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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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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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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9
추천수 :
29
글자수 :
505,603

작성
20.10.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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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93.

DUMMY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가볍다고 생각한 그 빗방울들이 몸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몸이 무거워진다. 달빛마저 가린 먹구름이 쏟아내는 비가 이수의 몸에 들러붙어 날카롭게 베인 상처들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아아, 잘도 그냥 가네············.”


이수가 희미하게 끊기는 숨을 간신히 이어가며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 상처를 살펴보았다. 끔찍한 고통이 움직일 때마다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살핀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들이었다. 빗물에 섞여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체내의 피가 보인다. 이렇게도 많나 싶을 정도의 양이 옷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근데 아직 안 죽었어.”


그녀는 중얼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입에 담음으로써, 확신했다.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생존 사실을 깨닫자마자 본능이 뒤따랐다.

서둘러 휴대폰을 찾았으나, 저 멀리 박 현이 부숴놓은 기기의 잔해만이 어렴풋이 보였다.

출혈을 견디며 몸을 움직여볼 생각을 해봤지만, 도저히 무리였다. 생존 본능이 그 행동의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지금 상태에서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는 게 가장 최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자 본능을 발악으로, 확신은 통증으로 뒤바뀐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힘들어 보이네?”


그때 누군가 물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이수의 고개가 소리 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어렴풋한 실루엣이 검은 우산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

천사일까, 악마일까.

이수의 머리가 복잡하게 그것을 저울질한다.


“도와줄까?”


우산 속의 그림자가 손을 뻗었다. 무척이나 하얗고 가느다란 손. 이수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다가 떨리는 마음으로 붙잡았다.

이수가 정신을 잃었던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사람의 손을 붙잡았던 그 순간에 필름이 끊기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사이에 그녀는 약간의 악몽에 시달렸다.

내용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우선 정신없는 와중에 그녀는 그저 뛰고 있었다. 마라토너처럼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하염없이 뛰고 있었다. 쫓기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쫓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저. 멈출 생각도 없이 달릴 뿐이었다.

그렇게 달린 곳에는 작은 문 하나가 있었다. 150cm의 신장을 가진 사람이 몸을 구기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문이었다. 그 문을 열자, 끝없는 어둠이 그녀의 앞에 펼쳐진다. 높이도 길이도 가늠할 수 없는 어둠. 그녀가 거기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그녀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달려왔는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 순간, 꿈의 내용은 전부 잊어버린 채로 이수는 눈을 떴다.


“일어났어?”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그리 물었다.


“네. 당신이 절 구해주신 건가요?”


이수는 옷 없이 붕대만을 칭칭 감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며 물었다.

냉장고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바스락대며 목소리의 주인이 무엇인가를 꺼낸다.

아이스크림.

이수의 눈에, 어릴 때 자주 먹었던 뽕따의 푸른 포장지가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구해준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것을 뜯어 내용물을 꺼낸다.


“자.”


이수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상대가 내용물의 몸통을 그녀에게 던졌다.


“어어······.”


이수는 어정쩡한 자세로 그것을 받는다. 꽁다리가 없는 뽕따의 몸 부분이었다.


“제가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응. 난 꽁다리 밖에 안 먹거든.”


그리고는 아사삭, 아이스크림을 부숴 먹는다.

이수는 그런 그녀를 경계하듯 바라보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는다. 시원한 소리와 함께 입안이 차가워진다.


“왜 저를 구해주셨어요?”

“가니까 있어서.”

“나칠 수도 있었잖아요.”

“지나치기엔 너무 아파보이던데?”

“원하시는 게 뭐예요?”


바사삭. 이수의 입에서 아이스크림이 부스러진다.


“우연이라고 하지 마세요. 대타에서 왕 박사,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뽕따의 꽁다리가 쓰레기통 안에 던져진다. 그리고 묘한 미소가 왕 박사의 얼굴에 걸린다.


“그럼 몇 가지 물어도 될까? 그게 목적이었으니까.”

“거부가 허용되는 질문은 아닌 것 같은데요? 마음대로 하세요.”

“좋아.”


왕 박사는 자리에 앉아 이수 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뒤에 있는 커다란 컴퓨터 화면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춘다.


“몸은 어때?”


이수의 눈이 가늘어진다. 예상했던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거부할 자격 따위는 없으니, 대답을 위해 몸 상태를 확인해본다.


“통증이 남아 있는데, 참을 정도는 돼요.”

“좋아, 그럼 고쳐진 몸으로 뭐할 생각이야?”

“······뭐를 할 거냐고요?”


왕 박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대타로 돌아갈 거야? 아니면 복수라도 할래?”


돌아간다. 복수한다. 그 두 가지 선택지가 이수의 마음속 저울에 올라가질 않는다.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듯 평온히 그 외의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일단 그 둘은 아니네요. 이번 일을 끝으로 모든 걸 끝내려 했거든요. 질 줄은 몰랐지만요. 그리고 돌려 말하는 건 그만 하세요. 대충 감이 오니까. 어떤 정보가 필요하신 거예요?”

“그걸 말해줄 생각은 있어?”

“말했잖아요. 모든 걸 끝냈다고. 대타에 대한 미련도, 이 게임에 대한 집착도 이제 없어요.”


이수의 눈이 어두워진다. 이미 가슴이 아파져 올 것들은 자신을 제외하면 전부 잃었다. 그러니, 사실상 왕 박사가 구해주지 않았어도 본능에 버둥대기만 할 뿐 딱히 상관은 없었을 터였다.


“지금 당신한테 구해진 건, 그저 제 인생에 누군가 코인을 집어넣어 이어 하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왕 박사가 앉아 있는 의자를 밀어 이수의 가까이 다가갔다. 촤르르, 바퀴 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가깝게 만들었다. 그리고 코앞에서 멈춰선 왕 박사의 시선이 이수와 똑바로 마주한다.


“이어 하기 코인은 내가 넣었으니, 잠시 너로 플레이해도 된다는 말이겠지?”


음흉한 미소는 덤이었다. 이수는 그 미소를 받아들이며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다.


“좋을 대로 하세요. 무엇을 꾸미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걱정하지 마. 네가 동의한다면 전부 알려줄 테니까.”


이수가 그녀의 시선으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수술대에 다시 누웠다.


“그 전에 회복 좀 하고요.”

“내가 철저하게 회복시켜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2~3일이면 다 나을 거야.”

“그렇게 빨리요?”


왕 박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얼마나 이상한 걸 시키시려고·········.”


그날 들었던 계획이 터무니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실제로 연우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수는 몸을 떨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연우와 동등한 높이에서 이수의 눈이 깜빡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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