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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다시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로 간 선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차르다시
작품등록일 :
2021.07.26 01:46
최근연재일 :
2022.05.16 16:05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9,862
추천수 :
58
글자수 :
236,499

작성
21.09.02 06:55
조회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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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9.최후의 만찬

DUMMY

그때 잘 가던 수레가 멈춰 섰다.


개똥이 천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수레를 끌던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김신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말이 지친 것 같다. 쉬어 가야겠다.”


주위를 둘러보던 개똥이 수레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럼 저는 소변 좀 봐야겠습니다.”


수레를 내려온 개똥이 길가에 자라난 풀 속으로 걸어갔다. 마부석에서 내려온 김신은 수레바퀴를 살폈다. 저택을 나오면서 망가진 것인지 어딘지 모르게 굴러가는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바퀴를 흔들어 보니 역시나 금방이라도 빠질 것처럼 덜렁거렸다. 물건을 고치는 재주가 없었던 김신은 괜한 바퀴만 계속 흔들어 보았다.


어느새 개똥이 일을 보고 돌아왔다.


“고장 난 겁니까?”

“그런 것 같구나.”

“나와 보십쇼”


개똥이 바퀴를 잡더니 자신 있게 흔들었다.


툭-


어딘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바퀴가 기울어졌다. 네 개의 수레바퀴 중 하나가 망가지자 수레가 한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수레 안에 있던 크리스와 왈드가 불안한 마음에 밖으로 뛰어나왔다. 개똥이 기울어진 바퀴를 잡고 어색하게 웃고 있었고 김신이 그런 개똥을 보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개똥에게 한마디 하려던 김신이 왈드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뒤에 타고 있는 사람이 기사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도련님 놀랄 거 없습니다. 검도 제대로 못 잡는 놈입니다.”

“뭐?!”


얼굴이 달아오른 왈드가 말을 잇지 못했다.


“비켜보시오.”


팔을 걷어붙인 왈드가 바퀴를 잡고 이쪽저쪽으로 흔들었다. 순간 ‘척’ 소리가 나며 바퀴가 반듯하게 세워졌다.


“손재주는 좋네. 근데 왜 어울리지도 않게 검을 들었데.”

개똥이 못내 왈드를 치켜세웠다.


“이봐 덩치, 나도 좋아서 검을 든 건 아니야.”


왈드가 턱을 들어 올리며 손을 털었다. 저택에서 봤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뭐 덩치? 이런 겁쟁이 놈이!”

“뭐? 겁쟁이? 그래도 내가 널 살려줬잖아!”

“살리긴 누가 누굴 살려, 한 주먹 거리도 안되는 게!”


말싸움이 계속되자 김신이 끼어들었다.


“개똥아, 그만하거라.”


잠시 왈드를 응시하던 개똥이 몸을 획 돌렸다. 그리곤 ‘퉤’하고 가래를 뱉고는 수레 안으로 들어갔다.

왈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화 푸시요, 저놈이 말을 막하는 데가 있소.”


조금 마음이 누그러진 왈드가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크리스는 갑자기 찾아온 서먹한 분위기가 난처했다.


“그럼 다시 출발하겠소. 수레에 오르시요.”


김신이 다시 마부석에 올라 수레를 몰았다. 수레 안은 분위기가 냉 냉했다.


개똥이 입을 열었다.

“너는 언제 내릴 거야?”

“왜, 네가 수레 주인이냐?”


눈치를 살피던 크리스가 개똥을 말렸다.

“아저씨, 그만하세요.”


개똥이 툴툴거리며 등을 돌렸다.


크리스는 수레 안이 가시방석이었다. 산맥까지 아직 한참을 가야 하는데 계속 이렇게 간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답답한 마음에 수레 밖을 내다보니 이제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올라간 손가락이 쉴 새 없이 테이블 위를 두드렸다. 그 소리가 거슬렸던 메라 사제가 미간을 좁혔지만 정작 마울드는 자신이 하는 행동을 인지하지 못했다.


“못 보셨습니까?”


마울드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용은 같지만 억양은 조금씩 달랐다.


“똑같은 말을 계속하시는군요. 오늘은 보지 못했습니다.”


잠시 뜸을 드리던 마울드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제님은 예배 전에는 어디 계셨습니까?”


의자에 등을 기댄 마울드가 뒤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단도의 차가운 촉감이 느껴지자 마울드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마울드 영문모를 미소에 메라는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그의 잔인한 성품을 소문으로 들었기에 더욱 침이 말랐다.


“얘기가 길어지는 것 같군요.”


마울드의 뒤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엄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는 대사제 에리온이었다. 그가 다가오자 마울드가 아쉬운 듯 테이블 위로 손을 올렸다.


“오늘은 메라사제 님도 바쁘시니, 다시 약속을 잡으시죠.”

“아, 다 끝나갑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에리온이 말울드의 말을 잘랐다.

“마울드님 제가 배웅하죠.”


망설이던 마울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기분이 상했는지 별다른 인사도 없이 몸을 돌렸다. 그 뒤를 에리온이 따라나섰다.


성전을 빠져나가는 마울드가 낮게 읊조렸다.

“에리온, 협조 좀 하지 그래.”

“충분히 도왔어, 필리아를 놓친 너희 탓이지.”

성선을 나가는 길에는 둘만 있었지만 에리온 역시 조용히 이야기했다.


“이대로 가면 베르크님이 실망하실 텐데? 잘 생각하라고.”

“실망은 내가 했지. 너 같은 망나니가 성전까지 무기를 들고 들어왔으니.”

마울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에리온, 이건 어릴 때 하던 전쟁놀이 같은 게 아니야.”

“전쟁놀이라··· 마울드, 너야말로 지금 상황을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마울드가 코웃음을 쳤다.


성전 입구에 도착하자, 배웅을 끝내려는 에리온이 걸음을 멈췄다.

“또 안 봤으면 좋겠군.”

“글쎄, 두고 보자고.”


마울드가 성전 밖으로 나서자 성전 앞에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뒤를 따랐다. 마울드의 퇴장을 지켜보는 에리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문 연합을 도왔으나 마울드와는 엮이고 싶지 않은 그였다.



저택 식당에 음식이 차려졌다. 기름진 고기 요리와 싱싱한 샐러드,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수프, 색색깔의 달콤한 과일과 향이 좋은 술까지. 급하게 준비된 아침식사 치고는 굉장히 푸짐했다. 길쭉한 식탁 위로 음식이 가득 차자 가장 상석에 있던 베르크가 입을 열었다.


“드시죠.”


갈증을 느낀 베르크가 제일 먼저 잔에 들어있는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양쪽에 있던 아렉과 도니도 눈치를 보다 음식을 깨작거렸다.


얼핏 보면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아직 곳곳에 전투 흔적이 남아있었다. 식당 벽으로 정체 모를 사람의 피가 뿌려져 있었고 시종 하나가 그것을 열심히 닦아냈다.


도니가 가정 먼저 입을 열었다.

.

“프레이드 쪽은 잘 해결된 것이 맞습니까?”


“걱정 마세요. 다 잘 됐습니다.”


베르크가 여유롭게 이야기했다.


“그럼 이제 중요한 이야기를 좀 하지요.”


아렉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아무래도 위그가문의 근거지와 맞닿아 있는 남쪽 평야를 우리 가문에서 관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저희 땅이기도 했으니까요.”


가만히 듣고 있던 베르크가 당연하다는 듯 끄떡였다.


“그렇게 하세요.”


도니는 베르크의 태연한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큰 땅을 때어준다면 자신과 베르크의 몫이 줄어드는 것인데 당연하게 반응하다니. 도니가 발끈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남쪽 평야는 영주 영토 절반이나 되는 땅 아니요? 그리고 예전이라니, 백 년 전 이야기를 하는 거요? 그렇게 따지고 들면 하울드에 있는 땅은 다 체우스가문의 것이요.”


하울드의 있는 모든 가문은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체우스가문을 뿌리에 두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도니가 열을 올리자 아렉이 말을 잊지 못하고 베르크의 눈치를 살폈다.


베르크가 입을 열었다.

“도니, 병력을 얼마나 잃었소?”

“···”


도니가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머믓거렸다.


“아렉은 물론이고 나 또한 병력의 절반 이상을 희생했소. 그에 비하면 남쪽 평야는 그리 큰 영토는 아니요.”


도니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렇다면 내 몫은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그대들보다는 아니지만 나 또한 희생을 치렀소. 그리고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을 다했을 뿐이요.”


“그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요.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이 있는데···”


베르크가 잠시 뜸을 들였다.


“체우스산맥을 관리해보는 건 어떻소?”


순간 도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손이 떨리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식탁을 내려친 도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개자식, 내가 없었다면 니들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 것 같아?”


소란에 놀란 병사들이 식당 안으로 모여들었고 그중에는 역시 도니의 병사들이 가장 많았다. 모두 검을 빼들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금방이라도 난장판이 될 것 같았다. 그리되면 다 같이 죽자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뭐? 체우스산맥을 어째? 자, 그 잘난 혀를 다시 놀려 보시지.”


도니가 베르크를 죽일 듯 쳐다보며 핏대를 세웠다. 베르크가 남은 술을 털어 넣었다.


“잘 먹었나?”

“뭐?”

“식사 말이네.”


베르크가 태연한 미소를 보이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도니가 목을 감싸며 침을 삼켰다.


“비겁하게 독을 넣었나?”


피를 닦던 시종이 바닥을 닦으며 조금씩 도니의 뒤로 다가가고 있었다.


“독은 아니네 비겁한 건 맞지만.”


시종이 피를 닦던 천으로 도니의 입을 틀어막고 숨기고 있던 단검을 가슴에 찔러 넣었다.


푹-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외마디 비명도 없는 도니의 죽음에 그의 기사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입을 벌린 체 눈치만 살폈다. 허물어지는 도니를 시종이 의자에 앉혔다.


“마울드, 수고했네. 그런데 필리아가 도망친 건 좀 난감하군”


마울드라는 이름에 몇몇 병사들이 그를 알아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좀 더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이야기를 마저 끝내 야지. 도니의 대체가 필요하겠군.”


주위를 둘러보던 베르크가 파포드 가문의 경비대장을 보고 손짓했다.


“이리 와 앉게. 경비대장.”


망설이던 경비대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이야기가 시작됐다. 무언가 설명하던 베크르가 경비대장에게 동의 구했다. 하지만 그는 베르크의 말이 통 들어오지 않았다. 고개를 꺾고 앉아있는 도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엄마 배고파.” “나도”

알렌과 셸리가 간절한 눈으로 필리아를 바라봤다.


“어쩌지 여기는 먹을 것을 살 곳이 없는데···”


가진 돈이 조금 있었지만 음식을 살만한 곳이 없었다. 보이는 거라고는 노랗게 물든 밀밭뿐이었다.


“그러게 왜 산으로 간다 해서 이 고생이세요. 이 길은 인적도 드물다고요.”


윈나의 잔소리가 이어지자 필리아가 참았던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도 산으로 가는 길이 무모하단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애초에 가려고 했던 카왈드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어릴 적 봤던 숙부 또한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눈앞에 보이는 저 산에 프레이드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윈나까지 자신을 탓하자, 정말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아가 울자 아이들까지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당황한 윈나가 어버버 거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머리를 쥐어짜던 윈나가 피어오른 연기를 발견하고 화제를 돌렸다.


“저기, 저기 사람이 있나 본데요? 저기 가서 좀 먹을 걸 달라고 해볼게요.”


필리아 코를 들이 마시며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길을 따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거, 혹시 모르니까.”


윈나를 잡은 필리아가 금화 두 개를 건넸다.

위험하다고 말할 줄 알았던 윈나는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어가다 보니 연기의 진원지로 보이는 건물이 나왔다. 좀 더 가까이로 다가가자 그것이 말을 키우는 마구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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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어둠속으로. 22.03.20 145 0 16쪽
33 33. 가자니까... 22.03.02 151 0 13쪽
32 32. 잘먹을거면서 22.02.09 155 0 14쪽
31 31.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21.12.29 169 0 13쪽
30 30. 연결 21.12.20 17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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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체우스마을 21.11.28 197 0 12쪽
24 24. 사투(2) 21.11.24 189 0 12쪽
23 23. 사투(1) 21.11.21 202 0 12쪽
22 22. 재회 21.11.15 203 0 11쪽
21 21. 지원군. 21.11.08 221 0 12쪽
20 20. 11만 3천번. 21.11.03 216 0 12쪽
19 19. 왜케 비싸;; 21.10.27 215 0 12쪽
18 18. 잠이와? 21.10.20 219 1 12쪽
17 17.게판 21.10.14 228 1 13쪽
16 16. 다음 거래는? 21.10.11 229 2 13쪽
15 15. 하울드의 수호자. 21.10.05 249 3 13쪽
14 14.게살 21.09.30 25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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