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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잡가님 님의 서재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잡가님
작품등록일 :
2023.05.1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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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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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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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사용한 EMP 건

DUMMY

자리에 돌아온 나는 연방 행정기관용 클라이언트에 접근했다. 인사정보를 찾아서 들어간다.


C, 정확히 카를로(Carlo) 연방 보안국장의 추천으로 2년 전 휴머니티테크놀로지에 스카우트되었으며 보안업계의 신화적인 연구기관 앱솔루트 시큐어리티에서 5년간 수석 연구원을 역임했다.

인코딩만 할 뿐 디코딩은 할 수 없는, 단지 비교루틴을 통해 암호화된 결과에 대한 인증만을 내릴 수 있는 MD(Message-Digest algorithm)의 마지막 시리즈인 MD12를 만든 것이 앱솔루트시큐어리티와 C였다. MD는 해쉬 값을 인용한 DAT 단방향 암호화 알고리즘으로 연방이 창설되기 전부터 사용되어 온 암호화 기법이었다. 이미 수많은 암호학자에 의해 허점이 제시되어 여러 번의 보안 작업을 거친 MD 시리즈를 완성시킨 것이 그가 속해 있던 팀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C는 그야말로 천재 마이스터였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완전한 그만의 성과일까.


C에 대한 신상 리스트를 검색하려던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에 관한 출생기록이 모두 Unknown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더구나 그에 관한 건 모두 30세 이후의 기록뿐이다. 그가 30세가 되기 전의 기록은 없었다. 그의 이전 신상기록은 모두 사라진 걸까.

그럴 순 없다. 행정기관 인사 기록엔 연방시민의 과거와 연방정부 이전의 가족 기록까지 모두 남겨져 있어야 했다. 연방 정부의 정보력이 한 인간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치밀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과거가 모조리 은닉된 걸까.


이 경우 유추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애초에 기록이 없거나 특별한 이후로 말소된 것. 정말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까.

그는 정말 알 수 없는 자였다.


.

.

.


오후에 신종 바이러스의 패턴 샘플을 분석팀에 보냈다.


패턴은 총 324종 12가지 형태로 나누었다. 백신 개발 일정을 더 연기하고 싶지만, C의 닦달을 무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휴머니티테크놀로지보다 앞서 다른 곳에서 백신을 내놓는다면 그 또한 문제다. 안드로이드 연구로 얻은 명성에 먹칠이라도 하는 날엔 휴머니티테크놀로지의 주가가 폭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아무리 태업 중이라지만 그 정도까지 방관할 수만은 없다.

분석팀으로 데이터를 넘긴 후 C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데이터의 정확성은 분석팀이 검증할 것이다.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였고 그도 더는 관여할 권한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가 믿는 건 내가 아닌 나의 슈퍼인간 유전자가 가진 가능성일 것이다.

다른 말로 나의 이용 가치라는 걸 나도 잘 안다.


적당히 일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금 가는 거예요?"


오늘도 락샨이 내게 알은체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이구아나N이 있는 F-23 섹션에 들어섰을 때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차에 테러를 가한 느낌. 이구아나N에 뭔가가 벌어졌다.

그동안 내 촉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 육감 또한 내가 가진 유전자적 형질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주변을 주시했다. 당장 의심 가는 움직임은 없었다.


바알의 카페에 들락거린 후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감시받는 느낌을 받았다. 익명을 보장하는 곳이지만 바알의 카페를 알 만한 사람은 연방에서도 나름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다. 정보가 새어 나간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그들 자신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기에 서로를 믿지 않았고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프락치가 있다 해도 어떤 확신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분명 누군가 냄새를 맡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안드로이드 마이스터인 내가 연방 정부의 감시를 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즉시 이구아나N의 카메라 데이터를 확인했다. 차의 사방을 둘러싼 감시 카메라 정보가 모리 초기화되어 있고 이구아나N의 모든 시스템이 재부팅되어 있었다. 프리티의 백업 데이터 또한 공격에 다운되어 있었다.


"범인은 국소형 EMP 건을 사용했는지도 모르겠군."


달려온 락샨이 말했다.


"EMP?"


"이렇게 한순간 내부동력을 모조리 불능 상태에 빠트리는 방법은 EMP 건밖에 없어"


EMP라면 전자기 펄스를 발생시켜 전자를 방출시켜 전자기기를 파괴하는 기술이다. 다른 차에 피해를 주지 않게 나만을 노린 특수 형태로 고안된 형태일 것이다. 락샨의 말대로 EMP 건을 막는 방지 장치가 탑재된 내부 전압 덕분에 회로의 손상만은 겨우 막은 것이다.


"설마, 대체 누가?"


"일단 폐쇄회로를 확인해 볼게요."


락샨은 직원을 시켜 관리센터에 녹화된 폐쇄회로 정보를 뒤졌다.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더구나 이 건물에 촘촘히 박힌 폐쇄회로를 뚫고 컴퓨터에 가까운 슈퍼카를 먹통 상태에 빠트린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반경 안의 영상 자료를 모조리 분석했지만 의심할 만한 정황은 없었어요."


폐쇄회로를 담당한 조바니가 데이타 기록을 내밀며 말했다. 폐쇄회로 데이터를 4배속으로 돌려 확인했다. 그의 말대로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오늘 오전에 차를 맡긴 후 근처에 얼쩡거린 사람은 없어요. 초이의 차 가까이 간 사람은 옆에 차를 댄 두 명이 전부였죠. 그들도 특별히 수상한 점은 없어요. 그래도 원한다면 차 주인을 조사해 볼게요."


이구아나N의 옆에는 아우디S51 한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나머지 한 대는 이미 주차장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다행히 EMP 방어 장치가 충격을 흡수하여 기기가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다. 방전된 전원이 충전되면 우선 수동모드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범인은 거기까지 확인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일종의 경고를 보낸 걸까? 그렇지 않다면 이 정도 미약한 타격만을 입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굴까? 앙심을 살 만한 기억은 없다. 정말 나를 노린 걸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바알의 카페에 접속했을 뿐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테러의 표적이 될 수는 없다. 혹시 나에 대해 정확히 아는 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걸까. 슈퍼인간 양성을 위해 진행된 신인류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진 나의 출생에 대해.

생각에 잠긴 나는 잠든 프리티를 깨우지 않고 임시전력만 충전한 채 보호모드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이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선택한 옵션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슈퍼카 한 대로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아포칼립스의 상황을 상상해 본 적 있나? 믿을 건 아무것도 없지. 그래도 몸을 누이고 극한의 온도와 모래가 섞인 공기를 막아줄 장치가 있다면 좀 낫지 않을까?


이구아나N의 튜닝을 고민할 때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구였을까? 바알의 카페에서 지나친 익명의 남자였을 것이다. 기상학을 전공한 인류학자였던가.


-이 세계는 이미 100년 전부터 자연재해로 망가지고 있어. 어느 날 쓰나미와 허리케인이 인간을 덮치고 극한의 기온이 지구를 뒤덮어도 이상할 것 없지.


그는 언젠가 그런 시대를 생각했을까. 나는 그가 말한 아포칼립스의 세계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느꼈다. 이미 세계는 그런 상황에 이른 지 오래였다. 연방이 세계의 주요 도시만을 남기고 모조리 파괴하거나 방치시켜 통치를 강화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재해 덕분이기도 했다. 이미 망가져 가는 세상에서 믿어볼 만한 건 당장 눈앞의 행복을 보장한 연방이었을 테니.

순간 온몸에 한기가 일었다. 갑자기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조금씩 몸이 움츠러들었다.


.

.

.


"AFC는 아직도 연방정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죠. 연방 이전에 존재했던 미합중국에서 금융을 쥐고 흔든 유대인 비밀 결사나 십자군 시대의 프리메이슨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들이 프리메이슨의 산하 단체라는 추측도 있어요. 필요에 따라 명칭을 수시로 바꿨을 테니 실체를 찾는 건 어렵겠지만 말이죠."


바알이 말했다. 이 커뮤니티에서 그의 한 마디는 많은 추종자를 만들어 냈다. 그의 말은 음모에 목마른 이들에게 매력을 주었다. 지금처럼 연방에 대한 불신이 커가는 시대에 그의 주장은 묘한 힘이 있었다.


바알을 안 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바알은 언제나 사이버 공간에만 존재할 뿐이다.


페렉의 저서를 읽은 후 바알은 나를 비롯한 카페의 회원에게 많은 서적을 빌려주었다. 그가 건네준 고대 철학 서적을 몇 달간 식음을 전폐하고 읽었다. 과연 그 책에서 말하는 대로 이 세계가 진실로 규정하는 것들은 모두 거짓일까? 연방에 속한 자들은 진정 편집된 역사와 이데올로기 속에 살고 있었던 걸까.

이 세계는 고대 신앙의 초석이었다는 기독교, 불교 따위의 옛 종교를 버린 지 오래다. 연방이 허용한 경전이나 철학서 외의 것을 읽고 숭배하는 건 연방법 위반이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구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산스크리트어로 써진 바라바나기타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수상록 따위의 명상 서적을 지하 골동품 서점에서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수요는 많지 않지만 오래전 종이로 책이 출간되던 시대의 유산과 같은 종이책이 암암리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인간이 가진 지적 호기심을 제어한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부는 진정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려는 걸까?


"때늦은 사문난적이라니, 어이없을 뿐이오."


마르쿠스라는 닉네임을 쓰는 남자였다. 연방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는 그는 자신을 칠십 세 노인이라 소개했지만, 인간의 평균 수명이 110세에 달하는 지금 그는 이제 막 노년에 이르기 시작한 나이다.


"대학이 인문학을 규제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소. 연방이 하는 일이란 모두 미친 짓거리 같소."


"고대 종교를 믿고 따르는 게 문제라지만 애초에 출판조차 못 하게 규제하는 게 현실이니. 게다가 시민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지 않소. 수십 년간 조금씩, 조금씩 규제를 가하는 것이 연방의 방법이었지."


마르쿠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바알은 우리가 진정 자유로운 존재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지금 연방 시민이 느끼는 자유와 풍요는 진짜일까. 바알, 나는 그의 정체가 궁금하다.


노트패드를 닫고 거실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켠다. 벽 한 면 전체가 스크린으로 바뀐다. 기분 전환 겸 스크린 배경을 핀란드의 오로라로 바꿔본다. 이글루를 연상시키는 얼음 콘셉트의 테마 호텔에서 루비와 오로라를 감상하는 상상을 해본다.


루비


그녀가 보고 싶다. 안드로이드에 불과한 그녀가 왜인지 인간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인간이 아니란 걸 잘 안다. 하지만 인간의 지성 또한 경험에 따른 학습의 결과 아닌가. 루비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은빛 케이스에서 시가를 꺼내 한 대 피워 문다. 쿠바에서 가져온 잎담배. 수백 년 전 아메리카 인디언식으로 피워 무는 시가가 전자 담배를 제치고 하나의 유행 상품이 되었다. 연방정부에 끝까지 싸워 온 쿠바인과 그들의 정신에 추모하며 나는 시가에 불을 붙였다.


"화재 경보입니다. 불을 꺼주세요."


프리티의 목소리가 천장 어딘가의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어젯밤 그녀는 EMP 건의 공격에서 깨어났다. 그녀의 마지막 백업 데이터를 복구한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을 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냐 프리티. 이건 그냥 담배 연기일 뿐이야."


"그렇군요. 환기 모드로 전환합니다. 환경 모드를 바꾸려면 다시 알려줘요."


"고마워. 프리티. 당신은 엄마 같다니깐."


완전히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열 살 무렵부터 나는 프리티의 목소리를 듣고 자랐다. 여성의 목소리였기에 그녀라고 칭하지만, 프리티는 성별이 없다. 아니 그녀는 실체조차 없다. 그녀는 단지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사고 로봇일 뿐이다. 그녀는 내 어깨에 삽입된 칩 속에 존재한다. 그녀는 내가 가진 모든 전자기기와 연동하여 그것을 제어할 수 있다. 때론 그녀의 데이터를 백업해 둔 이구아나N이 그녀의 집이었다. 그녀는 청소기, 전자레인지가 되기도 했다. 목소리뿐인 그녀는 시험관에서 배양된 나의 엄마였다.


‘엄마, 그녀는 나의 엄마다...’

내겐 열 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그때까지 나는 수퍼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신인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시험관에서 자랐을 뿐이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입력받으며.....마치 식물처럼.. 프리티에게도 루비에게도 친근함을 느끼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까.


독한 시가 연기가 방안에 자욱하다. 나는 청아한 하늘을 수놓은 푸르른 오로라를 바라보며 시가를 한 모금 들이마신다. 꿈틀대며 하늘을 뒤덮는 오로라.


'오로라는 여우의 빛이라 불린다지.'


혼잣말로 중얼댄다.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거실 소파에 기대 있던 나는 한참 동안 오로라의 움직임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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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 신인류 프로젝트 23.06.27 22 0 16쪽
23 스낵카에서 만난 이들 23.06.21 24 0 15쪽
22 감시자의 눈, 누굴까 23.06.18 20 0 14쪽
21 쥬드그룹의 레이첼 23.06.15 21 0 16쪽
20 음악방송, ‘자유의 소리’ 23.06.13 21 0 16쪽
19 그들의 마이스터 23.06.11 23 0 14쪽
18 잃어버린 성체에서 벌어지는 일 23.06.07 21 0 15쪽
17 사막의 이방인 23.06.05 22 0 14쪽
16 늙은 숫염소 마크 아래에 23.06.03 22 0 15쪽
15 유랑자의 섬 23.05.30 23 0 14쪽
14 홀로그램이 사라지며 그곳에 나타난 건 23.05.29 23 0 10쪽
13 말뚝 코끼리, 그들은 왜 떠날 수 없는가? 23.05.27 25 0 13쪽
12 시바가 이끈 곳에서 기다린 건 23.05.25 26 0 14쪽
11 사라진 자, 바알 그는 23.05.22 25 0 16쪽
10 가나안의 신과 바알 숭배자 +1 23.05.21 28 1 14쪽
9 인간을 닮은 것 +1 23.05.19 26 1 14쪽
8 생각한다, 고로 나는 안드로이드다 23.05.18 26 1 15쪽
7 쇼는 됐고, 어쨌든 아일랜드산 기네스는 맛이 좋지 23.05.16 31 1 15쪽
6 그림자의 행방 23.05.15 29 1 14쪽
5 브로드캐스팅 타워의 시위 23.05.14 29 1 16쪽
» 누군가가 사용한 EMP 건 23.05.14 38 2 13쪽
3 바알의 카페, 그곳은 23.05.13 58 2 14쪽
2 루비,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 23.05.13 74 2 15쪽
1 네오서울을 질주하는 안드로이드 +2 23.05.13 186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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