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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잡가님 님의 서재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잡가님
작품등록일 :
2023.05.13 09:08
최근연재일 :
2023.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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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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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수 :
28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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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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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홀로그램이 사라지며 그곳에 나타난 건

DUMMY


휴머니티테크놀로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오가는 무도회장 같은 거대한 로비와 로비를 지키는 경비대. 이곳은 평소와 아무것도 다를 바 없었다. 연구팀이 거주한 고층 공간을 제외하면 이곳은 늘 세계인이 모이는 국제적 공간이었다.


이구아나N에서 내린 직후 나는 딱 한 가지 평소와 다른 것을 확인했다. 그건 지하 주차장에 락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락샨에게 바라나시에서 블라디미르를 만난 일을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그는 교대 시간인지 보이지 않았다.


주차 관리장이라지만 지하 32층까지 이어진 이 건물에서 수용할 수 있는 차량은 최대 2만 대에 가깝다. 그 모든 걸 통제하고 처리할 수 있는 그에게 주어진 권한은 생각보다 막중하다.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의 정보와 신상까지 그는 많은 정보를 쥐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군 병력의 흐름까지 통제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의 지하엔 군사 목적의 터널도 존재한다.


락샨에게 연락해볼까 고민했지만 그건 좋지 않은 방법이다. 그와의 접촉 기록은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게 낫다. 인도에서 란초를 만난 것도 락샨과의 커넥션 때문이란 걸 알려서 좋을 건 없다.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향했다.

87층 보안 랩의 복도에서 얀과 마주쳤다. 그는 매우 어색한 태도로 알은 채 했고 나는 눈짓으로 답례했다. 얀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은 걸로 봐서 뭔가 문제가 있다.

유리 벽 저편으로 랩 안을 살폈지만, 드미트리는 보이지 않았다. 호출을 한 건 드미트리였다. 그는 C 다음의 보안 랩 책임자다. 원래 보안 랩의 책임자는 나였지만 C가 나타난 후 모든 권한을 C에게 위임했다. 그에게 모든 걸 내준 후 나는 기술적인 업무협조만 할 뿐 특정 부서에 소속되지 않았고 의사결정권도 사라졌다. 내 뜻이기도 했지만 바알의 카페를 알게 된 후 얼마 되지 않은 후부터였다. 말하자면 나는 이곳에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보건국에 접속한 그날 이후 얀과는 한동안 접촉하지 않기로 했다. 내게 죽은 그리고리 로마노프의 인조 안구를 전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얀 또한 안전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나는 드미트리가 있을 만한 곳을 뒤졌지만, 드미트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디에 있는 걸까.


보안 랩의 입구에 다가가자 요꼬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부동자세로 모니터를 바라볼 뿐,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요꼬는 모든 걸 알고 있는 걸까? 그럼 C는 어디에 있을까. 드미트리와 요꼬를 통해 내게 연락을 하라고 한 건 C인 게 분명하다.

나는 C의 방 앞으로 갔다.


"C는 어디 있죠? 아직 안 온 건가?"


"네, 아직 오지 않으셨어요."


요꼬에게 말을 걸자 모니터를 주시한 채 대답했다. 무미건조한 말투다. C가 오지 않았다니. 드미트리를 통해 내게 오라고 연락한 건 그가 아닌가.


"며칠간 당신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더군요. 무슨 일 있었나 봐요."


돌아가려는 찰나에 요꼬가 내게 말했다. 그녀 역시 상황을 모르는 걸까.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 기계 같은 말투.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요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C는 이곳에 없다. 보안 랩 앞을 서성이다 말고 발을 돌려 안으로 들어선다. 온몸을 가릴 만큼 높은 칸막이가 쳐진 랩의 중앙에 있는 책상과 기물이 며칠 전과 달리 말끔히 정리되어 있다.

뭔가 어색하다.

이곳이 내가 알던 랩이 맞는 걸까. 정물 같은 배경. 움직이고 있지만, 어딘가 정적인 사람들. 이것은 진짜일까.


문득 섬뜩한 기운이 나를 덮쳤다. 나는 몸을 돌려 랩 밖으로 뛰어나갔다.


팍-


몸을 돌리려는 순간 뭔가가 급히 내 곁을 스쳐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눈앞의 사물들이 모두 부서지듯 사라졌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모든 것이 홀로그램이었다.


랩으로 들어서고 나서 지금까지 보이던 그 모든 것은 가짜였다.

입구에 앉아 있던 요꼬의 모습도 서서히 일그러진다. 주변을 둘러싼 영상들이 사라지고 사무실의 모든 전원이 나갔다.


파파팟-


이내 창문과 현관을 비롯한 모든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과 연결된 셔터가 내려가자 모든 공간이 봉쇄됐다. 세상은 암흑천지다.


“이게 대체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이곳은 아침마다 출근하던 휴머니티테크놀로지가 맞는 걸까.


그때 어딘가에서 문이 열리며 누군가 실내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민첩한 움직임은 훈련을 받은 자가 분명했다. 나의 슈퍼인간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적 감각이 그것을 감지했지만 왜 이곳에서 그것을 느낀 걸까.

순간 귓속에서 뭔가 윙윙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켜져만 갔다.


팍-


순간 누군가 황급히 문을 박차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그 존재가 실내로 침투해 들어온 걸 느꼈다. 그리고 그는 민첩하게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와장창-


주변 기물이 쏟아지며 나 또한 그와 함께 쓰러졌다. 상대는 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팔로 짓눌렀다. 저항하던 나는 그에게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끝까지 몸을 돌려 상대를 확인하려 했지만, 그의 완력은 엄청났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그는 안드로이드일까? 인간의 근력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나 또한 평범한 인간은 아니다.

나는 온몸의 힘을 한곳에 집중했다.


“끄아아아악”


온 힘을 다해 기압을 넣어 나를 짓누르는 팔의 완력에서 벗어났다.

그는 당황했는지 더한 힘으로 나를 제압하려 했다. 주변은 어둡고 그는 특수요원이 쓰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페이스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렸지만 반쯤 벗겨진 마스크 사이로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상대는 휴머니티테크놀로지의 보안 랩 책임자이자 A.F.C 요원이었고 인간의 신체 상당수를 기계로 대체한 바이로이드

그는 바로 C였다.


.

.

.


평화가 왔다고 했다.


사람들은 안드로이드가 자유롭게 사고하게 된 초유의 사태를 연방을 와해시키려는 무정부주의 단체의 음모라 생각했고 연방은 무혈 저항으로 이 혼란을 수습했다고 선전했다.


연방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는 안드로이드 통제 정책을 펼친 정부와 휴머니티테크놀로지에 찬사를 보냈다.


연방 의회장 로드 킬러닌의 지지율이 95%에 달했다는 뉴스가 고층 빌딩마다 설치된 옥외 스크린을 타고 흘러나왔다.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때도 70% 이하로 떨어지지 않은 지지율이었다. 어떤 식으로 조사하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과연 평화가 오긴 온 것일까. 연방은 단 한 번이라도 진정 평화로운 적이 있었던가.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와 구속이 억지스럽게 평화를 가장해 왔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바알의 카페에서 만난 이들이 제기하던 의문은 단지 의혹만이 아니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 제시하는 질서가 과연 옮은 것인가 하는 물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뉴델리의 지하 아지트에서 조우한 블라디미르와 란초와의 회합은 내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곧 인도와 같이 연방에서 소외된 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 투쟁이 일어날 것이다. 연방의 힘이 크지 않은 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날 란초는 내게 말했다.


“이곳엔 수천 명의 전사가 있소. 우리는 싸울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거죠? 당신의 인도를 위해 싸운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되죠?”


“물론 내가 속한 민족을 위해 투쟁한다는 명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단지 인도만을 위해 싸우지 않아요.”


“그럼 뭐죠?”


“되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에 존재한 연방 이전의 세계로. 조금 혼란했지만 하나라는 이념으로 모든 것이 획일화된 지금이 아닌 자연 상태로요.”


나는 란초의 말을 되뇌었다. 세계는 지금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뉴델리의 혁명은 그 시작의 하나에 불과했다. 적어도 인간을 단순화시킨 하나의 존재로 통제하려는 건 연방의 야무진 꿈에 불과하겠지.


나는 눈을 감은 채 며칠 전 그때를 떠올린다.


그날 내게 달려든 자는 C가 분명했다. 마스크를 쓴 남자의 공격에 균형을 잃고 주춤했지만 바로 쓰러지지 않고 그의 일격을 팔뚝으로 막았다. 이어 상대의 손목을 잡고 버티며 다음 공격을 차단했다. 몸의 절반이 기계인 바이로이드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지만 나 또한 유전자 계량으로 근력이 발달한 슈퍼 유전자를 가졌기에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다.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그의 힘에 저항했다. 엎어진 상태에서도 그의 손목을 움켜잡은 채 몸을 돌려 끝까지 두건 사이로 드러난 남자의 눈을 쏘아봤다.

흔들림 없는 검은 눈동자 속에 드러난 그것은 내가 알고 있던 C의 표정 없는 눈이었다. 그 표정 없음이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당신, C...맞지?"


그는 대답하지 않고 목덜미를 누른 채 힘을 가했다.


“대답해, 대답하라고.”


재차 물었지만,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내 목을 움켜쥔 그의 손아귀 악력은 내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잠시 후 기력이 다한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쓰러졌다.


C는 왜 나를 공격한 걸까? 보안국에 무단 접속한 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직접 나설만한 이유가 있었던 걸까?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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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신인류 프로젝트 23.06.27 22 0 16쪽
23 스낵카에서 만난 이들 23.06.21 24 0 15쪽
22 감시자의 눈, 누굴까 23.06.18 2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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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음악방송, ‘자유의 소리’ 23.06.13 21 0 16쪽
19 그들의 마이스터 23.06.11 23 0 14쪽
18 잃어버린 성체에서 벌어지는 일 23.06.07 21 0 15쪽
17 사막의 이방인 23.06.05 22 0 14쪽
16 늙은 숫염소 마크 아래에 23.06.03 22 0 15쪽
15 유랑자의 섬 23.05.30 23 0 14쪽
» 홀로그램이 사라지며 그곳에 나타난 건 23.05.29 24 0 10쪽
13 말뚝 코끼리, 그들은 왜 떠날 수 없는가? 23.05.27 25 0 13쪽
12 시바가 이끈 곳에서 기다린 건 23.05.25 26 0 14쪽
11 사라진 자, 바알 그는 23.05.22 26 0 16쪽
10 가나안의 신과 바알 숭배자 +1 23.05.21 28 1 14쪽
9 인간을 닮은 것 +1 23.05.19 26 1 14쪽
8 생각한다, 고로 나는 안드로이드다 23.05.18 26 1 15쪽
7 쇼는 됐고, 어쨌든 아일랜드산 기네스는 맛이 좋지 23.05.16 32 1 15쪽
6 그림자의 행방 23.05.15 29 1 14쪽
5 브로드캐스팅 타워의 시위 23.05.14 29 1 16쪽
4 누군가가 사용한 EMP 건 23.05.14 38 2 13쪽
3 바알의 카페, 그곳은 23.05.13 58 2 14쪽
2 루비,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 23.05.13 74 2 15쪽
1 네오서울을 질주하는 안드로이드 +2 23.05.13 186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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