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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릎

노예검투사는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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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릎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4
최근연재일 :
2022.06.08 20: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6,168
추천수 :
461
글자수 :
138,314

작성
22.05.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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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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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2쪽

4편 희생양(6)

DUMMY

4편 희생양(6)




이튿날. 검투사들 사이에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카일록 양성소에 '빌런'이 나타났다!


사실, 패배한 동료가 정신을 놓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번 빌런은 조금 결이 달랐다. 이번 빌런은 승리를 하고서도 정신이 나가버렸다는 게 아닌가?

저녁을 먹으러 온 알브레이는 옆자리의 검투사로부터 기분 나쁜 소식을 전해 받았다.


“알브레이, 조심하라고...!"

"왜?"

"굴라쉬 얘기 못 들었나? 점심때 '그놈'한테 붙잡혔다가 3시간을 고문당했대···!”

“뭐? 그 녀석 아직도 그러고 다녀?”

“그래, 지금도 희생자를 찾아 떠돈다더라.”

“칼자랑에 미친놈 같으니.”


알브레이는 헛웃음을 쳤다. 기가 막히는 이야기였다.

세상에 검투 경기에서 이기고도 미쳐버리는 놈이 있다니.


“젠장, 놈이 오기 전에 빨리 먹고 튀어야겠군.”


놈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한 생각에, 검투사들은 입을 꾹 닫고 경쟁하듯이 콩죽을 우겨넣었다. 덩달아 알브레이의 손놀림 역시 빨라졌다.


“시발, 고기 맛을 하나도 모르겠잖아.”


알브레이의 앞에는 승리한 검투사에게 주어지는 특식. 소고기 스테이크가 차려져 있었다. 겉은 바삭하게 구워졌으며 속은 촉촉한 육즙이 가득 찬 등심임에도, 이상하게 종이쪼가리를 씹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식당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로소, '그놈'이 온 것이다...!


“내가 누구? 레어 등급 아이템 오너.”


다짜고짜 개소리를 내뱉는 인형. 소문 속의 빌런이었다. 알브레이 옆에 있던 검투사가 탄식했다.


“망할, 진짜 나타났잖아.”


식당에 나타난 빌런. 그 정체는 노예 번호 900번, 이제는 다우드 이샤이라 불리는 신참이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부러진 팔에는 부목을 덧댄 다우드는 딱 봐도 중상을 입은 환자였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의기양양하기 짝이 없었다.

출입구에 가장 가까이 앉았던 검투사들의 움직임이 뻣뻣해졌다.


“와, 왔구나? 어서 밥이나 먹으라고.”

“그, 그래! 나으려면 많이 먹어야지.”

“되도록이면 저기 멀리 앉고.”


입에 뭔가 들어가면 말은 못하겠지.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신참, 다우드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좋은 말씀 전하러 왔소.”


허리에 검을 찬 그놈은 뻔뻔하게도 지나가는 동료들마다 자신의 검을 들이밀며 말했다.


“보이나? 이 영롱한 자태가.”

“어, 어어···. 좋은 검이지. 축하하네.”

“좋은 검? 뭘 모르는구만. 레어급 아이템을 보고 고작 좋은 검이라니?”

“······.”


다우드의 허리에 걸린 것은 어제 있었던 명명식에서 받은 물건이었다. ‘충돌의 글라디우스’라고 불리는 검은 양성소의 검투사들 중 모르는 자가 없는 기물.

알브레이는 과시에 취한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억지로 눈을 돌렸다. 자꾸만 눈길이 놈이 들고 있는 검으로 향했다.

나는 부럽지 않다.


“제타의 ‘부딪치기’를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굉장한 내구도를 자랑하지. 그러면서도 무게는 가볍다? 이건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말조차 부족하구나.”

“···그 말 한 번만 더 들으면 50번이야 신참.”

“좋은 말은 들을수록 깊이 새겨지는 법.”

“······.”


식당에 모인 검투사들의 표정이 썩어갔다. 축하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아침부터 지금까지 저러고 있으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참다못한 누군가가 소리 질렀다. 점심때 붙잡혔던 굴라쉬라는 검투사였다.


“적당히 좀 해라! 얼마나 더 떠들어대야 그만 둘 셈이냐?”

“굴라쉬? 미, 미안하다. 너에게는 못할 짓을 해버렸군···.”


다우드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식당에 있던 모든 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헛소리가 끝나겠구나.

고맙다 굴라쉬.


“이 검의 대단한 점을 다 설명하지 못했으니까.”


이런 제기랄.

신참의 발걸음이 굴라쉬 쪽으로 향했다. 또다시 일장연설을 시작하려는 모양새였다.

모두가 ‘나만 걸리지마라’를 되뇌며 고개를 푹 숙였다.

굴라쉬, 네 희생은 잊지 않을게.

검투사들은 희생양에 대한 묵념을 바쳤다.


“표정이 안 좋네? 부러워서 그러나?”

“아니, 아니야. 내가 무슨 표정이 안 좋다고···. 그냥 소화가 잘 안 돼서 그러지. 그래서 말인데 다른 녀석에게도 검에 대해 설명해주면 안 될까?”


더듬거리는 그의 변명에 모두의 가슴이 철렁했다. 저 자식이 대체 누굴 조지려고?

제발 입 좀 다물어 굴라쉬!

다행히 신참, 다우드의 귀에는 굴라쉬의 말이 닿지 않았다.


“부러운가? 부럽겠지.”

“······.”

“이해한다. 네 검은 보급품이니까!”


빠득

알브레이의 어금니에서 요상한 소리가 났다. 나이프를 쥔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본 그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풀었다.

내, 내가 왜 이러지? 나는 부럽지 않은데.

그러는 중에도 다우드의 자랑질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글라디우스는제국력377년에만들어졌으며,본디야전을위해고안된군용제식무기였던본판과다르게손잡이가밋밋하다는특징을가지고있지.검투경기의특성상다양한상황이벌어질수있기에어떤방식으로도편히쥘수있도록한장인의세심한배려가돋보이는명검이란소리다.또한···.”

“······.”



그쯤 되자 붙잡힌 굴라쉬는 거의 넋이 나가버렸다. 초점 없는 눈으로 콩죽을 휘적거리는 그의 위로 신참의 자랑질이 이어졌다.


“이봐, 듣고 있나? 여기서부터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이 검이 진짜 대단한 점은 따로 있단 말이야.”

“어? 어어···. 드, 듣고 있다.”

“‘부딪치기’가 이어질수록 대미지가 강해지는 옵션! 비록 5회 중첩이 최대이긴 해도, 정말 엄청난 성능이군. 이정도면 거의 나를 위해 존재하는 무기 아닌가?”


당연하지 이 빡통아! 제타에게 검술을 배웠으니까. 알브레이는 스테이크를 질겅거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부럽지 않다. 전혀 부럽지가 않아.’


제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멧돼지 자식에게 검을 준 걸까.

물론 저러는 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제타의 검은 그럴 만한 의미가 있는 물건이니까.

다섯 뿐인 2위계 검투사 중 1인이자, 숱한 전투에서 승리한 살아있는 전설 아닌가. 공석인 1위계, 그리고 챔피언의 자리에 가장 가까운 자라고 평가 받는 것이 제타였다. 카일록 양성소의 모두가 정신적 지주로 생각할 만큼 인품도 훌륭한 사람이었고.


‘왜 내가 아니라 저 멧돼지 자식한테···.’


알브레이는 순간 떠오른 생각을 흔들어 지웠다. 나는 부럽지 않다고 시발!

아무튼 누구라도 기쁨에 취할 만한 물건이란 소리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짓거리였다. 과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크으, 명품으로 썰어먹는 스테이크는 각별하군!”


그 의미 깊은 칼로 스테이크를 자르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

쩝쩝거리며 등심을 음미하는 다우드를 보고, 마침내 알브레이의 울화통이 터져버렸다.


“이 미친놈아! 그 귀한 검으로 지금 무슨 짓이야!”


순간, 식당에 정적이 흘렀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던 다우드의 입이 멈췄음은 물론이요, 달그락거리던 수저소리마저도 삽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시선들이 슬금슬금 알브레이에게 옮겨졌다.


‘쟤 미쳤나 봐!’


검투사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조용히 숨어있어도 모자랄 판에 어그로를 끌다니?

끼긱, 끼기긱

알브레이를 향해 천천히 돌아가는 다우드의 목. 검투사들의 귀에 녹슨 경첩소리 같은 환청이 들려왔다.


“부러운가?”

“뭐, 뭐?”

“부럽겠지. 네 검은 보급품이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알브레이는 기가 막혀서 코웃음을 쳤다.

착각에도 정도가 있지. 뭐가 부족해서 네깟 녀석한테 질투를 해?


“아, 아닌데? 내 칼도 좋은 칼인데?”

“안됐지만 충돌의 글라디우스는 내게 더 맞는 무기. 단념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거다.”

“그러니까 필요 없다고.”

“제타도 아는 거지. 9위계인 네 녀석보다는 7위계인 이 몸이 레어급 무기에 어울리는 검투사라는 걸.”


빠득.

그러고 보니, 이 새끼 아직도 내가 9위계인 줄 알고 있었지.

위계를 언급하며 놈의 얼굴은 한층 더 기고만장해졌다. 알브레이는 그 꼴이 아니꼬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7위계라고!

그러나 정정하기도 그런 것이. 이 놈과 같은 위계라는 것도 딱히 유리할 것 없는 이야기였다. 어제 경기 이후로 다우드의 위계는 그와 같은 7위계였으니까. 그 사실이 알브레이를 더 열 받게 만들었다.


“분명 잘 모르니까 질투하는 것이겠지. 그런 너도 이 검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순수히 인정하게 될 터.”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잘 알아도 내가 더 잘 알지. 감히 네까짓 게 무슨···.


“이글라디우스는제국력377년에만들어졌으며,본디야전을위해고안된군용제식무기였던본판과다르게손잡이가밋밋하다는특징을가지고있지.검투경기의특성상다양한상황이벌어질수있기에어떤방식으로도편히쥘수있도록한장인의세심한배려가, 읍!”

“닥쳐, 닥쳐 좀!”


알브레이는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어서 다우드의 입에 스테이크를 쑤셔 넣었다.

그러나 우물거리는 다우드의 입술이 닫혀있던 것은 잠시뿐.


“···장인의세심한배려가돋보이는명검이란소리다.또한수천번단련한검신은찌르기에특화되어독특한직선을그리고있는데,검의첨병부터예리하게뚝떨어지는생김새는실전을상정한예술의극치라고할만하지.그리고···.”


어어, 잘못 건드린 것 같은데······.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정보의 폭포. 다우드의 등 뒤로 넋이 나간 채 중얼거리는 굴라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국력···장인의배려···실전예술······.”


식은땀 한 방울이 알브레이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 알브레이는 직감했다. 저 모습이 3시간 뒤 내 모습이 될 거라고.


‘이대로는 나까지 미치고 말거야전을위해고안된군용제식··· 헉, 내가 지, 지금 무슨 생각을.’


알브레이의 뇌리에 새겨지는 단어의 나열들!

미치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가 알브레이의 몸을 장악했다.

알브레이의 손이 신참의 검을 낚아챘다.


“끄에에엑!! 닥쳐어어어!!”


비명을 지르며 던져지는 글라디우스!

검투사들의 시선이 홀린 듯이 날아가는 검을 쫓았다. 슬로우 모션처럼 날아가던 글라디우스는 식당을 가로질러, 이윽고 창문 밖으로 사라졌다.

퐁당!

청명한 물소리가 식당에 울려 퍼졌다. 창문 아래 조경된 연못에 검이 빠지는 소리였다.

알브레이는 충격에 빠진 채 중얼거렸다.


“내, 내가 무슨 짓을···.”


머릿속으로 던져버린 검의 가치가 스르륵 지나갔다. 저런 취급을 받을 검이 아닌데!

검투사들의 시선이 혼란스러워하는 알브레이를 담았다가, 천천히 반대쪽으로 옮겨졌다.

한순간에 검을 잃어버린 다우드는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 검이···?”


다우드의 허망한 눈빛이 허전하게 비어버린 두 손을 바라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는 다우드. 망연한 표정이 창문으로 향했다.


“내 카아아알――!!”


돌연 달리기 시작하는 다우드. 검투사들은 아연실색했다. 돌진하는 방향 끝에 있는 것은 창문이었다!


“야, 야! 저 새끼 잡아!”

“여긴 3층이라고!!”

“미친놈아 멈춰!”


무수한 검투사들의 손이 고삐 풀린 말처럼 맹진하는 신참을 잡기 위해 뻗어졌다. 그러나 광기에 휩싸인 다우드의 눈에는 그 무엇도 들어오지 않았다. 달라붙은 선임들을 거침없이 뿌리치는 그의 머리에는 오직 검에 대한 집착뿐!

나가떨어지는 선임들의 비명소리가 식당을 가득 채웠다.


“악! 진정 좀 해!”

“이 자식 힘이 왜 이래? 너 돌았어?”

“뚜, 뚫린다! 다들 막아!”


마침내 선임들을 떨쳐낸 다우드가 창문 문턱을 밟았다. 완전히 돌아가있던 신참의 눈에 처음으로 이성의 흔적이 남았다. 예상 외로 너무 높았던 것이다.

그것도 잠시, 신참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망설이던 그는 결국 문턱을 박찼다.


“야아아아아!!”


다우드가, 하늘을 날았다.




풍덩―!




4편 희생양 끝.


작가의말

와... 갑자기 선작이랑 조회수가 엄청 늘었습니다

대체 머선 일이...



+++

저번편 끝부분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딕슨을 좀 더 능청스럽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다소 흐지부지한 느낌도 지울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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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편 희생양(6) +3 22.05.30 220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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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4편 희생양(3) +1 22.05.26 198 12 15쪽
14 4편 희생양(2) 22.05.25 193 13 12쪽
13 4편 희생양(1) +2 22.05.24 205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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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3편 개인교습(2) +2 22.05.20 223 1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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