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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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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킹
작품등록일 :
2022.04.05 17:26
최근연재일 :
2023.02.26 12:33
연재수 :
1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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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글자수 :
95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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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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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5화 류미(1)

DUMMY

재커리는 아로니스의 꽃집에서 사온 꽃다발을 내밀었다. 류미는 수줍게 핀 흰튤립을 예쁘게 포장한 꽃다발을 받아들고 싱그러운 꽃향기를 맡은뒤 무릎 위에 내려 놓았고 재커리는 가방에서 자물쇠가 달린 낡은 녹색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장 치고는 굵기가 사전과 비슷했다. 그는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열심히 굴려 1107의 숫자를 조합해 열어 류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이것도요.”


겉표지에는 낡아 헤진 강아지 스티커가 안쓰럽게 붙어 있었고 일기장을 펼치자 바일라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바일라님의 일기장이에요. 바일라님의 시신을 수습하고 유일하게 남은 유품이죠. 제가 가지고 있어봤자 쓸모도 없으니 류미님에게 드리고자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저라고 이게 필요가 있겠어요? 다시 가져가서 태워버리던지 땅에 박힌 관을 꺼내 다시 넣어서 묻어주세요.”


“제가 바일라님이었다면 류미님에게 드렸을 거예요. 그럼 전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류미는 재커리가 나가고도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바일라의 일기장을 내려다만 볼 뿐 펼쳐보지 못하고 겉표지만 만지작거렸다. 사실 조금 두려웠다.


해적의 섬 해변에서 그녀는 대체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고 팔을 끌어 자신의 심장에 가져다 대려 했는지 말이다.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렇게 고민을 하다 어느덧 세네리엘이 물러나고 에리자엘의 희미한 빛이 창가를 넘어 방안으로 스멀스멀 들어와 내려앉았다.


결심이 선 류미는 그녀의 일기장을 들고 발코니로 나가 무지개색 파라솔 아래에 있는 썬베드에 누웠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일기장을 펼쳐 읽어나갔다.


처음엔 여느 일기장과 마찬가지로 시시콜콜한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들로 시작했다. 모험하며 만난 몬스터의 정보가 적혀 있었고 사고 싶지만, 가격이 비싸 사지 못한 활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얼마나 그 무기가 가지고 싶었는지 ‘널 가지고 말겠어!’라는 귀여운 말투와 성난 곰돌이 케릭터가 그 페이지 전체에 도배되어 있었다.


그 뒤로는 스피제리와 처음 손을 잡은 이야기와 키스를 한 날 그리고... 기분이 확 상한 류미는 책장을 뭉텅이로 잡고 넘겨 버렸다.


그리고 류미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동공이 확장되고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앉아 집중해서 읽었다.


-류미라는 새로운 신입 길드원이 들어왔다. 나이는 20살 수습 마법사 수준이지만 놀라운 소환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녀가 소환한 괴물 때문에 다리에 큰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멋진 신입이 들어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류미님을 볼 때마다 자꾸만 루시아 공주님의 얼굴을 떠오는 건 왜일까? 그냥 단순히 닮아서일까? 그 둔하기 짝이 없는 데일러스도 알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바일라가 알려주려 했던 이야기가 이건가? 루시아 공주라... 교과서에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름인데.”


-류미님이 떠나고 난 뒤 데일러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도 류미님이 루시아 공주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시 성채로 가 게일 후작을 구해내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위튼데일로 간다고 했다. 그를 혼자 보낼 수가 없어서 함께 가기로 했는데 잠시 방심한 틈을 타 혼자 가버려 따라가지 못했다. 길드는 당분간 발데라비노가 임시 길드장이 돼서 길드원들을 보호하고 이끌기로 했고 난 데일러스의 부탁대로 그 녀석의 친딸인 류미님을 보호하러 로디네스 숲으로 향하기로 했다. 부디 데일러스가 무사히 돌아오길.-


“데일러스님이... 내 친아버지라고!? 이게 맞아? 그리고 루시아 공주라는 분이 내 친어머니라니...”


-류미님을 지키지 못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류미님은 털끝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신이 없는걸로 보아 살아 있는 건 분명한데 어디로 간 걸까? 데일러스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지?-


-결국 류미님을 찾지 못했고 길드도 왕국군에 의해 공중분해 당해버리고 말았다. 데일러스에게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이 담긴 쪽지를 그에게 남기기 위해 그와 나만의 비밀 장소인 초대 길드장이었던 로렐로의 포도밭에 묻어두고 드롱님과 난 길드원들을 구출해 내기 위해 새로운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탈리라는 소년과 함께 글리아 섬으로 간다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끊어져 있었고 탈리라는 아이의 정체는 에이든과 함께 고르곤의 숲에서 구해준 지나였으며 여자아이가 아닌 남자아이에 바할랜 피틴 로산후작의 외동아들이라고 했다.


류미가 아는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은 류미는 한동안 일기장을 펼쳐둔 채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았다.


왜 게일 후작의 손에 길러져야 했고 친어머니인 루시아 공주는 왜 자신을 버렸는지 혼란스러웠다. 뭔가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몸에서 열이 났고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며 심장이 기분 나쁘게 뛰었다.


모든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대륙 어딘가에 있을 데일러스를 만나야 했다.


류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함선을 타고 미넬리아로 건너간 다음 대마법사 쇼틀이 열어둔 차원문을 통해 곧장 파퀀터스 사원으로 복귀했고 아스칼리를 시켜 바일라의 편지가 묻혀 있다는 멜브론으로 파견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시는 거겠죠?”


“응. 밭에 숨겨져 있다고 하니 잘 찾아봐. 정 찾기 힘들 것 같으면 포도밭 주인의 목을 따서 물어보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 늙어빠진 퇴물이라고는 하지만 전 길드장을 지냈으니 조심하고.”


“늦어도 일주일 뒤 오전 중으로 보실 수 있게 조치하겠습니다.”


아스칼리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감을 드러냈고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빠르게 방을 빠져 나갔다.


일주일 후 그동안 미뤄져 왔던 의회 회의가 사원에서 열렸다. 중요 안건이라면 대륙으로의 진출 시기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휴식기 동안 식량과 공성 무기를 충분히 준비해 둔 상태였고 사기가 하늘 바다를 찌르고 있었으며 계절도 크게 무덥지 않고 전쟁을 하기에는 적절했다.


하지만 준비가 길어지고 회의가 미뤄질수록 글런드 대족장 트라노스는 회의장에 들어서자마자 안절부절하며 대놓고 불만감을 표출했다.


류미가 도착하고 회의가 시작됨과 동시에 트라노스는 기다렸다는 듯 옆으로 나와 류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주인님. 저희 부족은 전쟁을 다시 시작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지요. 동물을 사냥하는 것만으로는 이 욕구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빨리 육신을 베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밤에 어둠을 뚫고 사냥을 나가고는 합니다.”


글런드족의 뇌는 아주 작으면서도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어 오직 전투만을 하기 위해 불의 군대에 의해 벼려지고 특화된 종족이었다.


전쟁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그들이기에 류미는 그 마음을 백번 이해했다. 리자드도 글런드족처럼 호전적이었고 사이클롭스들도 본능을 깨워줌으로 인해 굉장히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그랬기에 류미와 버드네이즈에겐 이들이 필요했었다. 다른 종족들도 말을 하지 않아 그렇지 마음만큼은 글런드족과 같은 생각이라는 걸 류미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는 점 때문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류미에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었고 아스칼리는 아직 소식이 없었다.


이번엔 트라노스의 바로 옆에 서 있던 렉스크가 한 발자국 옆으로 나와 말했다.


“이미 항구 내에는 우리 군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퍼져 있을 겁니다. 그들이 준비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그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한마디씩 꺼내기 시작했고 곧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저들이 전쟁을 열망하는 건 이해하지만 모든 군을 통제하고 통솔하는 건 류미였다.


의회 구성원들의 어리광을 받아주거나 들어줄 필요는 없었다. 류미에겐 목적을 이루는 것도 중요했지만 수수께끼를 풀어줄 데일러스의 안전도 중요했다.


그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평화의 항구는 해적들과는 상대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물론 미넬리아를 최초로 함락시키는 공적을 올리기는 했지만 그건 사실 천운이 따라주어 가능했던 것이었다.


항구의 주 방어군이 해적들인 건 맞지만 그곳은 유명 모험가들의 휴식처이자 왕국군을 피해 대피한 최후의 방어선인 셈이었다.


그 벌집을 제거하겠다고 먼저 소매를 걷고 나설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왕국군이 친 후를 노리는 것이 가장 적절했다.


류미는 손을 뻗어 소란스러운 장내를 진정시켰고 의회는 입을 다물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류미를 올려다보았다.


“너희들의 마음을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나 역시 마찬가지로 빨리 뜻한 바를 이루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고. 하지만 아스칼리가 돌아와야 우리의 일을 시작할 수 있어. 늦어도 오늘까지는 온다고 했으니 기다려.”


하지만 의회 구성원들은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도 컸는지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얼굴에 여실히 불만이 드러났다.


여태껏 류미의 의지대로 잘 따라와 주었던 벨라스코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인님. 무엇을 걱정하시며 기다리시는 건지요. 저희는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모두가 류미를 올려다보았다.


류미는 그 속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조롱 섞인 말투를 들었다. 주먹을 꽉 움켜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내저었고 피부가 새파랗게 질릴 정도로 허벅지를 꼬집어 비틀었다.


다시 눈을 떴지만 어째서인지 대신들은 온데간데없이 학창 시절 자신을 우롱하던 동급생들이 올려다보고 있었고 류미는 우스꽝스러운 광대 복장과 빨갛고 둥근 코를 낀 채 무대 위에 올라서 있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고 치욕스러웠다.


류미는 더는 그런 수모를 겪고 싶지 않았다. 3년이라는 그 지옥 같은 시간으로 충분했다. 부들부들 떨리던 류미의 손에 지팡이가 소환되자 창을 통해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눈이 불꽃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하자 환영은 물감이 번지듯 사라지고 격노한 류미 때문에 놀란 대신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이러한 환영이 자주 목격됐다.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버드네이즈가 사라진 후부터 이런 것으로 보아 그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지긋지긋한 과거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나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류미의 분노가 흘러넘치려 하던 그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스칼리가 회의실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스칼리는 무겁게 내려 앉은 회의장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들어와 류미에게 가지고 온 편지를 내밀었고 속삭이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포도밭 주인을 심문하려 그를 찾아갔는데 뼈만 남아 있어 어떠한 단서도 없이 편지를 찾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괜찮아. 고생했어. 그 밖의 특이사항은?”


“왕의 관문에 왕국군의 요새가 지어지고 있었고 평화의 항구 근처로 군이 집결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항구를 치려는 듯합니다. 그리고 병사들의 생김새도 그렇게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마치...”


아스칼리는 엎드려 있는 렉스크를 응시하며 말했다.


“저 녀석 같은 놈들이 수백 명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스칼리가 기분 나쁜 눈으로 내려다보자 렉스크는 눈을 부라리며 입으로 소리 없는 욕을 내뱉었다.


“제 부하들이 항구에서 계속 정찰을 하고 있으니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그때 또 보고 올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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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179화 지도자(3) 23.02.26 16 0 17쪽
178 178화 지도자(2) 23.02.24 19 0 12쪽
177 177화 지도자(1) 23.02.21 24 0 12쪽
176 176화 반격(2) 23.02.20 24 0 10쪽
175 175화 반격(1) 23.02.19 21 0 11쪽
174 174화 기습(6) 23.02.17 27 0 12쪽
173 173화 기습(5) 23.02.14 23 0 11쪽
172 172화 기습(4) 23.02.13 23 0 11쪽
171 171화 전쟁의 서막(2) 23.02.12 23 0 11쪽
170 170화 전쟁의 서막(1) 23.02.10 24 0 11쪽
169 169화 기습(3) 23.02.07 26 0 12쪽
168 168화 기습(2) 23.02.06 23 0 11쪽
167 167화 기습(1) 23.02.06 23 0 11쪽
166 166화 연합(10) 23.02.04 24 0 12쪽
165 165화 연합(9) 23.01.31 24 0 11쪽
164 164화 연합(8) 23.01.30 38 0 12쪽
163 163화 연합(7) 23.01.29 25 0 11쪽
162 162화 연합(6) 23.01.27 24 0 11쪽
161 161화 연합(5) 23.01.24 29 0 10쪽
160 160화 연합(4) 23.01.23 30 0 12쪽
159 159화 연합(3) 23.01.22 32 0 12쪽
158 158화 대모 모구라 23.01.21 31 0 12쪽
157 157화 연합(2) 23.01.17 32 0 10쪽
156 156화 연합(1) 23.01.16 32 0 12쪽
» 155화 류미(1) 23.01.16 32 0 12쪽
154 154화 스피제리(3) 23.01.13 31 0 11쪽
153 153화 스피제리(2) 23.01.11 34 0 11쪽
152 152화 스피제리(1) 23.01.09 36 0 11쪽
151 151화 크리스탐 23.01.09 3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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