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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월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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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배
작품등록일 :
2022.12.01 19:17
최근연재일 :
2024.07.04 19:32
연재수 :
59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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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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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글자수 :
3,677,983

작성
23.03.2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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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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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117.5 기다리게해서 미안해

DUMMY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해.

뭔가..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기분인데.. 이 말을 제일 처음 하고 싶었어.

다리가 끊어진 뒤로는 아무 말도 전하지 못했었으니까...

미안해.. 어떻게든 만나러 갔어야 했는데 태초의 신에게서 내가 받은 힘으로는 너를 만나러 갈 수 없었어..

이렇게 무능력한 나를 용서해주길 바래.



“ (흐음... 오랜만에 연락하는 건데 좀 더 길게 쓰지 않아도 되는 거야? 내용은 또 왜 이래? 용서해달라는 게 오랜만에 보는 사람한테 할 말이야? 설명도 주구장창에.. 너 편지 써본 적 없냐?) “

춘향이 짜증을 내며 펄을 바라본다.

하지만 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일 뿐이다.

“ (에휴.. 그 녀석은 이런 답답한 녀석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오래 기다렸대냐..) “

펄은 언어로 강력한 폭행을 당한 탓에 머리를 거의 땅에 박고 있었다.

“ (뭐.. 나름 이해는 해.. 나도 지구에서는 꽤 오래 산 몸이라서 말이지? 너 같은 남정네들의 마음도 잘 알고 있거든! 결국, 남자들은 다 똑같다는 거겠지 뭐~) 자 콩나물! 이거 받아가! “

편지를 들고 있는 라티안에게 방금 쓴 편지를 물고 있는 검은 토끼가 다가갔다.

“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 “

“ 내가 너 같은 줄 아니? 빨리 편지나 주고 사라지셔! 훠이훠이~ “

라티안은 혀를 한번 차더니 검은 토끼에게서 편지를 뺏고 들고 있던 편지를 물려준 뒤 다시 등대를 떠났다.

“ 자~ 그럼 어떤 편지가 왔는지 읽어볼까나~ “

편지를 집어 든 춘향을 향해 펄이 두 팔을 들고 다가오지만, 춘향이 가볍게 저지해낸다.

“ (안돼! 너네가 무슨 짓을 했을 줄 알고? 내가 먼저 볼 거야!) “

춘향이 편지를 펼치고 읽으려는 순간 얼굴을 찡그린다.

“ ..뭐야. 이거 콩나물 글씨체잖아. “



사랑합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망설이다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먼저 써봤어요.

우리 사이를 이어주던 다리가 끊어져 버리는 바람에 더는 소식을 못 듣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좋은 분들을 만나서 단 한마디라도 연락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뻐요.

그리고 미안해요..

이곳에 많은 일이 있었죠..

덕분에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가서 얼굴을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정말 미안해요 용서해주세요.



“ (..이런 답답한 남정네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았네.. 끼리끼리 만났구만?) “

편지의 내용이 보고 싶어서 두 손을 뻗은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펄을 향해 편지를 던져주고 다음 편지를 쓸 준비를 한다.

그러면서 춘향은 눈을 살짝 돌려 펄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주 약간...

아주 조금이지만 육체를 감싸고 있는 검은 마나가 조금 깎여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건가... “

하긴.. 지금까지 버틴 것이 기적이었다.

춘향처럼 검은 마나를 지닌 자들이라면 마나를 끊임없이 먹어줘야 살아갈 수 있다.

주변에는 마나를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즉.. 이 녀석은.. 오랜 시간 동안 정신력으로 버텨내고 있다.

그것이 엘레의 편지를 받음으로써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 순간만을 위해서 버텨온 것이겠지..

“ (.. 다 읽었냐? 다음 내용 말해! 점점 귀찮으니까 빨리빨리!) “

단 한 장의 짧은 편지를 쓴 게 전부였지만 펄이 마나가 부족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으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이 써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본인도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겠지..



기억나?

내가 모든 별자리를 다 알고 있으니까 당신이 새로운 별을 그려서 우리 둘만의 별자리를 만들어 줬던 거.

이곳에서는 한동안 내가 그 별자리로 불러서 혼동이 일어난 적도 있었어.

시간이 지나니까 굳어져서 나중에는 엘레 별자리, 펄 별자리 라고 부르기도 했었던 적도 있었지.

덕분에.. 당신을 조금도 잊어버리는 시간이 없었어.

모든 것이 끝난 지금도 나는 매일 밤 당신이 가르쳐준 우리만의 별자리를 그려가며 날마다 생각하고 있어.

언젠가 다시 한번 만나서 새로운 별을 그려낼 수 있으면 좋겠네.




춘향이 눈을 찡그린다.

“ (별자리라는 거 막 만들어내도 되는 거야? 그냥 수신호 같은 건가?) 거기다 되게 오글거리네.. “

괜히 들으면 상처받을지도 모를 말은 언어를 바꿔가며 마음대로 말한다.

앞에 있던 펄은 천천히 입을 움직인다.

“ (안.. 돼..) “

“ (음.. 진짜 이대로 보내?) 너무 오글거리는데.. 닭살 돋아.. “

“ (뭐라.. 고.. 해야.. 할지..) “

“ 편지 왔어. “

펄이 한 글자씩 천천히 말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피렌이 편지를 들고 등대로 들어왔다.

“ 오! 그래그래! 콩나물이 계속 대필해주고 있는 거야? 언어 배우기 힘들었을 텐데! 그냥 머리나 다리 한 짝씩 떼서 쓰라고 하지 그랬어! “

춘향이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자 피렌이 슬그머니 눈을 돌려 펄을 바라본다.

“ ...펄이 듣고 있는데. “

“ 아하하! 괜찮아! 얘 어차피 우리말 몰라! “

“ ..너무 막 나가는군. “

피렌은 그대로 편지를 전해주고 춘향에게서 편지를 받아들었다.

“ 펄에게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있어. “

그대로 피렌은 대답을 듣지 않고 등대를 나섰다.

“ 흥.. 누굴 애로 알고 있어! “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춘향이 편지를 집어 들고 먼저 읽기 시작한다.

“ ...얼씨구. “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별자리를 만들었을 때..

그때 당신이 저에게 고백했던 그 순간을 저는 잊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게 아름답게 빛나는 별빛 아래에서 전혀 근사하지 않았지만, 저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빛나던 고백을 들려주시던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답니다.

그날 은하수처럼 밝게 빛나는 당신의...




“ 앗..! (야! 이게 무슨 짓이야!) “

한참 오그라들면서 읽어가는 도중에 갑자기 펄이 끼어들어 편지를 뺏어가 버렸다.

뭐.. 오랜 시간 연락을 못 했을 테니.. 기다리기 힘든 거겠지.

마음대로 하라지..

잠시 기다리자 편지를 다 읽은 펄이 품에 꼭 껴안고 있었다.

망령이 저러고 있으니 어딘가 이상한 기분도 든다.

“ (빠.... 빨.. 리... 다... 다음...) “

“ ..이런 오글거리는 거에 기뻐하다니.. 하긴.. 원래 사랑은 오글거리는 맛이긴 하지.. (그래! 어디 한번 써보고 싶은 거 써봐!) “

춘향은 자세를 잡고 펜을 들었다.



다리가 끊어진 후부터 이 등대에는 편지가 하나씩 쌓여나가기 시작했어.

어느새 편지로 가득 차는 것을 보니 당신을 더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연락이 닿는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그동안 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들이 갑자기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오직 당신 하나만으로



“ (잠까안!!!!!!!!) “

열심히 받아적던 춘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편지를 찢어버렸다.

“ (으.. 으으.. 찌질해...! 뭐 이런 이상한 편지를 쓰고 있어?! 내가 엘레였으면 이딴 편지 보고 바로 헤어지자고 할 거야!!) “

펄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찢어진 편지들을 바라보며 점점 갈라지면서 뜯어지고 있는 입을 열어본다.

“ (그래도.. 그것이.. 진심...) “

춘향이 펄의 말을 끊고 머리를 한 대 쥐어박는다.

머리에 붙어있던 검은 마나가 살짝 부서진다.

“ (진심 같은 소리 하네! 연애는 진심으로 덤볐다간 호구 되는 거야! 장난감이라고! 연애는 절대 진심을 숨겨야 해! 무조건 자기를 더 좋아하게끔 만드는 싸움이야!) “

펄의 움직임이 멈춘다.

“ (에...) “

망령의 울음소리인지 어이없어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뒷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 (기다려봐! 내가 써줄 테니깐! 이럴 땐 말이지...!) “



뭐 나니까 특별히 용서해주도록 할



“ (뭐.. 뭐야..! 저리 가!) “

펄이 다급하게 몸을 날려 춘향의 펜을 뺏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억지로 펜을 뺏어 글을 쓰기 시작하려는데..

손이 너무 떨려서 글씨를 써나가지 못한다.

“ (...쯧.. 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한계인 녀석이 펜을 잡아봤자 제대로 쓸 수 있을 리가 있나.. 알았어! 진심 그대로 전해줄라니깐 나중에 차여도 모른다?) “




시간이 많이 흐른 탓일까.

처음에는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동료를 원망하기도 했는데..

지금 내 안에는 오직 너만을 생각하는 마음밖에 남지 않았어.

아마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반드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게.

그때는 반드시 같은 곳에서 함께 평생 사랑하자.

그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줘.



“ (..뭐냐? 이대로 끝내려고? 편지 더 안 쓸 거야?) “

춘향이 눈을 찌푸리고 펜을 테이블에 탁탁 내려치며 불만을 내비친다.

“ (..의미가... 없으니까...) “

“ (엥..? 뭔 의미?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랑 대화하는 게 의미가 없어?) “

펄의 입 근처 마나가 또 떨어져 나간다.

“ (글씨체.. 수명.. 그녀는.. 이미..) “

점점 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마나에 침식당했는데도 머리를 최대한 굴렸던 것 같다.

확실히 엘레는 수명을 다해 몸이 썩어들어갔었다.

그러나 엘레는 펄이 검은 마나의 침식에 저항하며 아직도 살아있듯 마나로 억지로 자신을 붙들고 펄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이의 글씨체 정도는 알고 있었겠지..

펄은 이미 엘레가 죽었다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편지를 쓴 이유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미련이 아니었을까 싶다.

“ (...음.. 머리 좋은 건 알겠는데.. 그래. 사실 죽기는 했어. 그래도 이 편지는 조작한 게 아니야. 그녀도 너처럼 대화하기 위해서 버티고 있거든. 그러니 조금 더 희망찬 내용으로 써도 되지 않겠어?) “

펄이 살짝 망설이는 것이 느껴진다.

고민되겠지..

분명 말하고 싶겠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더 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고 후회만 남긴다고 생각하겠지.

춘향에게 어느 것이 정답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었다.

이미 두 사람은 죽었으니까..

엘레와 펄 두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든 한 문장이라도, 한 단어라도 더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그 한마디의 말로 후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주고받는 것이 낫겠지만..

조금이라도 후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면...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펄은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때 등대로 누군가가 들어오고 있었다.

“ 벌써 왔네? 그쪽은 편지가 술술 써졌나 봐? “

편지 한 장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온 라티안이 이번엔 춘향의 앞까지 걸어온다.

“ 이게 끝이야. “

“ 어? 끝? “

춘향이 깜짝 놀라 쳐다보았지만, 라티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춘향에게 말 걸기 싫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인가 싶었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분위기가 다른 것을 보고 눈치챘다.

“ ...아하.. 여기도 마찬가지야. 사랑하면 닮는다던데..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도 마음 하나만큼은 통하나 보네~ “

춘향은 쓰던 편지의 마지막에 한 줄을 자기 멋대로 적어놓고 그대로 접어 라티안에게 건네준다.

라티안은 춘향이 건네준 편지를 받아들고 뒤로 돌아선다.

“ 곧 다 같이 올 거야. 그때까지 사고 치지 말고 있어. “

그 말을 끝으로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 흐음.. 마지막이라니.. “

자연스레 춘향은 편지를 뜯어 읽기 시작한다.



고마워요.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들도, 선물들도..

모든 것에 담겨있는 당신의 마음을 잊지 않을게요.

떨어져 있던 시간은 길었지만, 앞으로도 항상 제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부디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언젠가 저 우주의 별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래요.



“ 흥.. 정말 끼리끼리 잘도 만났네. “


작가의말

와 이게 얼마만에 .5인가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5와는 다르게 3인칭으로 썼습니다.

안읽으셔도 스토리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전혀 상관없지만..

그냥 써볼까 해서 써봤어요.

.5는 뭔가 부담이 없는 느낌이랄까..

근데 애초에 부담이 있었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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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106. 뭐 하는 녀석이지 23.03.09 26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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