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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다시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로 간 선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완결

차르다시
작품등록일 :
2021.07.26 01:46
최근연재일 :
2022.05.16 16:05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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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1
추천수 :
58
글자수 :
23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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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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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40. 다시 과거 (완)

DUMMY

부우-


적을 알리는 낮은 나팔소리가 동굴을 타고 흘렀다.


“도련님, 마을에도 병사들이 왔나 봐요!”


개똥이 다급히 외쳤다.


“이런!”


난 샤진을 상대하기 바빴다. 먼지 구름을 빠져나온 샤진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자 허공으로 몸을 피해 광체를 날렸다.


샤진이 광체를 두 동강 내더니 나를 쫓아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남아있던 광체 둘을 날려 샤진의 검이 닿기 전에 둘을 부딪쳤다.


꽝-


폭발과 함께 튕겨진 샤진이 적군들 사이에 처박혔다.

마나가 빠져나가는 통에 머리가 어지러웠으나 샤진이 없는 틈을 놓칠 수 없었다.

서둘러 광체 두 개를 만들어 왕궁 병사를 노렸다.


날아오는 광체를 눈치 첸 왕궁 병사 두 명이 몸을 빼자 병사 셋을 상대하고 있던 청룡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남은 병사의 목을 벴다.


그 사이 팔이 고장 난 왕궁 병사를 제거한 프레이드가 백호와 합류했다. 백호 역시 왕궁 병사 셋에게 둘러싸여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프레이드가 합류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삽시간에 왕궁 병사 여럿이 죽어 나가자 전선의 균형이 깨졌다.

기세가 올라간 아군이 전선을 밀어붙이는데 어느새 몸을 일으킨 샤진이 다시 전선으로 뛰어 들어왔다. 샤진을 저지하려 몸을 돌리는데 프레이드가 앞을 막았다.


“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넌 마을로 가봐.”


일행들을 두고 가는 게 불안했으나 마을 상황도 다급했다. 남아있는 병사가 많지 않을뿐더러 왕궁 병사를 상대할 만한 이도 없었다.


“병력을 물려. 갈림 길로 가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어서 가!”


그러고는 프레이드가 전선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가 적병 둘을 갈라버리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려 동굴을 빠져나갔다.


적병을 베어내던 프레이드가 별안간 동굴 천정으로 검기를 날렸다.

동굴이 부르르 떨며 잔해가 떨어지자 아래 있던 적병들이 서둘러 몸을 피했다. 그중에는 샤진도 있었다.


“물러서! 후퇴한다!”


프레이드가 또다시 동굴 천정으로 검기를 날리며 외쳤다.

부서진 잔해들이 쏟아지자 얽혀 있던 이들이 갈라졌고 전선 가운데 간격이 벌어졌다. 그 틈에 아군 병력들이 뒤로 내달렸다.


“놈들이 도망친다!”


샤진이 고함을 지르며 재빨리 거리를 좁혀 병사들 뒤로 따라붙었다. 뒤처진 병사 등으로 검을 내지르는 순간 프레이드의 검기가 날아와 진로를 차단했다.


충격에 휩쓸린 아군 병사가 앞으로 고꾸라지자 프레이드가 그를 부축해 달아났다. 쫓아오는 샤진에게는 청룡과 백호가 달려들었다.


적병사들 역시 금세 따라와 뒤처지는 아군들을 노렸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크리스와 궁병들이 중간중간 뒤로 화살을 쏘았다. 그 덕분에 적들의 진격이 늦어졌고 뒤처지는 아군들은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적잖은 아군이 죽어 나갔다. 활에 맞아 쓰러지고 체력을 다한 이들이 뒤처져 등에 칼을 맞고 땅을 굴렀다. 얼마쯤 동굴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니 원하던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흩어지자.”


프레이드의 말에 개똥이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선두로 도착한 병사 절반이 개똥을 따라 들어가고 나머지는 프레이드를 따라 갈라졌다.


바짝 뒤를 쫓던 적군들은 길이 갈리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지휘를 맡은 왕궁 병사가 곧바로 샤진을 찾았다.


“어느 쪽이 마을로 가는 길이오?”

“이쪽이오!”


곧장 왼쪽 길로 들어서던 샤진이 자신 있게 외쳤다.


“이쪽으로 간다!”


왕궁 병사는 프레이드를 따라 왼쪽 통로로 병사들을 통솔했다. 얼마쯤 가자 다시 갈림길이 나왔고 앞서가는 프레이드의 병력이 다시 갈라져 들어갔다. 왕궁 병사들이 이번에도 샤진에게 물었다.


“마을은 어느 쪽이오?!”

“이쪽으로 가면 돼!”


샤진은 자신 있게 갈피를 잡았지만 사실 마을로 가는 길을 알지 못했다. 전에 봤던 길과 달리 갈림길이 늘어나 있어 놈들의 마을은 물론이고 자신의 영지로 가는 길조차 가물가물했다.


미로 같은 갈림길이 계속 이어지자 따라가는 샤진 일행은 이제 들어왔던 길조차 헛갈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프레이드 일행을 쫓아가는데 대열 뒤에 소란이 일어났다.


“후방에 기습입니다!”

“뭐야!”


놀란 왕궁 병사들이 후방으로 뛰어가자 샤진도 다급하게 뒤따라갔다.

단숨에 대열 끝에 다다랐지만 백골로 보이는 것이 이미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등 뒤에는 눈에 익은 놈이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 엎어진 병사 다섯은 의식이 없었다.


“이런 비겁한!”


샤진이 열을 올리며 뒤를 쫓아가려는 데 이번엔 전방이 소란스러웠다.


“선두에 기습이다!”

“이런 젠장!”


왕궁 병사와 샤진이 욕을 하며 선두로 뛰어갔지만 이번에도 활에 맞는 병사들만 고꾸라져 있을 뿐, 기습을 감행한 놈은 자취를 감춘 후였다.


“이러다가 병사를 다 잃겠어.”


아니다 다를까 다시 후방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안되겠어. 빠르게 마을로 가자고. 어서 안내 하시오!”


샤진이 길을 아는 척 재빨리 방향을 잡자 대열이 속도를 내서 전진했다. 중간 찾아온 기습에도 왕궁 병사들이 전진을 외쳤다.


샤진 일행이 갈림길을 빠르게 헤져 나가자 프레이드 일행은 더 이상 기습으로 발을 묶어 둘 수 없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들이 용케 미로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놈들이 길을 제대로 잡았어요. 대피소와 가까워지고 있어요.”


크리스는 갈림길을 빠져나가는 적군 대열을 반대편 갈림길에 숨어 바라봤다.


“대피소로 가는 건 막아야 해.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흩어진 병사들을 대피소 앞으로 모아.”


프레이드의 말에 주위에 모여 있던 병사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프레이드는 곧장 지름길로 내달려 대피소와 이어지는 둥글고 널찍한 공간에 다다랐다. 그와 동시에 사방으로 뚫린 통로 중 하나로 샤진과 병사들이 밀려들어왔다.


먼저 적을 발견한 프레이드가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었다. 대열 가운데 떨어진 프레이드가 순식간에 가까운 병사 하나를 베어내자 대번에 샤진이 튀어나와 검을 맞부딪쳤다.


캉- 캉-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에 나머지 적군들은 반응이 늦었다. 뒤늦게 검을 치켜드는 찰나 함성과 함께 사방에서 병사들이 뛰어나왔다.


청룡과 백호가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 대열을 휘젓고 크리스와 궁병들이 화살을 쏟아냈다. 개똥은 기세 좋게 함성을 지르고 후방에서 눈치를 살피다 맥을 못 추는 놈들만 골라 지팡이를 휘둘렀다.


“막아야 돼! 한 놈도 지나가지 못하게 해!”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


샤진과 왕궁 병사들 역시 물러서지 않고 총공세에 나서며 난전이 이어졌다. 그쯤 마을에 도착한 김신 역시 어지러운 전황을 맞이했다.


병장기 소리와 비명을 따라 마을 입구로 날아가니 망루 위에 올라서 있던 병사가 뒤로 넘어갔다. 잽싸게 날아가 병사를 받았지만 가슴에 활이 박힌 병사는 숨이 넘어가 있었다.


그를 땅으로 내려놓고 입구를 보니 목책으로 만들어진 대문이 갈라져 적병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십 남짓한 아군들은 갈라진 틈을 에워싸고 괴성을 질러댔다.


“뚫리지 마라! 곧 지원이 온다!”


재빨리 대문 위로 날아가 밀려들어오는 적병들에게 광체를 날렸다.


쾅. 꽈광-


첫발에 병사 열댓 명이 사방으로 떨어져 나갔다. 연이어 두발을 더 떨어뜨리자 벌집을 건드린 것 마냥 시야 가득 화살이 날아왔다.


“마법사다!”

“영주님이 왔다!”


병사들의 희망 썩인 음성이 터져 나왔다. 손이라도 흔들어 주고 싶었으나 서둘러 하늘 위로 솟아 화살을 피해야 했다.

높이 올라가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마을 왼편을 감싸고 있는 경사면으로 적병들이 미끄러지듯 내오는 것이 보였다.

지세가 험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인데 용케 길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그곳은 방어하는 아군이 없는 상태였다. 하는 수없이 입구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적들을 향해 내려갔다. 경사면을 다 내려온 적들이 민가가 밀집한 곳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경사면 아래를 도착해 서둘러 단검을 뽑아 빛 구슬을 날렸다.


“윽!”


막 민가로 뛰어 들어서 적병 셋이 빛 구슬을 맞아 고꾸라졌다.

곧바로 몸을 돌려 경사를 내려오는 적병 수십 명에게도 빛 구슬을 날렸다.


빛 구슬이 경사를 덮치자 적들이 방패로 몸을 감싸고 몸을 날려 나무 뒤로 들어갔다.


따다다당-


나뭇가지가 끊어지고 흙이 뒤집어졌으나 죽어 나간 적이 없었다. 이어서 적들의 화살이 날아왔다. 재빨리 허공으로 솟아나 몸을 피하고 뒤따라오는 화살들을 광체로 걷어냈다. 그러면서도 기회를 살펴 적병에서 빛 구슬을 날렸다.


순간 불씨를 단 화살 한 발이 민가로 날아갔다. 나는 빛 구슬을 날리다 말고 화살을 낚아채 흙 밭으로 던졌다.


그 사이 화살 수십 발이 몸을 덮쳤다. 서둘러 몸을 비틀었으나 화살 한 발이 어깻죽지에 틀어박혔다. 충격에 멋대로 몸이 돌아가 더니 민가 지붕으로 추락했다.


쿵-


묵직한 통증이 등과 어깨로 밀려오고 몸 안에 있던 마나가 손안에 모래알처럼 빠져나갔다.

힘겹게 상체를 세우자 망루 뒤편으로 적들이 밀려드는 것이 보였다. 마을 입구가 뚫린 것이다.


입구를 지키던 오십 남짓한 병사들은 이제 스물 정도가 남아 시장 안으로 전선을 옮겨 항전했다. 개똥의 여관 앞이다. 적들이 시장 안에 불을 놨는지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났다.


“여기다! 이 위로 떨어졌어!”


지붕 아래로 적병이 몰려와 소리쳤다.


나는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등짝에 박힌 활을 뽑아냈다. 살이 찢기고 피가 쏟아졌다. 정신이 날아갈 듯 고통이 밀려왔으나 타오르는 불길이 눈에 박혔다.


지붕을 뛰어올라 시장으로 몸을 날렸다. 하늘에는 메케한 연기가 벌써 퍼져 있었다. 시장 위로 날아가 아군을 밀어붙이는 적에게 광체를 휘둘렀다.


일자 진을 치고 있던 적병 십여 명이 튕겨져 나가자 후열에 있던 궁병들이 화살을 쏟아냈다. 전선 가운데로 내려가 화살을 피하고 시장 구석에서 불을 놓는 병사에게 광체를 내리꽂았다.


꽝-


광체가 사라지자 재빨리 다음 광체를 눈앞으로 만들어 냈다. 이어서 정면으로 들어오는 적병 둘을 쳐내고 주위를 에워싼 적병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쿵. 쿵-


광체와 부딪힌 이들은 삼보쯤 뒤로 밀려날 뿐 전과 같이 떨어져 나가는 이가 없었다. 매섭게 휘두른 단검에는 가랑비 같은 빛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보니 하나 있는 광체 크기가 아이 주먹만 하다.


꺼져가는 광체를 정신없이 휘저었다. 검과 창을 들이받고 방패를 밀어내고 궁수가 쏜 활을 허공에서 걷어냈다.


“영주님!”

“동굴로 가라. 프레이드와 합류해 지시를 따라!”

“하지만···”

“어서!”


병사들이 도망칠 때까지 광체를 꺼뜨리지 않으려 온 힘을 짜냈다.

어느새 등줄기에 적신 뜨뜻한 것이 하의를 타고 흘러 발밑이 질퍽거렸다. 시야는 흐릿하고 몸이 자꾸 기울어졌다.


결국 희미해진 광체가 흩어지고 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바닥에 드러누워 있으니 하늘로 뻗은 개똥의 삼층 여관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춤을 추고 음식을 나누던 곳은 이제 불길에 싸여 있었다.


적병 하나가 다가와 허리를 숙여 나를 들려다 보더니 큰칼을 높이 쳐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개똥의 춤사위를 떠올렸다. 마치 개똥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도련님!”


정말 개똥이 부르는 소리였다. 눈을 떠보니 큰칼을 치켜든 병사가 목에 박힌 활을 잡고 뒤로 넘어갔다.


“돌격!”


화살비가 쏟아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사들이 달려와 적들과 얽혀 전투가 벌어졌다.


“도련님, 살았습니다!”


개똥이 다가와 다급하게 포션을 꺼내 내 입에 흘려 넣었다.


“영주님 정신 차리세요. 저희가 이겼어요!”


개똥 옆으로 말리아도 와 있었다.


“용병이 도착했구나.”

“예, 조니가 왔어요. 팔레라의 용병들을 죄다 끌고 왔어요.”


그들은 제각기 다른 무기를 사용하는 숙련된 병사만큼이나 싸움에 노련했다. 삽시간에 전세가 뒤집어졌다. 대열이 무너진 적들이 건물 사이로 숨어들고 몇몇은 마을 밖으로 도망쳤다.


용병들은 그들을 추격해 마을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그 들사이에는 후두를 뒤집어쓴 조니와 프레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덕분에 주신 돈을 다 써 버렸어요.”

“살았으니 됐다.


돈이야 다시 벌면 그만이다. 조금 정신이 돌아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개똥과 나머지 병사들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물을 끼얹었다.


도망친 적들은 속속 잡혀왔고 곳곳에 펴져있던 불씨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개똥의 여관은 건물 절반이 불이 그을렸지만 수리가 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이정도면 다행이었다.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데 잊고 있던 검은 덩어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꽝-


나는 반사적은 광체를 날렸고 덩어리를 폭파시켰다. 후폭풍이 다 가시기도 전에 솟아올라 라미어를 찾았다.


순간 라미어가 뒤를 덮쳤고 기척을 느낀 내가 돌아서 라미어와 얽혔다. 우리는 서로의 팔을 낚아채 허공에서 빙빙 돌았다. 그는 덩어리를 쥐고 나는 단검을 들고 서로의 몸을 향해 힘겨루기를 했다.


“나를 가지고 놀다니. 오늘 넌 형체도 없이 사라질 거다!”


라미어가 이를 갈며 손아귀에 힘을 주자 단검을 쥐고 있던 팔이 벌어지고 시커먼 덩어리가 얼굴로 다가왔다. 상황을 바꿔보려 안간힘을 썼으나 손아귀에 피가 말리고 급기야 쥐고 있던 단검을 떨어트렸다.


“이제 그만 죽어라!”


라미어가 덩어리를 밀어 넣는데 무언가 라미어의 팔 등을 훑고 지나갔다. 어찌나 순식간 인지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순간갈라진 라미어의 팔 등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검은 덩어리가 흩어져 버렸다.


“김신, 어서 도망가!”


벼락인 줄 알았던 것은 카카였다. 또다시 날아온 카카가 이번에 라미어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린 탓에 상처가 깊지 않았지만 뺨에 선홍색 선이 그어졌다.


“이런, 망할 놈!”


라미어가 당황해하는 사이 나는 그의 배를 걷어차고 손아귀를 벗어났다. 그는 나를 놓쳐 버린 대신에 어지럽게 자신을 베고 지나가는 카카를 잡아냈다. 손에 들어간 카카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오랜만이군 카카, 꼴이 아직도 우습군.”

“그래, 많이 웃어둬. 이제 마지막이니까.”


꾸아아악-


끓는 듯한 열기에 고개를 돌리자 황소만 한 불덩어리가 라미어를 향해 덮쳐왔다.

라미어가 잽싸게 솟구쳐 피하자 뒤따라온 와이번이 튀어나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라미어를 어깨를 잡아챘다.


“으악!!”


라미어가 괴성을 지르며 한 손을 머리 뒤로 넘겨 덩어리를 날려댔다. 하지만 와이번이 정신없이 방향을 틀어 데는 통에 제대로 맞추는 것이 없었다. 놈은 그 와중에도 카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는 카카를 구하려 다가가다 채찍 같은 와이번의 꼬리에 휘감길 뻔했다.


북-


덩어리 한 발이 간신히 와이번의 가죽 같은 날개를 찢었다. 이윽고 균형을 잃어버린 와이번이 날개를 퍼덕이며 한쪽으로 빙빙 돌았다. 나는 카카를 빼내려 추락하는 와이번을 쫓았다.


꽝-


이번엔 덩어리가 와이번의 머리통을 때렸다. 목이 과하게 돌아간 와이번이 고막을 찢을 것 같은 괴성을 멈췄다. 그 사이 라미어가 와이번의 발톱에서 빠져나왔다. 주위를 돌고 있던 내가 잽싸게 다가가 카카를 잡고 있는 라미어의 손목을 붙들었다.


“갖고 싶나? 어디 빼앗아봐.”


나는 뼈를 부서뜨릴 생각으로 손목을 쥐고 마나를 쏟아냈다. 그의 손이 하얗게 질려 조금씩 펴지나 싶더니 강한 마나가 흘러와 다시 손이 오그라들었다.


카카는 고통을 참는 것인지 느끼지 못하는지 좀처럼 미동이 없었다.


“카카!”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타 들어가는 듯 일각일초가 피가 말렸다. 그때 추락하던 와이번의 꼬리가 채찍처럼 출렁였다. 순간 라미어의 멱을 붙잡고 몸을 뒤집었다.


놀란 라미어가 손을 뿌리치려는 순간 솟아오른 와이번의 꼬리가 라미어의 등을 때렸다.


“억!”


허리가 꺾인 라미어가 눈이 뒤집혀 튕겨져 나갔다. 헐거워진 손에서 카카가 빠져나가자, 나는 두 손으로 카카를 감싸 땅으로 내려갔다.


카카를 바닥으로 내려놓자 미동도 하지 않던 카카가 인간 모습으로 돌아갔다.


“카카···”


카카는 반쯤 눈을 감을 채 나를 올려 다 봤다.


“이제 정말 인간의 몸을 되찾은 것 같아···”

“다 끝났어. 조금만 기다리게 내가 약을 가져올 테니.”


돌아서는 내 손을 카카가 붙잡았다.


“아직 그가 아직 살아있어. 네가 끝내야 해.”


그의 손을 빠져나온 마나가 내 손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네 말 대로야. 결국 난 인간의 모습을 되찾았어.”


카카는 조용히 눈을 감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몸에 퍼지는 마나를 통해 본능적으로 라미어가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라미어가 추락한 곳으로 날아갔다. 멀리서 나를 발견한 라미어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가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으나 나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하늘로 솟구치더니 나를 떼어내려 덩어리를 떨어뜨렸다.


나는 눈 앞으로 광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몸을 휘감는 마나를 오로지 광체에 쏟았다. 이전에 것과는 달랐다.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빛나고 사람을 집어삼킬 정도로 켰다. 떨어지는 덩어리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마침내 모든 마나를 짜낸 광체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미친듯이 덩어리를 쏘아내던 라미어는 밝은 빛에 두 눈이 멀어버렸다. 이윽고 빛이 라미어를 집어삼키자 광체가 폭발하듯 지천으로 빛을 뿌렸다.


온 세상이 경계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새하얘지고 힘을 잃어버린 나는 끊음 없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산 고랑에 엎어져 있었다. 몸을 세워 주위를 둘러보다 아무 생각 없이 주변에 떨어진 서책을 품 안에 넣었다. 그러다 문득 허무맹랑한 기억이 머릿속에 잔뜩 떠올랐다.


‘꿈인가?’


하지만 쉴 새 없이 피어나는 기억은 너무나 또렷했다.


“개똥아! 개똥아!”


산을 휘젓고 다니며 개똥을 찾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산은 분명 도적들에게 쫓기던 그대로인데 개똥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적들에게 잡혀간 것인가? 아니면 체우스 산에 있는 것일까? 삼일 밤낮을 산을 헤맸으나 개똥은 찾을 수 없었다. 산 아래 고을까지 내려가 수소문했으나 개똥은 물론이고 도적도 아는 이가 없었다.


“저, 그런데 과거 보러 가는 길이라 하지 않았소?”

“그렇소.”

“이제 나흘이면 과거인데 아직까지 여기 있는 거요? 한양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할 텐데···”


반쯤 넋이 나가 고을을 헤매고 있자 길을 지나던 사내가 나를 붙들고 일러줬다. 내가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떡이자 그가 안됐다는 듯 혀를 차며 지나갔다.


저녁까지 고을 헤매다 말을 빌려 한양으로 달렸다. 가까스로 전날 한양에 도착해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시험을 치웠다. 그리고 한양에 있는 종형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하룻밤을 자고 간다는 것이 이틀을 내리 잠을 잤다.


깨어나서도 통 기운을 차리지 못하자 종형은 의원을 불러 내게 약을 지어 먹였다. 보름을 더 보냈을 때 사간원에 있는 백부님이 찾아와 집으로 내려가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알려주셨다.


그토록 원하던 과거에 합격했지만 나는 여전히 내장이 없는 허수아비 같았다. 다음날 종형은 살이 오른 말을 내어주고 종까지 하나 붙여줬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이 한달음 이 여야 할 텐데 나는 앞서가려는 말고삐를 꽉 틀어줬다. 도적을 만난 산에 가까이 다가가자 나는 더욱 말을 천천히 몰았다. 모든 것이 엊그제 일처럼 같았다.


마나를 느낄 수도 허공을 날 수도 없지만 눈을 감으면 개똥과 프레이드가 투닥거린다. 상처 난 어깻죽지가 아리고 카카의 손아귀가 아직도 내 손을 안에 느껴진다.


멀리 개똥을 잃어버린 산이 나오자 종은 산을 넘지 않고 먼 길로 말머리를 돌렸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이 산을 넘다 변고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또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돌아서 가겠습니다.”


종의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나리 어디 가십니까!”


말에서 펄쩍 뛰어내려 산으로 내달렸다. 놀란 종이 부리나케 쫓아왔지만 나를 잡을 수 없었다. 거치적거리는 갓과 도포는 멋대로 벗어던졌다.


“개똥아!”


내 목소리가 산에서 산으로 메아리쳤다. 놀란 새들이 날아오르고 들짐승들이 수풀 사이로 곤두박질쳤다.


“프레이드!” “카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산 아래 고을로 소리치고 팔도로 소리쳤다.


“모두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그것이 모두 허깨비란 말이냐?! 변고라도 좋다! 산적이 있다면 나를 쫓아와라!”


제자리를 돌며 사방천지로 소리치고 그만 자리에 엎어져 눈물을 쏟아 냈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에 무언가 반짝거렸다. 낙엽을 들추자 익숙한 단검이 있었다. 내가 사용하던 그 단검이다.

단검을 집어 들고 주위를 돌아보자 전에 보지 못했던 동굴 입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의말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는 내내 부족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중간중간 접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마무리를 지었네요.ㅜ

막상 끝내니 시원하기도 하고 아쉬움도 많네요.

다음 글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좋은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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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다시 과거 (완) 22.05.16 131 0 21쪽
39 39. 라미어 22.05.04 129 0 15쪽
38 38. 뒤풀이는 없다. 22.04.26 131 0 16쪽
37 37.숙박업이 흥한다. 22.04.16 125 0 16쪽
36 36. 조니 22.04.08 133 0 16쪽
35 35. 내꿈은 건물주. 22.03.31 135 0 17쪽
34 34.어둠속으로. 22.03.20 145 0 16쪽
33 33. 가자니까... 22.03.02 151 0 13쪽
32 32. 잘먹을거면서 22.02.09 155 0 14쪽
31 31.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21.12.29 170 0 13쪽
30 30. 연결 21.12.20 172 0 12쪽
29 29. 미끼 21.12.14 211 0 13쪽
28 28.너도 당해봐. 21.12.09 200 0 12쪽
27 27. 개똥이 쏘아 올린... 21.12.06 184 0 12쪽
26 26. 내가 언제... 21.12.01 192 0 12쪽
25 25. 체우스마을 21.11.28 197 0 12쪽
24 24. 사투(2) 21.11.24 189 0 12쪽
23 23. 사투(1) 21.11.21 203 0 12쪽
22 22. 재회 21.11.15 203 0 11쪽
21 21. 지원군. 21.11.08 221 0 12쪽
20 20. 11만 3천번. 21.11.03 216 0 12쪽
19 19. 왜케 비싸;; 21.10.27 216 0 12쪽
18 18. 잠이와? 21.10.20 219 1 12쪽
17 17.게판 21.10.14 228 1 13쪽
16 16. 다음 거래는? 21.10.11 229 2 13쪽
15 15. 하울드의 수호자. 21.10.05 249 3 13쪽
14 14.게살 21.09.30 258 2 13쪽
13 13.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2 21.09.20 259 2 12쪽
12 12.악몽 21.09.15 250 3 12쪽
11 11.겁쟁이는 아니야. 21.09.10 26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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