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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살인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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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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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50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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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4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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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81.

DUMMY

잿빛 색의 외관에 싸늘하게 닫힌 창문들이 약한 바람에도 덜컹거렸다. 묘하게 목욕탕 냄새가 짙게 밴 복도를 걸으며 인표와 다른 이들이 ‘301’호라고 쓰여 있는 방 앞에 섰다. 친절하다고 볼 수 없는 손길로 인표가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차 미향 씨! 차 미향 씨 계십니까?”


인표가 다시 한 번 거칠게 문을 두드리려 할 때,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구세요?”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워낙 위협적이었는지, 문을 열지 않은 채 덜덜 떨리는 목소리였다. 인표는 시간을 끌리고 싶지 않았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경찰입니다. 나 이 윤 씨 살인 사건에 관련해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살인’이라는 단어가 꽤 주효하게 작용했는지, 문은 곧장 열렸다. 굽이치는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상당히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이 두려움과 걱정으로 칙칙하게 변색돼 있었다.

걱정 위에 두려움이 살짝 플레이팅 된 얼굴로 그녀는 말했다.


“들어오세요.”


빨간색과 검은색이 지그재그로 교차하는 무늬의 소파 하나. 그리고 널찍한 탁자. 부엌과 작은 노트북이 전부인 조촐한 방이었다. 신발도 단 두 켤레가 전부였으며, 널린 빨래에도 옷가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차······라도 마시면서 얘기하는 게 좋겠죠?”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게 좋을 거예요. 굉장히 긴장하신 것 같은데······.”


수아가 그녀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주의하며 말했다.


“그럼 잠시만 앉아 계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수아가 후다닥 그녀의 옆으로 뛰어갔다. 잠깐 두 사람이 ‘괜찮다.’는 승강이를 벌이다가 조용해졌다. 인표와 배득, 그리고 수혁은 널찍한 책상 주위에 앉으며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가구들의 상표였다.


“대타지?”


수혁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려는 그들을 막아 세우듯, 미향이 물어왔다. 고개를 돌리지 않은 거로 봐서는 순전히 우연일 가능성도 있었다.


“근데 이윤 씨·········가 살해당했다는 건 정말인가요? 도저히 믿기질 않아서요.”


물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이윤 씨와는 본래 자주 보던 사이셨습니까?”

“네. 제가 처음으로 거래에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고, 지금은 단골손님이거든요.”

“처음 만났던 날짜를 혹시 기억하십니까?”

“네.”


인표의 질문에 그녀는 민들레 차 팩을 담근 잔을 인원수에 맞게 나눠주며 말했다.


“2년 전이였어요. 처음 초인종을 눌렀을 때, 무척이나 긴장했던 게 기억나요.”

“그럼 2년 동안 쭉 알아 오셨던 거네요?”

“네. 개인적으로도 자주 만났어요.”

“혹시, 두 분은 연인 관계셨나요?”


수아가 찻잔 옮기는 걸 도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향은 고맙다는 눈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감히 그럴 수야 없죠.”


굳이 그녀는 ‘감히’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인표가 그런 부분을 놓칠 리 없다.


“왜죠?”

“그 사람은······.”


미향은 잠시 그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꽤 높은 사람의 자제라고 들었거든요.”

“대기업?”


유영이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기업보다는 정치나 학계 쪽인 걸로 알고 있어요.”

“정확하지는 않나 보네요.”


인표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척이나 꺼렸으니까요. 말하는 것도, 누군가 듣는 것도, 알아채는 것도요.”


흥미로운 일이었다. 보통은 자랑하고 다닐 터였으니 말이다.


“이유는 혹시 아시나요?”

“한 번도 얘기해준 적은 없어요. 다만, 짐작 가는 게········· 있긴 해요.”


그녀는 찻잔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가끔 누군가 자기를 죽일 거라는 말을, 하곤 했거든요.”

“·········자세히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에요.”


약속이라도 한 듯, 거기 있는 이들은 거의 동시에 앞에 놓인 차를 들이켰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의 공기를 잠시 환기시켰다.


“이윤 씨가, 간혹 사색이 돼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이유 같은 건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러고 간 날이면 길게는 일주일 동안은 연락이 되지 않았죠.”

“특이한 점은 없으셨나요? 그 전에 무엇을 했다거나······ 그런 식으로요.”

“음······.”


미향은 조금은 긴장이 풀렸는지, 아까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앉아 있는 이들의 표정을 살피기까지도 했다. 특히 그녀는 수혁과 인표의 표정을 한참 바라보았다.


“저희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인표가 볼을 매만지며 물었다.


“아뇨, 아뇨. 두 분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가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까 얼굴이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몇몇 있거든요.”

“그래요?”

“네. 형사님들까지 정확하진 않아도, 뭔가 알고 있다거나 무슨 의도나 의향이 있다거나 그런 것들은 제법 정확해요.”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윤 씨가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 두 분은 알고 계신 듯해서요.”


순간 긴장의 끈이 꽉 당겨졌다. 너무도 팽팽히 당겨져서 그만 끊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미향이 그 분위기를 부서트릴 정도의 박수를 치며 말을 돌렸다.


“뭐, 그랬으면 저를 찾아올 리는 없으셨겠죠?”


완전히 긴장한 티를 벗어낸 그녀는, 그게 평소의 표정인 듯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플’에 관련된 얘기는 함부로 꺼낼 수는 없었으니, 인표를 포함한 다른 이들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확 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어렴풋이 기억나는 거라면 항상 휴대폰. 네. 휴대폰을 보고나서였던 것 같아요.”

“휴대폰이요?”


그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눈을 마주했다.


“혹시 나 이윤 씨와 가까웠던 분에 대해서는 아시는 게 있을까요?”

“그쪽 관계자와 저를 빼고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은 본적이 없었어요.”

“연락도······.”

“네. 저랑 있을 때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과 연락한 적은 없었어요.”


아무래도 그녀에게 캘 수 있는 건 이 정도인 듯했다. 인표가 다른 이들과 시선을 주고받고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는 분위기로 옮겨갔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물론이죠.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혹시 더 생각나시는 게 있다면 이쪽으로 연락해주세요.”


인표가 자신의 명함 하나를 건네고 몸을 돌렸다. 미향은 멀어지는 다섯 명과 명함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금 어두운 얼굴로 문을 닫았다.


“다음은 어디에요?”


배득이 안전벨트를 매며 물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핸들을 잡는 그에게 수아가 말했다.


“이번에 김 재우 씨라고 돼 있네요.”

“위치 좀 말해 주세요~”


차는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미향이 그런 그들의 차를 창을 통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아까 인표에게 받은 명함을 만지작거리다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 연결음이 두세 번 정도 이어지고, 곧바로 누군가가 받았다.


“왜.”


낮고 차가운 남성의 목소리였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대충 호야한테 들었어. 걱정은 안 하니까 앞으로 연락할 필요 없어.”

“아뇨, 아뇨! 잠시만요!!”


당장 끊으려는 남성을 미향은 다급하게 붙잡았다. 마치 그 전화가 끊기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것처럼.


“시간을 길게 주지 못해. 알고 있지?”

“······네.”

“그럼 말해.”


미향은 입술을 매만지다가 살짝 깨물었다.


“그 사람들, 어플에 대해 아는 것 같아요.”


짧은 정적 이후,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터져 나온다. 미향은 그 소리에 당황한 얼굴로 휴대폰을 붙잡았다.


“저, 정말이에요!”


말이 없자 미향은 다급하게 한 번 더 말했다.


“믿어주세요!”

“·········일단 알았다. 네가 눈치 챈 거라면 틀림없겠지.”


깊게 낮아진 목소리에 그녀는 마음이 철렁했다. 불안하게 붙잡은 휴대폰이 그녀의 손을 따라 조금씩 떨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다음은 김 재우에게 갔을 거야. 뭘 해야 하는지는 알겠지?”


휴대폰을 붙잡은 떨림이 멈춘다. 미향의 표정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지더니 움츠러들었던 자세가 꼿꼿하게 펴졌다.


“물론이죠. 믿어주세요.”

“믿어보지.”


상대는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미향은 다시 한 번 입술을 꽉 깨문 후에, 곧장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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