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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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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모노케로스
작품등록일 :
2020.05.14 12:56
최근연재일 :
2020.09.1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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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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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
글자수 :
708,088

작성
20.09.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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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9

DUMMY

도시에 있는 작은 숲을 걸었다. 따스한 햇볕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 그늘로 들어와 숨을 들이켰다. 사방에서 풍기는 꽃향기는 마음을 안정시켰다. 천천히 눈을 뜨고 숲속의 길을 봤다. 많은 사람의 발자취가 남겨진 길이었다. 때마침 그곳을 걸어가는 가족이 보였다.


딸의 손을 잡고 미소를 보이며 함께 걷는 가족이 보였다. 친구와 장난을 치며 걷는 다른 사람 보였다. 그는 알록달록하고 챙이 긴 모자를 쓰고 혼자만의 리듬에 맞춰 걸었다.


이 길을 어떻게 걸어갈지 잠시 고민하며 다른 이를 쳐다봤다. 상대의 손을 맞잡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남녀도 보였다.


이들 중 고민에 빠진 이는 자신뿐이라고 생각하며 레이첼이 걷기 시작했다. 도시에 올라온 지 3일이 지났다. 도시 삶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모든 것이 빨리 돌아가길 원하는 사장, 모든 게 정확하길 원했다. 분명 기타를 배울 땐 천천히 정확하게 짚는 걸 연습했다. 음정이나 박자가 틀려도 괜찮았다. 배워가는 중이니까. 반복되는 정확한 행동은 능숙해지면 자연스레 빨라졌다.


기타를 가져올걸, 뒤늦은 후회를 했다. 한 편으로 평화로운 일상과 미소가 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자신 앞에 내리쬐던 태양 빛이 사라졌다. 하늘을 올려봤다. 먹구름이 몰려왔다.


다들 눈치챈 듯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금세 비가 쏟아졌다. 레이첼이 빠르게 숲을 가로질렀다. 하늘에서 쏟아진 폭포수에 그는 축축해졌다. 숲의 새도 비명을 질러대며 보금자리로 도망쳤다. 흙내음이 가라앉고 사방은 물에 잠식되었다.


그가 길을 걸으며 피할 곳을 찾던 중, 물 냄새를 이겨낸 향이 코를 자극했다. 생전 처음맡는 독특한 냄새를 쫓았다. 그 향기를 따라가자 셔터를 올리는 찻집이 보였다. 활짝 열린 문에서 달콤쌉싸름한 향이 그를 끌어당겼다. 그가 조심스레 문지방에 발을 디뎠다. 잠시 고민하자 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턱선까지 오는 짧은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젖히며 말했다.


"들어와요. 비 오잖아요."


안으로 들어가자 처음 맡는 냄새가 모든 걸 압도했다. 편안하고 차분한 기분이 들었다. 온몸이 젖어 축축한 기분도 들었지만, 기이할 정도로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냄새를 맡을수록 몸 안에 생기가 돌았다. 들어오라 얘기한 여인을 쳐다봤다.


실내에서는 차분한 재즈가 들렸다. 그녀가 타올 두 개를 건네줬다. 문 옆에 작은 녹색 칠판으로 다가갔다. 흰 분필을 이용해 오늘의 음료를 적었다.


그다음 넓적하게 생긴 얇은 식빵을 그렸다. 작은 눈과 길쭉한 두 팔을 만들고, 손을 흔들며 밖에 인사를 캐릭터를 그렸다. 초콜릿 커피와 토스트라, 보기 드문 조합이라고 레이첼이 생각했다.


그녀의 등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녀는 레이첼이 사용한 타올 하나에 분필 묻은 손을 깨끗이 닦았다. 주방으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 그 사이 레이첼이 주위를 둘러봤다.


거대한 메뉴판이 머리 위에 보였다. 길게 뻗은 1인용 좌석이 눈에 들어왔다. 레이첼이 다가가 의자를 빼고 앉을지 고민했다.


그녀가 앉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레이첼이 망설이자 다가와 의자에 새 수건을 올리곤 강제로 앉혔다.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 한 잔을 줬다. 레이첼이 천천히 잔을 입에 가져다 대자 초콜릿의 향과 뜨거운 김이 그의 코를 자극했다. 한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녀의 친절에 마음마저 따뜻해졌다.


그가 초콜릿 섞인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녀는 대걸레를 가져와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처음 세 번은 잘 닦이지 않았지만 금새 능숙해졌다.


어느새 콧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실내에 깔린 재즈가 끝나자 부드러운 블루스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대걸레의 물기를 짜내어 물을 바깥에 버렸다. 물기흡수가 잘되는 카펫을 깔고 푸른색 우산꽂이를 가져다 놓았다.


그녀가 만족의 한숨을 쉬었다. 머리의 맺어진 노동의 결실을 닦았다. 레이첼에게 담요를 주었다. 그녀도 커피를 가져와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까까진 날씨가 좋았는데, 비가 오네요. 집은 어디에요? 우산 빌려드릴게요."


​그녀가 커피 향을 한 번 맡은 뒤 한모금 들이켰다. 그녀의 옆에 있는 사내가 뜨거운 머그잔을 양손으로 잡은 채 말했다.


"음료도 내주셨는데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어요." ​


그녀가 자신의 입술에 묻은 커피를 빨아들이며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사내의 왼손가락을 향했다.


검지를 제외한 모든 손가락 끝부분에 굳은살이 보였다. 중지는 특이하게 손을 필 때마다 휘어 있었으며 손톱은 가지런히 자른 흔적이 보였다.


그러는 동안 레이첼도 그녀의 손을 봤다. 가지런히 자른 손톱, 손가락은 곧게 뻗었으며 꽤 길었다. 천천히 눈을 쳐다보았다. 옅은 갈색의 눈빛 안에서 무언가 금새 뛰쳐나올 것 같았다. 레이첼이 먼저 말을 걸었다.


"전 레이첼이라고 해요."


"남자 이름은 아니에요. 전 미르니아에요."


둘은 다른 손님이 올 때까지 끝없이 얘기를 나눴다. 둘 다 시골에서 상경했으며, 악기를 다룰 줄 알았고 동갑이었다. 미르니아가 도시에 올라오게 된 사연을 말하려 했지만, 손님이 들어온 탓에 이야기가 끊겼다.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레이첼이 고맙다는 얘기를 하며 음료값을 머그잔 아래 끼워두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미르니아가 말했다. ​


"다음에도 또 오세요."


​레이첼이 발걸음을 옮기며 다음 쉬는 날에는 꼭 와야겠다는 생각했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길수록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머릴 긁으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 본 그녀의 미소가 잊히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그녀의 커피 향이 코끝에서 떠나지 않았다. 레이첼은 그녀는 그저 친절을 베푼거 뿐이라며 자중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커피 향이 그리워졌다. 이틀이 지나자 간절해졌다. 다음 날이 되자 머릿속엔 온통 그녀와 커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주말까지 매일 그녀와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했다. 자신이 찾아오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는 홀로 소원하며 저녁 내내 잠들지 못했다. 아침 해가 뜨고 나서야 겨우 잠들었다. 그는 배가 고픈 탓에 점심때 일어났다. 밥을 먹고 기타를 꺼냈다.


오래된 나무 기타였다. 거대한 울림통에 새겨진 금빛 나무가 인상 깊었다. 15년 이상을 함께 한 그의 인생의 친구였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무릎에 얹혀 놓고 자세를 잡았다.


맨 윗줄에 굵은 줄을 엄지로 튕겼다. 줄이 풀려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가 줄을 조이며 계속해서 튕기며 소리를 들었다. 점점 윙 거리는 소리가 차분해졌다. 금세 퉁 소리를 내었다.


나머지 다섯 개의 줄도 똑같이 맞추고 연습을 시작했다. 그가 왼손 엄지를 기타의 긴 넥에 얹고 쇳조각에 약지로 현을 눌렀다. 오른손을 흔들어 줄을 튕기자 처음에는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몇 번의 자리 잡기 끝에 익숙한 하모니가 들렸다. 그가 중지로 그 옆에 있는 쇳조각을 누르고 현을 튕겼다. 약지와 새끼손가락도 똑같이 다음 플렛을 누르고 튕기는 것을 반복했다.


아래 있는 현으로 내려가 똑같이 네 부분의 플렛을 순차적으로 소리를 냈다. 그렇게 6개의 현을 수십차례 왕복하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손이 가는 데로 연주를 했다. 1시간이 지나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조금 피곤했다. 밖으로 나서서 태양 빛을 받자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준비를 끝내고 그녀의 커피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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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5 20.09.10 22 1 7쪽
192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4 20.09.10 21 1 7쪽
191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3 20.09.09 28 0 8쪽
190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2 20.09.09 69 0 7쪽
189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1 20.09.08 24 0 8쪽
188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0 20.09.08 34 0 8쪽
»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9 20.09.07 23 0 8쪽
186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8 20.09.07 57 0 8쪽
185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7 20.09.05 21 0 7쪽
184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6 20.09.05 22 1 7쪽
183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5 20.09.04 27 0 7쪽
182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4 20.09.04 28 0 7쪽
181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3 20.09.03 27 0 7쪽
180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2 20.09.03 32 0 7쪽
179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 20.09.02 23 0 7쪽
178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0 20.09.02 27 0 7쪽
177 텔로스를 향해(40) 20.08.22 41 1 7쪽
176 텔로스를 향해(39) 20.08.22 28 0 8쪽
175 텔로스를 향해(38) 20.08.21 24 0 9쪽
174 텔로스를 향해(37) 20.08.21 51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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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텔로스를 향해(34) 20.08.19 27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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