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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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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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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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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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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9.

DUMMY

유영이 가장 먼저 시체 앞에 쭈그려 앉았다. 호기심이라는 원소와 탐구심이라는 원소가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처럼 그녀의 눈에서는 반짝이 가루가 폭발하고 있었다.


“망치? 아님 돌인가?”

“어어! 손 데면 안 돼!”


박 순경이 두개골에 손을 데려는 유영을 제재했다. 그녀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장난스럽게 손을 델까 말까를 반복했다.


“장난치지 말고!”

“어쨌든 둔기겠네.”


그녀는 박 순경의 말을 싹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


“손이야 그렇다 쳐도, 두개골이 완전히 박살 났는데? 앞뒤로. 근데 아무것도 없네? 후후후, 신기해라~”

“흔적이요?”


배득이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박 순경이 막무가내인 그녀의 태도에 혀를 한 번 찼다.


“아니야, 뇌를 말하는 거야.”


박 순경의 말에 다른 이들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뇌가 없다니?”

“여기 보이지? 마루뼈 말이야. 두정골이라고도 하는 곳인데 구멍 뻥 뚫렸잖아. ”


그녀는 머리의 천장 쪽에 난 손바닥 크기의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 구멍 안을 바라보기 위해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댄다.


“이걸 망원경처럼 이렇게 보면 말이지 뇌가 없어. 신기하게.”

“어떻게 된 거죠?”

“적출해 간 거 아닐까? 뇌가 뭐, 동전도 아니고 사람이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뽀개진 김에 깔끔하게 마감하고 가져간 거 같은데.”

“마감이라니······.”


반듯하게 잘린 마루뼈의 구멍을 만지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다른 이들이 소름이 끼친다는 얼굴이 됐다. 그런 그녀에게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인표가 물었다.


“반듯하게 잘랐으면, 마루뼈가 부서진 게 아니라, 누군가 인위적으로 가른 거 아닌가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자 그녀는 손바닥 정도 크기의 구멍에 손가락을 쑥, 집어넣었다. 동시에 박 순경과 배득의 얼굴이 혐오감으로 일그러진다. 그런 두 사람은 물론, 두개골에 손을 집어넣는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안쪽 깊숙한 곳에서 엄지손톱 크기의 파편 부스러기 하나를 꺼내 보여준다.


“이게 나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그건······?”

“두개골 파편이야. 원형으로 가른 거라면 이렇게 큰 부스러기가 남을 리 없지.”

“부서트리고 다시 구멍을 냈다라·········. 근데 유영아. 안면 쪽도 다 바스러진 거 아니냐?”


수혁의 턱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유영은 씽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마루뼈가 아니라 두개골이라고 한 거야. 안면 쪽 뼈들도 완전히 작살 났거든.”

“어허, 스톱!”


막 설명하기 위해 유영이 안면 쪽으로 손을 뻗으려고 하는 찰나에 박 순경이 외쳤다.


“왜?”

“장갑은 끼고 하시지. 지문 남으니까.”

“아아···, 깜빡했다.”


박 순경이 건네는 위생 장갑을 받은 다섯 사람이 열심히 장갑을 꼈다. 유영은 장갑을 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어쨌든, 갈린 흔적은 없이 모조리 부서졌어. 부서진 단면을 보면 어린애들도 그건 알겠지. 근데 더 중요한 건 이거야, 이거.”


탁, 소리를 내며 장갑을 다 낀 그녀가 풀썩 주저앉아 이마부터 턱, 그러니까 전체적인 ‘얼굴’이라 칭할 수 있는 임의적인 경계선을 천천히 따라갔다. 안면이 어떤 큰 충격으로 부서지면서 살이 찢겨 생겼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드러운 단면이 보인다.


“재밌네, 재미있어. 이거 보여, 다들?”


유영의 말에 옹기종기 모여 그걸 바라본다. 마루뼈에 난 구멍처럼 반듯하게. 마치 여기부터가 얼굴이에요, 하는 경계선처럼 얼굴은 피부와 근육/뼈로 나누어져 있었다.


“얼굴 가죽을 뜯어갔어. 놀라운 솜씨야, 정말로. 가죽을 뜯어가기 전에 안면을 부서트렸을까, 아니면 부서트리고 가져갔을까?”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는 그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는지 손톱까지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인표와 수혁이 서둘러 다시 시체의 머리를 자세히 보았다. 우선 마루뼈였다. 정말 뻥 뚫려있는 마루뼈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 딱 감고 손을 넣어보자, 안에서 바스락거리며 꽤 많은 양의 부스러기가 느껴졌다.


“어휴, 이런데도 증거 하나 없다고?”


박 순경은 이마를 짚고 지끈대는 머리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장소가 골목이기도 해서 현장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면 사건 자체가 어려워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괜히 주변의 사람들을 닦달할 수밖에 없다.


“구석구석 찍고, 살펴! 뭐 하나, 먼지 하나도 놓치지 말고!”

“네!”


박 순경은 팔짱을 끼고 다시 한 번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수혁을 포함한 네 사람이 시체에 붙어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 개미와 같았다.


“뭐라도 발견했습니까?”

“너희도 발견 못 하는 걸 우리가 어찌 찾니? 수상함만 잔뜩이다. 쟤가 발견한 것처럼.”


유영을 턱 끝으로 가리키는 수혁이었다. 박 순경은 이미 그녀에게 진절머리가 난 터라, 자동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 뭘 보는 겁니까?”

“그냥 뭐라도 보는 거지. 그놈들은 증거를 남기지 않으니까.”


배득이 장갑을 낀 손으로 피해자의 주머니에 있던 갈색 장지갑을 꺼냈다.


“여기 있네, 주민등록증. 이름 최 태훈, 나이 31세. 이건 명함인가? 직업이······.”


배득의 말이 뚝 끊겼다.

그러자 시체를 살피던 다른 이들의 고개가 동시에 들렸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시체보다 더 창백해진 그의 표정이었다. 유영이 그의 손에 들린 명함을 빼앗았다.


“도대체 뭐기에 말하다가 멈춰?”

“피팅 모델.”


배득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스카우터.”

“어디. 최 태훈. 핀치 히터 피팅 모델 스카우터············.”


순간 유영이 쇳소리를 섞어 외친다.


“핀치 히터?!”

“뭐? 핀치 히터?”


가장 크게 놀란 건 박 순경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구경꾼들에게 다 들어갈 정도였다.


“귀청 떨어지겠다. 넌 임마 피해자 직업도 몰랐어?”

“아니 그건 어차피 나중에 알려주니까······.”


수혁은 인상을 쓰고 혀를 찬다.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이 있겠네요.”


인표가 그렇게 말하자, 박 순경은 이때다. 싶어 그에게 달려들어 따졌다.


“딱 봐도 동일범이지, 바보냐?”

“단정 짓지 마. 아직 정확한 건 아무것도 안 나왔잖아.”

“이건 빼빡이야. 야, 택진아! 이거 좀 알아봐!”


이거라는 말에도 택진은 슬슬 눈치를 보더니, 힘차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황급히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지갑에 다른 특이한 점은 없어요?”

“어디 볼게요.”


배득은 조금 더 지갑을 이리저리 뒤적여봤지만, 별다를 건 없었다. 특별한 디자인이랄 것 없는 평범한 갈색의 장지갑. 카드 몇 개와 10만 상당이 현금. 그리고 헬스 이용권과 고급스럽게 안쪽에 영어로 새겨진 상호가 전부였다. 배득은 그렇게 꺼낸 카드들을 하나씩 박 순경에게 넘기며 말했다.


“우선 카드 이용 내역부터 알아보시고.”

“내, 내가?”

“그럼 저희가 하나요?”


그렇게 말하면 그의 손 위로 헬스 이용권을 올려놓았다.


“그다음은 여기 조사해 보시면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지갑까지 그의 손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배득이 힘을 주며 몸을 일으켰다. 박 순경의 시선이 일어나는 그를 따라갔다. 어느덧 다른 이들도 모두 일어나서 자신이 나눠줬던 위생 장갑을 벗고 있었다.


“이제 더 볼 거 없죠?”

“네. 슬슬 가죠.”

“택진아, 결과 나오면 알려줘라. 휴대폰에서 나온 건 사소한 것까지 전부 알려주고.”

“예!”


수혁의 말에 막 전화가 끝난 택진이 크게 외쳤다.


* * * *


사무실이 아닌 근처 중국집에 둘러앉았다. 탕수육까지 시킨 호화로운 식탁이었다. 각자가 열심히 검게 비벼진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좀 전까지 시체를 살피고 있던 사람들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식탐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박 순경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뭐예요?”


수아가 탕수육 하나를 가위를 이용해 반으로 잘라 입에 넣으며 물었다. 인표는 자신의 그릇에 따로 담은 소스에 탕수육 하나를 가져와 담가놓으며 말했다.


“저랑 같이 들어온 동기예요. 워낙 성공하려는 의지가 강한 친구라 성격이 나쁘게 보이죠.”

“나쁘게 보이는 게 아니라, 나쁘던데요.”


그렇게 말한 건 배득이었다. 수혁은 그 말에 크게 웃었다.


“녀석이 나쁘긴 해. 그래도 실력이 없지는 않아. 그래서 미워할 수는 없는 놈이지. 버릇이나, 수사 방식이나, 뭐 여러 가지로 잘못되긴 했지만.”


인표가 그 말에 격한 공감을 표하며 택진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는 가운데에 있던 탕수육을 조금 옆으로 밀고 그곳에 스피커폰으로 돌린 자신의 휴대폰을 올려놓았다.


“여보세요?”

“어, 택진아. 말해.”

“예, 예. 우선 스튜디오에서 발견했던 피해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름은 나이윤, 23살 , 직업은 모델입니다. 우선 피해자의 상처 대부분에서 오현우의 집에 있던 각종 칼과 단면이 일치했습니다. 지문도 많이 검출됐고요.”

“오케이.”


유영이 후루룩, 짜장면을 빨아들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리고 최초 발견했던 관이 ‘대타’라는 가구점에서 만들었다는 거로 돼 있었습니다.”


그 말에 인표의 표정이 굳었다. 스튜디오의 새하얀 바닥, 그리고 대기실, 행거까지. ‘대타’라는 가구점이 마치 이정표처럼 오현우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 염려하셨던 대로 피해자 나이윤 씨는 오늘 발견한 최 태훈 씨가 스카우트한 모델이 맞습니다.”

“몇 명이야?”

“네?”

“그놈이 스카우트한 사람, 총 몇 명이냐고.”


휴대폰 속에 있는 택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열 명입니다.”

“실종 신고는?”

“전부. 돼 있었습니다.”


배득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수아는 입맛이 뚝, 떨어져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미친 새끼, 진짜.”


가장 사납게 얼굴을 구긴 건, 역시나 유영이었다. 분위기가 음식과 같이 차갑게 식어갔다. 깊은 한숨만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무거운 공기 속에서 택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오늘 공장 내부와 함께 전체적으로 수사를 꾸려갈 예정입니다.”

“모델이 10명이나 실종이 됐는데, 왜 경찰에서는 몰랐지?”

“전부 직업이 모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영이 되물었다.


“연령도 직업도 다양했습니다. 10명 안에 모델 직업을 가진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다른 8명은 일반인?”

“그렇습니다. 직종도 다양하고······ 같은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유영이 무엇인가 던지려는 걸, 수혁이 재빨리 손을 붙잡아 말렸다.


“진정해.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죽은 사람들이 살아오지도 않아.”

“가해자가 그 죽은 사람 안에 포함돼 있다는 게 저주스럽네요.”


인표가 두 손을 맞잡고 이마에 댄다.


“입막음일까요?”

“그건 아닐 거야. 알잖아, 너도. 그때와 지금 똑같은 거.”

“살인자, 피해자 할 것 없이 모두 가해자라············.”


인표는 입술을 꽉, 한 번 깨물고 택진에게 말했다.


“일단 수사 마무리 잘해. 고맙다.”

“아닙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드릴 게, 최 태훈의 집 대부분 가구도 ‘대타’에서 만든 거였습니다. 관이랑 똑같은 업체라서 혹시나 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휴대폰은 사무실 쪽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가구점이 ‘대타’로 똑같다고? 유명한가?”


인표가 자연스럽게 수아를 돌아봤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꽤 있기를 끌고 있긴 해요. 제법 큰 회사기도 하고요. 하지만······ 뭔가 어색하긴 하네요. 우연이기에는 말이에요.”

“주소 보내드릴까요?”


택진의 물음이 던져졌다.


“그래, 한 번 찾아볼게.”


자연스럽게 식사는 그걸 끝이 났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작가의말

더위가 사라지고 있어서 살만 하네요ㅎ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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