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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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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최근연재일 :
2024.09.01 22:16
연재수 :
1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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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28
추천수 :
574
글자수 :
1,191,510

작성
23.06.13 19:35
조회
146
추천
7
글자
12쪽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6)

DUMMY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연기는 무서운 기세로 솟아 올랐다.

잡화점은 그리 넓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가게 내부는 금방 뿌연 연기로 뒤덮였다.

몇 숨 만에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시야가 깜깜해졌다.

어느 시점에 한 병사가 절규하듯 외쳤다. 맨 처음 토비에게 하수인이라는 누명을 씌웠던 바로 그 겁 많은 병사였다.


"요술이야..! 마녀가 요술을 부렸다!"


그것은 평소라면 설득력이라곤 조금도 없었을 빈약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여태 겪었던 일과,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만이 떠 있는 특별한 밤이라는 점이 그 병사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곧 뿌연 안개 속에서 치안대원들이 마구잡이로 떠드는 소리가 오갔다. 그들은 서로에게 저주니 마녀니 하는 외침을 주고 받고 있었다.

마빈은 난생 처음으로 사람을 찌르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외쳤다.


"당황하지마! 어차피 도망칠 곳은 없으니까! 대형을 유지하고 입구를 지켜!"


마빈의 각근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안대원들의 소란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별 수 없이 마빈은 그들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기로 했다. 마빈은 그들이 대형을 유지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어쨌든 리버의 잡화점에 다른 출입구는 없다. 따라서 입구에 모여 있기만 하면 그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마빈은 방금 전까지 세 사람이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연기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마빈의 내부에서 불쑥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부상했다.

물론 임무를 성공해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마빈은 기왕 임무를 실패할 거라면 차라리 리버가 확실히 도망치기를 바랐다. 마빈은 둘 가지 상반된 바람 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지기를 바라며 묵묵히 연기가 걷히길 기다렸다.


*


가게 안팎의 모든 사람들이 소란에 빠진 사이 리버는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긴 했지만 적어도 리버는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 만큼은 아니었다.

아무튼 상황이 발생한 곳은 리버에게 더없이 익숙한 공간이었다.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매캐한 연기를 막기 위해 리버는 천으로 입을 가렸다.

리버가 필사적으로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누군가 연기 속에서 리버의 손을 강하게 잡아 끌었다. 리버는 반사적으로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자 얼굴 바로 옆에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가게 안 쪽으로 안내해!"


내용에 설득됐다기보다는 그때까지 보여준 적 없던 루나의 다급함이 리버를 움직였다.

리버는 뭔가에 홀린 기분으로 루나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도중에 가구에 몇 번 부딪히긴 했지만 리버는 가게 안 쪽의 생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연기는 무서운 기세로 퍼졌고, 또 점점 짙어지고 있었지만 아직 가게 안 쪽까지 완전히 잠식하지는 않은 듯했다. 리버는 연기가 없는 이 층으로 움직였다.

마침내 리버의 몸이 연기 속에서 빠져나왔다. 다음으로는 리버와 손을 잡고 있던 루나가 빠져나왔다. 이어서 두 사람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기도 전에 갑자기 커다란 형체 하나가 연기 속에서 잇달아 튀어나왔다.


"젠장할, 물케꽃을 뭉쳐 태운 건가? 냄새 한번 지독하군."


토비는 마치 연기를 털어내기라도 할 듯이 몸 곳곳을 툭툭 털어 댔다. 리버와 루나가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 토비가 설명했다.


"냄새를 따라왔다."


토비는 뒤 따라온 수단을 설명했지만 리버가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왜 따라왔냐고 묻는 거예요!"


"응? 그야 가만히 있으면 봉변을 당할 게 아니냐. 마녀사냥이라면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죄 없는 인간을 괜히 구경거리 삼아 평소 울분을 푸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일단 끌려가고 난 다음에는 뻔하지."


리버는 토비의 통찰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토비의 말은 마녀사냥의 핵심에 가까웠다. 리버는 마녀로 지목돼 끌려간 처녀들의 최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마빈은 자신이 잘 변호하기만 하면 아무런 탈도 없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그는 하수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모르고 있다.

사실 마녀사냥에 관련된 당사자들에게 적합한 해결책은 두 가지 정도 밖에 없다.

마을 광장에 매달린 채 불타 죽거나, 혹은 그렇게 매달려 죽기 직전까지 도망치거나.

리버는 후자를 택했다.

토비는 코가 가려운지 연신 코를 비비고 있었다. 토비의 검고 촉촉한 코를 보며 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같이 도망쳐요."


토비는 마주 고개를 끄덕인 다음 루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난리냐? 방금 전에 네가 했던 말은 또 뭐고? 너, 정말 마녀냐?"


"설명할 시간 없어. 우선 도망치는 게 먼저야."


이후에 토비가 볼멘소리를 몇 번 중얼거렸지만 그녀는 단호한 태도로 전부 일축해버렸다. 루나는 리버를 향해 다그치듯 물었다.


"말해. 가게에 다른 출입구가 있어?"


리버는 난감한 심정으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가게에 다른 출입구는 없었다.

곧이곧대로 말할지 망설이던 리버는 그러나 잠시 후에 어떤 장소를 떠올렸다.

물론 그곳과 출입구의 공통점이라곤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다른 출입구는 없지만... 다락방에 창문이 하나 있어!"


리버가 대답하자마자 루나가 지체없이 움직였다. 리버는 외쳤다.


"잠깐 기다려 봐!"


루나와 토비가 의아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리버는 신속하게 어느 서랍장 앞으로 뛰었다. 서랍의 가장 밑 칸을 연 리버가 가죽 꾸러미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짤랑거리는 소리로 유추했을 때 그것은 돈 꾸러미가 분명했다. 루나와 토비는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꾸러미를 품 속에 챙긴 리버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됐어. 따라와!"


루나와 토비는 할 말이 많은 듯한 얼굴이었지만 굳이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어쨌든 사소한 일로 꾸물거리고 있을 계제는 아니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리버를 따라 움직였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잡화점 옥상으로 빠져나왔다.

세모 꼴의 지붕 반대편에 몸을 숨긴 채 세 사람은 잡화점 정면을 관찰했다.

마빈의 말처럼 잡화점을 향해 영지의 치안대원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포위망은 코가 작은 그물처럼 촘촘했고, 심지어는 잡화점 뒤 쪽 저 멀리에서도 다가오고 있었다.

상황을 확인한 토비가 투덜거렸다.


"건물에서 빠져나온 것까지는 좋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 같은데."


잠깐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담담하던 루나가 약간 침울한 표정으로 바뀌었을 때 리버가 탄성을 내뱉었다.


"아! 어쩌면... 거기로 가면 될지도 몰라요."


두 사람이 묻는 눈초리로 리버를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리버는 이내 확신에 찬 어조로 설명했다.

리버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루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리버는 달래듯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 폴 영지는 좁으니까, 아마 어디로 도망치던 금방 붙잡힐 거야. 저 놈들은 이 동네의 구석구석까지 다 꾀고 있기도 하고."


영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던 루나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거림을 신호로 세 사람은 움직였다. 세 사람은 지붕을 타며 몇 개의 건물을 이동했다. 그리고 리버가 지목한 마지막 건물에서 세 사람은 조심스레 지면으로 내려 섰다.

그곳은 잡화점이 있던 곳과 마찬가지로 으슥한 골목길이라고 부르면 딱 적당할만한 곳이었다.

리버가 골목 한 구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느 지점에 멈춰 선 리버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쪼그리고 앉았다. 이어서 뭔가 힘을 쓰는 듯 낑낑거리다가 잠시 뒤에는 멀뚱히 서 있던 토비를 향해 소리쳤다.


"가만히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이것 좀 들어봐요!"


리버에게 다가간 토비가 리버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리버의 앞에는 둥그런 철판으로 된 하수구 덮개가 있었다. 토비는 덮개 틈에 손톱을 집어 넣어 간단히 덮개를 뒤집었다. 덮개가 제거되자마자 밑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있던 루나가 질색하는 얼굴로 코를 쥐었다. 리버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망설이고 있을 시간 없어요. 들어가죠."


서로 짧게 눈빛을 교환한 뒤 리버가 먼저 몸을 집어 넣었다. 다음으로 토비가, 마지막으로 루나가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덮개가 다시 덮였고, 이내 폴 영지의 지상에서 인간 남녀 한 쌍과 아돌프 한 명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


하수도 자체가 깊지 않았기에 사다리 역시 그리 길지 않았다. 다만 너무 축축했고, 너무 더러웠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루나는 나은 편이었다. 이 경우엔 토비의 털이 훌륭한 헝겊 역할을 했다. 토비가 쓸고 내려간 자리는 그나마 깨끗했다.

마침내 세 사람의 발이 전부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발이 닿은 것과 동시에 토비의 귀가 꿈틀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리버와 루나는 토비를 따라 귀를 기울였다. 곧 두 사람도 소리를 포착했다. 일정한 속도로 스윽- 스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숱이 부족한 빗자루로 바닥을 쓸 때나 날 법한 소리였다. 토비가 미심쩍다는 어투로 말했다.


"젠장. 사방에서 윙윙대는 소리 때문에 방향을 모르겠군. 하지만 우리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건 확실해."


그렇게 말한 뒤 토비의 손 끝에서 삐죽 손톱이 삐져나왔다. 의도가 명백한 행동이어서 루나 역시 침착하게 단검을 빼 들었다. 다만 리버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리버는 묘한 표정으로 그저 잠자코 서 있었다.

어느 시점에 바닥과 마찰하는 그 기분 나쁜 소리가 뚝 멈췄다. 토비와 루나는 숨죽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하수도 안은 지독하게 어두웠으므로 두 사람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기묘하고 이상한 정적이 흐르던 와중에, 불쑥 세 사람의 눈 앞에서 불빛이 터져 나왔다.

토비가 반사적으로 손톱을 휘두르려 했을 때 리버가 앞으로 뛰쳐나가며 외쳤다.


"잠깐만요!"


토비는 기겁하며 손톱을 거뒀다. 긴장 속에서 몇 초가 지나자 이윽고 소리의 정체와 그 아래에 있는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세 사람과 서너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한 무스가 등불을 들고 서 있었다. 바닥을 쓰는 소리는 그 무스의 꼬리가 쓸릴 때 난 소리인 듯했다.

토비와 루나가 무스를 향해 의심 섞인 눈빛을 보내는 가운데 리버가 움직였다.

리버는 두 사람과 무스 사이에 섰다. 그리고 무스를 바라보았다.

얼핏 보기에 리버는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낯선 것을 대할 때 나오는 공포심에 기인한 긴장감은 아닌 것 같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리버의 표정은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을 대할 때 나오는 어색함에 가까웠다. 그리고 실제로 리버와 무스 사이에선 알 수 없는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있는 듯했다.

리버는 쥐어짠 것 같은 겸연쩍은 미소로 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반가워요 에이튜. 우리, 몇 년 만이죠?"


리버가 건넨 것은 호의적이고 의례적인 인삿말이었다. 그래서 리버의 뒤에 있던 두 사람은 당연히 상대 무스에게서도 그 비슷한 인사말이 나올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에이튜라 불린 무스의 입에서 나온 것은 살가운 인사말이 아니었다.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리버를 응시하던 에이튜가 입을 열었다. 그의 커다란 앞니 두 개가 드러났다. 에이튜는 세 사람을 향해 낮게 그리고 읊조리듯 말했다.


"리버.. 내가 다시는 이곳에 내려오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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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8) 23.06.15 126 8 14쪽
22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7) 23.06.14 131 7 19쪽
»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6) 23.06.13 147 7 12쪽
20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5) +2 23.06.13 126 8 13쪽
19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4) +2 23.06.11 147 8 12쪽
18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3) 23.06.11 142 6 12쪽
17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2) 23.06.10 140 9 17쪽
16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1 23.06.07 147 8 15쪽
15 바보와 멍청이는 언제나 큰 쪽을 선호한다. (15) +1 23.06.07 153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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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보와 멍청이는 언제나 큰 쪽을 선호한다. (11) +2 23.06.01 165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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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보와 멍청이는 언제나 큰 쪽을 선호한다. (9) 23.05.30 180 1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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