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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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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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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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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DUMMY

눈이 내리고 있다. 내린 지 한참이 지났는지, 바닥에 소복이 쌓여 걸을 때마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그 위에 체인을 감은 차바퀴가 멈춰 섰다. 들어서기 어려운 골목, 성벽처럼 보이는 하단부, 무너질 것 같은 목조 건물. 색이 바래고 지워진 플래카드. 그곳은 창석의 집이었다.


“여기 사람이 살 수나 있어요?”


배득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왔지. 멍청아.”

“멍청이라는 말은 심해요, 유영씨.”

“욕하려던 걸 참은 건데?”


그 말에 수아가 놀란 눈을 깜빡인다.


“뭘 그렇게 놀라, 장난이야!”


유영이 그렇게 말하며 수아의 등을 떠민다. 멍청이란 소리에 우울해진 배득의 옆으로 인표가 다가와 담배를 건넸다.


“한 대 피고 가죠?”

“아아, 그래도 될까요?”

“바쁠 건 없으니까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배득은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인표가 붙여주는 불을 받으며, 뻐끔뻐끔 연기를 토해낸다. 그 옆으로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수혁이 몸을 부르르 떨며 창석의 집 문앞에 선다.


“적당히 피고 들어와.”

“먼저 들어가시게요?”

“기다릴 틈이 어디 있냐?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 말과 동시에 문을 ‘드르륵’하고 연다. 인표와 배득은 서둘러 담배를 눈밭에 비벼 끄고 따라붙었다.

열린 문으로 수혁이 가장 먼저 발을 내디뎠다. 그 뒤로 유영과 수아가, 마지막으로 인표와 배득이 따라붙는다. 눈을 밟았던 신발 그대로 목조 바닥을 조심스럽게 지나는 그들의 눈은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연신 깜빡였다. 눈은 멀었지만, 그만큼 곤두선 귀로 미세하게 TV 소리가 들려온다.


“최근에 또다시 범죄율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으며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기다란 복도를 지난다. 더듬대는 손이 문에 부딪혀 커다란 소리를 냈다. TV 소리가 거기에 묻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인표가 마른 침을 슬며시 삼키며 문을 밀어 열었다. 어두운 방의 70% 정도를 채우고 있는 둥근 탁자와 그 앞에 번쩍이고 있는 TV의 빛. 그리고 그 빛을 정통으로 맞으며 앉아 있는 창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누구여? 노크도 없이.”


번쩍이는 화면에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다만 똑바로 인표를 노려보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평범하지 않은 의도를 품은 눈으로 말이다.


“당신이 박 창석이야?”

“찬석이 아니라 창석이여, 이놈들아.”


잠시 침묵이 흐른다.


“뭐더러 왔어? 쳐들어왔으면 말을 혀.”

“당신의 핀치 히터의 책임자라는 걸 알고 왔어.”


수혁이 품에서 수갑과 공식 영장을 꺼낸다.


“지금부터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쓸데없는 미란다 원칙이라는 것을 읊으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접근한다. 창석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에게 체포됐다. 배득과 인표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기다란 복도를 걸어 창석을 실로 오랜만에 하늘빛을 쬈다.


“이런 썩을·········.”


눈을 질끈 감으며 그가 밖에서 처음 뱉은 말이었다. 그를 붙들고 있던 두 사람은 그 소리를 흘려들으며 구기듯 차 안에 밀어 넣었다.


“한 놈은 걸어와야것네?”


차 안에 자리를 잡으며 그가 실실 웃었다.


“말씀 안 하셔도 그러려 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예?”


배득이 약간 비꼬는 투에 화가 났는지 꽉꽉 눌러 말하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모여있는 네 사람에게 말한다.


“그럼 예정대로 수아 씨가 운전하고, 저와 선배님이 뒤에서 붙들고 있는 걸로 하면 되죠?”

“예. 문제가 있으면 바로 연락 주시고요.”

“너희 둘도 일 생기면 연락해. 너무 오래 있지는 말고,”


수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청석의 집 쪽으로 한 걸음 멀어져 있는 인표와 유영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창석의 집을 불쾌한 듯 노려본다.


“이런 집 오래 있으면 사람이 미치니까, 알겠어?”

“예. 걱정하지 마세요.”


인표의 대답에도 영 시원치 않은지 수혁은 얼굴을 구긴 채로 차에 탔다. 배득도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차에 타고, 수아는 운전에 자신이 없다는 얼굴로 심호흡을 몇 번 한 후에 가장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눈을 밟으며 멀어지는 차를 한참 좇아 보다가, 인표와 유영은 창석의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너무 고생하는 거 아녀? 불렀으면 갔을 턴디.”


골목 어귀에서 벗어나 큰 길에 들어섰을 때, 창석이 그렇게 말을 꺼냈다.


“니들 나 알고 왔으면, 전화할 생각은 왜 안 했니? 이 늙은이 놀래키려 그랬니?”

“그런 거 아니니까, 조용히 갑시다.”


배득이 사납게 말했으나, 그게 오히려 창석의 입이 더욱 놀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런 거 아니라면? 그런 게 아니라면, 뭐니? 아야. 내가 병신도 아니고 니들이 들어오는 걸 몰랐겠니? 말해 봐. 뭐 때문이여?”

“할아버지, 저기······.”


얼굴을 들이밀며 말하는 그의 태도가 불쾌한 배득은 제대로 답을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말은 회피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어. 그걸 몰러?”

“할배랑 할 얘기 없으니까, 입 다무세요. 아시겠어요?”

“배득. 그만 말해라. 네가 자꾸 대꾸하니까 더 그러는 거야.”


창석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리고 아까 방안에서 수혁을 바라봤던 그 눈 그대로 그를 바라본다.


“능구렁이가 왜 아직도 안 죽은겨? 아직도 무슨 미련이 남았길래 그려?”


수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니들이 하도 헛짓거리를 하니까, 내가 하나 알려주지. 잘 들어잉?”

“미친놈.”


배득이 아예 고개를 돌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건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차갑게 가라앉은 상황임에도, 섣불리 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냉담한 상황에도 창석은 쉬이 입을 놀렸다.

수영은 자기 운전에 바빠 그러한 분위기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뭐 별거 없고. 너희, 곧 있음 나 놓칠 거여. 알겠어?”


무시한다.


“저 봐라, 저, 저. 예상대로 딱 흘러가고 있잖여. 차도, 니들도.”


무시한다.

창석의 고개가 배득을 향해 틀어진다.


“어이, 어이! 임마!! 어르신이 말하는 데 무시 허냐? 엉?! 빨리, 빨리 들어야지!”


무시한다. 아예 멱살을 잡으며 말해도, 배득은 무시한다.


“아따, 요놈 새끼 봐라? 퍼뜩 이쪽 안 보냐? 싸게싸게 움직이란 말이여!”


무시한다. 그러다 수혁의 말대로 창석은 제풀에 지쳤는지 얌전히 앉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까까지 흥분한 목소리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아아, 뭐. 된겨. 이제 된겨. 시간은 됐응께.”


수혁이 그 말에 잠시 창석에게 시선을 흘렸다. 그건 배득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잠시 창밖에서 시선을 떨어트리는 순간,

그 둘의 시선이 창석에게로 향한 순간,

창석은 살며시 웃었다.


“그려, 된 겨. 딱 여기여.”


구급차 사이렌이 울린다.

주변의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였다.

수혁의 눈이 힘없이 앞만을 바라보고 있다. 숨소리만을 포착한다. 죽어가는 숨소리의 주인이 자신의 것임을 깨달았지만, 시선을 돌리거나 다른 곳을 볼 힘이 없다. 저 멀리 배득의 등이 보였다. 그건 그가 눈을 움직여서가 아니라, 쌀 포대를 바닥에 내려놓는 것과 같은 소리와 함께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에 볼 수 있었다.

바닥에 깔린 자신의 피와 배득에게서 흘러내리는 피가 영화처럼 뒤섞이는 게 천천히 보였다.


‘죽진 않겠다. 나나, 쟤나.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거지? 창밖으로 시선을 뗐을 뿐인데········· 이게 도대체 뭐지?’


머리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피안화처럼 피어올랐다. 전부 추측일 뿐, 정확한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교통사고? 단순히? 수아가 운전을 잘못한 건가? 아니야. 걔는 나나, 배득이나, 창석의 헛소리나, 그런 거 신경도 안 쓰고 운전에 집중했어. 그래서 운전대를 맡긴 거고. 그러면? 그렇다면, 왜 사고가 난 거지?’


그때 차바퀴 소리 하나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새로운 구급차나, 구경이 끝나서 떠나는 구경꾼의 차바퀴 소리가 아니라는 걸 인표는 알았다. 고개를 돌릴 힘조차 없는 그의 시선이 누군가에 의해 움직인다.

덜컥.

목과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하늘이 보인다. 누군가에 의해 거치대에 올라가고, 그대로 구급차 안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차바퀴 소리는 그것과 함께 멀어지고, 구급차의 문이 닫히는 순간 더 들리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눈앞으로 환한 불빛이 들어왔다. 억지로 감기지도 않는 눈을 붙잡은 응급요원의 요청이 계속해서 머리를 가격했다.


“숨은 쉬어지세요? 말씀하실 수 있겠어요, 형사님?”

“·········아, 좀 닥쳐라.”


힘겹게 뱉은 말은 그거였다. 꽤나 험악한 말이었음에도 응급대원은 오히려 안심의 미소를 보냈다. 가만히 있으니 팔에 잠깐의 통증이 지나간다. 몸 안으로 무엇인가 허가도 없이 밀려들어 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몸 안을 한 바퀴 돌았을 때, 조금은 눈을 움직이고 입을 떨고 손가락 끝을 까닥할 힘이 생겼다.


“뭔······냐?”

“에?”


응급대원이 모기의 날갯짓과 같은 인표의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귀를 가져다 댄다.


“다시 말씀해 주세요.”

“······일이······고.”

“아아, 형사님 방금 교통사고 당하셨어요.”


예상했던 대로.


‘그러면 그 후에는?’


그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응급대원은 여기저기 그가 보지 못하는 쪽에서 무엇인가를 확인하며 답한다.


“사거리에서 봉고차 한 대가 그대로 들이박았어요. 다행히 충돌 직전에 운전자가 핸들을 꺾어서 트렁크부터 들이 받혔는데, 어떻게 보면 다행이죠. 동료분도 크게 다친 건 없어서 저희가 오기 전까지는 서 계셨어요.”


서 있었다는 말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그래서 한참 후에 자신의 시야에 쓰러졌다는 건, 그가 상처를 이끌고 무엇인가를 쫓고 있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놈을 놓친 거군.’


수혁은 확신했다.

그리고 그것을 비웃듯.


“그리고 연행하던 분은 즉사하셨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시선을 피한다. 응급대원이 입술을 깨무는 게 보였다.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힘을 주고 있는데, 분노하고 있는데, 고작 움직이는 건 손끝과 눈과 입술뿐이었다. 수혁은 급격한 흥분 상태에 빠져 정신을 잃으면서, 자신이 무시해 버렸던 창석의 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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