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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배
작품등록일 :
2022.12.0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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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7,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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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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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3. 이길 수 없다면 적어도 한대정도는

DUMMY

대공방 내부의 페르테가 만들어놓은 비밀공방 안에서는 바깥과는 다르게 살짝 따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 나는 사실 이 작전은 반대인데 말이지.. “

춘향이 그림자로 의자를 만들어 작은 하품을 하며 페르테를 구경하고 있다.

춘향을 바라보는 대신 완성된 우주선을.. 아니 함선을 바라보며 페르테는 대꾸한다.

“ 그래.. 사실 모두 알고 있을 거야. 레베른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지.. “

라티안의 엉뚱한 생각으로 모두를 설득해서 데려오겠다고 모두를 끌고 나간 지 5분 정도 지났다.

이 5분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할까?

5분이라는 시간 동안 탈출을 시도했다면 더욱더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앨리스는 물론이고 콩나물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대로 떠나야 할까?

라티안 일행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 5분이지 10분도, 1시간도 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라티안 일행은 어떻게든 구해보겠다며 이런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 하아.... 마음도 심란하게 왜 하필 이런 모양으로 우주선을 만들었대? “

“ ...자재들 크기도 워낙 컸고.. 앨리스가 내부의 구조를 자세히 알고 있는 우주선은 이런 것밖에 없더라고.. 조립은 그 녀석의 정신 나간 마나량을 기준으로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고난도의 우주선을 만들었는데... 뭐 불만이라도 있어? 나 같은 대장장이도 역작이라고 부를만한 작품인데. “

이런 함선 형태의 거대한 우주선에 얽힌 사연을 모르는 페르테가 순수하게 물어보자 춘향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슬슬 머리까지 아파지는 기분이 들었다.

“ 으.. 그래 조금.. 내 행성을 공격하고 날 이곳으로 보내버린 아주 그지같은 행성이 이런 모양이었지.. “

“ 행성이? 그 정도면 장난 아닌 거랑 한판 한 것 같은데..? 앨리스가 있으니까 괜찮았으려나..? “

크람이 지구에 쳐들어왔을 때를 회상하며 그때의 전투를 천천히 돌이켜본다.

“ 뭐.. 나름? 고생하긴 했어도 생각보다 별거 없더라고.. 본인들이 개발한 게 아니라 모든 기술을 전부 사들여 온 느낌이랄까..? 어딘가 맞물리지 않은 느낌도 들었어! 복수하는 게 참 재밌었지~ “

“ 복수? “

“ 그런 게 있어! 우리 행성을 망쳐놓은 녀석들은 혼내주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

“ 복수라... “

거대한 함선과 비밀공방에서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을 얼굴에 전부 드러내고 춘향을 바라본다.

“ 야 넌 최고 속도로 달리면 얼마나 빨라? “

“ 응? 뜬금없이? “

정말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었기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던 춘향이 이유를 떠볼까 싶다가 귀찮다 싶은 마음이 커지는 바람에 약간의 거짓을 더해 말했다.

“ 글쎄? 일단 여기 있는 모든 인간 중에서는 제일 빠르지 않을까? 레베른도 포함해서 말이지? “

“ 음. 사실이 어떻든간에 속도에 자신 있다는 말이네? “

알아서 걸러 들은 게 조금 기분 나빴지만 사실이긴 하니까.. 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페르테는 식은땀 한줄기와 함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 아아.. 그러면 말이야... 내가 깜빡하고 공방에 간이 중력 마나 유탄을 몇 개 놓고 와서 말이지? 방구석에 함부로 굴러다니면 안 되는 녀석인데... “

“ ...뭐... 뭐? 그 이상하고 긴 이름은 뭐야? 번역오류인가? “

...

“ 어떻게 들렸는지는 모르겠는데.. 니가 저번에 쓰레기통 찌그러뜨려 버린 그 작은 공 말이야. “

“ 아! 그거! 분리수거용 깡통분쇄기?! “

...

솔직히 페르테는 분리수거용 깡통분쇄기라는 단어의 뜻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분리수거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 몰랐기에 그들만의 행성의 어떤 것이겠거니 하고 넘기고서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거 맞아. “

“ 그래서? 그걸 내가 왜? “

“ 사실 그거 옆을 잘 조정하면 범위를 조절할 수 있거든.. 당연하게도 이곳은 아직까진 안전할 테고? 너는 발이 빠르고. 이 대공방을 안전하게 빠져나가려면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

오호라.

춘향은 이해했다.

“ 그래서? 너 개인의 복수를 나에게 시키는 이유는 뭐야? “

“ 잠깐이었지만 여기 있는 게 지루해 보였으니까. 그리고.. “

아주 잠깐이지만 페르테의 눈빛이 살짝 떨리는 것과 동시에 강하게 불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 내 고향을 엉망으로 만든 쓰레기들한테 한 방 먹여주는 건 재밌을 것 같아서 말이야.. “

“ 큭... 그런 마음가짐은 마음에 드네! 하지만 내가 움직이기에는 약간 부족한데? 매리트가 조금 부족해! “

춘향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마나로 만든 의자를 다시 자신의 그림자로 집어넣는다.

누가 봐도 움직일 것처럼,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신나게 웃으면서도 말하는 것은 정반대의 내용이다.

“ 글쎄? 너한테도 이득일걸? 레베른은 생각보다 아주 질기거든... 너희는 그들을 죽였으니까.. 아마 끝까지 쫓아올 거야. 추적에서 벗어나려면 한 대 때려두는 게 좋지 않겠어? “

페르테는 그런 춘향을 보고 이미 도와줄 마음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춘향이다 보니 그대로 받아쳐 주기로 한다.

그러자 춘향이 웃었다.

받아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받아주다니.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먼저 나가길 제안해주다니.

“ 아하하! 그 녀석들 얼마나 질긴데? “

“ 피아가 우주선을 물어뜯으려고 달려오는 정도로 질기지? “

날개 달린 물고기가 우주선도 씹어먹는구나.

춘향은 처음 알았다.

“ 킥... 그건 좀 질기겠네! 물론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말야.. 그럼 빠르게 갔다 올게! “

“ 고맙다. 한 세 개만 가져와 줘. 남는 게 좀 많을 텐데 그건 알아서 써버리고! “




“ 여기도 하나 있네~! 대체 뭘 그렇게 찌그러뜨리고 싶어서 이렇게 많이 만든 걸까? “

벌써 30개째 깡통분쇄기를 찾아냈다.

설마 이 상황을 예견하고 레베른 놈들에게 공격하기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다프트와 캘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한명 한명이 괴물 같은 녀석들일 것이 분명하다.

즉.. 이 정도 깡통분쇄기는 쉽게 쳐내거나 피할 것이다.

“ 한 방 먹여 달랬는데.. 이걸로 어떻게 한담? 걍 쓰지 말까..? 흐음.. “

고민된다.

춘향의 힘으로도 충분히 피해는 줄 수 있다.

그런데도 왠지 이 깡통분쇄기를 사용하고 싶다.

그래야.. 페르테가 하는 복수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이 대공방은 춘향의 것이 아니니까..

이들의 복수는 이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조금.. 춘향의 마음이 대장장이들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조금만 도와줄 뿐이다.

검은 토끼들이 주워온 깡통 분쇄기가 수십 개에서 130개가 넘어갈 때쯤 페르테의 엉망이 된 공방에서 일어났다.

평소 같았으면 해맑게 웃으면서 자리를 떴을 테지만 무언가 마음에 걸린다.

춘향은 가볍게 손짓하며 자신이 어질러놓은 공방을 검은 토끼들에게 정리시킨다.

“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공방도 빌려줘서 고마웠다! “

약간의 씁쓸한 마음을 안고 공방을 나온 춘향은 모두가 모여있는 길을 향해 살며시 다가간다.

여전히 수많은 대장장이들이 저 멀리 떠 있는 레베른 우주선에 공격을 가하는 덕분에 춘향이 다가온 것도 모두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 으음... 음....? 전혀 효과 없는 거 아냐? 왜 뺄 생각을 안 하지? 바보들인가? “

계획대로 라면 앨리스가 이곳에서 누구보다 더 강력한 공격을 하고, 먹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뒤 모두와 함께 함선으로 향해야 했다.

그러나 그 어떤 대장장이들도 물러설 마음이 없는 마나와 눈빛을 지니고 있다.

결국 레베른의 우주선이 점차 내려오더니 길의 끝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모든 대장장이가 약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

메르티의 우렁찬 말들이 춘향의 가슴을 울렸다.

저들은 목숨을 걸 각오로.. 아니.. 저 독약을 먹음으로써 이미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복수하기 위해 잘하지도 못하는 전투를 하기 위해 달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춘향 역시 지구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앨리스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 악역을 자처하고 인간을 사냥했다.

지구에게 재앙을 가져온 팔크리아를 죽이고, 지구를 점령하러 온 네이엘레케도, 크람 행성도 목숨 걸고 싸워 이겨왔다.

그렇기에 대장장이들의 마음이, 페르테의 마음이 너무나도 와닿았다.

물론 이미 알고 있었기에 페르테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지만..

저렇게 뜨거운 눈빛으로 절대 안 되는 싸움을 하러 달려가는 대장장이들을 보니 자연스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웃는다.

“ 5대 60은 아니니까.. 힘 좀 써볼까? “

그리고 춘향은 앨리스와 메르티의 모의전과 똑같이 모두를 뒤로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길에서 뛰어내려 마치 테이블 바닥에 거꾸로 매달려 달렸던 춘향을 본뜬 인형처럼 모두가 달려나가는 길을 거꾸로 매달려 달렸다.

마나를 활용해 억지로 매달려있는 발끝에서 대장장이들이 춘향과 함께 달리는 느낌이 든다.

마치 그들의 그림자처럼 아무도 모르게 달려나간 춘향은 그림자를 퍼트려 주위에 수많은 토끼를 만들어낸다.

토끼들은 입에다 깡통분쇄기를 하나씩 물고서 춘향과 함께 달려나간다.

“ 으아아아악!!!! “

“ 죽어라...!! 죽...! 윽..!!! “

마나의 흐름이 끊기는 느낌은 없다.

모두 아직은 살아있다.

다만 전투는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를 입고 있다.

데려가서 노예로 만들 생각이겠지.

하지만 그 계획은 붉은 팔찌의 저주 때문에 실패할 것이다.

그렇다면 죽어버린 대장장이의 시체에서 마나를 꺼내먹고 강해지기라도 하려고 하겠지..

그러나 그 또한 미리 먹어버린 독약 때문에 실패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할 일은 레베른을 죽이고, 이곳에서의 계획을 틀어지게 한 라티안 일행.. 아니 춘향을 쫓아오는 일이겠지.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할 것이다.

바로 지금 춘향의 토끼들이 레베른 우주선의 한쪽 날개에다 깡통분쇄기를 붙이는 데 성공한 덕분에 그들이 라티안 일행을 추적하는 것은 이 넓은 우주에서 불가능할 것이다.

“ 이기게 해주지는 못해서 미안..! 하지만...! 제대로 한 방 먹이기는 성공한 모양이야..!!! “

-지이이이이잉....

-까드드드득...

-까득... 까드득...

날개에 붙어있던 깡통분쇄기들이 하나둘씩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날개를 뜯어가고 있다.

“ 좀 더..! 더 많이 뜯어먹어라! “

-까드드득...!

위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 (저거 뭐야...!!) “

“ 보호막을 뚫고..?! 아니 직접공격인가..!! “

“ (어디서...?! 찾아!! 수색해!! 추가피해를 막아야 해!!) “

“ 저쪽이야!! 날개 위!! “

춘향은 절반 정도 부서진 우주선의 날개 위에서 검은 낫을 만들어 손에 쥐고 당당하게 섰다.


그래.. 결국, 너희들도 멍청이들이야..

나약한 행성이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점령하러 왔다가 생각보다 거센 저항에 놀랐겠지?

그런데도 결국 니들보다 약한 녀석들의 발악에 코웃음 치고 웃고 있었겠지?

결국, 너희도 멍청한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방심하고 당하게 되는 거야.


“ 어때? 나약한 쓰레기들한테 한 방 먹은 기분이? “

춘향은 낫을 들고 온 힘을 다해 내려쳐 부서져 가는 날개에 마지막 공격을 가한다.

내려찍은 낫에서 검은 마나가 흘러나와 안쪽부터 강하게 파괴하며 날개를 완전히 절단한다.

춘향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 이 전투는... 우리의 승리다!!!! “

그대로 춘향은 부러진 우주선의 날개와 함께 중력에 의해 떨어진다.

거대한 레베른의 우주선에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지만..

날개 전체가 아닌 날개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약자가 강자에게 한 방 먹이는, 레베른의 이름에 크게 상처가 나는 한방이었다.


작가의말

춘향이 페르테를 도와주는건 조금 의외였네요

제 생각보다 춘향은 지구를 많이 좋아하나봅니다.

하긴.. 2000년간 자신이 만들어냈던 세계니까.. 애정이 안 들래야 안 들 수 없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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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108. 탈출하기위한 전투계획 23.03.11 260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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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106. 뭐 하는 녀석이지 23.03.09 26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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