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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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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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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9
글자수 :
505,603

작성
20.10.0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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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88.

DUMMY

미향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케리어를 꼭 붙잡아 들고 있다. 그것이 그녀에게 날아오던 유영의 발을 막아주고 있었다.


“아까처럼 안 당해.”


유영이 다시 자세를 잡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진압봉을 꺼낸다. 그것을 휘두르자 유영은 붙잡고 있던 케리어를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수많은 연장과 나이프가 떨어진다.


“아니, 미친 거 아니야?”

“죽는 것보다는 낫지!”


떨어진 수많은 것 중에 굳이 공구용 망치 하나를 들어 달려드는 그녀의 눈에서 이성이란 걸 찾을 수 없었다.

한 차례의 망치질이 뒤편에 있는 거울을 바스러트린다. 유영의 뒤통수에서 파편들이 튀어나온다. 우수수, 반짝이는 그것들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이번엔 유영이 진압봉을 휘두른다.


“으아아악!”


힘찬 기합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맞물린다. 서로가 서로의 팔을 붙잡고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쉽사리 우열을 가리기 힘든 와중에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현재 층을 확인한다.


‘5층······!’


두 사람은 동시에 생각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도망과 봉쇄라는 형태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 떨어진 연장들. 그리고 남은 층수. 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인다. 서로의 연장을 맞부딪치고 벽과 유리를 부서트린다. 그리고 그것이 쓸모를 다했다 생각되면 곧장 버리고 새로운 연장을 주워 다시 맞물렸다.

유영은 문 앞을 사수하려 애썼고, 미향은 어떻게든 비집을 틈을 마련하기 위해 안달이 났다. 단 몇 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두 사람의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는 새로운 형태로 뒤바뀌었다.


유영에게 초고층을 다시 누른다는 선택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미향은 필사적이었다. 유영의 방어를 뚫는 것보다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막는 것이 더 급해졌다. 반면에 유영 측은 여유로워졌다. 적당히 버튼을 누를 기세로 덤비면 미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계속 이러고 있다 보면 분명 위층에서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불러낼 것이다.


“포기해. 내 쪽이 더 유리한 게임이야. 애초에 내가 존댓말을 사용했을 때 계단으로 도망쳤어야지. 그게 더 승산이 있었을 텐데, 무슨 배짱으로 엘리베이터에 탄 거야?”


유영이 바닥에 나뒹구는 자신의 진압봉을 집어 든다. 반면에 미향은 그녀를 노려보고만 있을 뿐, 연장조차 쥐지 않고 있었다. 반쯤 그녀도 포기했으리라, 유영은 안일하게 사고한다.


“적당히 움직여야 들 아파. 알지?”


들려 있는 무기, 유리한 상황, 그것이 선사하는 방심은 자신의 등 뒤의 문이 저절로 열리기 전까지 유영은 깨닫지 못했다. 문이 완전히 열리고 둔탁한 무엇인가가 등을 떠밀었을 때조차도.


“으윽!”

“지금이야, 나와!”


유영은 상차가 되는 택배 상자처럼 연장들과 유리조각들 위를 나뒹굴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미향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사내가 아른거린다. 그리고 그 손을 붙잡고 달아나는 미향의 뒷모습이 찰나와 같이 스친다.


“기다려!”


서둘러 몸을 가누고 일어나고 쫓아가려 할 때, 다시 한 번 둔탁한 타격이 몸에 전달됐다. 사내의 발이 정확히 그녀의 복부를 강타한 것이었다. 또다시 뒹구는 그녀의 머리가 벽에 제대로 부딪히고 말았다.


“하, 진짜. 가지가지 하네.”


뒤통수가 흐르는 피로 뜨거워지고 있었으나, 유영은 눈을 부릅뜨고 몸을 일으킨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내는 질렸다는 표정을 짓다가 손을 뻗어 가장 높은 층수를 누르고 문을 닫아버린다.

당장 튀어 오르듯 몸을 던졌다면 문을 붙잡고 나갈 수 있었을 테지만, 닫히는 문을 따라 유영의 눈이 스르르 감기고 만다.


* * * *


재우는 중간에 차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차를 타고 도망치던 순간이 너무 아슬아슬했던 게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서였다. 그래서 핸들을 꺾어 주변의 강가를 찾아 차를 몰았다.


“분명 의심할 거야.”


서둘러 밖으로 나와 주변을 서성이는 그의 얼굴에 찬 새벽바람이 스친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가누며 묵직한 바위 하나를 주워 시동이 걸려있는 차 안으로 들어가 액셀에 바위를 올려놓는다.

부드럽게 나아가는 차를 미련도 없이 강가에 던져버리고 재우는 휴대폰을 꺼냈다. 이리저리 화면을 움직이며 어플이 지워진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얼굴로 방금까지 미련 없이 외면했던 강가를 바라본다.


“이걸 된 거야. 이걸로. 이제 내 가족들에게 돌아가면 돼.”


옷깃을 여미며 그는 전화를 기다렸다. 전화를 기다리기 수십 분. 코를 훌쩍이게 될 때쯤에 철가면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문제가 생겼다.”


첫 마디부터 불길한 의미를 잔뜩 품은 말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미향이 잡힐 뻔했어. 잡히진 않았지만,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보여주고 말았다.”

“그, 그건 저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제 일은 끝났어요.”


재우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붙잡은 손도 어느새 두 손이 됐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깊고 끈적한 침묵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세요. 왜 말이 없어요! 제 일은 이제 끝난 거죠?”


그러다 섬뜩한 기분에 그의 얼굴이 순간 무너져 내렸다.


“제 가족은요? 제 가족은 무사한 거죠? 약속했잖아요. 이번 일만 도와드리면 가족 다시 볼 수 있게······.”

“유감이군.”

“하하하, 유감·····················이라뇨?”


휴대폰 넘어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린다.


“한 가지 일을 더 해줘야겠어. 가족들은 안전하니까 걱정 말고.”


가족이라는 단어가 야속하게도 그의 마음을 부여잡는다. 어느 때보다 편안함을 느끼는 단어면서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단어이기도 했다.

재우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뭘 하면 되는데요?”

“미향의 대타가 필요해. 네가 구해와.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는 알지?”

“알았어요. 그것만이에요. 아시겠죠?”

“약속하지.”


전화가 그대로 끊겼다. 재우는 휴대폰이 부서질 정도로 꽉 움켜쥐고는 신경질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북적이는 번화가를 발견하고 인파 틈을 파고든다. 새벽의 번화가는 술을 가득 끼얹고 있다. 풀풀 풍기는 알코올의 향기는 모든 이들의 뇌를 느슨하게 만들어 근육을 풀어버린다.

재우는 그들 중 하나를 고른다. 적당히, 그리고 유사하게 생긴 자로. 똑같지 않아도 된다.


‘이목구비의 위치만 똑같으면 돼.’


그렇게 포착된 한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친구와 둘이서 비척비척 알코올이 가득 채워진 번화가를 벗어나지 못 하고 맴돌고 있다. 택시를 잡아 친구를 먼저 보내고 번번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안쓰러운 이였다.

재우는 그런 그녀의 뒤를 번화가에 끼얹어진 알코올처럼 유유히 따라간다.

둔탁한 소리.

묵직한 타격.

그리고 웃음.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이것을 위해서, 저것을 위해서, 중얼중얼············. 무수한 변명으로 얼룩진 얼굴은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고 환하게 웃고 있다.


“벌써?”

“네. 그러니까 빨리 가져가요. 그리고 다신 연락하지 마세요.”

“알겠어. 자네 쪽에서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그럴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죠. 절대로.”

“곧 사람이 갈 거야. 가족들이 있는 장소와 비행기 티켓도 함께. 그럼 이제까지 수고했네.”


전화가 끊긴다. 그리고 동시에 검은 봉고차 한 대가 그의 앞에 선다. 얼굴에 철가면을 쓴 크고 작은 이들이 발밑에 있는 시체를 회수하고 그에게 티켓과 약도를 넘겼다.


‘드디어.’


재우는 왈칵 쏟아질 뻔한 눈물을 참는다. 그리고 그것을 움켜쥐고 도망치는 자신이 있던 공간에서 달아났다.

배득이 그 현장에 도착한 것은 새벽의 공기와 알코올 내음이 서서히 떠나가기 시작할 때였다. 그는 멍한 눈으로 떠오르는 태양 빛을 받았다. 그의 눈이 태양을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땅 아래를 본다. 태양보다 더 붉은 핏자국이 그의 눈에 담긴다.

바람이 불며 풀들을 누이고, 수상쩍은 현장을 흘깃 바라보며 조깅하는 이들이 지나간다. 아침 산책을 나온 하얀 개 한 마리가 그를 향해 짖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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