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전자계산기, 세탁기, 냉장고
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17. 전자계산기
백열전구 공장이 완공되고 합격품이 찍혀 나왔을 때 바로 라디오의 추가 주문이 들어왔다.
이미 보냈던 CTR-60 10만 대와 CTR-61 20만 대가 다 팔렸으니 추가로 같은 양을 더 보내라는 이야기였다. 공장을 확장하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이제 공장을 확장했으니 특별히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두 번째 제품 전자계산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자계산기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바닥 위에 놓고 계산하는 계산기를 생각하거나 그게 아니면 컴퓨터의 번역 용어였던 전자계산기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의 계산기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개인이 계산기를 사용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고 이 시대 사람들은 동양에서는 주로 주산을 주로 사용하고 서양에서는 비슷한 손가락 계산법을 사용하든가 그게 아니면 릴레이식 계산기를 사용했다.
주산의 문제는 이게 특정 개인의 기술이라는 문제가 있었고 빠르고 정확하다고 해도 이 주산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검증도 안 되고 만약 이 사람에 문제가 생길 경우 대체품도 없다.
요즘은 학교에서 주산을 배워 나오는 인력이 상당히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큰 회사에서는 기계식 계산기를 만들어서 사용했다.
시계의 톱니바퀴와 비슷한 고도로 복잡한 톱니바퀴로 계산이 이루는 방식이었는데 2차대전 이전에는 이게 주류였다. 물론 그 복잡한 걸 전부 기계로 만들어야 하니 복잡하고 비싸고 고장도 잦았다.
그래서 2차대전 이후에 등장한 게 바로 릴레이식 계산기다. 그 전자 부품 릴레이 맞다.
이 시대의 주류 계산기는 바로 이 릴레이 계산기인데 기계식 계산기에 비해서는 훨씬 가격이 떨어지고 신뢰성도 올라갔다.
기계식 계산기는 계산 한 번 하려면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온 사무실 안에 퍼졌지만 릴레이 계산기는 소리가 아예 안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조용해졌다.
그러나 릴레이식 계산기도 여전히 문제가 많다. 가격이 여전히 비싸고, 소리가 나고, 크기가 너무 컸다.
이 시대 릴레이식 계산기는 책상 하나나 둘 정도 크기로 보면 되는데 책상 위에 타자기 비슷하게 생긴 숫자를 누르는 버튼이 있고 표시장치가 있고 책상 부분이 본격적인 계산을 처리하는 릴레이가 들어 있는 형태다.
가격은 대략 일본에서는 80만 엔 전후, 미국에서는 조금 더 비싼 4천 달러 내외로 팔리고 있었다.
내가 계산기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빠는 의아해 했다.
“이미 미국에서 컴퓨터를 만들고 있잖아. 뭔가 다른 거야?”
“미국에서 만든 건 좀 더 복잡한 사무처리를 위한 기계고 이건 그냥 계산만 해주는 기계야. 그러니까 세탁기로 보면 컴퓨터는 세탁하고 물까지 전부 짜주는 기계인데 이건 빨래에서 물만 짜주는 그런 기계라고 할 수 있어.”
우리 집은 이미 부자라서 집에 세탁기가 있는지라 이런 세탁기 비유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계산기를 설명할 때 갑자기 아빠는 세탁기 이야기를 계속하길 바랐다.
“잠깐 세탁기에서 물만 짜주는 기계라고? 그런 걸 만들 수 있어?”
“만들 수 있긴 하지만 지금 그 얘길 하는 게 아니잖아.”
“아냐, 이 이야기도 중요해. 물만 짜주는 기계 이거 진짜 팔린다.”
하긴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빨래에서 물만 짜주는 기계가 제법 팔린 게 기억났다. 70년대였는지 80년대였는지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집에도 한 대 있었는데 엄마가 무척 행복해 했다.
“알았어, 물만 짜내는 세탁기 개발해 줄 테니까 지금은 계산기 얘기를 하자고.”
아빠는 그제야 계산기에 대한 내 설명을 듣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트랜지스터로 이걸 만들어서 일본과 미국에 팔아먹자, 이거구나.”
“그렇지, 지금까지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 계산기가 나오지 못한 건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가 너무 비싼 물건이라서 그랬는데 우리는 트랜지스터를 굉장히 싸게 만들 수 있으니까 충분히 경쟁력 있는 계산기를 만들 수 있어.”
“한국에서는 팔릴 물건이 아니지만 일본이나 미국 그리고 유럽에서는 꽤 팔릴 물건 같기는 하네. 그럼 일본에 먼저 큐브 재팬을 설립할 거니?”
“응, 그러니까 미국에서 사람이 오면 같이 일본에 가서 큐브 재팬부터 설립해 줘. 난 그사이에 계산기를 설계해 놓을게.”
한국과 일본은 아직 국교가 이루어지지도 않아 한국인이 달랑 일본에 가서 지사를 설립할 수는 없었다. 아니 국교 이전에 일본은 한국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시대다. 그러니 일본에 아빠 혼자 가서는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나마나 관청의 하급 공무원 하나가 제대로 만나주지도 않으면서 시간만 질질 끌 게 분명했다.
그래서 미국의 큐브 본사에서 사람을 보내게 해 그 사람과 아빠가 같이 일본으로 가서 큐브 재팬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한국인은 그렇게 무시하면서 미국인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미국인이 와서 일을 처리하면 처리 안 되는 게 드물었다. 미국인을 본 일본 공무원은 급행료를 받아 먹은 한국 공무원만큼이나 빠르게 일 처리를 해준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고 빨리 유능한 영업사원 한 명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장인 고든 카파가 사람을 대동하고 직접 한국으로 왔다.
“사람을 보내랐더니 고든이 왜 직접 온 거야?”
“명색이 본사 사장이니까 한국 공장을 한 번 둘러보기는 해야 하니까 직접 왔어. 게다가 내가 너무 젊어서 권위가 없어 보일 수 있으니까 여기 다른 직원들과 변호사도 데려왔지.”
고든은 내 전자계산기 프로그램에 대해 듣더니 말했다.
“그건 유럽에서도 꽤 팔리겠는데 큐브 컴퍼니의 다음 상품에 넣어야겠어. 근데 같은 계산 기계인데 DEC의 켄이나 웨슬리가 업종을 침범 당했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켄과 웨슬리는 이런 작은 기계 쪽에는 관심 없을 걸. DEC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큐브는 반도체 같은 부품과 각종 주변 기기들 이렇게 역할을 확실히 분담하면 돼.”
아빠와 고든은 일본으로 간지 한달도 되지 않아 지사 설립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말했다.
“그쪽에는 교포가 많아서 쓸 만한 사람을 구해서 사장을 맡겼다. 우리가 물건만 보내주면 팔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더구나. 그러니 먼저 라디오부터 보내는 게 어떠니?”
“일본 공무원들이 방해하지 않을까? 그 사람들 외국 상품에 대해서는 굉장히 적대적이잖아.”
고든이 끼어들었다.
“일단 한국 회사의 제품이 아니라 미국의 큐브가 설계하고 부품을 생산한 뒤 조립만 한국에 맡긴 제품으로 되어 있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정 방해가 심하면 정치권을 통해 압력을 넣어봐도 되고.”
실제로 설계도 내가 미국에서 했고 부품 중에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는 미국에서 만들어서 수입해 오고 있으니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
아빠가 말했다.
“그 사람 말이 우리가 만든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훌륭한 상품이고 일본에서의 판매도 장담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일본에서 오래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팔 생각이라면 일본 각지에 대리점을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 보라더구나. 지금 일본의 내쇼날이나 산요, 도시바 같은 가전 회사는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말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본 시장에 집중하려면 각지에 대리점을 만드는 게 최선이긴 한데 우린 그런데 들어갈 자본이 없잖아. 그러니 그건 좀 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만 판매를 주력하는 게 좋겠어.”
큐브 컴퍼니에서는 큐브와 캐리어, DEC에서 PDP-1 미니 컴퓨터, 큐브 코리아에서 트랜지스터라디오, 동해 시멘트에서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다. -이 중에서 동해 시멘트는 아빠 소유다- 모두 잘 팔리는 상품이 맞고 우리의 캐시카우긴 한데 우리가 아직 그렇게 돈이 넘쳐나는 상태는 아니다.
이 돈들이 대개 한국에서 공장 증설에 돈이 들어가고 있어서 그렇다. 시멘트 공장 증설에 대략 1천만 달러가 들어갔고 서면의 공장 증설에도 500만 달러 이상 들어갔다. 우리가 그사이에 벌어 들인 수입으로 충분히 가능한 액수 아니냐 싶을지 몰라도 앞으로의 회사 운영비나 연구비 등을 생각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큐브 컴퍼니는 아직 아니지만 이미 DEC는 은행에서 꽤 큰 돈을 대출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미국 은행의 대출이야 이자도 높지 않고 우리 사업만 잘 돌아가면 상환 독촉도 않는 안전한 대출이지만 DEC를 제외한 다른 곳은 그런 대출이 아직은 불가능하다.
큐브와 캐리어와 트랜지스터라디오가 1년 이상 안정적으로 팔려나가야 비로소 은행에서도 우리를 믿고 자금을 대출해 줄 거다.
고든이 말했다.
“그럼 일단 대리점 문제는 접어두고 일본에 팔 상품부터 정리하지 제일 먼저 트랜지스터라디오인 CTR-60과 CTR-61 그리고 빨래는 짜는 기능만 있는 세탁기, 그리고 냉장고란 말이지?”
“세탁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냉장고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냉장고라고 해도 미국 같은 큰 냉장고를 생각하지마 여기 냉장고는 냉동 기능도 없는 소형 냉장고야.”
나는 손으로 대충 크기를 그리면서 말했다.
“대충 이 정도 크기.”
“그런 크기도 팔려?”
“한국이나 일본은 습기 있는 음식이 많은데 냉장고가 없어서 버리는 음식이 제법 돼. 그래서 이런 소형 냉장고를 찬장처럼 사용하는 거야.”
미국인인 고든은 반찬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내가 그렇다고 하니 그냥 넘어갔다.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천재 사주의 의견을 반대할 정도로 그가 어리석지는 않았다.
“알았어, 그럼 거기에 맞춘 설계도를 미국 본사에서 그려서 보내 줄게. 그리고 한국에 어떤 부품 공장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지도 구경 좀 해보고.”
고든은 우리 한국 공장을 훑어보았다.
그가 공장 안으로 들어가도 여성 직원들은 전부 책상 앞에 엎드려 조립과 납땜 작업에 열중할 뿐 누가 들어와도 얼굴을 들어 쳐다보지도 않았다.
고든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직원들 훈련이 잘 되어 있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짜 훈련이 잘되어 있어. 게다가 성실하고 빨리 배우고 아주 최고야.”
“확실히 이 정도 시설과 노동자면 모터 생산도 가능하겠어. 기술자를 따로 파견할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술자 파견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그러니 여기서 기술자를 큐브로 보낼테니까 기술을 가르쳐 줘.”
시멘트 공장을 증설하면서 미국에서 기술자를 데려와 훈련하는 바람에 경비 소모가 엄청났다. 미국과 한국의 임금 차이가 워낙 심한 데다 한국으로 데려올 경우 오지 수당까지 지불해야 하니 기술자 한 명에게 들어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기술자를 데려오는 대신 우리나라 기술자를 외국으로 보내 기술 교육을 시킬 작정이었다.
이 시기 한국에는 대학을 나온 우수한 인재들이 능력에 비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에는 대학 졸업생을 고용할 만한 좋은 일자리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학력 인재들은 저학력자에 비해 기술 습득의 속도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이들에게 기존 월급의 두 배를 주고 미국으로 보내도 미국 기술자 한 명을 데려오는 비용의 1/10도 안 된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입고 쓰는 모든 주재 비용까지 합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언어 문제가 약간 걸리기는 해도 대학까지 나올 정도로 충실하게 문법과 독해를 익힌 사람은 회화용 영어의 습득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외국어 습득이라는 게 결국 그 언어의 어휘와 문법 체계를 알아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큐브에도 이들에게 기술을 알려줄 만한 냉장고나 세탁기 관련 생산 공장은 없었으나 대신 다른 곳에 교육을 위탁하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교육을 의뢰하는 기회에 손재주가 좋고 빨리 배우는 머리 좋은 여공도 몇 사람 보내어 다른 몇 가지 기술을 습득하게 했다.
그들에게 가르친 기술은 바로 가발 제작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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