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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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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킹
작품등록일 :
2022.04.05 17:26
최근연재일 :
2023.02.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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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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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9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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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화 크리스탐

DUMMY

순수한 마력의 결정체 페네스타를 손에 넣음과 동시에 미넬리아를 정복했고 걸리적거리는 해적들까지 소탕하며 목적을 향해 나아갈 길을 성공적으로 다졌지만 어째서인지 휘나의 죽음을 지켜본 뒤로 버드네이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이따금 나타나는 과거의 환영은 류미를 괴롭혔다.


류미의 반복된 부름은 메아리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를 찾고 도서관 안쪽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어떠한 작은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켄티넨탈을 불러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그는 늘 그렇듯 이빨을 드러내놓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하... 넌 정말 도움이 안 된다니깐.”


가슴 정중앙에 구멍이라도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공허했다. 공허한 그녀의 가슴속으로 서늘한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가시 성채 안에서 폴리와 숨바꼭질을 하다 길을 잃었었던 그때처럼 암담하고 겁이 났으며 한편으로는 화도 났다.

류미는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 류미는 버드네이즈의 통제와 감시하에 있었다. 분명 몸은 바깥에 있었지만 속은 꽉 막힌 새장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늘 느꼈었다.


스스로 원해서가 아닌 강제적으로 발을 들여 시작한 모험이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현 생활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고 열의를 가지고 임하고 있었으며 더 오랜 시간 영속되기를 열망하고 있다는 걸 류미 본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고 그 목적지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면 그가 없더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의지가 박약해 위기에 봉착하면 힘없이 포기해버리던 풋내기 마법사 시절이었다면 단연코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무한한 힘이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고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며 따르는 병사들과 검은책 속에 깃든 무한한 군대가 있었다.


이젠 자신의 의지대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결심이 서자 흐릿해 보이지 않았던 길이 아주 또렷하게 보였고 금방이라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류미는 창틀에서 내려와 옷장으로 걸어갔다. 옷걸이에 걸린 수많은 로브 중 소매가 길고 넓으면서 코까지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후드가 크게 제작된 검은색 로브를 꺼내 입었다.


하의가 무릎 위까지 올라와 남성이 입는 아주 큰 후드티를 입은 것 같았고 잘 세탁하고 말려서 그런지 푸근했고 꽃향기가 나 자꾸만 로브를 움켜쥐고 냄새를 맡게 됐다.


굽이 없는 앵클부츠를 꺼내 침대에 앉아 신던 중 무심코 올려본 책상 위에 눈에 띄는 물건이 올려져 있는 게 보였다. 그곳엔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붉은색 하트 머리핀이 있었다.


한때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었던 에이든이 류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했던 머리 핀이었다.


“내가 아직 이걸 가지고 있었구나.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류미는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핀을 집어 들고 머리에 꽂아 거울을 바라보았다.


“...나쁘지 않네”


“딸랑~”


기러기 한 쌍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황동 문종의 잔잔한 종소리가 가게 안에 울리자 얼굴에 주근깨가 유독 많은 중년의 여성이 원예 가위를 들고 황급히 달려 나와 환하게 웃으며 바일라와 재커리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손님. 무슨 꽃을 찾으세요?”


“꽃이 아니라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요 혹시 아로니스님 맞으세요?”


그녀는 경계의 눈빛으로 바일라와 재커리를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 누구시죠? 제 이름은 어떻게?”


“안녕하세요. 혹시 시즈님을 아시나요? 저흰 시즈님이 보내서 왔는데.”


아로니스는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고 얼굴빛이 잿빛으로 변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손에 쥐고 있던 원예 가위를 움켜쥐어 앞으로 내밀고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위협을 했다.


“그런 사람 몰라요. 빨리 나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항구 투사들을 부르겠어요!”


“아... 뭔가 오해가...”


바일라가 한 발자국 내딛자 그녀는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제발 절 좀 그냥 내버려 두실 수는 없나요!?”


바일라는 손을 내저으며 겁에 질려 잔뜩 흥분한 아로니스를 진정시켰다.


“아로니스님 저희는 해코지하려거나 데리러 온 게 아니에요.”


아로니스는 울먹거리며 조금 진정된 듯 원예 가위를 살짝 내리며 물었다.


“그럼 왜 절 찾아오신 거죠?”


“저 실은 시즈님이 돌아가셨어요.”


“네?”


바일라는 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그녀에게 말해주었고 아로니스는 기쁨이나 슬픔 중 어떠한 것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랬군요. 시즈님을 만나셨다면 알겠지만 전 그분과 전혀 친분이 없어요. 그런데 설마 그 이야기를 전하러 일부러 이 먼 곳까지 오신 것 같지는 않고...”


바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로니스는 잠시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작은 탁자와 의자가 있는 안쪽으로 안내했고 그녀는 문으로 걸어가 바깥을 살핀 후 영업하지 않는다는 팻말을 돌려놓은 뒤 가게 안에 달린 작은 주방으로 가 마실 물과 삶은 달걀 몇 개를 내왔다.


“대접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두 분 몰골을 보아하니 딱하고 안돼 보여 내 온 거니 불평하시지 마시고 드세요.”


처음엔 서로 눈치를 보며 혹시나 이 달걀도 왕국군이 풀어 놓은 음식이 아닐까 경계했지만 꿈의 섬 투사들과 주민들이 멀쩡한 걸 오면서 본 두 사람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뻗어 허겁지겁 입안에 쑤셔 넣었고 목이 막힐 때까지 계속해서 집어넣었다.


껍질이 까져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껍질째 먹어 치웠을지도 몰랐다.


1분도 채 지자지 않아 달걀을 모두 먹어 치운 두 사람은 놀란 듯 입을 벌리고 바라보는 아로니스를 향해 다람쥐 볼처럼 빵빵해진 입으로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물을 들이켜 식도를 틀어막고 있는 달걀을 내려보냈다.


“그어어~ 앗...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바일라의 트름 덕분에 경계심으로 중무장하고 있던 아로니스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고 꽃처럼 활짝 피며 왼쪽 볼에 숨어 있던 보조개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바일라는 작전이 성공하자 본격적으로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아로니스의 얼굴이 다시 굳어지기는 했지만, 경계하거나 겁을 먹은 표정은 아니었고 슬퍼 보였다.


길게 숨을 내뱉은 아로니스는 오렌지처럼 주황색을 띠고 있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크리스탐에 관해 얘기해 주었다.


“그 사람과는 18살에 처음 만났어요. 당시 전 아쉰베일 북부에 위치한 파랑새 골짜기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고 약초 가게를 운영하시던 부모님을 주말마다 도와드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저희 가게를 이용하던 손님의 아들이었죠. 손이 큰 단골손님의 아들이 대신해서 오더라도 부모님은 그를 그의 아버지에게 그랬듯이 정중하게 모셨어요. 그렇게 주말마다 한번 두 번 보다가 그 해가 가기 전 전 그에게 청혼을 받았고 결혼하게 됐죠. 불행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지도 모른 채로 말이에요.”


아로니스가 역적 크리스탐의 부인이었다는 것에 바일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루시아공주와 결혼을 할 당시에도 그와 함께 살고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졌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18살짜리 소녀가 뭘 알았겠어요. 그냥 키도 훤칠하고 잘생겼으면서 부자고 저한테 잘해주며 달콤한 말로 절 유혹하니 그냥 홀라당 넘어갔죠. 딱 1년 동안은 세상은 그 누구 못지않게 행복했어요. 산해진미로 가득한 식탁과 몸을 치장할 금은보화도 넘쳐났죠. 질리지 않게 하루에 하나씩 바꿔 찰 수 있을 정도였으니 상상이 가시죠?”


“그런데 왜 사람들에겐 두 분의 결혼식이 알려지지 않았죠?”


“시아버지인 테오리스의 반대가 무척 심했거든요. 집안 자체의 균형이 맞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크리스탐은 화려한 결혼식 대신 행복을 약속했고 전 철석같이 믿었어요.”


“아... 그랬군요.”


“꿈만 같았던 시간이 사라지게 된 건 어느 날 그 사람이 가지고 온 한 권의 책 때문이었어요.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남긴 가문의 가보였죠. 남편이 그 가보를 가까이하게 되면서부터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어요. 시아버지인 테오리스와는 반대로 아랫사람들의 크고 작은 실수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웃으며 넘어가던 그가 언성을 높여 화를 내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작은 생물 하나도 그 목숨을 귀하게 여겼던 과거와는 달리 기르던 가축을 산채로 잔인하게 불태워 하늘에 제를 지내는 이상한 행위를 하는 등 생전의 테오리스가 하던 행동을 점점 닮아갔죠.”


어느새 자신이 겪었던 과거 이야기에 흠뻑 젖어 든 아로니스는 글썽거렸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바일라는 의자를 들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아주며 위로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후...”


“힘드시면 조금 쉬었다가 하셔도 돼요.”


아로니스는 고개를 저었고 누구에게 한 번도 제대로 하소연하지 못해 응어리져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불행한 과거를 털어내고자 했다.


“그래서 그이를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모하게 만든 원인이 그 가보라 생각한 저는 그이가 잠시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간 틈을 타 책을 다락방 한쪽 구석에 숨겼어요. 그때 완전히 불태워 버렸어야 했는데 차마 사랑하는 그이의 집안 가보를 태워버릴 수 없겠더라고요. 며칠뒤 그이가 돌아왔고 가보가 없어진 걸 알자 하인과 하녀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그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시작했고 귀를 찢는 비명이 삼일 밤낮 이어졌어요. 몇몇 하인들이 고문을 견디다 못해 죽어 나갔죠. 저 때문에 말이에요. 전 더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그이에게 자백했고 그날 처음으로 손찌검을 당했죠. 성격이 변했다고는 해도 저에겐 여전히 상냥했었거든요.”


아로니스는 왼쪽 뺨을 어루만지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의 양도 더 늘어났다.


“손찌검을 당할 당시엔 그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폭력은 멈추지 않았죠.”


“아이라고요!? 그에게 딸이 있는 건 알고 있는데.”


“아마 그 아이는 한참 후에 재혼한 여자의 아이 일 거에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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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179화 지도자(3) 23.02.26 16 0 17쪽
178 178화 지도자(2) 23.02.24 19 0 12쪽
177 177화 지도자(1) 23.02.21 24 0 12쪽
176 176화 반격(2) 23.02.20 24 0 10쪽
175 175화 반격(1) 23.02.19 21 0 11쪽
174 174화 기습(6) 23.02.17 27 0 12쪽
173 173화 기습(5) 23.02.14 23 0 11쪽
172 172화 기습(4) 23.02.13 23 0 11쪽
171 171화 전쟁의 서막(2) 23.02.12 23 0 11쪽
170 170화 전쟁의 서막(1) 23.02.10 24 0 11쪽
169 169화 기습(3) 23.02.07 26 0 12쪽
168 168화 기습(2) 23.02.06 23 0 11쪽
167 167화 기습(1) 23.02.06 23 0 11쪽
166 166화 연합(10) 23.02.04 24 0 12쪽
165 165화 연합(9) 23.01.31 24 0 11쪽
164 164화 연합(8) 23.01.30 38 0 12쪽
163 163화 연합(7) 23.01.29 25 0 11쪽
162 162화 연합(6) 23.01.27 24 0 11쪽
161 161화 연합(5) 23.01.24 29 0 10쪽
160 160화 연합(4) 23.01.23 30 0 12쪽
159 159화 연합(3) 23.01.22 32 0 12쪽
158 158화 대모 모구라 23.01.21 31 0 12쪽
157 157화 연합(2) 23.01.17 32 0 10쪽
156 156화 연합(1) 23.01.16 32 0 12쪽
155 155화 류미(1) 23.01.16 31 0 12쪽
154 154화 스피제리(3) 23.01.13 31 0 11쪽
153 153화 스피제리(2) 23.01.11 34 0 11쪽
152 152화 스피제리(1) 23.01.09 36 0 11쪽
» 151화 크리스탐 23.01.09 3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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