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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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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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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50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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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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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0.

DUMMY

털털거리는 승합차의 문을 열고 수혁이 내렸다. 유영과 수아를 먼저 집에 내려다 주고 그가 세 번째였다. 배득과 인표가 모래 탑처럼 얼굴을 겹친 채 그에게 인사했다.


“그럼 들어가세요~”

“그래, 두 사람도 조심히 들어가고!”


창문이 닫히고 수혁의 몸이 흐릿하게 멀어져갔다.


“어디로 가십니까?”

“저는 사무실로 가주세요.”

“집은 안 가시게요?”

“이제 거기가 제집이죠, 뭐.”


인표는 그렇게 말하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쓸쓸한 비라도 내렸으면 분위기라도 있었을 텐데, 그저 평범하기만 한 밤바람만 창 안으로 밀려들어 올 뿐이다.


“그나저나 이상했죠, 그 대타 업체라는 곳.”

“·········뭐, 그렇죠.”


인표는 별일 없이 창문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영혼 없이 답했다.


“가구를 만드는 회사 같지도 않고, 딱히 그렇다고 아닌 것 같지도 않고············. 뭐 어쨌든 참 묘해요?”

“·········그러게요.”


인표도 대타 업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배득의 말대로 그 묘한 분위기는 곱씹을수록 자꾸만 걸렸다. 특히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정교한 가구들이 무척이나 인상에 남았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디자인, 마치 어릴 적 판타지 속을 유영하던 꿈같은 그 모습을 떠올리고 있노라니, 창문의 움직임은 어느새 그 가구를 닮아 있었다.


“무엇 때문에 오신 거죠?”


호야가 고급스러운 유리잔을 닦으며 물었다. 인표는 그가 그렇게 묻기 전까지도 저절로 파도를 치며 움직이고 있는 오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르골은 피노키오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노래에 맞춰 나무로 만든 인물과 파도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넘실대는 파도, 뗏목, 입을 벌린 고래와 그 안의 할아버지가 역동적인 음악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경찰입니다. 잠시 조사할 게 있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서야 인표는 그 오르골에서 시선을 뜯어낼 수 있었다.


“경찰에서 무슨 일로 여길·········.”

“다름이 아니고, 최근에 일어난 살인 사건이 이곳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서요,”

“살인 사건이랑요?”


그의 놀란 얼굴은 진심이었다. 수혁이 날카롭게 그 표정을 스캔한 후에 시선을 거두었다.


“잠시 조사를 해도 될까요? 영장은 없기 때문에 거부하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흠.”


호야는 잠시 신중하게 생각에 잠겼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가게의 이미지에 덜 손상을 입힐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업가의 얼굴이었다.


“어떤 살인 사건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시다면 조사를 해야죠. 편하게 둘러보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혁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몇 가지 제가 사장님께 질문할 예정이고, 다른 이들은 가게 구석구석을 조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대신 안쪽 사무실은 나중에 저와 함께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기엔 꽤 중요한 서류들이 많아서요.”

“물론이죠. 저희 쪽에서 부탁하는 입장인 걸요.”


매우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수혁이 바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수아와 유영 그리고 배득은 흩어져서 내부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인표도 뒤늦게 발걸음을 떼고 아까 보았던 오르골 쪽으로 다가섰다.


“뭐라도 마시겠습니까?”


호야가 물었다.


“아, 그럼 물 하나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호야가 고급스럽게 세공된 유리잔에 물을 따라 주었다. 수혁은 컵을 한참 동안 신기하게 바라본 후에 한 모금 홀짝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 다름이 아니고. 혹시 이 사람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습니까?”


수혁은 택진에게 부탁해 받은 피해자 오현우의 사진을 내밀었다. 호야는 그 사진을 받아 한참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도로 책상 위에 사진을 내려놓았다.


“전혀 모르겠네요. 유명한 사람인가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이쪽 가구를 이분께서 즐겨 쓰셨던 것 같더라고요. 현장에서 명함도 나왔었고요.” “아아······.”


순간 그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걸 수혁은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호야는 머리를 한번 긁적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응했다.


“아무래도 우리 회사 영업 사원이 건넨 게 아닌가 싶네요.”

“영업 사원이요?”

“네. 이래 보여도 우리 회사는 꽤 크니까요. 그 인원들을 일일이 제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쪽 방면이면······ 기다려 보세요.”


그가 고개를 숙여 모습을 감추고 뒤적거리는 소리를 내기를 약 3분. 허리를 펴며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여기, 이 인원 중 한 명일 겁니다. 조사에 필요하시다면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아, 예·········.”


중편 소설과 같은 두께의 서류 봉투를 보며 수혁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 마침 오르골이 멈추고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때아닌 고요가 꽉 조인 정장을 입은 것처럼 무척이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회사 규모는 어느 정도십니까?”


인표가 멈춘 오르골의 태엽을 감으며 물었다. 호야가 오르골을 돌리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다 그를 발견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아하게 팔짱을 끼고 서서 말했다.


“사업 규모라면 이따 사무실에 들어가면 자료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업 규모라는 게 말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감이 있어서요.”

“혹시 이 가게 디자인을 전부 회사 측에서 한 겁니까?”

“정확히는 제가 하고 있죠.”

“회사에서 만드는 가구는 전부 사장님께서 하시는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여기는 제가 가구를 만들기 전에 작은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았던 곳입니다. 지금 사업의 기틀을 닦아준 곳이죠. 그러다 보니 가장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가구들은 이곳에 배치해 두는 편입니다.”

“그러면 혹시 관도 짜시는 겁니까? 직접.”


두 사람의 시선이 오르골 소리를 타고 마주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파도와 같이 서로의 의도가 넘실댔다.


“물론이죠. 관도 짜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관도 하나의 가구니까요.”


여유롭게 웃어보이는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인표도 그를 따라 웃으며 다시 물었다.


“이 가게, 영업은 하는 겁니까?”

“물론이죠. 단골손님도 꽤 있어요. 액세서리 디자인과 제작도 매월 하고 있거든요.”

“액세서리 디자인이라······. 어떤 것들이 있나요?”

“뭐 다양하죠. 손님이 원하시는 걸 직접 디자인해드릴 때도 있으니까요.”


인표는 오르골을 쓰다듬었다.


“혹시 이곳에 특이한 피어싱을 부탁한 소년이 왔었던 적이 있습니까?”


그가 말하는 소년은 현이었다. 그건 호야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지 않으려 호야는 애썼다. 그게 더 자연스러울 테니 말이다.


“있었죠. 박········· 현 학생을 말씀하시는 거죠?”

“아십니까?”

“물론이에요. 특이한 부탁이기도 하고, 그때 얼굴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말도 안 되게 망가져 있어서 기억나요. 사진으로 보시겠어요?”


호야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현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온몸과 얼굴 전체에 흉하게 남은 상처들이 저절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수혁과 인표의 얼굴을 구기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었다고 들었는데, 상태가 많이 안 좋았죠.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도 어려워 보였어요. 그래도 몇 번이나 물었죠. 괜찮겠냐고. 그래도 그 아이는 강하더군요.”


추억에 젖은 눈으로 호야는 얘기했다. 가만히 놔두면 끝없이 얘기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유지한 채 말이다. 인표는 일부러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뒀다. 무엇이라도 건질 게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쪽에서 영악한 아이처럼 먼저 말을 멈추었다.


“이러다간 끝없이 말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 아이는 갑자기 왜·········?”

“아닙니다.”


대화는 그렇게 애매한 상태에서 끝나고 말았다. 때마침 가게를 전부 돌아본 다른 이들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 아쉬운 얼굴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럼 사무실로 가실까요?”


인표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배득이 옆에서 같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무슨 고민 있으세요?”

“배득 씨야 말로요. 왜 안 가고 여기 계세요?”

“······뭐, 저야 가도 영화 보는 것 말고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제는 노트북 가져와서 그것마저 못 하고요.”


두 사람의 연기가 웃음소리와 함께 뒤엉켜 천장 위로 흩어진다.


“아까 그 대타 업체 사장이요. 어떻게 알고 저 자료를 넘긴 걸까요?”


두 사람의 시선에 호야가 줬던 자료 뭉치가 걸린다.


“일부러 걸고넘어지지 않았던 거죠?”

“그래 보여요?”

“그럼요. 그쪽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보이니까요.”


인표가 재떨이 통에 담배를 비벼 껐다. 얼굴은 웃고 있었는데, 어딘가 석연치 않은 웃음이었다.


“걸고넘어지지 않은 건,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였어요. 어딘가 의심이 가도 그쪽에서 호의를 베풀어준 것이니까요. 괜히 걸고넘어졌다가 도리어 저희 쪽에서 당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었어요.”

“······하긴 뭐.”


배득은 손가락 사이까지 담뱃불이 타들어가도록 피고 나서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우리를 떠본 거 아닐까요? 어쩌면 범인 쪽에서 가장 껄끄러운 사람들은 저희일 테니까요.”

“함정을 팔지도 모른다·········. 그럴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어쨌든 애초에 저희 쪽에서 불리한 게임이에요. 저 자료가 어떤 의미일지, 함정일지 아닐지도 직접 가보지 않는 이상 모르니까요.”


배득이 늘어지라 기지개를 켜고 자료를 펼쳤다.


“그럼 오늘은 이거나 읽어 보렵니다.”

“같이 하죠. 어차피 제가 하려고 했던 거니까.”

“하긴 혼자서 다 읽으려면 분명 중간에 졸 겁니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자료를 반으로 나눠 가져가고 밤이 새도록 자료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출근 준비가 바쁜 시간대에 다른 이들이 뭐에 쫓기는 것처럼 동시에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거기.”

“언니도 그래서 잠 못 잤죠? 그 호야라는 사람 진짜 이상했다니까요?”

“누가 아니래. 가게 분위기도 묘한 게 냄새가 나, 냄새가.”

“그러게나 말이다. 담배 냄새가 자욱하긴 하네.”


수혁이 신문으로 방 안에 가득 찬 냄새를 물리며 말했다. 그 안으로 자료들 틈에 엎드려 자는 인표와 배득이 보였다. 담배 냄새와 다름없이 늘어진 두 사람에게 수아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두 사람 여기서 날 샜어요?”

“환기 좀 시키면서 하지. 지들끼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수혁은 쪽 창문을 열며 투덜댔다. 유영은 그들이 읽고 있던 자료들을 보고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두 사람을 깨우기 바빴다.


“아니 두 사람 몰래 와서 먼저 보는 게 어디 있어? 누구는 궁금해서 잠도 못 잤는데, 둘은 아주 흡족한 얼굴로 자고 있어? 일어나! 일어나라고!”


끔뻑끔뻑 눈을 뜨는 두 사람. 수혁은 아직도 남아있는 연기를 물리며 물었다.


“그래서 뭐 좀 발견했냐?”

“아아, 오셨어요? 다들 오셨네.”


인표가 몽롱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물론이죠. 오늘 바로 갈 거니까 준비하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만다.


작가의말

내일은 제가 게을러서 업데이트가 없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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