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남녘의 서재입니다.

살인앱고

웹소설 > 일반연재 > 추리

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조회수 :
3,957
추천수 :
29
글자수 :
505,603

작성
21.01.07 20:00
조회
26
추천
0
글자
19쪽

#95.

DUMMY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재우가 눈을 떴다.

거대한 환풍기의 날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눈이 따가운 먼지 빛을 간간이 제공했다. 그 빛 앞에는 몇몇 사람이 재우를 바라보고 있다.


“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으면 그만 눈을 뜨게.”


누군가 박수를 치며 그리 말했다.

박수 소리마다 재우는 눈을 움찔거리며 정신을 차려본다.


“여긴·········.”


건조한 입술을 움직여 말하려고 하자, 둔탁한 통증이 뒤통수에서 몰려왔다. 그 통증에는 재우가 이곳에 오게 된 경위가 상세히 새겨져 있었다.


모르는 사람을 죽이고, 모르는 이들에게 붙잡혀 불 꺼진 차 안에서 구타를 당했던 기억.


순간 기억이 아찔하게 머리를 관통한다.


“당신들은 누구지?”


재우의 물음에 여러 명이 동시에 말을 주고받았다.


“역시 상황 판단이 빨라.”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어느 정도 나쁘지 않겠어.”

“어차피 남은 인원도 얼마 없고 말이야.”


대화는 “좋아, 좋아.” 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끝났다.


“축하하네. 의견은 일치됐네.”

“죄송하지만, 제 쪽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요?”


재우는 살짝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어렴풋이 예상되는 터라 존댓말을 사용했다.


“자네에게 우리가 몇 가지 사소한 부탁을 할 예정일세.”

“부탁이 맞는 건가요?”

“자네가 승낙한다면 부탁이고 거절한다면 협박이 되겠지. 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이니까 이 정도면 잘 알아들었겠지?”


재우가 이를 꽉 깨물었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네. 자네가 우리 부탁을 들어준다면 가족들의 안전은 보장하지.”


물론, 이 말 또한 거절한다면 협박이 될 게 분명했다.

재우는 선택해야 했다. 협박을 당할지, 부탁을 받아들일지. 무엇을 선택하던 손해 보는 건 자신이었다.

이곳에 잡혀 온 이상은.


“무슨 부탁이죠?”


그 말에 한 사람이 박수를 두 번 쳤다.

그 가벼운 소리에 저 멀리서 빛줄기와 함께 문이 열리고 맑은 구둣발 소리를 내며 누군가 다가왔다.

몸을 묶었던 밧줄이 풀리고 가벼운 종이가 새하얀 장갑과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의 손으로부터 건네졌다. 재우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잘 읽어보게.”


‘갑은 을을 위해 살인앱고의 우승자가 된다.’


내용은 간단했다.


“모든 지원은 이쪽에서 해주겠네. 자네가 우승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 말은 이름만 빌리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바지사장보다는 조금 더 나은 대우야. 왜냐면 실제로 자네는 우승해야 하니까.”


재우의 눈이 반짝였다.


“목적은 소원에 있으시군요?”

“당연히도.”


하지만 계약서의 안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


“이상하지 않나요?”

“상관없네. 왜냐면 자네가 우승하는 순간, 이미 우리의 소원을 이뤄지는 거니까. 그 외에 비는 소원이라면·········. 그렇지, 보상이라고 해두지.”


보상.

좋은 말로 포장했지만, 재우에게는 그 보상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섬뜩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거절할 방도가 없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대신 가족의 안전은 확실히 보장해 주십시오. 매일 저에게 보고를 부탁하겠습니다.”

“영상 통화는 물론, 만나게도 해주지.”


아무래도 그들의 말에는 거짓은 없다. 계약도 마찬가지 일터였다.


“다른 부탁은? 그대가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이미 우린 팀이니 더는 숨길 필요가 없겠지.”


다시 한 번, 가볍게 박수를 친다.

그러자 스위치가 올라가고 불이 켜졌다. 재우는 갑자기 환해진 주변 때문에 눈을 구긴다. 하지만 이내, 눈의 따가움도 잊은 채 눈을 억지로 크게 뜨고 말았다.

왜냐면 그가 본. 그가 대화를 나누던 이들은, 대타 업체의 어르신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잘 부탁하지, 김재우.”



* * * *



“오늘부터 김재우 님의 서포트를 담당하게 된 11번 개체입니다.”


검은 생머리의 커다란 눈. 짙은 속눈썹을 지니고 분홍빛 입술을 반짝이고 있는 여성이 그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김재우 님의 서포트를 담당하게 된 12번 개체입니다.”


검은 단발에 끝이 약간 내려온 눈. 쌍꺼풀이 짙고 붉은 입술을 가진 여성이 그렇게 말했다.


“11, 12번············?”

“그렇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명칭입니다.”


재우는 어리둥절했다.

무엇인가 중요한 사항들을 알려주겠다며, 끌고 온 방 안에서 난데없이 자신을 숫자로 호명하고 있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원래는 20번 개체까지 있었지만, 저번 살인앱고에서 모조리 제거됐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개체는 저희 둘입니다.”

“············개체?”


재우는 눈을 깜빡인다.

설마 안드로이드인가 뭔가 하는 것인 줄 알았으나, 아직 그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을 리 없었다.


“너무 놀라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희는 살인앱고를 위해 키워진 ‘실험개체’니까요.”


11번 개체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최초 살인앱고에서 다섯 개체를 잃었습니다. 저번 살인앱고에서도 다섯 개체를 잃었고, 이번 살인앱고에서는 여덟 개체를 잃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저희뿐입니다.”

“이전의 실패를 경험 삼아 이번에야말로 실패 없이 모시겠습니다.”


12번 개체가 11번 개체의 말을 거들어 인사를 올렸다.


“일단 사람인 거지·········?”

“맞습니다. 사람으로 분류하지만, 등록돼 있지는 않습니다.”


한 마디로 주민등록증도 없는 고아들을 이렇게 키워냈다는 말이 된다.

자신의 딸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키와 얼굴에 재우는 순간 마음이 아파왔다.


“숫자로 부르는 건 좀 그러니까, 일호랑 이호라고 부를게. 괜찮지?”

“상관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무표정하게, 기쁘지 않은 얼굴로 그리 답했다.


“그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일호의 말에 이호가 서류 하나를 건넸다.

『살인앱고 프로젝트』라고 쓰인 두꺼운 보고서였다.


“이미 살인앱고를 한 번 경험하셨으니, 그 규칙과 현장의 상황은 누구보다 잘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뭐······ 그렇지.”

“이제부터는 그 원리에 관해 설명해 드릴 겁니다. 이는 일급기밀로 누설할 시에 저희는 프로그램대로 당신을 사살할 권리를 지닙니다.”


재우는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는 두 사람의 말에 마른 침을 삼켰다.


“현재 세대의 인간은 너무도 폭력적입니다. 도덕도, 법도, 규율도 아무런 소용이 없죠. 고삐가 풀린 말처럼 그저 달려갈 뿐입니다.”

“대타 업체와 어르신들은 이에 대해 예전부터 불안을 느껴왔고, 거기에 대한 통제법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그것이 살입앱고였다.


“우선 살인앱고는 저희 대타 업체에서 자체 개발한 어플입니다. 처음에는 인간의 본성과 공격성, 살인 충동을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하나의 실험 형태였습니다. 이를 통제하려는 방법으로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토대로 제작했으나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았죠.”

“인간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쉽게 굴복한다는 결과입니다.”


일호가 덧붙여 말했다.


“살인앱고는 누군가 자신을 죽인다는 경고가 아닌,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 본인의 심리를 나타내는 어플입니다. 그건 이미 눈치채셨겠죠?”

“뭐, 뭐라고?! 전혀! 절대로!!”


재우가 몸을 일으켰다.

흥분한 얼굴이 멋대로 일그러진다.


“그러한 반응이 일반적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포장하고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는 폭력성을 감춰두죠. 보통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극이 없다면요.”


일호는 재우의 휴대폰을 꺼내 건넸다. 그 안에는 살인앱고가 깔려있었다.


“그리고 그 자극은 본인에게, 자기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바꿔놓습니다. 내면에 숨어있는 본성을 깨우는 거죠. 본성을 다시 억누를 수 있는 인간은 드뭅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고, 화가 날 때 마음껏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이니까요.”

“도대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실험의 연속이야?”


일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실험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실험을 토대로 적용을 하는 거죠.”

“······적용·········이라고?”


이호가 고개를 끄덕여 덧붙인다.


“저희 대타업체는. 어르신들은 현세대의 붕괴를 원하시니까요.”

“원래라면 실험체 박 현을 이용하여 이번 살인앱고에서 그것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죠.”

“박 현이 생각보다 특이한 실험체였고.”

“자신을 희생해서 동생을 구했으니까요.”


일호와 이호는 나란히 말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박 현’이라는 존재가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지 처음으로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괴물 주제에.”


일호가 다시 입을 뗐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습니다. 박 현은 폭발적인 파괴력과 분노, 세상에 대한 부정이 강한 자였기 때문에 일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었을 뿐, 사실 누가 맡게 된다 하여도 상관은 없었으니까요.”


재우는 죽은 현을 떠올렸다. 적어도 그는 괴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따뜻하고 사람다운 아이였다.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에 정당성을 찾으며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을 간신히 지켜가던 약한 아이였을 뿐이다.


“살인앱고는 단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지속되는 꼬리잡기. 그리고 어플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 자동으로 깔리게 됩니다.”

“저번 살인앱고는 적어도 세상에 볼안감이라는 자극을 자연스럽게 심기 충분했죠. 이미 폭력성을 내면화하길 포기한 이번 세대는 그 정도의 자극이면 충분했습니다.”


어플이 없어도, 누군가의 마음에 이미 자극이 들어갔다. 그걸로 어플이 깔리기에는 충분했다. 내면에 잠들어 있는 폭력성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이번 살인앱고는 더욱더, 어쩌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될 겁니다.”


재우는 그 제물이었다.


“가족은 안전과 당신의 안전은 저희가 보장합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김 재우님. 반드시 이번 살인앱고에서 우승하여, 대타 업체의 목적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재우는 두 사람의 태도도, 말도 제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협력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 두 사람은 어르신들의 감시역이자, 유일한 자신의 방패막인 양날의 검이니 말이다.


‘그보다············ 아무리 봐도 그냥 꼬마 아이들인데.’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중,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작은 체구의 두 아이의 모습이 딱 자신의 딸아이와 비슷해 보였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재우는 저도 모르게 온화한 얼굴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표정이 됐습니다, 재우님.”

“해석할 수 없는 표정입니다.”


두 사람은 순차적으로 그리 말했다. 재우는 당황한 얼굴을 서둘러 숨기며 말했다.


“그, 그것보다 먹고 싶은 건 없니? 자고로 우선 함께하려면 친해져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 친해지는 데는 겸상이 최고고.”

“겸상하는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만, 친해져야 하는 이유는 의문입니다.”

“굳이 친해져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임무가 변하지 않는 이상, 심리적인 연결고리 같은 것은 불필요합니다.”


참으로 복잡한 아이들이었다.

자주 찾아가지도 못하고, 매번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딸아이도 이 정도까지 딱딱하게 굴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재우가 미안해질 정도로 밝은 미소를 품은 채 반겨주었다.


‘도리어 이런 식으로 대해줬다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재우는 더욱 두 사람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깊이 결심한 얼굴로 두 사람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섰다.



* * * *



하루에 적어도 한 사람의 꼴로, 많게는 열 사람의 꼴로 인간은 죽어간다. 그걸 인식하는 것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인식하고 있음에도 방어기제를 통해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은 묵묵히 살아가고, 미소를 짓고, 행복을 노래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하늘은 세상과 달리 맑았고 사람의 웃음으로 가득한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저희에게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일호가 레스토랑 런치 세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또한, 저희에게 맞지 않는 음식입니다. 영양소 밸런스가 파괴된 음식은 입에 댈 수 없습니다.”


이호가 마찬가지로 커다란 두 눈을 음식에 고정한 채 말했다.


‘머리카락이 긴 쪽이 일호······ 짧은 쪽이 이호·········.’


재우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두 사람에게 얘기했다.


“그러지 말고 먹어. 맛있으니까.”

“맛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영양입니다.”

“신체 밸런스와 임무의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양 밸런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외의 사치는 몸을 둔하게 만들 뿐입니다.”


재우는 답답한 두 사람의 태도에 저절로 한숨을 토했다.

어쩔 수 없이 비겁한 수단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됐으니까, 먹어. 내 서포트라며? 나 혼자는 다 못 먹으니까, 조금 먹어줄래?”

“명령이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뚫어져라 음식을 바라보기만 했다. 먹기 좋게 익은 스테이크와 싱싱한 샐러드, 뜨거운 죽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왜 안 먹어?”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저희는 언제나 영양소를 갖춘 캡슐을 먹었기 때문에 식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당황스러운 눈이 깜빡인다.


“나이프랑 포크········· 쓰는 법을 몰라?”

“날리는 법이나, 베고 써는 법.”

“찌르고 토막 내는 법은 알고 있습니다.”

“············비슷하긴 한데·········.”


재우는 우선 두 사람 앞에서 고기를 써는 모습을 시연했다. 일호와 이호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했다.


“확실히 비슷하긴 하군요.”

“시체를 처리할 때와 유사합니다.”

“밥 먹을 때는 그런 소리 하지 말자·········.”

“그것도 명령입니까?”


일호가 고개를 기울였다.


“응, 명령이야······. 아니지, 부탁이야.”

“그건 이상합니다. 부탁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명령이면 족합니다.”


재우를 따라 고기를 정확하게 썰어가는 두 사람이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상당히 아픈 말을 뱉는 두 사람을 보며 재우의 표정이 살짝 우울해졌다.


“앞으로 너희에게 명령은 안 할 거야.”

“불가합니다.”

“명령이 아니라면 저희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일호와 이호가 처음으로 발끈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만 발끈했을 뿐이지, 표정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움직이지 않아도 돼. 내 부탁에 대한 대답이 그거라면.”

“하지만·········.”

“그게 그렇거든. 너희를 보면 자꾸 딸아이가 생각나서.”


재우는 똑같은 크기로 썰린 두 사람의 스테이크 조각을 바라봤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납득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래.”


재우는 그런 것들을 모조리 투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 사람의 얼굴에 묘하게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 저희가 돌아간다 해도 재우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실 겁니까?”


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학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주력이 아닌, 서포트인 것입니다.”


일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평온해 보였던 두 사람의 표정은 한껏 굳어있었다.


“주인으로 섬기는 당신의 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저희는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저희의 죽음과 당신의 죽음에 직결됩니다.”

“그러니 방금 그 말을 재고해주길 바랍니다.”


두 사람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재우는 순간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죽음과 직결한다는 표현 자체도 흘려들을 말이 아니었다. 확실히 이 둘과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세계는 지금 여기처럼 밝지 않다. 어둡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그렇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너희 둘도 이 밝은 곳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그런 건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했으면 해.”

“자신의 딸과 겹쳐보는 건, 불쾌합니다. 저희도·········.”


순간 일호와 이호는 말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봤다.


“저희는·········.”

“············저희는·········”


‘하나의 인격체’라는 말이 서로의 목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재우가 말한 명령이 아닌 부탁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설명이 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게 됐습니다.”


재우는 그런 둘을 부드럽게 바라봤다.


‘조금 심한 사춘기라고 보면 되려나·········.’


심한 수준을 넘어, 거친 느낌이 더 강하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 뭘 하라는 건 아니야. 그렇게 되는 게 더 이상하고.”

“그렇다는 건······.”

“편하게. 편하게 하면 돼.”


재우는 빙글, 웃어 보였다. 두 사람에게는 그 표정이 무척이나 얄미웠다.. 하지만 며칠간 이어진 작전과 전혀 상관없는 활동들에 두 사람도 어느 정도 재우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너희 둘이 폭주하거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쓰라고 준 마취약인데······.”


일호와 이호는 순간 몸을 긴장시켰다. 재우는 그 두 사람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약을 부숴버렸다.


“나는 필요 없어. 폭주하는 것도, 임무에 불복종하는 것도 너희 선택이니까. 그리고 내 생각에 너희 둘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말이야.”


그 묘한 따뜻함을 알아가고 있었다.



* * * *



연우가 휴대폰을 붙잡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철가면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더 미룰 수 없어. 이 정도로 무능하면 경찰도 있으나 마나야.” “그렇다면 그 두 사람은·········.” “그 둘이라면 아직 쓸만해. 그리고 어쨌든 이해관계는 일치하니까.”

연우의 눈이 책상 위에 있는 자윤과 희서의 사진을 바라본다.


“어찌됐든 지금은 핀치히터를 부서트리는 게 우선이야. 이번에야말로 우승해서 어르신들과 연을 완전히 끊어버리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가서 준비해놓겠습니다.”

연우는 철가면에게 손짓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그녀는 남몰래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작가의말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래 걸려서 죄송합니다.

(근데 기다린 사람이 있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살인앱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20.11.06 26 0 -
공지 연재 주기 변경 안내 20.09.28 24 0 -
공지 휴재 공지(완) 20.07.24 31 0 -
공지 줄바꾸기 수정 예정 (완) 20.06.11 29 0 -
공지 연재 시간 공지입니다. 20.05.18 44 0 -
101 #101. 21.01.28 81 0 17쪽
100 #100 21.01.27 26 0 21쪽
99 #99. 21.01.21 29 0 21쪽
98 #98. 21.01.20 43 0 19쪽
97 #97. 21.01.14 34 0 18쪽
96 #96. 21.01.13 35 0 26쪽
» #95. 21.01.07 27 0 19쪽
94 #94. 20.10.29 30 0 11쪽
93 #93. 20.10.28 29 0 7쪽
92 #92. 20.10.22 21 0 9쪽
91 #91. 20.10.21 44 0 8쪽
90 #90. 20.10.15 32 0 8쪽
89 #89. 20.10.14 32 0 8쪽
88 #88. 20.10.08 80 0 9쪽
87 #87. 20.10.08 29 0 9쪽
86 #86. 20.10.01 35 0 8쪽
85 #85. 20.09.30 30 0 8쪽
84 #84. 20.09.18 32 0 16쪽
83 #83. 20.09.16 36 0 8쪽
82 #82. 20.09.15 54 0 12쪽
81 #81. 20.09.14 67 0 9쪽
80 #80. 20.09.10 47 0 12쪽
79 #79. 20.09.09 58 0 12쪽
78 #78. 20.09.08 55 0 12쪽
77 #77. 20.09.07 30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