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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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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모노케로스
작품등록일 :
2020.05.14 12:56
최근연재일 :
2020.09.1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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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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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로스를 향해(31)

DUMMY

손님들의 웃음이 줄어들자 생토니스는 카펫을 지나 오른쪽 의자 맨 앞줄에 앉았다. 사제에게 시작하라고 말했다. 사제가 책을 펼쳤다. 그는 조심스레 글을 읽었다.


"사랑은 불과 같다고 했습니다. 언제나 원동력이 필요한 사랑. 사람의 감정의 불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바다와 같이 해야 한다고 옛 현인들이 전합니다. 라엘라가 말하기를. 사랑은 물과 같아야 한다. 불과 같다면 모든 게 재가 되어 사랑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사제가 책을 덮자 한 사람이 연달아 기침했다. 모두가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봤다. 알렉스였다. 그는 눈치를 보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의 기침이 끝나고 사제가 말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물이 되어 강을 이루듯. 사랑 또 한 거대한 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인은 남편의 돈벌이가 적다고 다른 이에게 불평하지 마십시오. 남편은 부인의 실수를 눈감아 주십시요. 그것이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가장 기초적이지만 어려울 거라며 유부녀들이 생각했다. 사제가 헛기침하고 신랑 알버트를 쳐다봤다.


"알버트, 돈이 없거나 당신이 아프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녀를 사랑할 것을 맹세하겠습니까?"


"네."


"사르, 돈이 없거나 당신이 아프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를 사랑할 것을 맹세하겠습니까?"


"네."


알버트가 대답을 끝내고 품 안에서 나무 상자를 꺼냈다. 처음 청혼할 때와 달리 그는 능숙하게 상자를 열었다. 사제가 말했다.


"남편은 부인에게 부인은 남편에게 반지를 끼워주기 바랍니다."


알버트가 먼저 사르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사제가 말했다.


"이로써 알버트는 사르의 것입니다."


사르가 알버트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꼈다. 사제가 말했다.


"사르는 이제 알버트의 것입니다. 비로소 둘은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반지 상자를 품 안에 넣고 알버트가 천천히 사르의 얼굴을 덮은 베일을 들췄다. 그곳엔 태양 빛에 빛나는 사르가 있었다. 두 남녀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포갰다.


모두가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다. 퇴장을 위한 노래가 시작됐다. 둘이 손을 맞잡고 카펫을 밟으며 퇴장했다. 새롭게 부부가 된 두 사람은 현관 앞에 서서 손님들을 향해 말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부부가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 둘은 3층까지 손을 잡고 서로의 홍조 띤 얼굴을 보며 올라갔다. 생토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붉은 머리의 하녀 코스가 재빠르게 뛰어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점심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잘해주었다. 식당에서 하는 게 맞겠지."


"정확합니다. 공작님."


"가거라. 손님들은 내가 데리고 가겠다."


코스가 다시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현관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생토니스가 손님들에게 말했다.


"식사가 준비됐다. 나를 따라 오거라."


앞줄에서 부터 천천히 일어나며 그의 뒤를 쫓았다. 카사네는 생토니스와 나란히 서서 함께 걸었다. 생토니스는 그녀가 입은 드레스가 매우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쫓아오는지 확인하는 통에 말을 하지 않았다.


2층 식당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길게 뻗은 식탁에 고급스러운 음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뼈를 발라내고 구운 생선 요리부터 향신료를 잔뜩 첨가한 고기가 코를 자극했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식사를 진행했다. 옷을 갈아입은 알버트와 사르가 손님 모두에게 직접 걸어와 인사를 하고 덕담을 나눴다. 필라 쿼커스 5세가 말했다.


"알버트. 잊지 말게. 부인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 있지만 받아들일지는 부인의 마음이네. 그러니 언제나 부인의 마음을 파악하고 행동하게."


귀네볼로스는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했고, 축하 선물로 도시 내에 있는 2층 집 열쇠와 집문서를 건네줬다. 카사네는 준비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사르는 갑작스레 와서 도와줘서 고맙다며 포옹해주었다. 알렉스는 생선을 재빠르게 세 접시 먹어 치우고 자신 차례가 되자 잔뜩 긴장한 듯 침을 두 번 삼키고 말했다.


"하늘께서 귀여운 아이로서 두 분을 축복하실 겁니다. 알버트 주니어를, 그다음은 사르 주니어를."


사르는 감사 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지나가자 옆에 있던 귀네에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겠죠?"


"뭐, 괜찮네요. 부부 사랑의 결실은 돈이 아니라. 자식이란 말도 있으니 말이죠."


알렉스가 안도의 숨을 뱉고 말했다.


"연극에서 나온 말을 조금 바꿔 본 건데. 괜찮다니 다행입니다."


"연극?"


"네. 마술 피리의 파파게나와 파파게노라는 여인이 부르는 노래 구절이죠. 맨 처음 두 남녀가 한눈에 자신의 짝인 걸 알고. 파, 라는 의성어만으로 30초 동안 함께 화음을 넣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그 다음 뭐 둘이 짝짝꿍하며 행복에 겨워하는 이야기죠."


귀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을 먹고 피로연을 위해 다시 현관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쉬고 있던 오케스트라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모두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몇 명은 생토니스와 새롭게 안면을 텄다. 귀네와 알렉스는 어느 순간부터 붙어 다녔다. 그 모습을 보며 젊은 사내 둘이 카사네에게 다가와 손등에 입을 맞추고 누구인지 물었다. 그녀는 간결히 루카리엔의 양녀라고 소개하며 인생 처음으로 사교계에 데뷔했다. 젊은이들은 그녀에게 호감을 표하며 집안 내력 따위와 연간 얼마나 버는지 자랑했다.


카사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를 쳐주며 시간을 때웠다. 그 광경을 보며 알렉스가 귀네에게 말했다.


"저 젊은이들은 실망하겠군요."


"왜죠?"


"아가씨가 대화하며 자기들 얼굴을 쳐다본다고 생각하겠지만, 잘 보면 그녀는 다른 사람을 보고 있어요."


"그걸 어떻게 알죠? 같은 사냥감을 노리면 통하는 뭐 그런 거라도 있나 보죠?"


알렉스가 눈을 크게 뜨고 귀네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뭐 저는 그저 공작님의 그 흥미로운 업적들을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이 깊은 것뿐이지만, 그녀는 조금 다르군요."


귀네는 카사네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엔 사람에 둘러쌓여 대화를 나누는 생토니스가 보였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신랑감이었다. 밤일도 잘할까? 변태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만 아니라면, 노려볼 만 한 거 아닐까? 그러나 귀네는 금방 포기했다.


공작 가문의 가주와 다른 공작 계승권 서열 1위가 합쳐지는 건 보기 좋지 않았다. 둘에게 어떤 흑심도 없다고 해도 왕의 견제가 들어올 게 뻔했다.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사이가 틀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귀네가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모든 손님이 준비한 술에 취해 오후 3시가 되어 하나둘씩 떠나갔다. 마지막에 남은 이들은 알렉스와 귀네볼로스, 필라 쿼커스 5세였다. 쿼커스 5세가 공작을 따라 서재로 갔다.


문을 닫고 의자에 앉자 쿼커스가 말했다.


"어떤 대책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시려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 늙은이는 자식에게 모든 걸 넘겼지만, 진심으로 공작님을 걱정하여 드리는 진언입니다."


"그들의 불만은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거겠지. 그들과도 약조할 것이다. 33살을 넘기기 전 모든 걸 끝내고 결혼할 생각이다."


늙은이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말뿐인 약속은 효력이 없습니다."


쿼커스 5세는 놀랐음에도 즉시 받아친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공작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쿼커스가 말했다.


"정말, 결혼하실 겁니까?"


"그렇다."


"마음에 드는 여자라도 발견하신 겁니까? 아니라면 결투를 포기하시기라도···"


생토니스가 그의 말을 잘랐다.


"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로 단 한 번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길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라고만 해두겠다. 선대의 모노케로스들도 넘지 못한 벽을 넘을 것이다. 아니 뚫어 보일 테니. 그대는 그저 조용히 기다리고 있길 바란다."


쿼커스에게 대답한 그는 마음에 드는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잿빛 갈색 머리의 아가씨.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짧은 순간의 표정을 보고 쿼커스는 그도 알버트의 결혼에 자극받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처음 가 본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그 누구와도 하지 않겠다던 여자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때론 젊은 남자의 마음에도 불을 질렀다. 웃기게도 결혼식의 주인공이 됐던 부부가 된 이들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자신들의 사랑에 확신을 가졌던 때를 떠올리거나, 오랜만에 아름답게 꾸민 자신의 부인을 보며 욕정 하는 사내도 있었다. 반대로 부인의 돌과 같은 마음이 추억에 자극되어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쿼커스도 사별한 부인과 황혼기에 불을 지핀 건 다름 아닌 아들의 결혼식이었다.


필라 쿼커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공작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음에 안도가 찾아오는 거 같군요."


"걱 정말고 기다리거라."


그는 품 속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


"그렇다면 선택에 도움을 드리도록 저의 딸의 편지와 사진을 드리고 가겠습니다."


"고맙군."


그는 편지를 받아 책상 위에 올려뒀다. 필라 쿼커스를 배웅했다. 그는 마차에 오르며 자신이 죽기 전 성대한 결혼식을 한 번 더 보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무덤에 묻혀 그리운 부인을 다시 보고 싶었다.


구릿빛 피부에 노을빛과 같은 눈빛. 이방의 세계에서 건너온 멜로디아. 오늘따라 당신이 사무치게 그립군요. 쿼커스가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며 잠을 청했다.


그 뒤 생토니스의 서재로 귀네볼로스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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