에 불과했다는 간단한 말을 뱉어냈다.


“재우님의 말씀을 이행합니다.”

“부탁을 받아들여 살육은 최소한으로. 피해는 최대한으로 설정하겠습니다.”


일호와 이호는 등을 맞댔다. 그리고 양손에 단도를 거꾸로 고쳐 잡고 날카로운 눈으로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완전히 등을 맡긴 채로 앞에 있는 자에게 달려든다.

두 사람의 연계는 완벽했다. 호야와 철가면 그리고 제아의 연계 또한 나쁘지 않았으나, 격이 달랐다. 보통 세 사람의 합을 맞춘다고 한다면, 제아의 폭발적인 움직임에 맞추기 위해서 호야와 철가면이 조금 느슨하게 움직여야 했다.


호야의 장도리가 적의 시선을 빼앗고, 철가면의 주먹질과 무지막지한 힘이 자세를 무너트리면, 제아가 빈틈을 휘젓는 그림이었다.


‘·········전혀 안 먹히잖아?’


호야가 잘린 팔의 통증을 느끼며 생각했다. 아까부터 묘하게 그려왔던 연계가 흐트러지고 있다. 호야가 먼저 공격하는 게 아니라, 철가면이 먼저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아무리 각자가 대치하는 인물이 달라도 템포를 조절한다면 연계는 이어갈 수 있을 터인데, 지금은 그 리듬마저 부서져 있었다.


“세 분의 공격은 이수님에게 이미 정보를 얻은 상태입니다.”


일호가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고친다. 상체를 조금 숙이고, 다리를 굽힌다. 그렇게 하면, 호야의 장도리가 휘둘러지는 방향에 정확히 일호의 관자놀이가 위치하게 된다. 사실상 호야의 장도리는 머리의 어디를 때려도 치명상이겠지만, 관자놀이 쪽은 특히나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빗나가도 귀를 때리거나. 턱이나 다른 급소가 얻어걸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젠장······!”


그러니, 호야의 공격에 제동이 가해진다. 급소를 피하고자 호야는 1초 정도 공격을 지연시키고 새로운 타격점을 찾아내는데, 그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이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몸을 살짝 틀어 철가면 쪽으로 거리를 좁히는 움직임이었다.


‘공격인가······?’


철가면은 그 순간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공격이 아닌, 철가면 쪽으로 향한 제아의 시선을 속이기 위함이라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일부러 제아 쪽으로 살짝 튼 이호의 몸에 커다란 철가면의 방어 동작은 누가 보아도 공격적인 형상이었다.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제아에게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자신의 공격 타이밍이었다.


맨 처음부터, 끝까지 세 사람의 모든 동작은 일호와 이호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에 의해 철저히 통제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제아의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 연계는 망가진다. 그렇다는 건, 일호와 이호에게는 간단한 선택지가 남는다. 망가진 연계가 돌아오지 못하도록, 망가진 채 들어오는 제아의 공격을 둘이서 받아내면 되는 것이다.


“일호.”


호야의 지연된 공격을 가볍게 피한 일호가 거꾸로 거쳐 든 단검으로 제아의 공격을 막아내고, 자연스럽게 이호가 방어 자세로 움직임이 제한된 철가면을 무시한 채 뒤를 돌아 제아의 복부를 노린다.


“아파!”


주력의 부정적인 감탄사는 승부의 저울을 확 기울이기에 충분했다.


“연우님, 죄송하지만 이건 막아낼 수 없습니다.”


철가면이 다급하게 외쳤다.


“연우님이라도 3층으로 올라가십시오. 청장은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연우는 이를 갈았다.


“마지막 생존자일지 몰라!”

“하지만 이 둘이 있는 이상, 접근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애초에 제아가 단 한 번에 청장을 빼앗기고 말았으니, 되찾는 건 꿈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기적처럼 되찾는다고 해도, 죽일 수 없을 겁니다.”


잠시 세 사람은 공격을 물리고 숨을 골랐다. 다행히 일호와 이호는 움직이지 않은 채,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재의 위치와 자세가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청장과 재우를 동시에 커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방법은 몇 개 있습니다. 적어도 호야가 사람을 죽이려는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지금보다 나아지겠죠. 다른 방법으로는 이를 악물고 제아를 저 두 사람에게 던져놓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적어도 저놈들이 기를 쓰고 화내는 원흉을 거래 도구로 쓸 수 있을 겁니다.”


철가면이 재우 쪽을 슬쩍 바라봤다. 연우도 그 작전이 조금 더 효율이 높아 보였다.


“호야가 인간을 죽이는 걸 바라는 것보단, 이쪽이 더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두 분께서 그것을·········.”


그 말에 연우도 입을 다물었다.


“다른 방법은?”

“마지막 방법이긴 합니다.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만약 해준다면 저희는 여기서 도망쳐도 상관이 없을 겁니다.”

“무슨 말이지?”


철가면이 연우의 물음에 답했다.


“지금 밖에 있는 희서와 자윤을 5층으로 올려보내는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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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81. 20.09.14 67 0 9쪽
80 #80. 20.09.10 47 0 12쪽
79 #79. 20.09.09 58 0 12쪽
78 #78. 20.09.08 55 0 12쪽
77 #77. 20.09.07 2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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