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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quer_R

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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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9,415
추천수 :
82
글자수 :
474,693

작성
19.04.1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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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류 서사시#2

DUMMY

잼이 묻은 빵을 입에 문 세라스는, 뾰투룽한 표정으로 일기를 써나갔다. 어제는 너무 피곤했던 탓에 미처 못 쓴 내용을 떠올려가며 써야 했다. 하지만 기억나는 건 목숨을 걸고 달리고 마법을 쓴 하루였다. 제복도 대충 벗어둔 채, 지나치게 헐렁한 반소매에 빵가루가 묻지 않게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펜을 내려놓고 책을 덮은 건 비로소 모든 일을 끝내서였다.


운이 좋게 찾은 여관이 생각보다 시설이 나빴다. 침대는 고작 사람 한명이 눕는 게 전부일 정도로 작았고, 방은 자신의 방보다 작다는 사실이 충격적일 정도였다. 만약 그녀가 있는 방이 수리가 늦었더라면, 세라스는 도무지 못 자겠다고 했을 정도로 보수 상태도 엉망이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자신만 제대로 잠을 못 잔 것 같았다. 그녀의 언니는 왕국 기사단 시절, 여러 훈련을 거치며 이 정도는 괜찮다고 했다. 졸졸 따라다니는 레아는 야영하며 살아서,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도 잘만 잤다.


오히려 마력도 엄청 써댄 시오르는, 벌써 기력을 되찾아서는 자기 뒤에서 책을 보고 있는 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헝클어진 머리는 대충 말려서 뻣뻣이 솟아있다. 옷은 가디건만 벗은 채로 있었지만, 옷깃도 세우지 않고 대충 있다. 게다가 빵도 잘라서 먹는 게 아니라, 그냥 통째로 들어서 먹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무리 예의가 없다는 말을 듣는 그녀라도, 시오르의 이런 행동에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야, 너는 무슨 빵 한 번에 밀어 넣기 도전하니."

"천천히 씹으면 되지 않을까?"


그는 빵을 잠시 입에서 떼어놓고 말했다.


"최소한의 예절이라는 게 있잖아. 예절. 옆에 칼이 왜 있는데."

"주먹보다 작은데 괜찮을 것 같은데."

"안돼. 사람이 도구를 좀 쓰란 말이야. 하다못해 작게 잘라서 입에 물던가. 어, 그런다고 잼을 그렇게 찍으면 안 돼!"

"안돼?"


시오르는 잼에 빵을 찍어 먹으려다가 멈춰 섰다. 세라스는 속이 터질 듯이 답답했다. 얼굴 끝까지 열이 올라오면서 더욱 더워진 그녀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그를 흘겨봤다.


뭘 잘못했나 걱정하며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은, 한결같아서 기이했다. 다만 상당히 자유분방한 성격임에도 이런 예절은 비교적 잘 지키던 모습이 사라져서 신경 쓰였다.


"얼굴에 뭐 묻었어?"

"멍청함이 좀 많이 묻긴 했어."

"어?"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진짜 이게 무슨 꼴이야. 기껏 리든까지 갔더니, 대륙 횡단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 리든으로 간다니."

"하지만 시리아 지역이랑 밀렌 지역 모두 엉망이고, 황무지에선 아직도 누나가 싸우는 것 같으니...."


가만히 듣고 있던 세라스는 라흐벨을 누나라고 하는 게 싫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런 여자가 시오르의 누나가 되었단 말이냐? 그런 생각에 조금 더 목소리를 카랑카랑해졌다.


"어쨌든 널 데리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게 먼저야. 얼른 절차 밟고 간단한 검사만 받으면 분명 다시 리버스 가문으로서 인정받을 거야."

"그래도 난 지금도 기뻐. 드디어 가족을 만나서."

"나도 마찬가지야. 언니도 지금 겉으로는 엄청 침착해 보여도, 분명 속으론 엄청 기뻐할 거야."

"...그거 때문에 생각난 건데, 하나 물어봐도 될까?"


시오르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세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나르시아 누나는 겉으로 잘 안 드러내는 성격이야?"

"그건 잘 모르겠어. 사실 나도 걱정인 게, 요즘 언니가 무척 피곤한 것 같았거든. 귀족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보니 겉으로 드러내면 안 되는 일도 많고."

"역시 그거 때문일까...."

"얼른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좋을 텐데."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별다른 말 없이 문만 살짝 열린 것을 보고는, 시오르는 손을 들며 말했다.


"레아, 별일 없으니까 들어와도 돼."

"다들 있는 거지?"

"누나가 지금 소로그에서 칼립소 지역으로 가는 걸 알아보러 갔어. 테사르노 쪽에도 보고하러 갔고."

"바쁘시구나."


문을 닫고 들어온 레아는 조심스레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근데 뭐 하고 있던 거야? 책은 펼쳐두고, 빵도 다 안 먹었고."

"아, 그게. 이 내용이 좀 흥미로워서 먹으면서 보고 있었거든."

"나 참. 기왕이면 둘 중 하나를 먼저 끝내라니까."


책을 살핀 레아는 계약에 관한 내용을 읽고 있음을 알아챘다. 종복들에게서 도망치던 그때, 라흐벨과 맺은 계약을 신경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등 뒤에 새겨진 낙인도, 자신이 놓인 처지도, 잃어버린 과거도 괴로워하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보다 세라스 님도 식사하셨나요?"

"아니, 잠깐 일기 쓰느라 한두조각 남았어."

"말 나와서 말인데, 레아."

"응?"

"나눠 먹을래?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시오르는 자신이 먹던 빵을 내밀었다. 레아는 어찌해야 할까 세라스 눈치를 살폈다. 세라스는 무엇을 신경 쓰는지 알아차리고, 시오르가 들고 있던 빵을 가져갔다.


"이보세요. 시오르 씨. 순서가 잘못됐네요."

"어?"

"넌 아직 파문된 상태라, 엄밀히 말하면 신분은 평민이거든? 그리고, 이건 우리가 사서 널 준거라고."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던 시오르는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나 이해했다. 그렇기에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 얘가 얼마나 신경 쓰이겠어. 너희 둘은 친구니까 평소엔 괜찮을지 몰라도, 남들 앞에선 신분 같은 건 지켜줘야지."

"미안, 내가 어느 신분에 맞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영 안 와서."

"이제 보니 기차에서도 엄청 신경 쓰고 있었겠네. 아무튼 빵은 시오르랑 나눠 먹어도 돼."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이니까 알려주는거야. 얘 배려해주는 건 알겠지만, 다음부턴 이런 건 제대로 알고 해줘."

"세라스, 고마워."


시오르가 밝게 웃으며 대답하자, 세라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나도 이런 거 제대로 지키지 않는 부류니까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 그냥 신경 쓰여서 알려줬어. 우리끼리도 어느 정도는 괜찮지만, 다음부턴 조심해."


-----


식사를 마치고 일행이 바깥으로 나왔을 때, 마주한 나르시아의 표정은 어두웠다. 당당하게 나섰던 모습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추욱 늘어진 모습에 일행은 놀라고 말했다.


​"모두 미안해."


나르시아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소로그는 공격당한 마을에서 도망친 피난민과 발이 묶인 시민들이 엉망진창으로 얽혀서 엉망이다. 더군다나 근방의 귀족들과 대부호들이 경비 인력을 죄다 고용해버리면서 그들이 안전하게 이동하는 걸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자세한 내용을 말했지만, 구구절절한 변명은 없었다. 오히려 변명이라도 있었으면 할 정도로, 깔끔하게 거절당하고 실패한 것이다. 아무리 지금의 나투르 왕국의 개국공신이라도, 자신들이 영향력이 그리 크지 못함을 세라스가 말해서 그녀의 언니를 변호해줬다.


상업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전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해버린 것이다. 손톱 그만 물고 있으라는 듯이 세라스가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흐릿하게 남은 분노는 잔불처럼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그럼 걸어서 얼마만큼 걸릴까요?"


시오르는 나르시아를 보고 물었다.


"걸어서 7일 정도일 테니까 스물두 번째 날 정도면 될 거야. 최대한 빨리 칼립소 지역 진입해서, 마차 타고 느긋하게 리든 도착할 거고. 레아, 강화마법을 좀 부탁해도 될까?"

"아, 네! 마력도 많이 회복해뒀어요."

"면목 없네. 우리가 도움을 받아가면서까지 가야 한다니."

"괜찮아요. 아침 내내 이리저리 다니셨을 텐데."


한숨을 푹 쉬는 나르시아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렇게 자신 있었는데, 보는 사람이 미안할 만큼 주눅 든 게 드러났다. 시오르는 나르시아의 손을 잡았다.


"노력했는데 안 된 거잖아요.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고요."

"다들 고맙네."


나르시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으나, 시선을 의식하고 금방 표정을 고쳤다.


"우리가 할 일은, 동쪽으로 쭉 뚫고 가는 거야."

"뚫고 간다니?"

"타락한 정령에 변질된 짐승. 언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으니 말이야. 그거 때문에 일부 소도시는 아예 문도 걸어 잠그고 버티는 중이야."

"왕국군은?"

"황무지가 막혔는데 얼마나 빨리 올지 걱정이야. 그리고 그녀에 대해 전달해뒀으니, 한동안은 섣불리 끼어들지도 못할거고."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너무 많았다. 그 사실은 모두가 이해하기에, 나르시아가 더 설명하지 않고 가자고 했을 때 아무런 말 없이 움직였다.


밤이라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소로그의 모습은, 보석이 빠진 목걸이 같았다. 화려한 빛이 사라지니 오히려 아침에 보이는 몰골은 비참했다. 상점들은 문을 닫고 특정 장소에만 사람들이 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가끔은 싸우는 모습도 보이곤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감안해도 분위기가 너무 안 좋네요."

"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남쪽의 아인국과도 사이가 안 좋은 탓일 거야. 장사라는 게 그런 거잖아."

"아인국이라...."

"시온이 아무리 궁금해도 아인국은 무리일 거야. 서로 트레드쉬 강 근처에서만 만나기로 되어 있으니까."

"아쉽네. 궁금했는데."


내심 아쉬워하는 시오르의 어깨를 레아가 두드렸다.


다급히 소로그를 나선 일행은 병사들의 걱정어린 시선을 뒤로했다. 레아의 강화 마법이 발동하면서, 일행의 달리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거기에 나르시아는 마력으로 일행을 빠르게 밀어내며, 먼 거리를 도약하듯이 움직였다.


"와아앗!"


순간 놀란 레아는 입을 열었지만, 부끄러웠는지 입을 다급히 가렸다. 반면 시오르는 이동방식을 보고 신기함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 이동하는 법도 있구나."

"그냥 단순히 투석기 쏘듯이 밀어내는 거라, 우리가 알아서 균형을 잡아야 해서 힘들어. 언니도 그닥 숙달된 편이 아니라고 걱정하는데...."

"하지만 강화 마법이 있으면 어렵지 않아. 게다가 실수하더라도 다칠 가능성도 줄어드니까."


나르시아의 말에 머쓱함을 느끼는 레아였다. 사실 시오르의 칭찬도 바란 그녀였지만, 그가 지금 나르시아가 쓰는 마법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걸 알았다. 내심 아쉽지만, 그것으로 만족하며 레아는 정신을 집중했다.


날아가듯 착지한 그들은 다시, 달려가던 그대로 앞으로 뛰어올랐다. 라흐벨의 방어막은 기한을 다하여 사라졌지만, 종복들이 없으니 괜찮다. 그렇기에 모두가 안심하고 나아갔다. 분명 누군가 길을 막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몇몇은 자신이 있었다. 그것이 가라앉지 않는 이상, 그들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가의말

공지드렸던 대로, 다음 주는 휴재입니다.

친구들과 추억 쌓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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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4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70 잘못된 시작들#3 20.01.23 3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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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잘못된 시작들#1 20.01.09 42 0 15쪽
67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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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갈라지는 비극#1 19.11.21 3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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