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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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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조회수 :
3,947
추천수 :
29
글자수 :
505,603

작성
20.10.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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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89.

DUMMY

서늘한 새벽 공기가 몸속에 감돈다. 분명 단단히 껴입었음에도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건 단순히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붉은 피. 흩어진 살점. 부스러진 뼈의 파편.

배득은 그 흔적들을 천천히 훑으며 어지러운 속을 달랜다. 그 뒤로 차 한 대가 들어와 멈춘다. 인표가 차 밖으로 나와 오도카니 서 있는 배득의 옆에 선다. 그가 눈에 띄지 않게 뒷걸음질 치며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모르겠어요. 오니까 이 모양이던데요.”


붉은색.

초록, 황토, 노랑, 분홍, 등등. 그 많은 색 중에서도 하필이면 붉은색. 그것으로 얼룩진 자연의 캠퍼스는 솔직하게 흉물스러웠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허나, 그렇다고 두 사람이 겁을 먹거나 두려워할 이들은 아니었다. 현장은 현장, 피해자는 피해자. 가해자는 가해자. 확실히 구분 지어진 그 단어들은 오히려 두 사람의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키고 있었다.

인표가 잠시 뒷걸음질을 친 이유도 단순히 ‘사건 현장’을 멀리서 바라보고 싶어서였다.


“범인이 도주 중에 해까닥 돌아서 한탕 더 하고 갔다···············, 정도려나요.”

“그런데 차는 없었어요. 바퀴 자국도 제가 쫓던 차와는 다르고요.”


배득이 자세를 조금 낮춰, 핏자국이 끝나는 지점에 새겨진 바퀴 자국을 가리킨다.


“발자국은 두 개. 아니, 세 개·········. 애초에 공범이 있었던 걸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겠죠. 여기까지 와서 합류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굳이 피해자 하나를 더 만들면서.”

“공범 둘은 여기서 피해자를 살해하고 있던 거라면요? 저희가 쫓던 범인은 재우 씨를, 나머지는 이 사람을. 이런 식으로요.”

“가능성은 있지만, 글쎄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장소가 너무 충동적인 느낌이 드네요. 뭐 그래도 날이 추워서 현장이 보존돼 있다는 건 다행이죠.”

“그러게요. 피도 얼어 있으니까 피해자 신원도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속으로 생각한다.


‘이상하다.’


버젓이 남은 흔적, 치울 생각조차 없는 처리. 이제까지. 아니, 이 살인 직전에 있었던 김 재우의 시신을 보더라도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이렇게 흔적이 많은 것은 두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표는 품에서 핀셋과 작은 실험용 용기를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얼어붙은 피를 부숴 담았다.


“배득 씨도 같은 생각이죠?”

“일단 이해하려면 두 가지에요. 하나는 저희가 쫓던 범인이 이 두 범인과 결을 달리한다. 또 하나는 완전히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뒤에는 이해가 되는데, 결을 달리했다는 건 무슨 말이죠?”


인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바람이 분다. 얼어붙어도 남아있는 피 냄새가 두 사람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배득은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다. 인표가 그걸 슬쩍 바라보고 자신도 주머니에서 하나 꺼내 불을 붙인다.


“즉, 다른 소속인 게 아닐까 싶어서요. 완전히 다른 범죄 집단 두 개가······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배득이 인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은 목소리로 말을 더한다.


“그렇잖아요? 저희가 범인을 놓친 것도 그렇고. 애초에 재우 씨가 살해당한 것도 전부 이상해요. 혼자 무엇인가를 꾸몄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잖아요? 애초에 가정했던 집단 말고 또 하나가 더 있는 기분이에요.”

“그럴까요·········?”


아직 확신에 서지 못한 손이 재떨이를 털어낸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우선 여기는 맡기고 다음 장소로 가죠.”

“다음이요······?”


배득의 눈이 살짝 커진다.


“유영 씨가 있는 곳에도 뭔 일이 생긴 모양이더라고요.”

“아아·········.”


배득은 그녀라면 없는 일이라도 만들 것 같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짧아진 담배꽁초를 바닥에 짓이기며


“그러고 보니 왜 저희가 가죠?”

“네?”


배득의 말에 먼저 가던 인표가 고개를 살짝 돌린다.


“그럼 다른 두 분은 어디 가셨어요?”

“두 분은 따로······ 가볼 곳이 있다더라고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배득이 인표의 뒤를 따라붙는다.


“뭐, 유영 씨잖아요. 저희가 늦게 가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그런 거겠죠. 뭐.”

“그렇겠네요.”


두 사람을 태운 차에 시동이 걸리고, 커지는 사이렌이 도착하는 것과 거의 유사하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 * * *


가벼운 노크 소리가 울린다.

갈색의 투박한 문. 지금은 좀체 보기 힘든 목조 문이었다. 한 번 더 노크를 시도하려다가 수아가 수혁의 손을 붙잡아 그대로 문을 밀고 들어간다. 문은 애초에 잠겨 있지 않아 부드럽게 열린다.

아담한 크기의 주택의 주변으로 이름 모를 꽃들이 즐비하게 둘러져있다. 한동안 관리를 받지 않은 것인지 잡초들도 주변에 무성했다. 두 사람은 돌로 된 7칸짜리 계단을 올라 이번엔 철로 된 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쇠붙이가 내는 노크 소리는 조금 더 위협적이었다.


“계십니까? 왕 이윤씨?”


수혁의 물음에도 집 안은 조용했다. 두 사람은 의심이 가득한 눈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살짝 몸을 낮춰 경계심을 품고 문을 열어본다.

끼익.

너무도 가볍게 열리는 문은 두 사람에 허탈함과 동시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동시에 침을 삼키는 것을 신호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집안으로 옮겼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바닥에 깔린 흙과 맞물려 원치 않는 소음을 만들어냈다.


“·········?”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의문만이 가득하다.

왜 문이 전부 열려 있는 것인지.

왜 바닥에 흙이 이렇게 즐비한 것인지, 두 사람은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발걸음은 그 궁금증에 이끌려 이제는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방 1. 방 2. 그리고 방 3. 거실, 부엌, 화장실 1과 2까지. 바닥에 흙이 가득한 것을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얘기 나눴다고 하셨죠?”


부재. 공허. 여러 가지로 텅 빈 침묵 속에서 유영이 부엌에 덩그러니 서서 물었다. 수혁은 부엌에서 바닥에 깔린 흙 위에 발길을 올리며 멍하니 한순간에 유령 집이 된 곳을 훑어본다.


“어어, 그랬지.”

“이사를 간 걸까요?”

“글쎄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도망인데?”


손 때가 탄 가구들. 그리고 버려졌다는 느낌이 물씬 드는 그 위의 먼지들과 모래들.

유영이 조심스럽게 그 먼지를 쓸어내려본다. 꽤 쌓인 먼지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이 비어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이 아무렇지 않게 먼지를 쓸어내리려다, 우뚝 멈춰 선다. 거기에는 ‘대타’라는 상표가 떡하니 새겨져 있었다.


“대·········타?”


유영의 눈이 빠르게 흔들리다. 그리고 뒤에 있는 소파의 상표도 찾기 위해 먼지를 훑었다. 손바닥이 새까매지는 것도 잊은 채, 훑고 나서야 ‘대타’라는 상표를 또 다시 발견한다.


“서, 선배님. 이거······ 이거 보여요?”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유심히 바라보던 수혁이 그 말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그녀와 같이 탁자를 거리낌 없이 쓸어낸다.


“······대타············.”


두 사람의 눈이 답을 찾은 듯 마주했다.


“선배님, 이거 대타 맞죠?”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한 거 아니야?”


그런 두 사람의 대화가, 모습이 화면 속에 갇힌다. 커다란 컴퓨터 화면 속에 픽셀 단위로 쪼개진 그들의 모습을 왕 박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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