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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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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킹
작품등록일 :
2022.04.05 17:26
최근연재일 :
2023.02.26 12:33
연재수 :
1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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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글자수 :
95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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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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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63화 연합(7)

DUMMY

모구라가 떠나가고 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음... 잘 지내셨어요?”


어렵게 땐 한 마디였지만, 류미는 머리말과 서론은 제쳐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길드장님의 딸이란 걸 언제 아셨어요?”


류미의 싸늘한 선제공격에 데일러스는 정신이 아득하고 어지러웠다. 입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착 달라붙어 아무러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애꿎은 물잔만 만지작거렸고 그러다 결국 컵은 손아귀를 빠져나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맑은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쨍그랑!”


“아! 미안해요.”


일부러 대화를 회피하고자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건 류미의 화만 돋우는 행동이 되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는지... 후... 물었어요. 어려운 질문인가요?”


재회의 순간부터 고장 난 초침처럼 삐걱거리며 신경을 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분위기는 불편하게 흘러갔다.


데일러스는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렸고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수천 번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 그럼에도 결론을 낸 적이 없었고 고작 한다는 게 망설이다 컵이나 깨는 짓이었다.


스스로도 한심하다 생각했다.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뒤엉켜 있었지만 가장 크고 많이 느끼는 건 미안함이었다. 그래서 목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을 내뱉었다.


“미안하구나.”


21년 만에 내뱉은 말이 고작 사과라니 류미는 실망했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말했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세요.”


“널 훈련하며 의심했고 네가 드롱과 떠나던 날 거의 확신했지. 그리고 게일 후작님이 왕국으로 끌려가던 날 확인했단다.”


데일러스는 가방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루시아의 일기장을 내밀었다.


“네 엄마의 일기장이다.”


소녀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조금은 유치한 낡은 일기장이었다. 하트모양의 스티커와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가 덕지덕지 표지를 뒤덮고 있었고 데일러스와 루시아 두 이름 사이에는 하트가 있었고 그 아래엔 류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숫자 4개를 조합해 열 수 있는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류미는 이제야 자신에게 친부모가 따로 있었다는 게 실감이 났는지 물끄러미 일기장을 매만지며 내려다보았다.


“비밀번호는 네가 태어난 일이란다. 1107.”


류미는 첫 장부터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새기려 눈을 부릅뜨고 꼼꼼하게 읽어내려감과 동시에 질문도 함께 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데일러스는 류미의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 될 수 있게 되도록 자세하게 적절한 묘사를 섞어가며 옆에 앉아 그녀의 물음에 답해 줌과 동시에 자신도 마음껏 옛 추억에 빠져보았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었지만 류미와 함께 하니 견딜 만했다.


시간은 세차게 흘러가는 물살만큼 빠르게 흘러가 어느덧 날이 밝았고 에이든과 탈리가 잠에서 깨 허기를 채운 후 아스칼리의 안내를 받아 드라코니아를 실컷 구경하고 돌아왔을 때도 둘은 침대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류미야. 게일님을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그분은 널 내친 게 아니라 크리스탐의 독기 가득한 눈을 피해 널 숨기기 위해 다카님에게 보낸 거란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쉽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 쉽게 치유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제때 치유하지 못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곯는다는 것 모르세요? 제가 그자의 밑에서 자라며 어떤 수모를 겪으면서 컸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세요.”


에이든은 멀찍이 탈리와 앉아 있다가 품속에 손을 넣어 주섬주섬 무언가를 찾아 챙겨 류미의 앞으로 걸어와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구겨진 편지는 오랫동안 그의 품에 있었는지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밀랍 인장도 깨져 있었다.


“게일님이 네게 보낸 마지막 편지야. 널 만나게 되면 전해달라고 하셨는데 오늘에서야 주게 됐네.”


류미는 별 감흥 없이 편지를 받아 들었다. 밀랍은 마치 류미의 손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손에 닿자마자 부서져 그녀의 무릎과 바닥에 떨어졌다.


봉투 안에는 편지와 함께 사진 한 장이 동봉되어 있었다. 류미는 편지를 펼쳐 읽어 보았다.


-은빛의 아름답고 눈부신 눈이 성채 전체를 하얗게 뒤덮었을 때 눈을 타고 내게 내려온 내 딸 류미에게. 지금쯤이면 한 송이의 향기롭고 어여쁜 꽃이 되어있겠구나. 세상의 허락하에 내 욕심대로 널 키웠더라면 타이탄 왕국이 자랑스러워할 마법사로 자라 가문의 영광을 드높였겠지만 야속한 세상이 그걸 허락하지 않음에 마음이 찢어지는구나. 그만큼 넌 내게 있어 가장 아픈 손가락이란다. 네겐 한낱 늘어버린 늙은이의 변명 따위 정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매일 밤 내 방문 앞을 기웃거리는 첩자들 때문에 행여나 네게 해가 갈까 봐 마음 놓고 널 안거나 이름 한번 제대로 불러 보지 못해 한으로 남았단다. 비록 내 기구한 운명과 업보 때문에 쓰라린 상실과 비애의 멍을 네 가슴에 새겨야만 했지만 내 가슴 깊이 널 사랑했음을 작게나마 기억해주길 바라마. 부디 이 못난 아비처럼 어둡고 외로운 음지에 살지 말고 늘 세네리엘의 빛처럼 밝은 곳에서 널 사랑해주는 사람들 곁에서 행복하게 살길 기원할게. 성질 더럽고 고집불통의 못난 아빠 게일.-


류미는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사진을 꺼내 보았고 가슴이 미어졌다. 사진 속엔 버드나무 아래에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다.


엄마 다이아나는 아직 젖먹이인 폴리를 품에 얼굴이 보이도록 안고 있었고 류미는 아빠의 목마를 타고 게일의 머리를 붙든 채 버드나무 아래에서 다 같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데일러스의 가방에서 나온 로켓 목걸이 속 자신과 똑같이 생긴 친엄마의 사진에 갇혀 있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고 류미는 오열했다.


- - - - -


류미는 거의 실신 직전까지 울다 지쳐 쓰러졌고 잠이 들었다. 종일 한 끼도 먹지 못했지만, 행복한 감정으로 마음이 풍족했고 든든했다.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길 소원하고 희망하지만, 그간 소중한 인연을 몇 번이나 잃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리되지 않으리라는 걸 이제는 잘 알았다.


류미는 퉁퉁 부은 눈으로 방안을 둘러 보았다. 세 남자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작 나눠야 할 중요한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잠든 사이 다 가버린 걸까?


시끌벅적하던 방안이 적막으로 채워지자 쓸쓸함이 저 안쪽 깊숙한 곳에서 또 다시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어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위이이이잉~”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에 류미는 귀를 기울여 집중했다.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류미는 손거울을 들어 머리 상태를 확인했고 빗을 집어 들고 재빨리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눈물로 얼굴을 씻어낸 탓에 잃어버린 군주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조금이나마 되찾고자 서둘러 화장을 준비했다.


눈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눈동자가 겨우보이는 정도니 포기하고 남은 부분이라도 살리고자 눈꼽을 떼어내고 번들거리는 유분기를 닦아낸 다음 가볍게 분과 립밤을 얼굴에 찍어 발랐다.


급하게 찍어 바르다가 결국 로브의 끝자락에 화장품이 걸려 바닥으로 떨어졌고 박살이 났다. 류미의 마음도 함께 깨졌다.


“아... 안돼! 미넬리아에서 공수해 온 내 화장품이...!”


대마법사인 쇼틀에게 나중에 하나 더 사다 달라고 하면 되니 서둘러 눈 화장까지 끝냈다. 이젠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서둘러 화장대를 정리하고 류미는 허물어져 형태마저 사라진 창가로 달려가 섰고 마지막 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순간에 맞춰 목 뒤로 손을 넣은 뒤 머리카락을 활짝 펼쳤고 마법을 부려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멋들어지게 휘날렸고 잡지 모델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됨과 동시에 군주로서의 위엄을 보여줬을 거라는 생각에 스스로 매우 흡족해했다.


류미는 사색에 잠겨 듣지 못한 척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화룡점정.


“류미 사령관. 잘 잤어?”


류미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 하늘 바다 위를 수놓은 무지개처럼 머리카락이 펼쳐졌다.


하지만 에이든의 장난 섞인 인사와 반가운 얼굴들의 등장에 무게를 잘 잡아가던 류미는 와르르 무너졌고 입가에는 씰룩쌜룩 미소가 맺혔다.


웃음을 참고 엄숙한 표정과 자세로 일행들을 맞이하려 했지만, 도무지 한번 발동된 웃음은 진정이 되질 않았고 결국 터져버린 류미는 치아가 훤히 들어날 정도로 웃으며 일행들을 맞이했다.


그녀의 미소는 전염병처럼 번져나가 에이든과 탈리도 그에 화답했고 마음의 짐 때문에 우울해했던 데일러스도 오랜만에 얼굴에 꽃이 피었다.


영문을 모르는 타르가르는 멀뚱멀뚱 웃고 있는 사람들을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 - - - -


미넬리아에 있던 장군들까지 전부 모인 후 드디어 연합군의 첫 회의가 시작됐다.


그간 병력과 식량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부분이 류미의 군단이 합류하며 해결되자 머릿속에서 빙빙 돌며 입 밖으로 나가길 고대하던 작전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쟁하듯 서로가 생각한 작전들을 내놓았다.


빛나는 금빛 방어구에 빛이 서려 번쩍거리는 에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모두 훌륭한 작전들이군요. 허나 가장 급선무는 썬송과 투란을 공격해 오크들을 해방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에 맞게 바할랜과 애시스를 기점으로 모든 작전을 실행함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이 그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트라노스는 턱을 딱딱거리며 반대했다.


“무슨 소리야. 평화의 항구를 점령해 놈들의 허리부터 꺾어 버려야지. 아니면 함대를 이끌고 돌아가 페릴던과 함께 글리아 섬을 동시 타격해야지. 그곳이 놈들의 중심 아닌가!?”


“그쪽의 함대는 대단할 정도로 잘 만들었다고는 하나 해적들이 타던 함선들은 대부분 노후화돼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겁니다. 그리고 저쪽의 함대 규모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무턱대고 나섰다가 함대를 모두 잃게 되면 미넬리아를 통째로 잃을 수도 있소.”


짤막한 다리를 꼰 임프 대마법사 쇼틀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다 콧방귀를 꼈다.


“두 번의 실수는 없소!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미넬리아는 굳건하게 버텨낼 거요!”


도비쿠스가 맞받아쳤다.


“그건 다짐일 뿐 전쟁은 호언장담하며 허세를 부리게 되면 큰코다치기 마련입니다. 함대는 썬송과 투란, 멜브론까지 진격한 그때 상황을 보고 움직여도 충분합니다.”


“흥! 인간놈들은 물러 터졌군. 전쟁에선 때론 과감한 결정을 해야 하는 거다.”


에이든은 트라노스의 도발에 맞대응하지 않았다.


“결정은 사령관님이 하시겠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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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179화 지도자(3) 23.02.26 16 0 17쪽
178 178화 지도자(2) 23.02.24 19 0 12쪽
177 177화 지도자(1) 23.02.21 24 0 12쪽
176 176화 반격(2) 23.02.20 24 0 10쪽
175 175화 반격(1) 23.02.19 21 0 11쪽
174 174화 기습(6) 23.02.17 27 0 12쪽
173 173화 기습(5) 23.02.14 23 0 11쪽
172 172화 기습(4) 23.02.13 23 0 11쪽
171 171화 전쟁의 서막(2) 23.02.12 23 0 11쪽
170 170화 전쟁의 서막(1) 23.02.10 24 0 11쪽
169 169화 기습(3) 23.02.07 26 0 12쪽
168 168화 기습(2) 23.02.06 23 0 11쪽
167 167화 기습(1) 23.02.06 23 0 11쪽
166 166화 연합(10) 23.02.04 24 0 12쪽
165 165화 연합(9) 23.01.31 24 0 11쪽
164 164화 연합(8) 23.01.30 38 0 12쪽
» 163화 연합(7) 23.01.29 25 0 11쪽
162 162화 연합(6) 23.01.27 24 0 11쪽
161 161화 연합(5) 23.01.24 29 0 10쪽
160 160화 연합(4) 23.01.23 30 0 12쪽
159 159화 연합(3) 23.01.22 32 0 12쪽
158 158화 대모 모구라 23.01.21 31 0 12쪽
157 157화 연합(2) 23.01.17 32 0 10쪽
156 156화 연합(1) 23.01.16 32 0 12쪽
155 155화 류미(1) 23.01.16 31 0 12쪽
154 154화 스피제리(3) 23.01.13 31 0 11쪽
153 153화 스피제리(2) 23.01.11 34 0 11쪽
152 152화 스피제리(1) 23.01.09 36 0 11쪽
151 151화 크리스탐 23.01.09 3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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