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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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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모노케로스
작품등록일 :
2020.05.14 12:56
최근연재일 :
2020.09.1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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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8,088

작성
20.09.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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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1

DUMMY

다음 날 제코가 아픈 몸을 이끌고 녹음실로 찾아왔다. 레이첼이 녹음한 노래를 듣고 마지막에 한 곡을 추가했다. 앨범은 전례 없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덕분에 레이첼은 다른 도시와 국가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돈을 쓰며 미르니아가 어디로 갔는지 수소문했다. 마지막으로 접한 얘기는 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갔단 소식뿐이었다. 그녀를 찾기 위해 그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일반인은 가기 쉽지 않았다. 제코는 6개월을 쉬고 나서야 다시 홍보와 판촉에 뛰어들었다. 3개월을 일하고 다시 6개월을 쉬었다.


레이첼은 그런 제코를 찾아가 서쪽으로 발을 넓혀보자 제안했다. 제코가 침상에 누워 기침하고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이 친구야 사실대로 말해봐. 커피집 아가씨를 찾고 싶어서 그렇잖아."


말을 끝내고 그가 계속해서 콜록거렸다. 그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기세였다. 그게 숨을 가쁘게 쉬며 말했다.


"내가 어찌 해볼 테니. 침착하게 기다려."


제코는 사람을 고용해 서쪽 제국에서 그의 인기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했다. 소문으론 왕의 궁전에서도 레이첼의 노래가 들린단 얘기도 들려왔다. 제코는 즉시 도시의 최고 권력자인 루카리엔에게 편지를 썼다. 음악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각국의 뛰어난 가수를 양측에 보내자며 제코는 레이첼을 추천했다.


루카리엔은 그의 편지를 읽고 흥미를 느꼈다. 그는 직접 레이첼을 만났다. 둘은 간단히 악수했다. 루카리엔이 레이첼을 뚫어지게 쳐다보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말했다.


"자네 노래는 알고 있네. 부인들이 정말 좋아하거든. 끝나고 사인도 좀 부탁하네."


레이첼은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음반에 쉴 새 없이 사인했다. 그 뒤 루카리엔이 말했다.


"제국이라, 교류가 있는 건 좋지. 하지만 자네 친구들 중 반은 가지 못하네. 제코도 말이네."


"왜죠."


"거긴 사람 아닌 지성체는 동급으로 취급하지 않아. 만약 간다면 꽤나 고생할 거야. 그래도 가겠나?"


"가겠습니다."


"거길가도 득보다 실이 많을지도 모르네. 왜 가려는 가."


레이첼이 잠시 머뭇거렸다. 루카리엔은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돈을 보고 행동한다 생각하겠지. 레이첼이 말했다.


"만나고 싶은 여자가 있습니다."


루카리엔이 끄덕였고 레이첼이 말을 이어갔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루카리엔은 잘되기를 바란다며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사람을 새로 구하여 서쪽으로 떠났다. 긴 여행길 지루함을 달래며 3등 열차에서 기타를 끼고 살았다. 어린아이나 사람들이 그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주위에 북적였다. 사람들 속에 미르니아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그녀는 없었다. 열차가 멈추고 승객들이 바뀔 때면 레이첼은 인파 속에서 그녀가 있기를 바랬다.


어떤 날은 열차가 고장 나 마을에서 일주일을 묶게 됐다. 이틀이 지나고 어느새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작은 축제를 즐겼다. 한 달 뒤 제국의 심장 바실레오스폴리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크고 작은 연주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왼쪽 어깨가 이상할 만큼 걸렸다. 손가락의 움직임은 무언가에 가로막혀 버벅거렸다. 일주일이 지나고 왼손이 굳었다. 무리한 여정 때문이라 생각했다. 매일 미르니아를 만나면 어떤 얘기를 할지 고민했다. 편지를 쓰기도 했다. 제코에게도 계속해서 편지를 보냈다.


도시에 도착하자 그가 만난 광경은 검은 먹구름이 낀 세상이었다. 제코는 과로에 결국 죽었다. 충격에 헤어나오기 위해, 그를 위해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었다. 잠시 쉬기 위해 오렌지를 칼로 자르던 중 왼손 약지를 찔렀다. 그곳에서 한 방울의 액체가 떨어졌다.


방울은 붉지 않았다.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섞여 있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방울을 쳐다봤다. 그다음 날 손가락이 완전히 굳었다. 손끝에서 무지개가 그의 손가락을 잠식했다. 두려움에 망치로 두드려 깼다. 그럴수록 두꺼워졌다. 이윽고 손바닥과 손등을 집어삼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왼팔 전체를 덮었다. 의사를 불러 진찰했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더는 기타를 칠 수 없단 두려움이 커졌다.


그의 손에 대한 신문 기사가 나왔다. 아름답지만 더는 기타를 칠 수 없는 기타리스트라 했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두려웠다. 돈과 명예를 거머쥐고 뒤로 돌아봤지만, 남은 건 그뿐이었다. 사랑과 친구 하나 얻지 못했다. 그는 자신은 삶에 실패했다 여겼다. 집안에 틀어박혀 머리도 수염 관리도 포기한 채 하루하루 살아갔다. 더는 도시에 있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열차표를 끊었다.


열차의 흔들림에 그는 종일 잠만 잤다. 배고플 때 밥을 먹고. 홀로 구석에 앉아 창가에 기댔다. 이런 모습을 그녀에게도 보여주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차가 멈췄다. 거대한 숲 앞에 만들어진 어느 기차역이었다. 그곳에서 내렸다. 그곳은 이상할 만큼 친숙했다. 주민들은 그의 팔에 관심두지 않았다. 불편해 보인다고 할 뿐 그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한 늙은이는 이곳 말고 숲속에도 마을이 있다고 일러줬다. 그곳에는 용도 한 마리 같이 산다고 했다. 용이라면 이런 이상한 현상을 치유해줄지 모른다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숲으로 향했다. 숲은 고요했다. 새들이 지저귀었고 이따금 사슴이나 다람쥐가 뛰어다녔다. 쉬지 않고 길을 걷던 탓에 온몸에서 땀이 났다. 외투를 벗고 계속해서 걸었다. 한 시간을 걷자 목이 말랐다.


때마침 그의 앞에 사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순백의 털로 뒤덮인 놈이었다. 눈은 붉은색이었다. 녀석은 길가에서 만난 사내 앞에 멈췄다. 레이첼이 메마른 침을 삼키자 사슴이 수풀 사이로 뛰어들었다.


물이 첨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곳으로 따라갔다. 수풀을 들추고 걸어가자 물줄기가 나타났다. 그것을 따라가자 물이 세차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흐르는 작은 강이 보였다. 흰 사슴이 그곳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레이첼도 조심스레 물을 마셨다. 물은 시원했고 깔끔했다.


그는 주변 눈치를 보곤 물에 머리를 담그고 눈을 감았다. 물 안은 고요했다. 그의 눈앞에 물고기 한 마리가 왼편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갔다. 물을 뚫고 손이 나타났다. 길게 뻗은 손가락 미르니아가 떠올랐다. 그녀가 이곳에 있을 리 없다. 자신이 헛깨비를 보는 거라 생각했다.


물속에서 머리를 뺐다. 그의 앞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청바지에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머리 뿌리는 선명한 갈색이었지만, 머리 전체는 완전한 검은 색이었다. 여자가 말했다.


"손이 왜 그래요?"


레이첼이 대답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얼굴에 죽은 깨가 섞여 있었다. 한걸음에 강을 건너 다가오며 말했다.


"여기 근처에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녀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레이첼에게 다가왔다. 그럴수록 레이첼은 뒷걸음질쳤다. 수풀이 발을 스쳤다. 등에 갑작스레 나무가 느껴졌다. 레이첼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틀며 걸었다. 그녀가 외쳤다.


"거기로 가면 안 돼요!"


레이첼이 앞으로 세 걸음 걸었다. 네 번째로 발을 뻗자 아무것도 밟히지 않았다. 그가 허공을 향해 떨어졌다. 소녀는 재빠르게 뛰어 레이첼의 손을 붙잡았다. 오른편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레이첼과 눈을 마주쳤다. 갈색이었다. 미르니아도 저 눈색이었지. 레이첼이 생각하는 동안 소녀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폭포 소리에 묻혀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이 소녀의 입술로 향했다.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였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녀가 손을 놨다. 레이첼이 낙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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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6 20.09.11 92 2 8쪽
193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5 20.09.10 22 1 7쪽
192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4 20.09.10 21 1 7쪽
191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3 20.09.09 28 0 8쪽
190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2 20.09.09 69 0 7쪽
»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1 20.09.08 25 0 8쪽
188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0 20.09.08 34 0 8쪽
187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9 20.09.07 23 0 8쪽
186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8 20.09.07 57 0 8쪽
185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7 20.09.05 21 0 7쪽
184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6 20.09.05 22 1 7쪽
183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5 20.09.04 27 0 7쪽
182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4 20.09.04 28 0 7쪽
181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3 20.09.03 28 0 7쪽
180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2 20.09.03 32 0 7쪽
179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1 20.09.02 23 0 7쪽
178 후일담: 천사의 도시에서 0 20.09.02 27 0 7쪽
177 텔로스를 향해(40) 20.08.22 42 1 7쪽
176 텔로스를 향해(39) 20.08.22 28 0 8쪽
175 텔로스를 향해(38) 20.08.21 24 0 9쪽
174 텔로스를 향해(37) 20.08.21 51 0 7쪽
173 텔로스를 향해(36) 20.08.20 23 0 8쪽
172 텔로스를 향해(35) 20.08.20 29 0 7쪽
171 텔로스를 향해(34) 20.08.19 27 0 7쪽
170 텔로스를 향해(33) 20.08.19 25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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