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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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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9
글자수 :
50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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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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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91.

DUMMY

찬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마치 혹독한 앞날을 암시해 주려는 듯이 그 추위에 절로 옷깃을 여며야 했다.

연우는 그간 몇 년간 몸을 숨겨왔던 대타 업체를 정리하고 있었다. 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이 공간도, 이력도, 이제까지의 거래 내역도 전부. 애초에 그녀는 그렇게 하려 했다. 아니, 애초에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


그녀는 스스로 의문을 던진다. 수없이 던졌으나, 완전히 결심을 굳힌 지금까지도 곧바로 답이 나오질 않는다. 박 현이 죽고 추악한 살인자들의 게임이 끝날 때를 이용해 완전히 연을 끊으려 했던 속셈을 그때도 이런 식으로 한 발짝 물러났었다.


‘이제는 그래서는 안 돼.’


옆에 있는 자신의 책상 위에 수많은 기밀 서류들이 가득 쌓여있다. 그중 하나를 집어 그녀는 찬찬히 살펴본다. 그날 재난관리본부에서 사망한 자들의 명단이었다.


“정말 전부 말소합니까?”


그녀의 옆에서 뒤짐을 쥐고 서 있는 철가면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연우는 그게 우문이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서류 뭉치를 앞으로 던진다. 서류 뭉치는 힘없이 날아가 불길을 품은 드럼통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가볍고도 쉬이 타들어간다.


“전부. 고민할 것도, 의문을 가질 것도 없어. 명령대로. 예정대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철가면이 한 박자 늦게 답한다. 흘깃 연우의 눈이 그에게 머물다 사라진다.


“이제 더는 망설일 수 없어. 다시 온, 천금 같은 기회를 이번에는 놓쳐서는 안 돼. 윗선과의 그리고 추악한 우리들의 연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는 건, 지금뿐이야.”


철가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우는 그 반응에 슬며시 웃으며 말한다.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면 뭘 할 거지? 박사님들은 제아를 데리고 하와이로 가신다던데.”

“저는······.”

“괜찮아. 이번 일이 정말 마지막이니까.”


철가면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뗀다.


“저는 연우님을 따라가려 합니다.”

”기쁘네.“


연우가 슬며시 웃지만, 그 웃음은 곧바로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그러면 안 돼. 그래서는 안 돼. 너무 많은 죄를 지었어. 나는 이번 일이 끝나면.”

“그래도 따라갑니다.”


두 사람이 눈을 마주했다. 드럼통 안에 있는 불똥이 밖으로 튀는 소리가 잠시 두 사람의 침묵을 어지럽힌다.


“그럴 필요도 의무도 없어. 이번 임무가 마지막이야. 그리고 임무가 끝나면 떠나도록 해. 이건 내 마지막 명령이야.”


철가면은 답하지 않았다. 연우는 그런 그에게 시선을 돌리고 자리에서 벗어난다.


“나머지는 네가 태우도록 해. 그리고 이틀 후, 정문에서 만나. 박사님이랑 제아도 데리고. 알겠지?”

“알겠습니다.”


멀어지는 그녀를 등지고, 철가면은 고개를 숙였다.

무거운 문을 닫고 곧바로 복도에 들어섰지만, 연우의 마음은 아직까지도 그 방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 안 돼. 그러면. 그분을, 그리고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연우는 주먹을 꽉 쥐고 어둑한 복도의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


인표와 배득이 유영을 만난 건, 근처 중국집에서였다. 태연하게 짜장면과 탕수육, 거기에 짬뽕까지 시켜먹고 있는 그녀를 보고 두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위험한 상황 아니었어요?”

“위험했지. 전화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데 밥이 넘어가십니까?”


배득이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외친다.


“여기 짜장면 하나요!”


그리고 인표를 향해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인표 씨는?”

“네? 아아, 저는 볶음밥이요.”

“아주머니, 여기 볶음밥도 하나!”


저 멀리서 아주머니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배득은 할 일을 끝낸 작업자처럼 뿌듯한 얼굴로 유영을 바라보고 묻는다.


“그래서 무슨 일이었는데요?”

“뭐 따지고 보면 별일 아니야.”


후루룩. 면이 차진 소리를 낸다.


“미향이라는 사람이 스파이였더라고, 예상대로.”


‘예상대로’라는 말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알고 계셨던 거예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인표. 네가 그녀에게 물어봤을 때 제법 증거는 있었잖아? 터무니없이 태연하고 완벽한 태도. 의심했던 건, 걔가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라고 했던 부분이려나?”

“자, 여기 짜장면이랑 볶음밥~”


두 사람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음식을 받았다. 그걸 확인한 유영은 탕수육 하나를 집어 먹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뭐. 개인적인 생각인데. 보통 자주 죽는다, 죽는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전이 아니라 당시나 이후를 생각하지 않나 해서.”

“무슨 말입니까?”

“그렇잖아. 만약 내가 지금 여기서. 아~ 그냥 뒤져버리고 싶다. 라고 말하면 뭐라 할래?”


배득과 인표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입을 뗀 것은 인표였다.


“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응? 뭐가? 내가 무슨 말했었어?”

“예?”


인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지만, 유영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리고 손으로 계속해보라는 신호를 보낸다.


“무슨 말이야? 너 어제 죽는다고 해서 내가·········.”


그리고 깨닫는다.

유영이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탕수육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알겠어? 그녀는 당시와 이후가 아닌 그 전에 그가 무엇을 했는지 만을 기억하고 있었어. 그게 이상한 거야. 적어도 이후에 걱정돼서 자신이 취한 행동들을 나열하기도 바쁠 텐데 말이야.”


그녀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얘기한다.


“그냥 다 내 추측일 뿐이지만, 미향이라는 그 여자가 추측에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점에 영 찜찜해.”

“그러게요·········.”

“너희 둘은 그래도 촉이 좋으니까, 생각하고 있는 게 있을 거 아니야? 한번 말해 봐.”


배득과 인표는 이미 그녀의 기세에 눌려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에헤이.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을 거 아냐?”

“그거야 그런데. 워낙 기세가 좋으시니까요.”


배득의 말에 유영은 크게 웃는다.


“기세? 좋긴 하지. 뭐 그런 건 됐고. 빨리 말해 봐. 자, 배득. 너부터.”

“저, 저요?”


배득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나온 짜장면을 우걱우걱 넘기고 얘기를 시작했다.


“저 그때 봤던 차량, 뒤를 쫓아갔었거든요?”

“응.”

“근데 거기 딱 있더라고요. 시체.”

“시체?”

“아아, 정확히는 흔적이요. 혈흔들. 치울 생각이 없더라고요.”

“그건 수상하네.”

“그렇죠? 범인이 지나간 건 확실하고 도망간 것도 확실한데 흔적은 전이랑 완전 달라요. 거기다. 더 이상한 건, 족적이 두 개 더 있었다는 거.”


유영은 흥미롭게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네 생각은?”

“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단 전 적어도 그 세 사람이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거야 그렇겠지.”

“아, 아니.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별개의 집단이요. 살인의 목적도 방식도 완전히 다른. 보통 수사 영화를 보면 말이죠. 이런 것들에 항상 반전이 있거든요. 지인 중에 스파이가 있다거나. 원래 알고 지내던, 믿고 있던 사람들이 실은 범인과 연루돼 있거나 말이에요.”


의미심장하게 얘기한 배득은 자기도 그건 아니라는 듯, 머리를 긁적인다.


“아니면 말고요. 헤헤.”

“가능성은 두고 있어야겠네요. 저희가 상대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너는 어떤데?”


유영은 빈 그릇들을 정리한다. 눈만은 인표에게 고정한 채다. 인표도 절반 정도 남은 볶음밥을 한쪽에 몰아넣으며 답한다.


“저도 배득씨 의견에는 동의해요. 저는 거기에 더해, 그 두 조직이 핀치 히터랑········· 대타. 둘 모두라는 생각하는 점일까요?”

“근거는?”

“저는 애초에 재우씨 말을 하나도 믿지 않았으니까요.”

“아하, 그렇구나?”


유영은 미소를 품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두 사람도 그녀를 따라 일어났으나, 계산은 이미 그녀가 끝낸 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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