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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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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최근연재일 :
2024.09.0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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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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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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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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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말할 수 없는 것

DUMMY


토비는 타인에게 민감한 질문을 주절거릴 만큼 채신머리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토비는 루나에게 던질 질문들을 전부 속으로 삼켰다.

참고로 토비가 속으로 삼킨 질문들은 공작의 여성 편력이나, 공작의 개인적 취향, 공작의 이성관, 혹은 루나 본인이 남편감으로써 공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는 등의 질문들이었다.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토비는 결국 루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리버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꽤나 현명하고 적절한 처신 같았다.

리버는 흘끔 루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태평하게 걷고 있었다.

리버는 그 모습에서 존경심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리버는 만약 자신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온갖 불평을 내뱉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튼 대륙 최고의 권력자가 한 소녀를 전심전력으로 쫓아다니고 있으며, 그 목적이 겁탈이라는 점은 너무 불합리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마치 하늘이 파랗다거나, 또는 물이 아래로 흐른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고단했음이 분명했지만 루나는 그녀의 세월에 대해 그녀는 어떤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전부 입을 다물어서 하수도는 잠시 먹먹해졌다. 리버가 그 침묵이 어색하다고 느낄 무렵 루나가 나지막이 얘기를 꺼냈다. 그녀는 왠지 모를 후회가 담긴 어조로 혼잣말하듯 말했다.


"괜한 말을 했어."


루나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토비가 루나 옆으로 다가섰다. 토비는 그것이 자신이 사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토비는 변명하듯 서둘러 말했다.


"킁, 나야 말로 괜한 말을 꺼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의 아이를 억지로 배는 것은, 역시 썩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루나는 고개를 들고 토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선 미약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걸 말하는 게 아냐. 어차피 세상에는 자신이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멍청한 남자들이 넘쳐나지. 나는 그 모든 남자들의 사상을 교정할 생각은 없어. 다만 내가 후회하고 있는 건, 날 쫓고 있는 멍청한 남자가 자드 공작이라는 사실을 말해버렸다는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이미 너희는 내 일행으로 여겨지고 있을 가능성이 커. 폴 영지의 치안대원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서 벌어졌던 일을 남작에게 보고하겠지. 그리고 폴 영지엔 마탑이 있으니까, 다시 남작은 콜텐에 이 소식을 전할 거야. 그건 당연히 자드의 귀에도 들어간다는 말이지. 그런데 너희들은 방금 전, 이 일이 자드 공작과 관련됐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어. 그러니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너희 둘은 이 대륙에서 살아가는 한, 영원히 공작의 추적을 받게 될 거야. 현재의 나처럼."


리버는 어렴풋이나마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토비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아돌프였던 토비가 인간들의 복잡한 사정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어진 토비의 질문은 다분히 순수한 것이었으며, 순수했기에 두 인간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잘 모르겠군. 너처럼 이라면... 공작이 나와 리버를 겁탈하고 싶어 하기라도 한단 말이냐?"


아돌프의 기막힌 추론 능력에 두 인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리버가 토비 대신 루나에게 미안하다는 눈짓을 보냈다. 루나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루나는 침착하게 토비의 상상을 정정했다.


"...네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건 인정하겠어. 하지만 너는 남자인데다가 아돌프잖아. 공작이 내게 품고 있는 욕망을 네게 품을 수는 없겠지. 토비 너와 리버의 경우에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혹은 알고 있는 것을 누구에게 말했는지 캐낸 뒤에 그냥 죽여버릴 거야."


그 시점에서 리버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곧 죽게 될 거라는 얘기는 그런 얘기였어?"

"그래."

"그럼 지금이라도 폴 남작님이나 푸조 마법사에게 제대로 설명하는 건 어떨까? 우리는 사실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저 네 일에 말려들었을 뿐이라고 말야."


루나는 리버의 말에 대해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내 토비를 힐끔 쳐다본 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좋은 생각은 아니군. 토비는 아돌프야. 그러니 거짓말을 할 수 없지. 게다가 이미 도망쳐버린 이 시점에서 심문이라는 것은 이제 형식적인 일이 돼버렸을 거야. 공작은 자신의 일이 세간에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 그러니까 너희가 어떤 대답을 하던 관계없이 그냥 죽여버리겠지. 그게 가장 확실한 입막음 방법이니까."


리버는 그녀의 말에 대부분 동의했다. 마녀사냥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일단 한번 지목되고 나면 대개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리버는 루나의 설명 중 적어도 한 가지는 반박하고 싶었다. 그녀는 아돌프들이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리버는 물끄러미 토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토비가 자신에게 사소한 거짓말을 늘어 놓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잠시 뒤에 리버는 지적을 포기했다. 곰곰이 지난 날을 상기해본 리버는 루나의 말이 꼭 틀린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토비가 거짓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럴 때마다 토비의 꼬리는 격렬하게 꿈틀거렸고, 그 덕에 리버는 그의 진심을 죄다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두 가지 상황의 차이점은 없다. 어차피 거짓말의 본질이란 발화자가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느냐의 문제이며, 따라서 언제나 속내를 파악할 수 있다면 이미 그건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다.

리버가 시답잖은 생각에 빠져 있자 루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시궁창을 빠져나가면 너희는 곧바로 도망치는 게 좋아. 푸조는 마법사고, 어쨌든 마법사들 중 바보는 없는 법이지. 어쩌면 지금쯤 벌써 추격에 나섰을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공작의 손은 남부 대륙 전역에 넓고 깊게 뻗어있어. 그러니까 북부나, 하다 못해 중립 도시인 무벤까지는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루나의 말은 진심 어리고 현실적인 충고였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인 충고였기에 리버는 곧장 우울해졌다. 아무튼 리버는 도둑도 아니며 모험가도 아니었다. 쫓고 쫓기는 급박한 추격전 같은 것은 상상 만으로도 낯설었다.

토비는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어느새 침중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불쑥 선두에서 에이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다."


대화에 집중한 탓에 셋 다 깨닫지 못했지만 그들은 어느새 지하수로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었다.

수로의 끝은 격자 무늬의 큰 철창으로 막혀 있었다. 바깥에서 철창으로 내리 쬐는 빛이 그대로 투영되어 바닥에 격자 무늬를 만들었다.

에이튜는 철창의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문으로 이동했다. 자연스러운 몸놀림으로 봐선 평소부터 자주 드나들던 곳인 듯했다.

만의 빛이 너무 강했고, 또 어둠 속에 오래 있었던 탓에 세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며 에이튜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철창에 딸린 작은 문 앞으로 걸어가던 리버는 문득 자신의 내부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버는 그 불안감의 원인을 찾아냈다.

리버는 슬며시 토비를 훔쳐보았다. 만에 관한 미신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히 만이 타오르는 날 밖을 돌아다니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버는 그것과는 약간 궤가 다른 이야기 하나를 더 알고 있었다. 붉은 달이 떠오를 때 아돌프들이 극도로 난폭해진다는 미신이다.

물론 리버는 평소 그렇게 순박하던 토비가 그깟 붉은 빛을 받는다고 해서 한 순간에 흉포해진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리버는 미신은 믿지 않아도 '연기가 있는 곳 근처에는 반드시 불이 있다'는 오래된 속담은 믿는 편이었다. 리버는 역사상 단 한 명도 그런 아돌프가 없었다면, 애초에 그런 소문이 생겼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리버는 정말 우연히도 그 한 명의 아돌프가, 때마침 자신의 옆에 있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토비를 관찰했다. 의심을 가진 채 관찰한 탓인지 토비의 얼굴은 평소보다 약간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리버는 최대한 토비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 토비. 물론 당신을 믿지 못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요. 혹시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든다거나하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나한테 말해줘야 해요."

"뭐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음. 직접 본 적은 없긴 하지만. 우리들 사이에선 당신들이 만이 타오를 때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진다는 미신이 있거든요."

"끄응... 그건 인간들이 제 아이들을 돌보기 귀찮아서 겁을 줄 때 하는 말이잖냐!"


신음을 내뱉던 토비가 변명하듯 소리쳤다. 리버는 그 말의 내용이나, 토비의 발화 목적을 해석하기보다는 그의 꼬리를 쳐다보는 쪽을 택했다. 꼬리는 위 아래로 부드럽게 꿀렁거리고 있었다.

리버는 일단 안심했다. 그리고 만약 꼬리가 움직이는 폭이 저것보다 더 커진다면 지체 없이 도망치기로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세 사람은 에이튜를 따라 철창 구석의 작은 문을 통과했다.

길었던 수로에서 나오자마자 온통 붉게 물들어 있는 숲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폴 영지는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일단 영지의 서쪽 부근은 아닌 것 같았다.

시간은 어느새 한밤중이었다. 곧장 숲을 향해 걸어가려던 토비는 에이튜가 여전히 철창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서 발을 멈췄다. 토비는 천천히 에이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선 약간 쑥스럽게 말을 건넸다.


"흠흠. 여기까지 안내해줘서 고맙다."

"별 말을."


루나는 따로 인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옆에 서 있던 토비가 계속해서 등을 떠 밀자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였다.

자연스레 마지막 순서가 된 리버는 왠지 모르게 머뭇대고 있었다. 그러자 에이튜 쪽에서 먼저 리버에게 다가왔다.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에이튜의 입이 열렸다.


"리버."

"네."

"대화를 듣자 하니 인간들은 아직도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모양이구나."


인간이었던 리버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리버가 계면쩍게 굴고 있자 다시 에이튜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겠지. 우리들도 영역을 지킬 때는 뒷발로 설 수 밖에 없으니까."


무스들이 구부정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뒷발을 드는 것은 최대한 몸집을 커 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은 전투 직전의 자세이며, 동시에 반드시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무스들의 의사 표현이기도 하다. 리버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스들과 다르게 인간은 항상 꼿꼿이 서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나도 처음엔 서로를 향해 꼿꼿하게 서 있는 인간들의 저의를 의심하곤 했었지. 뭐, 사실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지도 않다만..."


마치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처럼 에이튜가 허공의 한 지점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리버는 그런 에이튜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불현듯 리버는 어느 깊숙한 곳에서 그리움이나 애증 같은 감정들이 뭉글뭉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리버는 그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허공을 응시하던 에이튜가 다시 리버에게 시선을 옮겼다. 에이튜는 물가에 내 놓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리버를 쳐다보았다. 에이튜는 수로 안에서와 달리 지극히 다정한 어투로 말했다.


"리버. 증오라는 것은 하찮은 감정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그날 나는 네가..."


리버가 에이튜의 말을 가로막았다. 리버는 잔잔히 무스의 이름을 불렀다.


"에이튜."


서로의 종이 어떻든 간에 리버의 말에 담긴 의미는 확실했다. 리버의 어조는 더 이상 어떤 말도 꺼낼 필요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에이튜 역시 리버의 의도를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에이튜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가 주책 맞았구나. 쓸데없는 말이 많아진 걸 보니 나도 늙긴 한 모양이야. 하지만 왠지 다시는 너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한 말이란다. 이해해주겠니?"

"무슨 소리예요 다시는 볼 수 없다니요? 전 돌아올 거예요. 제가 있을 곳은 여기니까요."


에이튜는 싱긋 웃었다.


"그렇게 작던 아이가 훌쩍 커버렸구나. 그래 가거라. 인간은 떠돌아 다닐 때 오히려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고 하더군. 마음 같아서는 더 배웅해주고 싶지만... 숲에서 사는 무스들과 다르게 우리의 눈은 이미 퇴화해버려서 그럴 수는 없겠구나."

"여기까지 데려다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어요. 잘 있어요 에이튜. 반드시 또 만나러 올 테니까요."


에이튜는 대답하지 않은 채 무심히 몸을 돌렸다. 맨들맨들하고 상처 많은 꼬리를 흔들며 에이튜는 수로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뒷모습을 지켜보던 리버는 혹시 에이튜가 도중에 한번쯤은 뒤돌아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꼬리의 마지막 부분이 수로의 어둠에 완전히 파묻힐 때까지, 에이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리버가 감상적인 기분에 빠진 채 한참 동안 수로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 문득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버는 몸을 돌렸다. 루나가 자신의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안을 뒤적이고 있었다.

잠시 후 루나가 배낭 안에서 커다란 지도를 꺼냈다. 그녀는 꺼낸 지도를 흙바닥 위에 펼쳐 놓은 다음 리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선 리버의 한 팔을 덥석 낚아채 끌었다.


"따라와."

"응?"

"네 멋대로 성물을 흡수했으니 네겐 날 도울 의무가 있어."

"성물이라면..."


루나는 더 이상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잡은 손을 강하게 끌어당겼고 리버는 끌려 갔다. 루나는 바닥에 펼쳐 놓은 지도 앞까지 리버를 끌고갔다. 그리고 강제로 지도 앞에 앉히고서 그녀 자신도 옆에 앉았다.

루나는 리버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리버가 당황하는 사이 그녀는 반대쪽 손을 지도 위에 올려 놓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선 마치 허공을 쓰다듬는 것 같이, 지도 위에서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손을 움직였다. 상황을 알 수 없었던 리버는 그저 얼떨떨한 얼굴로 루나의 옆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추자 토비가 곁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의 옆에 서서 흥미롭게 바라보던 토비는 이내 지도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 앞에 풀썩 주저 앉았다.

은밀한 밤의 시간이 흘렀다. 루나의 손은 오랜 시간 지도 위를 이리저리 헤맸다. 어느 시점엔가 루나의 이마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토비는 그것이 자신에게 못된 저주를 걸 때와 같은 모습인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녀가 완전히 집중한 모습이어서 일단 말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뒤였다. 밤의 공기는 시원했지만 루나의 얼굴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눈을 뜬 루나는 고개를 내려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시선을 내린 토비는 곧 어떤 사실을 깨닫고서 의문성을 내뱉었다.


"응?"


지도를 훑던 그녀의 손이 지도 위 어느 한 부분에 멈춰있었다. 토비는 자세히 보기 위해 상체를 기울였다. 하지만 루나의 손이 가리고 있는 탓에 그 부근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토비가 루나의 손 위에서 끙끙대고 있자 리버 역시 흥미를 보이며 상체를 숙였다.


두 남자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할 무렵, 마침내 루나가 지도 위에 놓여있던 손을 치웠다.

토비는 얼른 그녀의 손 밑을 확인했다.

그녀의 손이 있던 곳은 대륙 동부에 위치한, 토비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유명한 영지였다.

물론 그 영지의 유명세는 지리적 특성과는 어떤 연관도 없다. 남부인에서 그 영지를 특기하고 있는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그 땅의 주인이 실종되었다는 이유였다.

불가해한 기시감을 느끼며 토비는 그 지역의 이름을 낮게 읊조렸다.


"...듀라트 영지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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