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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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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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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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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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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바보와 멍청이는 언제나 큰 쪽을 선호한다. (6)

DUMMY


어느 병사의 방패와 어느 베르미의 주둥이의 첫 충돌은 정오가 거의 끝나는 시점에 일어났다.

숲에서부터 시작해 성벽의 바로 밑까지 기세를 거의 누그러뜨리지 않고 달려온 베르미들은 그 운동에너지를 그대로 위치에너지로 전환시켰다.

성벽 밑 해자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베르미들은 바닥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가장 먼저 뛰어오른 것은 유달리 덩치가 큰 그 베르미였다. 달리는 내내 선두에 서 있던 녀석은 주춤거리는 기색도 없이 날개를 펼치고 성벽 위로 뛰었다. 까만 겉껍질 속 투명한 날개가 몇 번이나 파르르 떨렸다.

물론 베르미들은 그 날개를 이용해 잠자리처럼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거나 하는 재주는 없다. 그렇게 하자면 그들의 얇디 얇은 날개는 금방 찢어져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조악한 날개는 본연의 기능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들의 날갯짓은 도약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덩치가 큰 만큼 그 베르미는 놀라운 도약력과 날갯짓을 선보였다. 동시에 뛰어오른 다른 베르미들이 해자에 고꾸라지거나 혹은 성벽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땅바닥에 처박힌 것과 달리 그 베르미는 가뿐히 성벽 위까지 뛰어 올랐다. 그 베르미는 성벽의 난간을 따라 쭉 늘어선 병사들의 머리 위에서 잠깐 활강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덩치 큰 베르미는 생을 마감했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창을 사선으로 들고 있었지만, 한 병사가 창을 수직으로 곧추 세우고 있었다. 그 베르미는 그 눈 먼 창에 꿰뚫렸다. 병사는 창을 휘저어 꿰여있던 베르미를 털어냈다.


최초의 도약은 그런 식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도의 기세가 수그러드는 일은 없었다. 파도의 선단 부분에 있던 베르미들은 처음 덩치 큰 녀석과 마찬가지로 주저 없이 한꺼번에 뛰어오르고 있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여기서 한꺼번에 라는 말은 약간 어색할지도 모른다. 베르미들은 인간의 군대처럼 질서를 유지한 채 행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수는 불규칙 속에 규칙을 만들어 낼 만큼 파괴적이었다. 베르미들은 제각각 뛰어 올랐지만 성벽 위에서 느끼기에 그 모습은 일제히 뛰어 오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선단에서 도약한 베르미들은 어림잡아 수 백 마리는 되어 보였다. 만약 성벽 밑에서 맞이했다면 그대로 졸도해버릴 광경이었지만 십인장들은 아직까지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그 수백 마리의 베르미의 파도가 전부 성벽 위에 올라섰다면, 아마 영지는 공습 첫날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모든 베르미가 처음 뛰었던 덩치 큰 베르미처럼 도약력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통계적으로, 뛰어 오른 수 백 마리 중 성벽의 난간에 앞발이라도 걸칠 수 있었던 베르미들은 약 스무 마리 정도였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수 백 마리 중 거의 구 할에 가까운 베르미들은 성벽을 넘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 그런 베르미들은 아직 완전한 성체가 되지 않은 녀석들이 많았다. 그 녀석들은 해자에 빠지거나, 성벽의 외곽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져 성벽과 바닥 사이에 처박혔다.


다시 돌아와서 성벽에 발을 걸쳤던 남은 스무 마리 역시 온전히 성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벽을 따라 늘어선 방패병들은 그 자체로 성벽의 일부분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현재 성벽의 높이는 원래 가지고 있던 높이에 방패의 세로 지름을 더한 만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간신히 성벽 높이까지 뛰어 오른 놈들은 그러나 난간을 따라 서 있던 병사들까지는 넘지 못했다. 그런 녀석들은 방패에 부딪혀 떨어지거나, 혹은 방패와 난간의 틈새에 그대로 짜부라졌다.

그렇게 뛰어오른 구 할의 베르미들이 탈락했고, 남은 스무 마리 정도의 베르미들 중 다시 구 할 정도가 탈락했다.


총체적으로 보자면 최초의 도약과 그 이후에 이어진 일련의 도약에서 성벽 위에 내려 앉은 베르미는 수 백 마리 중 단 두 마리였다. 그리고 베르미 두 마리란 아직 청년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영지의 소년들조차 겁 먹지 않을 수였다.

그것이 인간들의 전쟁이었다면 수성하는 쪽의 기세가 등등해지기 충분했을 것이다. 요컨대 병사들은 현재 돌진해 온 수 백 명의 적군 중 단 두 명을 제외하고선 전부 괴멸시킨 셈이다.

어떤 지휘관이나 군사가 그 전투를 신화의 반열에 올려놓는다고 해도 크게 불평할 사람은 없을 정도의 성과가 분명했다. 실제로 병사들 중 몇몇은 그 최초의 도약을 막아낸 후 포효 같은 것을 내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던 길버트와 밀러 그리고 몇몇 십인장들은 병사들과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쪽이냐 하면, 밀러는 첫 도약에서 두 마리의 베르미가 성벽에 내려 앉았다는 사실에 터질듯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이 카니쿨라 같은 자식들아! 더 촘촘하게 붙어! 방패 사이에 틈을 만들지 말란 말이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한 십인장이 소리 질렀다. 십인장의 목소리는 마치 성대가 까끌한 사포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지독하게 갈라져 있었다.


"움직여라! 움직이란 말이다! 비어있는 곳이 보이면 명령이 없더라도 알아서 틀어 막아!"


십인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 앞에 있는 병사들을 보채고 닦달했다.

지휘관들이 단 두 마리에 불과한 베르미들의 침입에 그토록 분노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들이 지독한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의 군대였다면 오히려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칭찬하고 북돋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미들과의 전투에서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수백 마리의 베르미 중 두 마리가 성벽에 내려 앉았다는 사실.

거기서 앞의 수백 마리를 수십 만 마리로 바꾸는 순간, 자연스럽게 뒤의 두 마리 역시 몇천 배로 불어나버린다.

따라서 베르미 두 마리의 침입이란, 앞으로 일어날 몇천 번의 도약 이후에는 수천 마리가 되어 있을 것이란 확실한 예고이자 징후였다.


"한 마리도! 단 한 마리도 올려 보내지 마라! 여긴 인간의 땅이다! 더러운 요괴 놈들이 우리의 땅을 밟게 하지 마라!"


밀러와 십인장들은 성벽에 도열한 병사들을 격려하고, 독촉하고, 윽박지르고, 최후에는 거의 으르렁거리면서 분투했다. 하지만 밀러와 십인장들의 그런 분투에도 불구하고 성채의 마루를 넘는 베르미들은 시시각각 늘어 만 가고 있었다.

사실,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안일함과는 별개로, 완벽한 수비라는 것이 그 말 자체로 언어도단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는 했다. 방패병이 긋고 있는 저지선을 훌쩍 뛰어넘어 침투하는 베르미들은 애초부터 저지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놀라운 도약을 하는 베르미들은 주로 다른 개체보다 몸집이 크거나, 날개가 길거나, 혹은 뒷다리가 유난히 굵다거나 하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건장하다고 해야 할, 그리고 요괴라면 돌연변이라고 불러야 할 그 놈들은 아예 병사들의 머리 위까지 날듯이 뛰고 있었다.

성벽 위에 베르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 전장의 최전선에 있던 밀러가 소리쳤다.


"제대로 앞 열을 지켜라! 후방에서 공격 당하게 두지 마라!"


밀러의 외침에 성벽 위에 있던 두 번째 선(線)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밀러는 방어선을 총 두 개의 선과 하나의 점으로 배치해 두었다.

첫 번째 선은 난간에 늘어선 채 온 몸으로 방패를 지지하고 있는 방패병들이다. 이들의 목표는 가능한 한 적은 수의 베르미들이 내려 앉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선은 그 방패병들의 후미를 지키는, 실질적인 전투를 담당하는 경장보병들이다. 이들의 목표는 이미 성벽에 올라 탄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선의 맨 뒤에 있는 하나의 점은 길버트가 속한 보충대였다. 그들은 뒤에서 상황을 주시하다가 두 개의 선에 이빨이 빠지는 순간 그 자리를 대신 메꾸곤 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밀러가 구상한 전장의 모습은 일종의 축차투입이나 차륜전 같은 모양새였다.

물론 밀러의 전략이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지에 관해 평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어떤 저명한 전술가나 참모도 수십 만 마리의 베르미들을 상대할 때 가장 효과적인 전략 따위를 알고 있을 리 없다.


그런 전장의 한 켠에서 밀러는 분전하고 있었다. 밀러의 바로 앞에 있는 방패병들 사이에 베르미 한 마리가 들어갈 정도의 작은 틈이 벌어져 있었다.

밀러는 명령할까 생각했지만 그간 너무 소리를 질러댄 탓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밀러는 그냥 양손으로 두 방패병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화들짝 놀란 방패병들을 서로 붙여 놓았다.

그 성벽 보수 작업을 끝내자마자 밀러는 자신의 다리 부근에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밀러는 시선을 내리 깔았다. 베르미 한 마리가 밀러의 다리 앞에서 앞발로 군화를 할퀴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밀러는 검을 아래로 휘둘러 녀석을 베어 넘겼다.

부상은 없었다. 정강이 부근에 생채기가 조금 나긴 했지만 그것은 부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상처였다. 밀러는 무뚝뚝한 얼굴로 베르미가 가장 많이 내려 앉은 쪽으로 이동했다.


검을 휘두르며 밀러는 그나마 저 더러운 것들에게 치명적인 공격 수단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베르미들의 집게 달린 주둥이는 과일을 파먹거나 나무 껍질을 파는 데는 적합하다. 하지만 인간의 피부에는 생채기를 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베르미들의 주요 공격 수단은 앞발이었다. 밤이 되면 땅을 파고 들어가는 습성 탓에 베르미들의 돌기 달린 앞발은 꽤 날카롭고 단단한 편이었다.

물론 단단하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베르미의 신체 중에서는 단단하다는 말이다. 고작해야 한 뼘 정도 되는 그 앞발은 병사들이 입고 있는 가죽 옷이나 장화를 결코 뚫을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베르미들은 자신의 적을 착각하지 않았다.

베르미들은 그들의 눈 앞에서 움직이는 소 가죽 군화를 공격하는 대신, 병사들의 얼굴로 뛰어들었다. 성벽을 뛰어 넘을 만큼의 도약력과, 미약하지만 공중에서 방향 전환이 가능한 날개로 베르미들은 빠른 속도로 얼굴께로 붙었다.

그렇게 가슴이나 얼굴 근처에 붙은 베르미들은 마구잡이로 앞발과 주둥이를 휘두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앞발이나 주둥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엔 너무 연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베르미들은 주로 병사들의 눈알이나, 혹은 입술이나 뺨처럼 피부가 얇은 곳을 주로 노리는 듯했다.


아마 베르미들의 수가 적었다면 그런 식의 공격은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야 당하는 병사의 입장에서는 괴롭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입술이나 피부가 조금 찢어지는 것을 치명상이라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가 많다면 얘기가 다르다. 애초에 베르미들이 들러붙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한 사람이 수십, 수백 마리의 베르미에게 포위되어버리면 사실 달리 방도가 없다.

그렇게 몇 마리의 베르미가 가슴께에 붙어버리면 그 병사가 살아날 길은 요원하다. 얼굴이 죄다 찢기면 인간은 보통 충격사로 죽어버리기 마련이다.

밀러는 방패병을 등진 채 다시 몇 마리를 베어 넘겼다. 대략 스무 마리쯤 베어 넘겼을 때 한 십인장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밀러 십인장님! 핸슨을 도와주십쇼! 손이 부족합니다!"


밀러는 핸슨이 있는 난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 핸슨은 베르미 한 마리를 뒷덜미에 매단 채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이었다.

밀러는 핸슨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뒷목의 피부는 찢길대로 찢어져 처참한 상태였다. 핸슨은 그 상태에서도 굳건하게 방패를 부여잡고 난간을 틀어 막고 있었다.

양 손을 방패에 할애하고 있기에 방패병들은 뒤에서 공격해오는 베르미들을 막을 방도가 없다. 그들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성벽의 일부이며, 방패를 놓는 순간 더 많은 베르미들이 성벽에 내려앉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핸슨. 그리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곧바로 교대해 줄 테니 조금 더 버텨라!"


밀러는 곧바로 핸슨의 뒷목에 붙은 베르미를 떼어냈다. 베르미의 몸통을 움켜쥔 밀러는 그것을 그대로 바닥에 힘껏 내동댕이쳤다. 팍- 하는 맥없는 소리와 함께 그 베르미는 그대로 터져버렸다.

밀러는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방금 전 자신이 벌였던, 그러니까 고목 나무에 붙은 매미를 잡는 듯한 그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전투가 성벽의 모든 곳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밀러는 욕설이 새어 나올 것 같은 기분으로 후방을 바라보며 외쳤다.


"길버트!"


밀러의 외침에 길버트가 곧장 반응했다. 난간에서 가장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길버트는 이미 밀러가 외치기 전부터 한 젊은 청년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부탁하네 월렛."


월렛이라 불린 청년은 이미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월렛은 망설임없이 밀러를 향해 달려갔다. 월렛은 핸슨을 끌어냈고 그 자리에 자신이 들어갔다. 마침내 역할에서 해방된 핸슨은 뒷덜미를 부여잡으며 성벽 안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길버트는 내부에서 동정심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길버트는 그 감정을 억누르려 무던히 애썼다. 아무튼 동정심은 전투에 도움이 될만한 감정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길버트는 결국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 실패했다.


길버트는 월렛을 바라보았다.

평소였다면, 이 지긋지긋한 자연재해 같은 것이 발생하기 전이었다면, 월렛은 분명 지금쯤 자신의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에 퍼질러져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미래에 훌륭한 농부가 되는 것에 어떤 의구심이나 불안도 품지 않은 채, 그리고 실없는 농담과, 또 술집에 있는 처녀 종업원을 향해 적당한 희롱을 일삼으면서.

하지만 저 젊은 청년에게 앞으로 그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월렛에게는 그런 시시껄렁한 짓에 같이 어울려줄 친구가 더 이상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길버트는 그날 술집에서 있었던 일을 회고했다.

그날, 월렛이 여느 때와 같이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 테이블 위에 뻗어 있던 그 날에, 월렛의 친구들은 전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잘게 찢겨져버렸다.

그것은 불시의 습격이었다.

일반적으로, 시골 영지의 뒤쪽 성벽이란 노상에 깔린 술판이라는 말과 거의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당연하게도 지금과 같은 방어진 따위는 전무했고, 누구도 영지의 뒤 편을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 하기사 미리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들이 덮쳐왔다면 그것을 습격이라 부를 수도 없었을 테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월렛의 친구들이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월렛과, 또 그 술집에 있던 처녀 종업원 만큼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냉정한 말이지만 길버트는 그날 그 친구들의 행동이 숭고한 기사도 정신에 의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들은 늘 그래왔듯 술집의 뒷골목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처녀에게 찝쩍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결과적으로 그 친구들의 행동은 정의로운 것이 되기는 했다. 그들은 분명 처녀 한 명을 구했고, 지금 분노에 찬 눈으로 베르미들에게 방패를 들이밀고 있는 월렛의 목숨도 구했다.


길버트는 불현듯 그 청년들이, 그러니까 월렛의 불량한 친구들이 꽤나 그리워졌다.

물론 월렛 본인도 자신의 친구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다진 고깃덩이로 바뀌어버린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실제로도 월렛은 언제나 친구들을 그리워했다.

다만 길버트는 월렛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월렛이 친구들과 어울려 쏘다니던 그 안온한 날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면, 길버트의 경우엔 조금 실용적인 의미로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월렛의 친구들은 소위 말하는 불량배들에 가까운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젊은 악동들이 흔히 그렇듯 그들 역시 활동적인 동시에 체력이 좋은 청년들이었다.

그래서 길버트는 그들이 그리웠다. 지금 성벽 위에는 그런 청년들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다.

그런 회고에 빠져 있던 새에 마침내 보충대의 바로 앞까지 베르미들이 득시글대기 시작했다.

길버트는 우울한 얼굴로 검을 쥐고,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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