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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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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8,691

작성
23.06.0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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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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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2쪽

바보와 멍청이는 언제나 큰 쪽을 선호한다. (12)

DUMMY

리버의 만능 잡화점 내부에는 미묘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담백하게 말하자면 한 소녀가 리버의 목에 단검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적당한 상식을 갖춘 인간이라면 어떻게 봐도 위험하고 다급한 상황이라고 인식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그 장면을 목도한 누군가가 인간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현재 그 장면의 유일한 목격자는 토비였고, 리버에겐 아쉽게도 토비는 아돌프였다.


처음에 기세 좋게 가게로 들어왔던 토비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야 여러가지 문제들이 토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토비가 당황한 이유의 대부분은 리버의 태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가게 안의 상황을 처음 목도 했을 때만 하더라도 토비는 리버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확신했다.

사실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인간들 틈에 섞여 생활한 것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상대방의 목에 칼을 겨누는 행위는 아돌프의 관점에서도 결코 호의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토비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게 됐다.

정확히는 리버가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시간과 토비의 의심은 비례하며 커지고 있었다.

토비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실제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분명 리버 쪽에서 도움을 요청해 왔어야 했다.

침착하게 도움을 요청할 정신머리가 없다면, 하다 못해 비명이라도 질렀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리버는 쭉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토비는 이미 몇 번이나 보냈던 의구심 섞인 눈빛을 다시 한 번 리버에게 보냈다.

리버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잔뜩 구겨진 얼굴로 토비를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토비는 리버가 아돌프였다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다면 지금 저 괴상한 표정에서 리버가 하고 싶은 말을 유추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아돌프들의 문화에 박식하다고 해도 리버는 엄연한 인간이었다.

결국 토비는 이번에도 리버의 표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끄응..."


토비는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다시 처음과 같은 고민에 빠졌다.


한편 그 신음 소리를 듣고 있던 리버는 어떤 사실에 대해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의 내용은 자신의 친구가 엉뚱한 상상을 한 나머지, 최악의 판단을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최악의 판단이란 토비가 자신을 구하겠답시고 소녀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상황이다.

리버가 토비를 보자마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리버는 토비가 눈 앞의 작은 인간 여자 한 명을 제압할 수 없을 거라 여기지는 않았다.

소녀가 검을 다루는 실력이야 어떻든 토비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토비가 말한 것처럼 해결사의 수주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리버가 구원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현재 가게 안에 있는 두 사람의 위치에 있었다.

토비는 가게 문 앞에 서 있었고, 소녀는 리버의 바로 코 앞에서 단검을 겨누고 있었다.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큰 차이였다.

도움을 요청하면 토비는 분명 빠르게 소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에 새로운 숨구멍이 한 두개쯤 뚫려 있을 것도 분명했다.

상황을 인지한 리버는 결국 토비에게 살려 달라는 식의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리버는 입술을 깨물었다.

비명을 질러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고, 스스로 소녀를 제압할 수도 없었다.

더불어 여기까지 와서 소녀가 순순히 물러나길 기도하는 것은 말 그대로 기도에 불과한 행위가 뻔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본 리버는 입을 다물고 있는 쪽을 선택했다.

모로 봐도 그게 최선이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리버의 그런 선택이 가게 안의 분위기를 이상야릇하게 만들고 있었다.

토비는 리버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때 한참을 끙끙 앓던 토비가 갑자기 계면쩍은 표정으로 두 인간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토비는 왠지 모를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음, 혹시 지금 내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냐?"


리버가 의문스러운 듯 되물었다.


"오해라뇨? 무슨 오해요?"


"뭐, 인간들의 문화란 가끔 지독하게 복잡한 면이 있잖냐. 그러니까 혹시 내가 너희들의 어떤 경건한 의식을 방해하고 있다 거나."


토비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버가 벙찐 표정으로 토비를 바라보았다.

여태 무덤덤하던 소녀 쪽에서도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눈빛을 토비에게 보냈다.

두 인간의 시선을 받은 토비가 변명하듯 얼른 덧붙였다.


"아니, 그러니까 인간들이란 거래를 성공적으로 끝낸 후에 상대방에게 단검을 겨누는... 어떤 경건하고 엄숙한 의식을 반드시 치러야 하는 걸 수도 있잖냐. 실제로 몇 번 보기도 했고... 어, 아무래도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군."


토비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인간이 경멸 어린 시선으로 토비를 쳐다봤다.

상식에 어긋난 발언이었지만 토비의 무지함을 탓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아돌프들은 칼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쓸 필요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 검사라 할지라도, 자신이 휘두르는 칼이 아돌프가 휘두르는 손톱보다 더 파괴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돌프에겐 검이나 칼을 대체할만한 멋진 손톱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토비가 어정쩡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차라리 인간들에겐 칼이 지극히 위험하다는 기본 소양만 갖추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토비는 망설이지 않고 카운터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엔 방랑 중에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토비의 발을 붙잡았다.

토비는 가끔 인간들이 검을 상대방에 머리 위나 얼굴에 향한 채, 엄숙한 의식을 치르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장면들은 각각 기사의 서임이나, 혹은 종단의 세례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지금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속에 담긴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그렇지만 겉모습만 보았을 때 그것들과 현재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토비가 둘의 차이점을 완전히 인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토비가 고민하던 와중에 리버가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의식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토비의 끔찍한 상상력에 대해 비난을 퍼부으려던 리버는 입을 다물었다.

물론 처음과 같은 이유였다.

소녀가 쥐고 있는 단검은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고, 입구와 카운터 사이의 거리는 왠지 평소보다 훨씬 더 멀어 보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리버 대신 말을 꺼낸 것은 소녀였다.

그녀는 토비가 꺼낸 말보다는 토비의 모습 자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시골 영지에 아돌프라니 별일이군. 여기 이 녀석이랑 아는 사이인가?"


"일단은 친구라고 해두지. 그보다 지금 네가 벌이고 있는 짓거리가 인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종의 의식이 아니라면... 너는 대체 왜 그 녀석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거냐?"


"아직 뚜렷한 목표는 없어. 하지만 이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건 확실하군."


순간 토비의 두 귀가 쫑긋하고 위로 솟아 올랐다.


"이봐, 나는 지금 분명히 그 녀석이 내 친구라고 말했다. 너는 아돌프의 친구를 눈 앞에서 죽이겠다는 말이냐?"


"아돌프니 청력 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 테지. 그럼 이해력의 문제겠군. 그래 맞아, 네 친구를 이 자리에서 죽이고 싶다고 말했어."


태연한 대꾸가 채 끝나기도 전에 토비의 귀가 머리 위로 납작 드러누웠다.

그때까지 좌우로 가볍게 흔들리던 꼬리는 축 쳐져서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토비의 털은 전체적으로 약간 빳빳하게 부풀어 올랐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떤 인간도 오금이 저릴만한 모습이었다.

토비는 호승심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럼 나와 해보겠다는 말이군. 좋다.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아돌프는 없지. 시작 하기 전에 이름을 대라. 나는 토비다."


"미안하지만 나는 털이 많은 남자에겐 관심이 없어. 간혹 귀부인들 중에서 이상할 만큼 남성 아돌프에게 관심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곤 들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내 취향이라고 할 순 없겠군."


토비는 소녀의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약간 지난 후에 마침내 토비는 그 의미를 이해했다.

토비가 사납게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마지막 기회다 이름을 밝혀라 이 카니쿨라 같은 자식아. 네 묘지에 써줄 이름 정도는 기억해줄 용의가 있으니까."


전형적인 발언이었지만 현재 말을 내뱉고 있는 것이 토비였기에 그 말은 특별한 것이 되었다.

아무튼 토비는 뒷골목의 시정잡배는 아니었다.

토비는 아돌프였다.

그리고 그 한 가지 사실로도 충분했다.

방금 아돌프가 뱉은 말은 가장 사내답고 거친 남자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오히려 약간 재밌다는 듯이 작게 웃으며 대꾸했다.


"라르토 루나. 나보다는 네 묘지명 쪽이 짧고 간결해서 좋아 보이네."


종족을 떠나서 모욕적인 언사였다.

토비는 모욕을 참을 마음이 없었다.

토비는 팔짱을 풀고서 콧잔등을 잔뜩 찡그렸다.

코를 당기자 자연스레 입술이 위로 들렸다.

입술 아래에 감추어져 있던 거대한 송곳니가 드러났다.

이어서 무언가 움켜쥔 듯 구부린 토비의 손 끝에서 다분히 위협적인 형태의 손톱이 쑥 삐져나왔다.


자신을 루나라고 밝힌 소녀 역시 토비를 따라 자세를 바꾸었다.

루나는 단검의 방향을 토비쪽으로 틀었다.

단검을 역수로 고쳐 쥔 루나는 단검을 그대로 자신의 가슴 근처로 가져갔다.

그 후에는 마치 토비와 거리를 재려는 것처럼 왼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누가 보아도 곧 벌어질 전투에 대비하려는 자세였다.


옆에서 쭉 상황을 지켜보던 리버는 루나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물론 리버는 칼을 휘두르기는 커녕 폭력을 행사해 본 경험조차 없었다.

때문에 루나가 얼마나 훌륭한 칼솜씨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현재 루나의 상대가 아돌프라는 사실 만큼은 명확했다.

루나는 인간 기준으로 봐도 여리여리한 몸집이었다.

리버가 생각하기에 루나가 토비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리기나무에 대패질을 하는 격이었다.

가게 안의 팽팽하다 못해 긴장감으로 터질 것 같은 공기를 가르며 리버가 외쳤다.


"잠깐만! 두 사람 정말 싸울 작정이에요?"


두 사람을 향해 던진 질문이었지만 루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대답은 토비에게서 나왔다.


"저 인간 여자가 만약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물러난다면 특별히 한 번 봐주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하게 더러운 가게에 피까지 뿌리긴 싫으니까."


리버는 억울한 심정을 담아 토비를 노려보았다.

현재 가게 바닥이 처참한 이유는 가게 주인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다.

정오쯤 방문했던 스스로를 깔끔하다고 여기는 무스와, 그 뒤에 찾아온 아돌프 때문이다.

당연히 여기서 그 아돌프는 토비였다.

리버는 자신이 가게의 위생에 태만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런 것을 주절댈 만큼 한가한 상황은 아니었다.


리버는 그동안 상인 생활로 갈고 닦은 설득의 기술이 훌륭한 것이었길 빌며 루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한 것'이라거나 혹은 '아돌프를 상대로 도망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는 등의 말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리버는 루나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언제부턴가 루나의 입술이 작게 달싹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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