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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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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87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6.25 07:50
조회
42
추천
2
글자
12쪽

79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다시 오두막에 돌아오자 슬슬 날이 저물 시간이다.


-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내게 손끝 하나도 댈 수 없다고······.


리나는 얘기가 끝나자 한참을 울다 지쳐 제대로 말도 못 하기에

일단 오두막에 데리고 가서 재웠다.


‘그게 데스트리아누스라는 뜻이었구나.’


처음 마주쳤을 때 리나가 했던 말.

숲을 뛰어다니다 넘어져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을 때 본 건 위즈였다.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과 똑같이 검은 머리칼과 보라색 눈동자.

물론 리나의 착각이 기분 나쁘지는 않다.


붉은 천에 덮인 뭔가를 조심히 땅에 내려놓고

같이 가져온 칼을 그 곁에 꽂아 세운다.

조금 잔인하지만, 리나가 확인하기 전까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이제 만족할까.

눈을 감을 수 있을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리나가 벌게진 눈을 비비며 다가오자 일부러 칼을 가리고 서서

붉은 천 뭉텅이만 보이게 한다.


“그게 뭐야, 위즈?”


그리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몸을 살짝 비켜 천이 달린 그 칼을 보여준다.

크레센타에서 지겹도록 봤고 지금도 떠올리라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바로 그 칼.


마지막으로 본 츠레니시아의 옷자락에는

사랑하던 그 두 사람의 피가 어우러져

리나를 지키는 기사의 깃발이 되어있다.


“위즈, 그거, 설마,”

“응. 맞아.”


리나가 자는 사이에 숲을 뒤져 유해를 찾아왔다.


“하지만, 어떻게······.”

“리나 네가 자는 동안 처음 만난 곳 주위를 계속 돌았어.”


리나가 쓰러졌던 곳은 기억하고 있다.

그곳을 기준으로 리나가 넘어져 구를만한,

지대가 높은 곳을 찾았고 그대로 쭉 갔다.


“늑대 사체와 사람 주검이 널브러져서 일단 옷차림도 다르고 칼을 쥐고 있던 주검을 가져왔는데, 확인할 수 있어?”


물론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리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에 다가온다.


“나를 위해 죽은 사람에게 반드시 갖춰야 할 예의니까.”


그 옆에 한쪽 무릎을 꿇자 위즈가 몸을 숙여 천천히, 얼굴 부분부터 천을 연다.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어 거의 백골만 남은 시체에 리나가 놀라지만, 이내 꾹 참는다.

위즈가 이어 갑옷 부분까지 보여주자 리나가 입을 가리고 다시 울려고 한다.


“맞아? 다른 크레센타 병사라거나······.”


고개를 젓는다.


“페르, 페르투륵사가 맞아. 이거 페르투륵사가 입었던 갑옷이야.”


아무리 짧은 삶이었다 해도 평생을 봤는데 이걸 모를 리 없다.

분명 페르투륵사가 맞다.


“나, 나 때문에,”


결국 페르투륵사는 그 싸움에서 리나 때문에 죽었고, 그 생각에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내가, 내가,”


이미 바랜 페르투륵사의 갑옷에 거리낌 없이 손을 올리고 말한다.


“내가 강했으면, 나를 굳이 지킬 필요 없었으면,”


페르투륵사가 이렇게 죽을 필요 없지 않았을까.

그 말에 리나가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서 댔던 이유가 떠오른다.


보호받기보단 보호하고 싶다고,

위즈를 돕기 위해서 억지로 숲으로 나왔다고 했던 건 다 이런 일 때문인 걸까.


“이런 거 싫어.”


위즈가 그랬듯 페르투륵사도 머리를 쓰다듬어주길 바라며

이마를 갑옷에 대나


천에 가린 새하얀 팔은 움직이지 않는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죽는 거 싫어.”


위즈라도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는데 이상하게 손이 머리까지 가질 않는다.

그러곤 이내 혼자 슬퍼하도록, 다 털어놓도록 두자고 생각하며 다시 손을 거둔다.

대신 곁에 꽂힌 칼을, 리나를 지키던 그 깃발을 본다.


‘어리석긴.’


다시 느끼고 싶지 않던 기분으로 생각한다.

죽으면 아무 소용없는데 왜 이렇게 목숨을 바치나 싶다.

리나가 말한 그 마지막 모습에 동족 혐오라도 느꼈는지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당신도 어리석고, 그 츠레니시아라는 이도 어리석고,’


그리고 동생을 위해서 삶을 저버린 위즈 그 자신도.

리나의 머리칼 대신 깃발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사슬로 땅을 파고 시신을 묻는다.

봉분 앞에 다시 칼을 꽂고 그 앞에 서서 예를 표하려는데

리나가 봉분에 손을 올리고 읊조린다.


“페르투륵사. 그대는 *****로서 ************니 ********여 ******습니다.”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말들.

석양을 배경으로 조용히 얘기하는 그 모습이 숭고하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대체 내 뭘 믿고 널 맡기려고 한 걸까?”


얘기를 들어보면 페르투륵사도 위즈를 학살자 정도로 치부했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고 해도, 자신이 지켜야 할 대상을 학살자한테 맡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왜 그 순간 그 선택을 한 걸까.


“글쎄? 실력? 잘 싸워서 그런 게 아닐까?”

“날 만나본 적도 없잖아. 내가 잘 싸운다는 게 그저 소문일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위즈는 지금까지 모든 크레센타 인들이

자신을 ‘가족을 죽인 학살자’로 여길 줄 알았는데,

페르투륵사는 위즈에게 리나를 부탁했다.


적어도 페르투륵사는 위즈를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봤다고 생각해도 될까.


“뭐, 어쨌든 그 아저씨가 원하는 대로 됐네.”

“어?”

“그렇잖아? 페르투륵사가 원하는 대로 리나 너는 나와 만났고, 나는 너를 지켜주고 있어.”

“그렇네? 히힛.”


물론 처음 만났을 때는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고

지금도 밖에 적이 돌아다니고는 있지만,

호위대장이 마지막 순간에 바라던 결말이다.


위즈가 리나를 지켜주고 아사르군더니움을 쫓아내는 것.


“저세상에서도 만족했겠다.”


제대로 눈을 감으리라는 안도감인지 리나가 살짝 웃는다.


“위즈. 그런데 여기에 무덤을 만들면 밤에 귀신 나오지 않을까? 책에서는 그러던데.”


공동묘지에 나타나는 귀신.

이야기 주인공들 대다수는 귀신을 무찌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는 했다.


“그리고 몇몇 주인공들은 귀신을 설득하고, 가끔 동료로 삼기도 하잖아.”

“어! 그거······.”

“에아로시스 이야기. 호라의 전래동화지.”


위즈가 눈은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그 호위대장 아저씨는 귀신이 된다고 해도 계속 리나 너를 지킬 거야.”

“위즈를 맞수로 여기는 거 아니야?”

“그러려나? 물론 내가 이기겠지만.”

“아니야. 그 아저씨도 강하다고.”


어릴 적 기사 놀이를 할 때 놀아주던 페르투륵사가 떠올라 살짝 웃는다.


“위즈.”

“응?”

“위즈는 나 놓고 죽으면 안 돼. 알았지?”


무슨 그런 농담을 하나 싶은데 리나 얼굴은 진지하다.


“츠레니시아랑 페르투륵사가 그랬던 것처럼 위즈도 날 위한다는 이유로 죽으면 안 돼.”


그랬다간 도저히 죄책감을 못 견딜 것 같다.

리나 눈을 조금 쳐다보다가 다시 봉분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입을 연다.


“널 위해 죽지 않을 거야.”

“응?”

“널 위해 싸우고 같이 살아나면 모를까, 죽을 생각은 없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길 모든 죄책감은 위즈가 지리라.

자신을 보고 활짝 웃던 이 아이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으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말이야. 리나 너, 정말로 안 돌아갈 거야? 나야 뭐 날 걱정할 만한 사람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데, 너는 아니잖아.”


물론 아사르군더니움이 죽었든 살았든

리나를 성 앞에 데려가지 않는 이상 잡히지 않았다는 건 알 것이다.

하지만 잡히지 않았다고 무조건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도 아니니.


“네 어머니가 다시 만나자고 했다며. 너는 다시 안 만나고 싶어?”

“응. 안 만나고 싶어. 어차피 돌아가 봤자 다시 밀궁에 유폐될 텐데. 그리고,”

“그리고?”


품에서 브로치 하나를 꺼내 보석 부분을 엄지로 문지른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아.”


이대로 돌아가면 위즈에게 얘기한 모든 게 현실이 된다.

앞으로도 더 끔찍한 현실이 다가올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 살며 그 모든 게 악몽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사실 처음에는 마법 다 배우고 나서 정말로 크레센타로 돌아가려고 했어.”


마법을 배우면 다른 사람이 리나를 위해, 리나를 지키려고 대신 죽을 필요 없으리라 생각했다.

위즈가 천재라고 칭찬할 때마다 그 꿈이 쉽게 이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위즈가 숲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니까 그 생각이 전부 사라졌어.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정신 차리고 싸우는 위즈와 달리 나는 마법도 제대로 못 썼으니까. 전부 내 교만이라는 걸 알았어.”


그래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도망치는 행위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돌아가서

무고한 이들이 ‘황녀’를 지키려고 죽는 것보다 이게 더 나으리라.


“그러니까, 위즈. 나 돌려보내지 말아줘. 하라는 건 뭐든지 할 테니까, 그냥 여기서 지내게 해줘.”


위즈 얼굴은 쳐다보지 않고 옷자락만 잡으며 간곡히 부탁한다.

그대로 손을 잡아줄까 하다가 입맛만 다신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정말?”


올려다보자 눈을 피하며 씩 웃고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한다.


“그래, 뭐. 나도 우리 황녀 마마를 보내고 싶지는 않고.”

“위즈.”

“어?”


리나가 살짝 딱딱해진 표정으로 위즈를 본다.


“그렇게 부르지 마. 싫어.”

“어? 왜?”

“이제 위즈랑 나는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나를 황녀로 대하지 마.”

“아······.”


적에게 쫓겨 숲에 숨은 다른 나라의 황녀.


“어차피 안 돌아갈 건데 지위가 무슨 상관이야?”


주머니에서 브로치를 꺼내 공중에 던졌다가 받는다.


“안 그래?”


위즈는 대 귀족, 크레센타로 치면 제후나 귀족일 뿐.

신분으로만 따지면 지금 리나 앞에서 이렇게 고개를 들 수도 없다.


“그렇······지. 미안, 그게 싫었구나.”

“앞으로 안 그럴 거지?”


막연히 고개만 끄덕이자 일부러 위즈의 양 뺨을 잡고 눈을 마주친다.


“자, 도망치지 말고 이대로 머리 쓰다듬어봐.”

“이대로?”


행여나 도망칠까 봐, 행여나 눈이 흔들릴까 봐,

행여나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을까 봐.


“······리나 넌 정말로 내가 무섭지 않아?”

“말했잖아. 무서워. 하지만 위즈는 어떤 상황에서도 날 지켜줄 테니까.”


문득 지난번에 꿨던 꿈이 떠오른다.


단검을 쥐고 자신의 심장을 겨누는 위즈와

그 단검을 같이 쥐고 위즈를 찌르는 리나.


“나한테 위즈는, 가족을 죽이고 도망친 살인마 위자드리아누스가 아니라 언제나 날 구해주는 위즈니까. 내 가족 위즈니까 조금 무서워도 괜찮아.”


거기다가 위즈가 사람을 죽인 건 분명 잘못했지만,

무작정 위즈를 비난할 수도 없다.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사람 죽인 건 무조건 잘못이야.”

“그걸 부정한다는 게 아니잖아. 위즈가 살인자라는 건 변하지 않아.”


리나가 살짝 차갑게 보며 말하자

위즈는 리나를 살짝 보고 다시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그래도 괜찮아.”


그 시선을 억지로 다시 교정한다.


“이미 이기적으로 황녀 자리를 버리고 여기 있기로 했으니까 이기적인 생각 하나만 더 할게.”


위즈는 꼭 소설에 나온 주인공 같다.

어두운 과거를 짊어지고 공주를 지키는 기사.

마냥 철부지 같은 생각이지만, 위즈의 말마따나 아직 애인데 뭐 어떤가.


“위즈가 다신 그런 짓 안 저지른다면 위즈 곁에 있을게. 그리고 위즈가 그런 짓 안 저지르도록 위즈 곁에서 위즈를 감시할 거고.”


위즈와 달리 리나는 이미 위즈를 가족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리나의 용기는 위즈의 그것보다 더 엄청날지도 모르겠다.


“고마워.”


그리고 그 리나의 마음이 역겹고 부담스럽고,

동시에 너무나 고마우면서,

고마움을 느끼고 리나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은 자신이 훨씬 더 역겹고 가증스러워,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항상 잘 부탁해.”


조심히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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