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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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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05.2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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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바보와 멍청이는 언제나 큰 쪽을 선호한다 (4)

DUMMY

탁자에 팔꿈치를 댄 채로 리버는 목걸이를 여러 각도로 이리저리 돌렸다.

가게 조명이 그렇게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표면이 맨들한 목걸이는 빛을 있는 대로 머금은 후에 다시 사방으로 반사시켰다.

물론 리버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

목걸이에서 형용할 수 없는 빛이 반사되자 토비의 코가 작게 씰룩거렸다. 그리고 꼬리의 경우엔 이제 대놓고 위아래로 살랑대기 시작했다.

리버는 손님의 그런 변화를 놓칠 만큼 어리숙한 상인은 아니었다. 리버는 얼른 부연했다.


"릴링의 악세서리는 원래 귀족들만 거래가 가능해요. 다행히 제가 폴 남작님과 연줄이 있어서 구한 거지 웬만한 장사치들은 구할 엄두도 못 낸다구요."


"이 자식아, 그래서 도대체 얼마라는 거냐?"


토비가 여실히 흥분 섞인 목소리로 채근했다. 리버는 잠깐 토비를 위아래로 훑은 뒤에 조금은 새침하게 대답했다.


"금화 한 개로 하죠."


"금화라고!"


가격을 듣자마자 토비가 펄쩍 뛰며 대꾸했다. 그 과격한 반응에 리버는 지금이 승부처라는 것을 직감했다. 리버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토비를 쳐다보며 말했다.


"금화 한 개. 그 밑으로는 절대 안돼요."


"끄응... 좋은 물건이고 네가 어렵게 구했다는 건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비싸잖냐. 금화 한 개는 너희 인간들이 몇 달은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일 텐데."


말을 멈춘 토비는 목걸이를 한번 힐끗 쳐다본 후에 말을 이었다.


"게다가 목걸이 자체가 그리 커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야."


리버는 눈 앞의 아돌프가 가지고 있는 정확한 경제 관념에 대해 속으로 약간 감탄했다.

실제로 금화 한 닢은 평범한 가구가 몇 달 간 생활하는 데 무리가 없는 금액이며, 목걸이에 들어간 은의 양도 실제로 은화 열 개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다.

하지만 토비의 발언이 정확하고 합당한 지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흥정의 소재가 될 수는 없다.

어차피 상품의 원가와 실제 가치 사이에는 조금의 연관도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리버는 그 점을 토비에게 설파하지는 않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아돌프가 이해하기에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설명 대신 리버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유명한 격언을 꺼냈다.


"예전에 어떤 유명한 인간이 남긴 명언이 있죠. 바보와 멍청이는 언제나 큰 쪽을 선호한다구요."


"응? 그거라면 나도 알고 있다. 수잠이 했던 말이잖냐."


"어라, 당신이 어떻게 이 말을 알고 있죠?"


"해결사 노릇하면서 주워들었다. 게다가 그건 이럴 때 쓰는 말도 아니라고."


토비의 무심한 대꾸에 리버는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리버는 그 유명한 관용구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 의미가 궁금해졌지만 리버는 되묻지 않았다. 아돌프인 토비에게 그 관용구의 해석을 듣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차라리 리버는 자신이 아는 분야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튼 가격을 깎아 줄 수는 없어요. 제품의 가격은 원가가 아니라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결정되는 거니까요. 게다가 애초에 두 달이나 거래가 밀렸잖아요. 그 사이에 사고 싶다는 손님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요? 저는 토비 당신과 저의 우정을 생각해서 여태 팔지 않고 놔둔거라구요."


"끄응..."


리버가 섭섭하다는 투로 쏘아 대자 토비는 신음을 흘리며 팔짱을 꼈다. 얼마간 생각에 잠겨 있던 토비는 이내 진중해진 얼굴로 리버를 쳐다보았다.


"지금 당장 그만큼 지불할 돈은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값을 깎아 달라는 얘기는 하지 않겠어. 인간들은 그렇게 하는 모양이지만 내 성미에는 맞지 않으니 말이야. 그럼 대신 교환을 하는 건 어떠냐."


"교환이요? 교환할만한 물건이 있다면 환영이죠."


"물건은 아니야. 정보다."


"정보요?"


"그래, 해결사 노릇을 하고 다니면서 주워들었던 정보들이 좀 있거든. 만약 네가 그 정보를 사겠다고 하면 목걸이 값에서 그 정보값은 빼 줄 수 있을 것 아니냐."


리버는 마치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를 대할 때나 보낼 법한 눈빛으로 토비를 쳐다보았다.


"토비, 여긴 정보 길드가 아니에요. 전 시골 영지의 소박하고 소탈한 일개 잡상인이라구요. 대륙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얘기들이나 황실의 정치적 암투는 정보 길드나 바드들에게 파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상인에게 도움이 될 정보 같아서 거래하려는 거야."


리버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토비는 결국 팔짱을 풀었다. 토비는 양 손을 바쁘게 휘저으며 리버가 정보를 구매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설파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토비의 설파는 꽤나 주요하게 먹혀들었다.

물론 토비의 언변이 뛰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아무튼 지나치게 크고 뾰족한 아돌프의 손톱 열 개는 타인을 설득하는 일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이다. 그리고 토비의 굵직한 손톱들 역시 부족한 언변을 보충할 만큼의 충분한 설득력이 담겨 있었다.


토비가 설득을 시도한 지 한참이 지난 후에 결국 리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토비가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리버는 슬며시 웃었다. 그야 토비의 손짓에 적잖이 위협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리버는 단순히 두려움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리버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게 손해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보의 거래라는 것이 그렇다. 그 거래는 언제나 정보를 구입하는 쪽이 유리하다.

일단 얘기를 들어보고 자신에게 가치가 없다면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만약 정말 중요한 정보라면 그 정보를 이용해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


"뭐 일단 들어는 볼게요. 정보에 대한 값은 그 뒤에 매기는 걸로."


리버의 말에 토비는 카운터 위로 상반신을 기울였다. 토비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리고 이어질 이야기를 혼자만 알고 있는 이야기꾼들 특유의 은밀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듀라트 영지에 관한 얘기다."



**



성벽 위에서 길버트는 명백히 의심 섞인 눈으로 밀러를 관찰하고 있었다.

밀러는 제 품에서 스무 번째 육포를 꺼내 씹고 있었고, 길버트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아했다.

밀러는 아주 가벼운 차림이었고, 그 안에 몇십 개나 되는 육포를 숨겨 놓을 공간이 있을 거라곤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때 질겅대며 숲을 응시하던 밀러가 길버트의 지긋한 시선을 느끼고서 고개를 돌렸다.

길버트와 마주한 밀러는 갑자기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처럼 자신의 품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이윽고 품 안에서 새로운 육포 하나를 꺼낸 밀러는 그것을 길버트에게 건넸다.


"자네가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깜빡했군."


내밀어진 손을 보며 길버트는 가만히 웃음 지었다.

길버트는 이 늙은 병사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식으로 천진난만하게 굴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착상에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길버트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 그것은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여태 살아온 날이 압도적으로 많은 노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초연함이 분명할 것이다.

밀러는 여전히 육포를 내밀고 있었다. 길버트는 손을 내저으며 정중히 사양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밀러,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건 엄연한 군수품 밀반출입니다."


"이건 집에서 가지고 나온 거야. 거거년에 만들어 둔 거지. 자네 말대로 밀수될 군수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구만."


길버트는 쓰게 웃었다. 밀러의 말대로 현재 듀라트 영지에는 군수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유심히 길버트의 표정을 관찰하던 밀러가 씨익 웃으며 내밀었던 육포를 다시 품 안에 집어 넣었다.

밀러는 내리쬐는 빛이 따가운 듯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해가 꽤 높이 떠올랐구만."


길버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의 둥그스름한 구체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지상에 자신의 분신을 흩뿌리고 있었다.

태양이 빛을 뿌리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일과였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는 길버트는 더없이 우울한 기분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길버트는 그 구체에 그토록 심한 혐오감을 품고 있는 것은 아마 대륙에서 오직 자신 뿐일 거라 생각했다.

거의 모든 대지가 얼어 붙은 북부였다면, 태양은 존재 만으로도 칭송받았을 것이다. 또 남부의 수 많은 소작농들에게도 태양은 더없이 귀중한 존재다. 그렇지만 적어도 듀라트 영지에서 만큼은 아니었다.

길버트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말투로 대꾸했다.


"그렇군요 해가 벌써..."


치르르- 치르르-


길버트가 말을 끝 맺기 전에 불현듯 해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길버트는 거의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때까지 장난스럽게 굴던 밀러 역시 어느샌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숲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소리는 성벽의 맞은 편, 이름 없는 숲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치르르- 치르르르-


해괴한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얼핏 듣기에 그 소리는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곤충들이 날개를 교묘하게 맞부딪히고 비벼서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엔 성벽과 숲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천 큐빗이 훌쩍 넘는 숲과 성벽 사이의 거리를 고려하면, 그 소리를 내기 위해선 적어도 수 만 마리의 협동심 넘치는 귀뚜라미나 여치들이 필요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길버트와 밀러는 그런 바보 같은 가정은 하지도 않았다. 사실, 가정할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은 그 기분 나쁜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고 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길버트와 밀러 사이에서는 꽤 오랫동안 정적이 흘렀고,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어느 시점에 밀러가 우울한 얼굴로 먼저 정적을 부쉈다.


"이보게 길. 이 영지는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나?"


버틴다는 표현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길버트는 그럼에도 그것이 현 상황을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표현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들을 상대로 승리한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이 가질 않았다.


"글쎄요. 아마 두 달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그럼 두 달이겠군. 자네의 개인적인 추측은 틀린 적이 없잖은가. 정말 빌어먹을 일이로군. 나는 적어도 반 년 정도는 너끈히 버틸 줄 알았는데."


"그것들이 추수철에 갑자기 덮쳐온 게 문제였습니다. 저희들은 방목지와 춘경지, 그리고 삼림 전부를 내버려두고 성 안으로 도망쳐 들어와야 했으니까요. 성채가 거대한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되는군요."


치르르- 치르르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숲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보다 명백하게 커진 소리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본 채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밀러가 먼저 몸을 돌려 성벽 위의 한 지점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병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병사들 사이에 선 밀러는 뜻 모를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길버트는 자리에 선 채 얼마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길버트는 백인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고개를 든 길버트는 다시 한 번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걸려있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내부에서 분노와 증오 같은 감정들이 치밀어 올랐다.

영지의 기후가 역겨운 것이고, 성벽을 마주하고 있는 숲이 나쁜 숲이라면, 지금 솟아 오르고 있는 저 태양도 빌어먹을 것이 분명했다. 길버트가 태양을 향해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순간 저편에서 밀러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길버트! 자네도 슬슬 준비하게!"


성실한 학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험악한 상상을 하던 길버트는 그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길버트는 밀러와 병사들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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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1 h.d.h
    작성일
    23.07.12 04:28
    No. 1

    귀족들만 거래 가능하고 아는 귀족한테 부탁하고 연줄까지 동원해서 얻어야했던 물건 치곤 너무 싼데. 겨우 몇달 살 정도면 천만원이라 치면.. 최소 몇억짜리여야 그런 취급 받는 게 말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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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보와 멍청이는 언제나 큰 쪽을 선호한다 +2 23.05.26 1,855 3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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